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28 : Next »

낙서-일상생활70

※ 내일이면 휴방 끝이다~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시원하게 벗겨진 대머리... 운동을 게을리하여 약간은 펑퍼짐한 체격.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끌고 가는 모습으로 마주칠 것 같은 그런 인상의 남자다.
등을 구부정히 하고 지급된 점퍼 주머니에 손을 꿰고 있는 자세가 어찌나 평범하던지「당신이 찾는 맥주는 이쪽이 아니라 반대편 냉장고에 있어요」이러고 말을 걸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웃긴 착각이다. 사내의 이름은 칼 일라이어스, 이 교도소의 실제적인 지배자다.

시력 교정용 안경을 쓴 왕이 다가오는 서튼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그의 좌우편을 둘러싼 보드가드 역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두목과 달리 몸집이 크고 단단해서 전설에 나오는 야만족 용사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도끼를 쥐고 불을 뿜는 용들의 머리를 베어냈던 그런 사람들 말이다. 물론 현대사회에 드래곤이라는 판타지 생물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들이 잡아다 족쳤던 건 보다 현실적인 종류다. 이를테면 무장한 러시아 마피아라던가, 부패한 경찰들이라던가...
서튼은 일부러 걷는 속도를 줄였고, 보디가드 중 한 명이 이에 반응하여 몸을 돌렸다. 이름이 후안이라는 자다. 일라이어스를 보좌하기 위해 일부러 무장 강도짓을 저지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나이는 서른하나. 복싱을 잘 한다. 소문으로는 주먹만으로 사람을 때려죽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후안의 리스트에는 폭행, 무단침입 등등이 나열되어 있었어도「살인」은 없었다. 물론 운이 좋아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것일 수도 있으니 단순 헛소문으로 치부하기는 아직 이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에 멈추어 선 제임스 서튼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혹시라도 날아들 주먹에 대비했다.
그걸 본 후안이 재밌어 했다. 서튼이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교도관이 죄수를 두려워한다라 - 사실은 아니었지만 오해를 애써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오? 교도관 나으리.』
후안의 목소리는 저음인데다 울림이 강했다. 역시 야만족 용사다.
『자네 보스에게 손님이 왔네.』
『그 손님이 누구라고 전할까요.』
『쓸데없어. 자네가 그 사람이 누구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상대에 대해 알아.』
후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왕에게로 돌아가 귓속말로 몇 마디 단어를 속삭였다.
부하로부터 얘기를 전해 듣자마자 일라이어스의 눈빛이 순간 확 바뀌었다.
안경으로 감추고 있어도 서튼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즐거움.
유감스럽게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의.
지옥에나 가버려, 이러고 속으로 욕을 퍼부어댔다.

처음에 서튼은 그 남자가 전문 회계사일 거라고 짐작했다. 마피아들의 사업을 합법적인 것으로 위장해주고 자금을 세탁해주는 그런 머리 좋은 사기꾼 인간 말이다. 남자는 키가 자그마했고 옷차림이 좋았다. 종류를 잘 몰랐지만 그가 신고 있는 구두가 엄청나게 비싼 브랜드 상품이라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유행을 살짝 비켜간 넥타이도 고급품이었다. 그가 결혼식 날에 착용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종류이리라. 그러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엔 악당이 너무나 많고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기세가 등등하다.
『라인이 그려진 가운데로 걸으시오.』
방문자 기록에는 해밀턴이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다. 허나 그게 가명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일라이어스는 친근함을 표현하며 그를「해롤드 핀치」라고 부른다. 본인은 이름이 불려지는게 싫은 눈치지만 상대는 알 카포네 다음가는 실력으로 암흑가를 장악했다던 일라이어스다. 짜증이 나니 그러지 말라 차마 말은 못 하고 쓰윽 한 번 노려보곤 그걸로 끝, 서튼이 될 대로 되라 기분이 되어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와는 사뭇 반응이 틀렸다.
「소지한 가방은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해롤드 핀치 씨.」
「착각하셨습니다. 제 이름은 해밀턴입니다.」
그 노려보는 눈초리라니.
마피아에게 빌붙어 먹고 사는 인간인 주제에 무척이나 오만한 태도라 생각되어 정나미가 뚝뚝 떨어졌다.

『이쪽으로 오시오, 선생.』
해밀턴 - 해롤드 - 아무려면 어때 - 안경을 쓴 절름발이에게 눈짓했다.
일라이어스와 이 회계사 양반은 교도소의 지정된 면회장소가 아닌 교도소장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마련해준 개인적인 장소에서 미팅을 갖는다. 바로 그 점이 서튼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돋구었다. 두목이 감옥에서 썩어도 바깥에선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모양이다. 부아가 치민다.
가만있자... 서튼은 속으로 달력의 날짜를 헤아렸다. 마지막으로 이 자가 찾아왔던 것이 화요일이었다는 건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게 어느 화요일인지는 헷갈렸다. 한 20일 전인 것도 같은데. 아님 한 달 전이었나...? 물론 이쪽에서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번으로 세 번째 뵙는군요, 해밀턴 씨.』
서튼을 따라오던 절름발이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 그래서요? 제가 교도소를 방문하는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 하지만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 따지며 화내지 않았다. 게다가 이어지는 건 교활하게도 대답이 아닌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절 안내해주시는 분도 매번 같은 분이네요.』
『우연이라고 보시오?』
『우연인가요.』
『속담에 우연이 세 번이면 필연이라 합디다. 그렇다면 이건 필연이겠지요. 사실 당신의 보스가 댁을 안내하는 걸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게 막았소. 이유는 나도 모르니 묻지 말고.』
『잠시만요. 일라이어스는 제 보스가 아닌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회계사 선생.』
『전 회계사도 아닙니다!』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당신이야말로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회계사가 아니오?』
『아닙니다.』
『그의 부하도 아니고?』
『......』
아니면 마는 거지 그 째려보는 시선이라니.

턱받침을 한 자세는 언제나와 같았지만 체스의 말을 움직이는 동작에 여느 때와 달리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 있었다. 테이블에 체중을 기대어 흑백으로 나눠진 64개의 칸을 즐겁게 바라보던 일라이어스는 짐짓 눈을 들어 뚱한 표정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서로 체스 게임만 즐길 뿐, 대화를 나누는 일은 극히 적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치기로 했다.
『E7에서 여왕을 E4로 옮길 겁니까? 해롤드, 여왕이 직접 움직이면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위협에 노출될 수 있어요.』
『어쩌겠어요. 그게 제 플레이 스타일이라서요.』
일라이어스가 혀를 끌끌 차며 룩을 들어 다음 칸으로 이동시켰다.
『그게 당신의 단점이죠. 그래서 존하고 싸우게 되는 거예요.』
『우린 안 싸웠어요.』
『존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도 같은 대답일까요?』
『존은 상대가 당신이라고 알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을 거예요.』
『흐음... 싸웠다는 얘기네.』
핀치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래봤자 상대방 또한 천 년을 산 이무기라서 핀치가 아무리 냉기를 뿜어도 까딱 안 했다.
『체크.』
흰색의 기사를 무참히 쓰러뜨린 일라이어스는 나아가 여왕까지 노리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13/01/31 14:11 2013/01/31 14:11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846

Leave a comment

낙서-일상생활69

※ 상태 메롱이라능...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어렸을 적 그는 침대 아래로 자신만의 비밀기지를 건설했다.
손전등과 장난감 모형, 사탕과자를 숨겨뒀고 좋아하는 책도 거기로 가져갔다. 시트를 매트리스 아래로 집어넣지 않고 커튼처럼 늘어뜨려 입구를 가렸다. 벽돌처럼 책을 쌓아 바벨탑을 만들기도 했다. 또래의 아이들과 달리 몸집이 작았기에 좁은 공간에서 얼마든지 뒹굴어도 괜찮았다. 그곳은 양철식물이나 저승사자와 같은 괴물이 침입할 수 없는 안전한 장소였다.
다만 네 살 터울의 형은「계속 그러다간 시력이 나빠질 거다」충고를 잊지 않았다. 족집게 예언이었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핀치의 부모님은 아들의 손을 붙잡고 안과를 방문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적엔 검정 뿔테의 안경이 작은 콧잔등에 걸쳐져 있었다. 형들이 그걸 보고 혀를 끌끌 찼다. 뱅글뱅글 도는 안경을 쓴 상태로 우리와 같이 야구를 할 수 없어, 이 멍청아 - 축구도 마찬가지야 - 넌 망했어 - 그리고는 야구 글로브로 머리를 툭툭 때렸다. 그게 안타까움의 표현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당시에는 잘 몰랐다. 아무튼 형들은 그를「깍두기」취급하며 패밀리 리그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직접 공을 치거나 던지지는 못했어도 외야로 날아간 공을 주우러 다닐 수는 있었다. 둘째 형이 파울볼을 잘 쳤기에 운동량은 벅찰 정도였다.

「어두컴컴한 비밀기지에 처박혀 손전등 불빛을 비춰가며 책을 읽는 것보단 낫지.」
「낫긴 뭐가 나아. 이건 바보 짓 같아.」
「공 주우러 다니기 싫냐? 그럼 계집애처럼 치마 입고 응원석에서 폴짝폴짝 뛰며 응원을 하던가.」
「응원 따위 절대 안 해. 우~우 이러고 야유할 거야.」
「어쭈? 건방진 동생이로고.」
그리고 새우몸통꺽기 기술을 멋지게 당했다.
길고 튼튼한 팔을 가지고 있었던 형의 몸에선 태양의 오존 냄새와 운동장의 먼지 냄새가 풍겼다.

몸이 어느 정도 커지고 난 뒤로「비밀기지」에 집착한 적은 없다.
그래도「비밀기지는 이런 거야, 이렇게 생겼고 이렇게 만드는 거야」라는 추억이 머리에 남았다.
비밀기지 -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기에.
멸치처럼 비쩍 마른 소년의 행동을 모니터로 전부 지켜보았음에도 가만히 있었더랬다.
좁은 구석으로 들어가, 손전등의 불빛에 의지하여 악몽을 내쫓고, 행복한 꿈을 꾸고, 슬픈 꿈을 꾸고... 그것은 샤먼의 주술과 닮았다. 작고 연약한 동물은 자신만의 안전한 장소에 몸을 누인다. 그리고 한 줌의 허락된 위로를 갈구한다.
아아, 그렇기에...

『핀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 현실로 돌아왔다.
차가운 바닥에 닿은 뒤통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닌 허리가 골치 아픈 통증을 호소하려 들었다. 당연한 반응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건강한 사람은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사고를 당했던 핀치의 척추는 별 거 아닌 충격에도 요란한 심벌즈 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명절을 축하하며 마구 쏘아대는 차이나타운의 싸구려 폭죽 느낌이랄까. 매우 요란하고, 정신없고, 혼을 쏙 빼놓는다.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리스의 시선이 따라붙어도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건 그 때문이다. 시선만이 아니고 못이 박힌 거친 손바닥이 올라와 턱을 누르듯 어루만졌음에도 멀리 떨어진 남의 집에서 불이 났다는 식의 반응밖에 할 수 없었다.
혼란된 혼돈.
등이 아프다.
올려다보는 도서관의 얼룩진 천장은 어릴 적 그가 바라보았던 침대의 상판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그의 비밀기지인가.
그렇고말고.
사악한 부기맨이나 성질 고약한 후크선장이 들어올 수 없는, 그만의 안전한 장소다.

속눈썹이 부르르 경련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그 아이가 다시 이곳에 올 수는 없어요. 제이크의 가족은 지난 10월에 유타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승진을 하게 되어... 그러니까 그녀를 해당 지점으로 보내기 위해 약간의 트릭을 사용했지요. 나쁘진 않을 겁니다. 더 많은 보수와 그리고 더 많은 해택이...』
턱을 누르는 리스의 손가락이 스치듯 피부를 긁었다.
소년 제이크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려던 핀치는 입술 가장자리를 만지는 촉감에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런가? 설명은 그다지 필요치 않은 것인가? 눈을 깜빡거리며 어둠을 많이 닮은 사내를 쳐다보았... 그렇지 않다. 그는 어둠과 흡사하지 않다. 리스의 정신은 조만간 해가 지려는 그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빛이 그 힘을 잃은 세계로 땅거미가 수군거린다. 들판으로 쪽빛의 어둠이 번져간다. 빛의 잔해를 갉아먹으며 밤이 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어둠은 바닥까지 닿지 않았다. 지평선에 걸린 태양이 붉게 잔상을 남긴다. 혼란된 혼돈, 일몰의 감각 - 사내의 눈빛으로 빛과 그림자가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다.
핀치는 직감했다. 힘의 균형은 곧 깨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아아, 왜냐하면 이곳은... 그리고 이 사람은...
오래된 추억의 냄새를 맡았다. 햇빛의 잔상으로 남은 오존의 냄새, 그리고 먼지의 냄새.

머뭇거리며 그 손이 핀치의 얼굴을 타고 올라왔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저울질하던 눈빛이 돌연 결심의 각오를 품었다. 순간 전신을 압박하던 체중이 미열을 내고 가냘프게 진동했다.
그러한 변화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뭐랄까. 이 모든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해롤드. 당신을 만지고 싶어요... 만지게 해줘요.』
말라붙은 리스의 입술 틈새로 미지근한 호흡이 새어나왔다. 그 숨결이 코를 간질이자 재채기가 나올 것만 같아 초조해졌다. 콧물을 튀기고 싶지 않았기에 숨을 참으며 시선을 돌렸다. 부적절한 판단이었다. 그 움직임을 멋대로 해석한 남자는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그 즉시 덤벼들었다. 손가락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아래턱을 꽉 움켜쥐곤 목표물을 찾아 입술을 마구 찍어댔다.

짧은 간격으로 뚝뚝 끊어지는 호흡소리가 낯설다. 세련되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무식하다 싶을 정도의 완력으로 입술을 누르고 찍고 누르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경계에 한참을 머물러 있던 거대한 일몰이 임시로 세워진 가교를 건너 핀치에게로 도달하려고 했다.
감염되는 것, 확산되는 것,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것 - 해일처럼 밀려오는 암흑을 두 눈으로 모두 보았다. 유령과 마찬가지인 사람에게로 온전한 밤이 그 존재감을 피력하며 엷은 막을 펼쳤다. 그런다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 슬프다. 생명이 있어도 살아 있지 않다. 그런 사람에게 암흑은 온전히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불안은 그저 아득히 뻗어나가기만 할 뿐으로...
하여 핀치는 상상했다.
저 새카만 곳으로 팔을 길게 뻗으면.
결국 도달할 미지의 장소는 어디인가.

『해롤드. 해롤드.』
이름을 불러도 그의 고용주는 마치 잠이 든 사람처럼 반응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몸부림치며 완강하게 반항했더라면 좋으련만.
그랬다면 별다른 감흥 없이 힘으로 굴복시켰을 터인데.
『이러기에요. 나에게 정말 이럴 거예요...?!』
핀치의 눈동자는 굉장히 고요했고, 그리고 움직임이 없는 늪처럼 정지되어 있었다.
입술을 떼어낸 리스는 금방에라도 흐느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용주의 뺨을 쓰다듬었다.

Posted by 미야

2013/01/30 18:56 2013/01/30 18:56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845

Leave a comment

낙서-일상생활68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13번과 느슨하게 연결됨 ※

리스가 훈련받은 전문가의 존재를 배제하고 노숙자를 거론한 건 다 까닭이 있었다.
저 너머로 아기 레일라의 둥지가... 아니, 박물관에서나 보았던 공룡알의 둥지가...
손전등 불빛이 닿은 곳으로 책들을 벽돌처럼 쌓아 만든 수제 성곽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청결함과는 거리가 먼 이불을 빙 둘러서 책들을 듬성듬성 쌓아 올렸는데 그 재료는 1층 로비에 굴러다녔던 쓰레기들인 것 같았다. 파손된 형태로 보아 책꽂이에서 빼온 종류는 아니다.
핀치가 또 어린아이를 납치해왔을 리는 없고.
둥지의 좌우를 손전등 불빛을 비추어 샅샅이 확인해봤다.
곳곳에 종이가 널렸음에도 불을 피운 흔적은 없다. 다만 이쪽에도 다 먹고 버린 과자봉지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빈 물병도 찾았다. 그리고 닳아버린 건전지도 몇 개 밟았다.
『......』
어지른 모양만 보자면 노숙자가 맞기는 맞다만.
둥지 바닥에 깔린 이불에 손을 대고 온기를 체크했다. 진작에 식어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이걸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장소를 떠난지 제법 오래다.
『허어, 나 모르게 들어와 나 모르게 빠져나갔다?』
이걸 과연 북부의 추위를 피하고자 한 노숙자 짓이라고 판단해야 옳을까? 본능은 그러지 말라 충고했다. 리스는 참고할만한 단서를 찾아 신중한 자세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둥지를 만든 인간이 어느 구멍으로 들어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반드시 밝혀내야만 한다.

『리스~ 미스터 리스? 어디에 있나요?』
묘하게 퉁탕거리는 발소리와 같이하여 핀치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까지 내려왔다.
순간 목덜미가 쭈삣 곤두섰다. 핀치는 아직 이곳에 와선 안 된다.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다.
자기 집 부엌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잠옷 차림새로 아래층으로 내려와 전등 스위치를 올리는 순진한 여편네들 -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최소한 야구 방망이로 무장이라도 했음 말을 안 한다. 맨손인데다 부주의하기까지 해서 스키마스크를 쓴 도둑과 정면에서 마주친다. 서로의 눈이 휘둥글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도둑은 재빨리 부엌칼을 꺼내들어 여자를 위협하기 시작하고.
잠옷 차림새의 부인이 한 권의 책을 끌어안은 핀치로 둔갑하자 이성이 말라붙었다.
갈라진 목소리로 경고했다.
『여기서 나가요! 당장!』
『아하, 찾았다. 리스? 역시 거기에 있었군요.』
뒤뚱거리는 걸음새로 다가오던 핀치는 기이할 정도로 평정심을 보였다.
『나가라니까! 이리로 오지 말아요!』
『다 들리거든요. 그러니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깜빡 잊고 미처 해두지 못한 말이...』
『말 좀 들엇~!!』
리스가 화가 나서 명령조로 외치자 그제야 멈칫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얘기는 리스를 거의 미치게 만들었다.
『어, 지금 제 다리에 무슨 끈이 닿았는데... 리스?』

아마도 리스가 몸을 날리는 것과 거의 동시였을 거다. 도서관 직원들의 사물함으로 사용되었을 철제 캐비넷이 굉음을 내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화들짝 놀란 핀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는데 사실 그 상황에선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자세를 최대한 낮춰라 - 귀가 닳도록 옆에서 말해주었음에도 정작 중요한 순간이 되면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그는 달리기도 하지 못하며, 다리를 들어 울타리를 뛰어넘지도 못한다. 위험이 닥쳐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다. 낚아채서 던져봤자 토막처럼 구르지도 않는다.
『해롤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캐비넷이 딱 하나만 쓰러졌다는 것. 그리고 넘어진 물건이 핀치의 머리를 노리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아무래도 캐비넷 하단부로 벽돌 한 장을 끼워 넣은 범인은 사람을 다치게 만들 의도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소리만 요란했을 뿐으로 찌그러진 쇠붙이는 엉뚱한 방향으로 벌렁 누워버렸다.
한 손으로 핀치의 뒤통수를 감싼 자세로 요란한 슬라이딩을 펼친 리스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쓰러진 사물함을 노려보았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불을 붙였다. 잡히기만 해봐라. 오랜만에 사람 목을 비틀어 꺾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치솟았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핀치.』
『와...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는데요.』
『혹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나요.』
『아픈 곳이 많아 잘 모르겠습니다, 미스터 리스. 당신이 절 뒤로 밀쳐 쓰러뜨렸다고요.』
『좋아요. 그럼 오늘이 무슨 요일입니까.』
『것보다 당신 몸무게는 얼마인가요.』
무거워 죽겠으니 어서 비키라는 의미로 리스의 팔뚝을 툭툭 쳤다.
하지만 리스는 핀치의 몸을 깔고 엎드려 누운 자세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불안해졌다.
핀치는 다시 한 번 반복하여 리스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리스?』
『쉬! 조용히.』
『무슨 문제라도?』
『방금 전 부비트랩은 제가 설치한게 아닙니다, 핀치. 도서관에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알아요.』
『뭐라고요?』
『그러니까 자세히 설명할테니 일단 좀 옆으로 비켜주셨으면... 돌에 깔린 것 같아 힘듭니다.』
『지금 뭐라고요?』
『당신, 골렘처럼 무겁다고요.』
『아니, 그거 말고.』
리스는 인상을 구긴 채 깔고 누운 핀치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에게 무척 난감한 자세였지만 머리가 복잡한 나머지 당장은「부적절한」접촉을 인식하지 못했다.
설명할 수 있다? 알고 있었다? 팔꿈치를 사용해 상체를 살짝 들었다. 무겁게 짓눌리던게 완화되자 핀치가 보다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다고 해도 리스는 당장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곳에 누가 들어왔는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네.』
『그게 누굽니까.』
그게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핀치는 살짝 웃었다.
『음... 한니발?』
리스의 숨소리가 낮아졌다.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하기엔 무언가 흉흉하다.
아쉽게도 핀치는 그런 변화를 눈치를 못 챘다.
『당신이 한니발을 여기로 데려온 겁니까.』
『그럴 리가요. 그 아이가 입구 자물쇠를 기어코 뜯어냈을 적에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아울러 제가 말한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장군이 아니고 토마스 해리스가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이제는 정말 비켜줘야 한다며 핀치가 리스의 어깨를 툭툭 힘주어 때렸다.
『쇠톱을 들고 여기 입구 자물쇠를 자르려 했던 작은 아이를 기억하지요? 당신 얼굴을 향해 중국제 싸구려 손전등을 던졌던 아이요.』
그러고 보니 그런 적이 있었다.
리스의 머리로 몇 가지 단어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가출소년. 아이큐 높음. 반항적. 도서관 대출 카드.
『제이크?』
『맞습니다. 소설 한니발에 기이할 정도로 애착을 보이던 그 아이요.』
『그 녀석이 이 안까지 들어왔었다고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당신은 그걸 나에게 말하지도 않았고?!』
『별 거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그건 뭐랄까. 소년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핀치는 리스를 향해 이제 그만 일어나 앉고 싶다는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거칠게 밀침을 당했다. 아차하는 순간 또 다시 뒤통수가 바닥에 닿았다.

Posted by 미야

2013/01/29 14:50 2013/01/29 14:50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844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28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89012
Today:
3
Yesterday:
237

Calendar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