※ 기분전환용 내맘대로 습작입니다. 그런데 언제 정리정돈을 하냐... ※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데 화살이 날아왔다.
내가 맞은 건 아니었다. 헤엄을 치며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화살은 내 몸뚱이가 아닌 타평의 미간을 꿰뚫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을 것이다. 날이 부러진 식칼을 높게 든 채로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살았다는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락연을 붙잡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의 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처럼 더욱 무거워졌다.
『락연!』
『도련님... 이 아니라 응? 뭔가 틀린데, 이 냄새는. 당신... 여자였어요?』
『이 마당에 그런게 중요하냐!』
자세를 낮춰 그의 머리를 보호하려 하자 궁수는 노리는 방향을 바꿔 머리 정 중앙이 아닌 흉부에 정확히 세 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아 넣었다. 푹 소리에 반응, 몸이 움찔 떨렸다. 하나씩 발사한게 아니다. 살 세 개를 한꺼번에 끼워놓고 당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화살을 날리는 사람은 흔치 않아서 - 라기 보다는 거의 없어서 궁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운은 상대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만두라는 신호로 팔을 들어 휘저었다.
『그만둬! 이 자는 적이 아니야! 락연은 적이 아니라고!』
나의 외침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락연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인지 공격이 멈췄다.

『어린애는 쏘지 마.』
명령하는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갑고 반듯해서 듣는 순간 소름이 돋으려 했다.
『그쪽은 신속히 정리해. 재(災)에 오염되었다.』
정리한다는 건 무슨 뜻? 흐릿해진 눈을 들어 보니 붉은 갑옷을 입은 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 거구의 목을 베고 있었다. 나는 기겁하며 락연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순서가 되면 그들이 락연의 목도 베어버릴까 걱정이었다.
『그의 안부가 걱정스러우냐?』
명령하던 자가 내 쪽을 노려보았다. 목소리만큼이나 냉정한 눈동자였다. 타인이 들어설 여지가 요만큼도 없는, 쓸데없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인간 아닌 걸 염려한들 무엇 하겠다고.』
내뱉듯 말한 뒤 손가락을 튕겨 움직임을 멈춘 락연으로부터 나를 강제로 떼어 놓으라 명했다.
『재앙을 뿌리는 것들이다. 말살해야 마땅한 것들이지.』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아니면 너도 저 부정한 것과 한 패냐.』

억지로 턱을 세게 잡혀 고개를 들어야 했다.
『우-』
『벙어리가 아니면서 왜 입을 다무는 거지.』
나는 잡은 턱을 놓아달라고 손짓발짓으로 애원했다. 그래도 사내는 강경했다.
『수상해.』
『뇌에 구멍이 뚫린 것도 같고.』
『비린내도 나고.』
뺨이 오목하게 쪼그라들 정도로 힘을 주던 손을 치우면서 그가 쏘아붙였다.
『게다가 못 생겼어!』
아무리 외모에 관심이 없던 나도 확신하여 선언하는 말에 자존감이 확 무너지려 했다.

락연과 죽은 남자들은 검은 천으로 씌워져 어딘가로 치워졌다. 엉거주춤 일어서 들 것에 실린 락연을 따라가려 하자 단칼에 거부당했다.
『제 일행인데요.』
그래서 다시 비난을 받았다.
『이 자가 의원에게 갈 것 같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요괴를 치료하는 의원이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 자를 따라가겠다고? 그거 참 호기롭구먼.』
멸시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남자는 입 꼬리를 슬그머니 당겨 비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원한다면 따라가도 좋다, 소년. 그쪽에서 너를 찬찬히 해부해줄 테니. 산 채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보고 인간인지 아닌지 적당히 판단을 해줄 거다.』
『저는 소년이 아니라 사실은 여...』
바로 그 순간 솥뚜껑을 닮은 손바닥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격통에 반응하여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자니 그가 다시 부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소극 상은을 폐쇄하고 관계자 전원을 체포해. 죄명은 루은에서 허가 없이 사술을 사용하여 요괴를 부린 죄다.』
『복명.』
『반항하면 전부 베어라.』
병사들은 2개조로 나뉘어 명령을 수행했다.
나는 주제를 모르고 다시 나서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극 상은에서 사술을 사용하여 요괴를 부린 건 아니었기에 상황을 설명하고 막아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게 아닙니다. 락연은 애초부터 저를 따라서 내재원으로부터 왔고...』
『그렇다면 네가 요괴를 부렸다고 실토하는 것이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남자와는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요괴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그렇지만 이사실에서 사역하는 사람 아닌 존재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이 남자의 상식은 루은은 철통방어가 되는 신성한 땅이고, 신룡의 은혜로 부정한 것들이 침입할 수 없다는 거였다. 여덟 성문은 주술에 걸려 있고 저주받은 것들은 감히 통과할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침범하는 것들은 적룡신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마땅하다 - 신념은 확고해서 내가 사정을 설명하려고 하면 그것들 전부가 변명이나 거짓이 되어버린다.
그가 검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다시 묻겠다. 네가 요괴를 부렸다고 실토하는 것이냐?』
예, 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아니오, 라고 할 수도 없고.
시간을 지체하자 손톱으로 검 손잡이를 튕겼다. 은백색으로 빛나는 날 부분이 겁집에서 약간 솟아올랐다. 그것만으로도 무척 훌륭한 위협이었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그때 키가 매우 큰 자가 골목으로 불쑥 나타났다.
목소리를 듣고 남자는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약간 올라온 검을 다시 검집 안으로 돌려 넣었다.
『무슨 일이야, 하은. 강도냐?』
『그게 아니라 요괴가...』
『요괴? 이런 곳에서?』
반문하다 말고 키 큰 남자가 나를 보고 들입다 손가락질했다.
『뭐야! 저거. 내 아들 놈 옷을 입고 있잖아!』
나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
『이라벽치 님!』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5/07/29 10:44 2015/07/29 10:44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966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비밀방문자 2015/07/29 23:33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미야 2015/07/31 09:47 # M/D Reply Permalink

    항상 감상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급자족용 - 이라 적고 자뻑용이라 읽는다 - 이라고 해도 좋아해주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항상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289 : 290 : 291 : 292 : 293 : 294 : 295 : 296 : 297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20519
Today:
364
Yesterday:
1861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