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64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번호는 작성 순서를 의미할 뿐으로 내용은 서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영양가 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는 거지. ※

『존! 기다려요! 존!』
당황한 카터는 도움이 될 것도 아니건만 팔부터 흔들어댔다. 그래봤자 전직 육상선수로 착각되는 인물은 그녀와 100보 가까이 거리를 벌리며 초고속으로 뛰어나가고 있는 중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거리를 휙휙 벌려나갔다. 불꽃을 뿜으며 날아가는 로켓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조만간 뒤통수조차 보이지 않을 터.
『존! 내 말이 안 들려요?! 제기랄, 이 화상아~!! 어제까지 앓아누웠다는 작자가 왜 이렇게 펄펄 날아?!』
당연히 듣고 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존 리스는 머리 어딘가가 고장이 나버린 제멋대로인 인간이었으니까.

전력질주를 3분도 채 하지 않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운동부족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관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가지도 않으며, 바다를 헤엄쳐 건너지 않는다. 먼 거리는 자동차로 이동하고 책상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는 일도 꽤 많이 한다. 사무직 직원처럼 종일 의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 결과 엉덩이가 커지고 옆구리에 살이 붙기 시작한다. 근육은 두부처럼 말랑거리고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호흡이 거칠어진다. 인정한다고, 인정해! 카터는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굽이 높지 않은 웨지 힐 구두를 신었음에도 발목으로 독특한 통증이 몰려왔다. 입술을 깨물고 참아보지만 뛰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싫든 좋든 그녀는 머잖아 뛰기를 포기해야 할 판국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포기 못 하는 인간도 있다.
『허... 씨발!』
지옥의 악마가 따라붙고 있음이다. 삼지창만 안 들었지 악마 중의 악마, 그것도 상급 악마다.
어디까지 왔나 뒤를 돌아보다 하마터면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 눈이 마주친 악마가 겁에 질린 그를 보곤 비싯 웃었던 것이다.「NY-PD다! 당장 제자리에 멈춰!」이딴 말 안 한다. 대신「이거 정말 죽여주는데!」이러면서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는 속도를 더욱 올렸다.
오른편에 자리한 천사가 트레비노의 귀에 대고 이죽거렸다. 봤지? 죽기 싫음 뛰어.

산소를 가득 들이마셔 거기에 불을 붙인다. 근육은 타오르고 찢어질 정도로 부풀어 오른다. 당겨서 밀어! 당겨서 밀어! 지면을 박차고 투명한 공기의 벽에 몸통을 박치기 시킨다. 조금만 더 빨리! 형광 빛을 내뿜는 지옥의 개를 피해 달아나며 일방통행 차도로 겁도 없이 튀어나갔다.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은 차량이 손가락욕설을 퍼부으며 난리를 쳤다. 그러든 말든 좌우를 살필 겨를조차 없다. 입을 하마처럼 벌려 다시 공기를 삼켰다. 산소가 부족하다. 심장은 풀무처럼 불탔고, 살과 피를 태우려면 산소가 더 많이 필요하다. 쪼그라들었던 폐가 갈비뼈를 압박하며 다시금 팽창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죽을 지경이다. 전속력으로 돌아가는 내부 장기들이 굉음을 내며 요동쳤다. 보일러 = 심장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씨발! 씨발!』
이대로 캐나다까지 뛰어갈 수는 없다. 큰길에서 방향을 틀어 건물 틈새로 난 좁은 길로 뛰어들었다. 문제는 트레비노가 이 근방 지리를 잘 모른다는 거다. 그는 뉴욕 토박이가 아니었으며 이곳에 적을 둔지 이제 겨우 5년이다. 5년이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겠으나 동네 곳곳을 탐방하고 다닌 적은 없다. 자릿세를 요구하며 시비를 걸어오는 갱들이 어슬렁거리는 쪼다를 그냥 내버려둘 것도 아니겠다, 능구렁이처럼 일생을 살아온 잔챙이 트레비노는「지나가서는 안 되는 길」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비켜, 비켜!』
그게 오늘에 이르러 이렇게 비수를 꽂을 줄이야.
쓰레기통을 향해 저리 비키라 고함을 지르며 구석까지 도망쳤다. 그랬다, 구석이었다. 앞은 뻥 뚫려있지 않았다. 반대로 가로막혔다. 무슨 억하심정인지 반대편 출구로 사람 높이의 펜스를 둘렀다. 철망 입구엔 자물쇠까지 채워놓았다. 이렇게 무식하게 막아두면 나 같은 무고한 사람은 어쩌라는 거야 -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고함을 지르며 펜스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그래봤자 쇳덩이는 무겁게 철렁 소리를 내었을 뿐으로 그 형태가 약간만 망가졌다.
『안 돼, 안 돼.』
영화에서 본 것처럼 겅중 뛰어 펜스를 넘으려 했다.
두어 번 점프하고는 영화는 영화, 현실은 현실이라 깨달았다. 매달렸으나 맥을 못 추고 몸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이소룡이 아닌 이상 이걸 뛰어넘으려면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

더 달아날 곳이 없음을 인지한 트레비노는 펜스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공포가...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는 공포가...
일본 헤이안 시대 주작대로 한 가운데서 어둠 사이로 지나가는 백귀야행 무리와 마주치면 이런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검은 양복의 사내는 뛰어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어쩐지 야비해 보이는 미소가 여전히 입에 걸려 있다. 아니, 야비하다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흡사 고양이가 쥐를 보고 웃는 듯한... 트레비노는 고개를 흔들어댔다. 궁지에 몰린 쥐 입장에서 입맛 다시는 고양이를 상상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쥐의 목덜미를 물어 그대로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흉폭한 고양이 - 안 돼. 생각하지 말자. 그래봤자 좋을 거 없잖아?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침을 삼켰다. 호주머니에 든 주머니칼을 꺼내어 단추를 눌렀다. 스프링이 당겨지며 은백색의 날이 튕겨 올랐다. 그걸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높게 들어 적을 위협했다. 훅훅, 이러고 좌우로 베어 공기를 갈랐다.

망했다.
상식이 안 통한다.
번득이는 칼을 보았음에도 검은 양복의 사내가 와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미친!』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돌은게 맞다. 사이코패스인게 분명하다.
벌벌 떨며 각오를 다졌다. 죽을 위험에 처하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더냐. 반격의 기회는 있다.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있다.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어느새 코앞까지 따라붙은 사내를 향하여 준비하고 있던 칼자루를 힘껏 내밀었다.
『어?』
배를 노리고 멋지게 찔렀건만 푸른 인광을 흩뿌리며 날아든 악마는「실례」이러고 몸을 비틀어 가볍게 피해버렸다. 피하기만 했던가, 엄청나게 빠른 몸동작으로 트레비스의 팔을 잡고 앞으로 세게 잡아당겼다. 찌르려고 쭉 뻗은 팔을 잡아당겼으니 체중 전부가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아차 하는 사이에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졌다. 내버려둬도 쓰러질 판국인데 양복의 사내는 한술 더 떠서 팔꿈치를 도끼처럼 사용해 트레비노의 목덜미를 사정 봐주지 않고 내려찍었다.
『꽥!』
외마디 비명과 같이하여 시야가 시커멓게 변했다.
『칼은 그렇게 사용하는게 아니야. 짧은 칼을 잡았으면 짧게 움직여야지. 쓸데없이 크게 움직이면 빈틈이 많아지는 법이야.』
친절한 조언은 둘째고 무릎을 올려 킥을 넣었다.
『것보다 눈 감고 사람을 찌르려고 하면 그게 먹히겠냐고. 응?』
마무리로 오른주먹이 턱을 강타했다.

『아, 오랜만에 신나게 뛰었더니 개운하군.』
대자로 뻗은 트레비노의 등 위로 올라탄 지옥의 악마가 즐거운 소리를 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그거 참 이상하네.』
그리고는 만족스럽게 기절한 = 사냥한 사내의 어깨를 툭툭 쳤다.

Posted by 미야

2013/01/23 10:45 2013/01/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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