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 28 : Next »

낙서-일상생활73

※ 순서도 꼬이고 멘붕 회복도 안 되고...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어중간한 점심식사로 피시앤칩스를 주문하고 일단 커피부터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피시앤칩스는 이 가게에서 가장 빠르게 나오는 메뉴다. 맛은... 음. 카터는 쓰게 웃었다. 배가 고프면 말똥 파무침에 쇠똥 보쌈도 맛있는 법, 팔을 들어 직원의 시선을 잡아끈 뒤에 입만 뻥긋거려 바쁘니까 빨리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가게 로고가 인쇄된 앞치마를 걸친 점원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방을 향해 무어라 외쳤다. 아마도「손님 가라사대 번갯불에 튀기랍신다」, 대충 그런 이야기였을 거다. 뭐, 그런다 해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어서 느린 걸음으로 테이블 사이를 움직였다.「당신은 바빠도 나는 아니거든」이라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결국 재촉한 입장에서 접시에 침 뱉을 기회를 노리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시간부터 확인했다. 앞으로 30분 안으로 서로 돌아가 봐야 한다. 브롱크스 지역에서 벌어진 이중살인 사건 관련으로 몸도 마음도 바빠 죽을 지경이다.
주변 탐색은 일단 끝마쳤고 목격자 진술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용의자도 두어 명 올라왔다. 사체의 신원을 조사했더니 강도로 복역한 기록이 나와 과거에 피해자를 체포한 경관을 만나 사견도 주워들었다.
「아, 맥케이? 알다마다. 죽마고우라던 녀석이랑 둘이서 거시기한 술집을 털었는데 또라이는 가게 주인이 쏜 총에 맞아 죽었고 맥케이는 붙잡혀 8년 형을 살았소. 어설픈 2인조 강도였지.」
「거시기한 술집이 뭐죠?」
「말 그대로 거시기. 아이리쉬 마피아가 주인으로 있는 바였소.」
「예? 진짜요?」
「그럼 그게 가짜겠나. 그 둘은 손님으로 가장해 술을 주문한 뒤,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고 위협해 지갑을 전부 털어가는 수법을 썼소. 몇 번은 성공했지. 그런데 뭐에 홀려 왜 그런 가게를 털려고 했나 몰라. 우리들끼리 농담으로 덤앤더머라 불렀다오.」
「그랬군요. 저어... 한 가지 더요. 이 사진을 한 번 봐주시겠어요? 맥케이와 같이 살해된 남자인데 혹시 아는 얼굴인지요.」
「모르겠는데. 감방 동기나 뭐 그런 거겠지. 둘이서 덤앤더머 2편을 찍을 예정이었을지도.」
하여 장물거래가 잘못되었을 거라는 의견과 옛날 버릇 못 고치고 강도질을 하다 잘못된 거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충돌하고 있다. 수사관들끼리 의견조율이 급하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서든 사전 추측은 그다지 좋은 태도가 아니다. 그래서 카터는 일단 수거된 총탄의 탄도 검사 결과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판단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불현듯 이 희생자들을 존이 왜 돕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주문한 음식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로 넣는지 입으로 넣는 건지 모르겠다. 뻣뻣하게 튀겨진 생선살은 배가 고팠음에도 짜증이 치솟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식사를 하지 못하면 언제 다시 배를 채울 기회를 얻을지 짐작도 안 갔다. 싫어도 먹어야 산다. 그러니 돌격. 우아함과는 담을 쌓은 채 기계적으로 씹고 삼키기를 반복하며 맹렬한 속도로 접시를 비어나가기 시작했다.
원시인이 날고기를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것도 아니고.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즉시 체념했다. 형사 생활 3년이면 고상함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도 힘들게 된다.

- 좀 씹어요, 형사님
부웅, 진동음을 내고 문자가 도착했다.
기다리던 탄도 검사 결과가 나왔나 싶어 허겁지겁 핸드폰을 움켜쥐었던 카터는 음? 이러고 눈을 치켜떴다. 동시에 입 밖으로 삐져나온 으깬 감자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꾸역꾸역 다졌다.
몇 초의 간격을 두고 두 번째 문자가 날아들었다.
- 그러다 체하겠어요
도대체 이게 누구야 고개를 들었을 적에 식당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핀치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화들짝 놀란 카터가 입을 가리기 위해 손을 올리던 찰나, 핀치가 다시 엄지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영감님인 주제에 자판 누르는 속도가 10대 아이들처럼 날렵하다.
- 괜찮습니다. 보지 못한 것으로 할게요. 그럼 계속 식사하세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그녀는 입 안 가득 물고 있던 덩어리를 꿀떡 삼키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밖을 향해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뭐예요! 여기까지 날 미행한 거예요?!』
카터의 외침이 가게 밖으로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유리는 방음효과도 가지고 있어 도로를 달리는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마저 어느 정도 막아준다.
다만 입모양을 보고서 그녀가 무어라 외친 건지 그 내용을 알아차린 눈치다.
카터는 다시금 쥐고 있는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꾹꾹 가리켰다.
겹 쌍꺼풀이 진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 핀치가 곧바로 카터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형사님.》
『핀치... 설명해봐요.』
《우연입니다.》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길이었다고요?』
《전 이 주변에서 식사하지 않아요. 게다가 이 가게는 음식 맛이 형편없지요.》
『하!』
《그리고 제 취미는 스토킹이 아닙니다. 스토킹은 어디까지나 리스 씨의 취미죠.》
『내가 쓰는 컴퓨터에 원격조정 바이러스를 심어둔 사람이 하는 말을 믿으라고요?』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형사님이 걱정하는게 그거라면... 절대로 소문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흘린 음식이 셔츠에 묻었네요. 얼룩이 지기 전에 닦아내는게 좋을 거예요.》
여기까지 말한 핀치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내빼려 했다.
어딜 도망가 - 카터는 통유리 창을 손바닥으로 쾅쾅 쳤다. 순간 핀치가 싫은 표정을 지었다.

이 남자는 잘 웃지 않는다. 성격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배불뚝이 서장보다 툴툴거리는게 더 심하다. 차가운 표정을 지으면 약간은 무서워질 때도 있다. 높은 구름 위에서 하계의 어리석은 인간을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이즘해서 카터는 손바닥으로 날파리를 쫓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든 말든, 다 떠나서 핀치는 여성에겐 한 수 접어주는 경향이 있다.
푸스코는「같은 형사인데 전자사전 씨가 당신과 나를 차별한다」며 진심으로 서운해한 적도 있다. 
아마도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그럴 것이다.
『저는 이미 점심을 먹었는데요, 형사님.』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부탁받은 대로 동석하는 걸 보면 분명 그는 신사다.
『알아요, 잠시 앉아봐요, 핀치.』
『절대로 소문내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누가 상관한대요? 게걸스럽게 밥 먹는 여자라고 소문내도 난 끄떡없어요.』
『오 - 그래요? 그럼 스마일 이러고 웃어요.』
『잠깐! 내 사진은 왜 찍는 거예요?!』
『칼 비처 형사님에게 전송하려고요』
『맙소사. 비처의 핸드폰 번호도 알고 있는 거예요?!』
『물론.』
신사라는 거, 취소.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우지도 못한 카터가 커피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파이를 사려고 했는데 관둬야겠구먼.』
『파이요? 그거 좋죠. 애플파이로 부탁합니다. 아, 그리고 절대 미행한 거 아녜요, 형사님.』
『우연이라는 거죠? 알았어요. 거기 앉아서 파이를 다 먹으면 믿을게요.』
『그러죠.』
핀치는 들고 있던 마크 트웨인의 책을 펼치고 조용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파트너」도 없는 외로운 독불장군 여형사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Posted by 미야

2013/02/07 14:37 2013/02/07 14:37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859

Leave a comment

낙서-일상생활72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문득 알제리에서 체포되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막연히 감상에 젖어 그런 것이 아니다. 수감된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겠다, 신원불명의 미국인이 들어왔다며 웅성거리던 그곳의 분위기와 이곳의 모양새가 묘하게 많이 닮아서다.
《들었어? 멍키 슈트를 입은 수사관들이 기소 절차 없이 4명의 남자를 여기로 데려왔어.》
《기소 절차도 없이? 뭐야, 그거. 정체가 뭐래. 테러리스트?》
《비슷한 건가봐. 교도관들 분위기가 살얼음이야.》
소문은 의외로 빠르다. 그리고 불안감은 질병처럼 전염되는 법이다. 순식간에 건물 전체가 으스스해졌다. 좁은 감방에 홀로 앉아있어도 느껴질 정도라서 저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굳게 닫힌 쇠문을 응시했다.
원래 리스는 유령이니 귀신이니 하는 걸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두꺼운 쇠붙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들어올 악령의 존재를 경계해야 했다. 먼 옛날에 귓동냥으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이런 장소엔 사람 혼을 쏙 빼먹는 못된 것들이 배회하고 있다고...

폐쇄공포증에라도 걸릴 것만 같은 무개성의 좁은 공간에 갇혀 한참을 있다 보면 머리가 이상해지기 쉽다. 뇌세포를 갉아먹는 균이 코를 통해 머릿속까지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귀로 들릴 리 없는 웅성거림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커진다. 건물 자체가 진동한다.
이쯤 되면 못 견디고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도 나온다. 감옥이란 존재가, 그러니까 악령이 몸속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하여 횡설수설해하며 간수를 부르고, 가족을 부르고, 신의 이름을 불러댄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어! 나는 이곳에 있을 수 없어!》
그래봤자 부질없다. 눈에 띄게 자해를 하지 않는 이상 일부러 날뛰게끔 내버려둔다. 그리고는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 감옥은 평범한 은행원을 순식간에 체포된 은행 강도로 둔갑시킨다.
악령이 한 목소리로 합창한다.
태어난 이상 모두가 죄인. 그렇지 아니한가.
죄를 인정하고 순순히 벌을 받아라. 벌을 받아라.

멀리서 철컹, 이러고 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때를 밀고 있다는 식으로 손바닥을 문지르던 리스는 귀를 세우고 바깥 분위기를 상상했다. 그래봤자 머리로 아무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마음에 높은 벽을 세워둔 탓에 상대적으로 외부의 자극에 둔감해졌다. 발걸음 소리를 들어도 그게 누구일지 짐작도 안 간다. 교도관? 아니면 FBI 요원들? 그런데 지금 와서 그걸 구분하는게 과연 중요할까? 다시금 손바닥 한 가운데를 반복하여 문질렀다. 어느새 피부가 자극을 받아 벌겋게 타들어갔다.
몇 시나 되었을지 돌연 궁금해졌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그의 고용주가 수감실에 핸드폰을 심어두었다.
누가 발견이라도 하면 곤란해지기에 통화는 대단히 짧게 이루어졌다.
《앞으로 72시간만 참으세요, 미스터 리스.》
『걱정 말아요, 핀치. 제가 알아서 할게요.』
《탈옥이라도 하려고요? 내 말 들어요.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준비해둔 것이 있어요.》
핀치의 목소리엔 높낮이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얼핏 듣기에는「복사용지가 다 떨어졌어요」수준이어서 상당히 매몰차게 느껴졌다.
하지만 리스는 감사했다. 반대로 걱정하고 있다는 티를 냈다면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무덤덤하게 얘기해 주는게 기뻤다.
『번호가 또 나오면 어떻게 하죠? 핀치.』
《불행하게도 번호는 끊임없이 나오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볼 겁니다.》
여기서 생략되어진 말은「지금 상황에선 당신은 당신 걱정만 하면 됩니다」라는 거겠지.
핸드폰을 귀에 대고 가만히 문질렀다.
지금 그는 마분지를 오려서 만든 것 같은 밋밋한 표정을 하고 있으리라.
그래도 리스는 핀치의 손이 가냘프게 떨리고 있으리라는 걸 잘 알았다.
《다음엔 보다 좋은 상황에서 대화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마치 어린 학생들 앞에서 책을 낭독하는 뉘앙스였다.

핀치와 그를 이어주었던 핸드폰은 그것으로 수명을 다 마쳤다.
전원을 끄고 심카드를 분리했다. 몸체는 텅 빈 것과 마찬가지니 기회를 봐서 없애버리면 된다. 딱히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제자리에 두면 이걸 심어둔 사람이 증거 인멸을 시도하며 도로 거두어갈 수도 있으니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심카드는 발로 밟아 망가뜨려 침상 밑에 잘 숨겼다. 불시에 수색하더라도 놓치기 쉬운 틈새는 어디에든 있는 법이다. 수십, 수백 명의 죄수가 머물다 떠나간 만큼 공통된 분모는 분명 있다. 뭐, 정 찾을 수 없다면 잘게 부수어 목구멍으로 삼켜도 그만 - 심카드보다 더 커다란 것도 삼켜본 적도 있다. 그까짓 것, 어려운 결정도 아니다.

『심문은 하지 않는 겁니까.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나요.』
식사가 들어왔을 적에 문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일부러 말을 걸어보았다.
리스가 듣기에도 잔뜩 갈라진게 듣기 괴로운 목소리였다. 이 정도면 동정심을 유발하기 충분할 터, 하소연하듯 다른 이야기도 흘렸다.
『내 이름은 존 워렌입니다. 여보세요. 듣고 있습니까?』
여기서 지나치게 평정심을 보여선 의심받을 거다. 리스는 적당히 동요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곳에 절 데리고 온 FBI와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문 반대편의 사람은 매뉴얼에 입각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곧 체념했다는 투로 식판을 향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즉시 식욕이 사라졌다. 수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종류는 죽으나 사나 햄버거밖에 없다는 거냐 - 마요네즈와 뒤섞인 인스턴트 스파게티 소스가 역한 향미를 내뿜었다. 이번엔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토기가 올라와 절반은 먹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FBI 녀석들은 치사하다. 먹는 걸로 정신 고문을 하려고 들다니.

딱 한 번 직급이 제법 있는 위치의 사람이 방문했다. 모르는 얼굴에 모르는 목소리가 아니다. 리스가 이곳으로 이송되어져 왔을 적에 도넬리 요원과 나란히 서있었던 사람으로 이 시설의 책임자다.
『문제될게 없다 판단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요.』
눈치로 보아 그는 같은 대사를 네 명의 수감자들에게 한 번씩, 정확히 네 번 반복했다.
요컨대 법이 한계로 정한 72시간의 타임아웃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소장은 혹시라도 이 일의 뒤끝이 소송으로 번질까봐 두려운 눈치다. 동시에 법 규정을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도넬리 요원에게 대놓고 반발하고 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을 적에 책임만 뒤집어쓰게 되는 건 절대로 사양이다 - 일그러진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자세가 많은 걸 암시했다.

리스는 민간인의 태도를 다시 연기했다.
『주변에서 절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제가 이곳에 있노라 바깥에 연락해줄 수 있습니까?』
소장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연방 요원들이 알아서 잘 처리했을 거요.』
속으로 다리를 접질러 넘어진 핀치를 상상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슬퍼하는 것도 같고 염려하는 것도 같은 리스의 표정에 소장의 태도가 달라졌다.
낯짝 두꺼운 종신범들을 자주 보아서 그런지 무죄를 호소하며 애걸하는 사람에겐 한 수 접어주는 눈치다. 무뚝뚝했으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흘렸다.
『곧 나갈 수 있을 거요.』
핀치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는 상상을 했다. 덤으로 그의 체취를 떠올려 보았다.
그걸 다른 각도로 이해한 교도소장이 조금만 더 참으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Posted by 미야

2013/02/04 16:41 2013/02/04 16:41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855

Leave a comment

낙서-일상생활71

※ 사장님의 두툼한 턱살조차 사랑스러워라.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손글씨가 적혀진 메모 한 장을 내어민다.
「나는 강도다. 가지고 있는 돈을 가방에 모두 넣어」이런 종류인가 싶어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뭐죠? 미스터 리스.』
『나쁜 거 아니니까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빠~빠빠~ 좋은 아침입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응? 이거 뭡니까.』
『지금 쓰는 모닝콜이 영 지겨워서요. Thank you.』
버튼을 눌러 핸드폰 녹음을 종료한 리스는「내가 뭘 잘못했나요?」이러고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풀어나갈 이야기는 유감스럽게도 리스의 새로운 모닝콜에 대한 것이 아니고... 장소를 바꿔보자.

초등학생들도 질겁할 정도도 촌스러운 모양새의 시계가 귀청 날아가는 굉음을 냈다.
그 소음에 안 일어나곤 못 버틴다. 그런 의미에선 썩 괜찮은 물건이다.
허겁지겁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던 라이오넬 푸스코는 아침밥 차릴 걱정부터 했다.
아내와 진작에 이혼한 관계로 학교에 가는 아들을 챙겨 밥을 먹이는 일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솔직히 말해보랴? 차가운 우유에 시리얼을 부어주고 빨아먹는 비타민 알약을 챙겨주는 일도 벅차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아이는 신통찮은 식단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불행하게도 푸스코가 보기에도 축구선수 유니폼을 입은 호랑이 캐릭터가 그려진 시리얼 박스는 너무 구렸다. 그래서 손수 계란프라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알람을 평소보다 15분 빠르게 조작을 해두었으나... 그까짓 15분,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고 만다.
『이런 젠장. 망할 놈의 시계!』
여전히 씩씩하게 찌롱찌롱 소리를 내는 시계를 주먹으로 퍽퍽 두드렸다. 초조해서 그런지 소리를 끄는 버튼이 어디에 달렸는지 생각이 안 났다. 충격을 받았음에도 엿 같은 소음은 그치질 않는다. 견디다 못한 우리의 형사는 빌어먹을 시계를 베개 아래로 찔러 넣었다.
다행이다. 귀 따가운 소리가 약간은 줄어들었다.
『좋아 좋아. 그럼 오늘 아침은 라이오넬 특제 팬케이크다.』
손바닥을 마주비비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랑하는 아들은 지금 엄마네 집에 가있다.

넋이 1/3 가량 나간 상태에서 침대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간밤에 어디론가 떠나버린 영혼이 여전히 집밖 어딘가에서 헤매고 돌아다니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속상한 마음에 주먹으로 시트를 움켜쥐었다. 무기력증에 우울증까지 덮치자 꼼짝도 하기 싫어졌다. 활기찬 아침 좋아하시네. 그저 끔찍스런 어제의 연장일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끔찍함은 배가 되고 있다.
「방금 전화로 익명의 제보를 받았어요, 푸스코. 행방불명된 데이비슨이 사실은 경찰에게 살해당한 거라고 하더군요. 갑자기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어리둥절해 하던 카터와 다르게 푸스코의 등줄기로 차가운 얼음 알갱이가 흘러내렸다.
그래요? 그 익명의 제보자가 다른 말은 하지 않던가요? 드디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났군요. 발신자 번호 조회부터 해보시지 그래요, 카터 -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애썼지만 입에 발린 말도 거기까지였다.
책상으로 시선을 내리깔기가 무섭게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위장이 콕콕 아파오면서「이제 끝장났다, 이제 끝장났어」신호를 보내왔다.
누가 봐도 복통환자로 보였기에 결국 동료 경찰들의 시선을 끌었다.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끙끙거리고.》
《아무래도 먹은게 잘못된 것 같네.》
《혹시 맥스 영감의 가판대에서 소시지 빵을 사먹지 않았나? 거기 위생상태가 영 엉망이던데. 식중독이라 생각되면 빨리 병원에 가보게.》
《아냐, 아냐. 그 정도는 아니야. 금방 괜찮아지겠지.》
소원 한 번 거창하다. 금방 괜찮아질 거라니. 이후부터 사실상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그게 내 잘못이라고?》
《카터에게 전화를 걸었잖아! 그건 선을 넘은 행동이었어!》
화가 나서 비난을 퍼부었으나 듣고 있던 시몬스의 표정은 차가웠다.
《틀렸어, 라이오넬. 데이비슨의 시체를 야산에 파묻은 사람은 내가 아니야. 화낼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안 드나?》
한심한 부패경찰 라이오넬 푸스코... 결국 끽 소리도 못 냈다.
손바닥으로 한참동안 마른세수를 했다.
「데이비슨을 처형한 건 존 리스라는 사람이고, 그는 스틸스도 죽였고, 인사부를 궤멸의 지경으로 몰아넣은 장본인도 알고 보면 그 사람이고... 이런 얘기는 죽어도 못 하지. 증거도 없는데다 어차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
반대로 모든 증거가 범인으로 지목하는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푸스코다. 출입이 엄중히 금지된 기록 보관소에 몰래 들어갔다가 데이비슨에게 발각되어 밖으로 끌려나오는 장면이 찍힌 영상이 있다. 그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푸스코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감추기 위해 데이비슨을 무참히 살해했을 거라 생각할 거다. 그러면 밤낮으로 취조가 이어질 것이고... 시몬스가 장난을 쳐서 데이비슨의 혈액이 묻은 삽이 어딘가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다. 실력 좋은 내사과 경관이 스틸스의 시체를 파낼 가능성 또한 있다. 그러면 빼도 박도 못 한다. 스틸스의 몸속에 박힌 총알은 라이오넬 소유의 권총에서 발사된 거다. 그렇다면 뻔한 결말 아닌가. 동료 경찰을 살해한 경관으로 신문에 그의 찐빵 같은 얼굴이 대문짝하게 실릴 것이다.
「아들이 날 뭐라고 생각할까...」
울고만 싶다. 아니, 이미 여러 번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울었다.

《라이오넬? 만약 문제가 생기면 내가 네 뒤를 봐줄 거야.》
원더보이가 모처럼 든든한 소리를 해주었다.
《더 가까이 접근해. 뒤를 파봐. 그들을 따라가. 그리고 뒤집어봐.》
하지만 라이오넬은 속이 불편했다. 찌푸드한 그의 표정을 보고 리스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하여 이번에도 역시 상한 핫도그가 핑계로 거론되었다.
《별 거 아니오. 뭘 잘못 먹은 것 같아.》
리스를 믿어도 될까. 라이오넬은 필사적으로 계산했다.
그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적에 저 흉악한 사내는 과연 현장으로 나타나 줄 것인가.
솔직히 반반의 가능성이었다. 군소리를 제법 하기는 해도 의외로 의리가 있어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 사람 살려, 이러고 외쳤을 적에 리스가 바람처럼 나타난 적이 있다는 얘기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있으니 이걸 과연 고마워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된다. 병 주고 약 주고 - 더도 말고 이를 빗대기에 아주 훌륭한 표현이다. 그나마 나타나주면 고마운 거고 -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나에겐 가족도 없어. 친구는 한 명밖에 없어.》
존 리스가 친구라고 표현한 자는 핀치라는 이름의 남자다.
라이오넬은 그를 똑똑이, 교수, 안경친구, 만능사전 등등으로 별명으로 불렀는데 정체는 존의 보스다. 가까이 하기 어려운 타입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취미는 펜타곤 해킹.
하여 라이오넬은 묻고 싶었다.
「친구가 딱 한 명이라고? 핀치만 친구야? 그럼 나는? 나는 당신의 뭔데. 혹시 딱가리야?」
병딱가리는 한 번 쓰고 버리면 된다.
어둡고 냄새나는 곳에서 다른 사람 모르게 죽어가도 아무도 관심 안 가져주는게 바로 딱가리다.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가장 좋은 속옷을 입도록 하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노란색 줄무늬의 트렁크 팬티를 꺼냈다. 그러다 너무 튀는 색인가 싶어 초록색 땡땡이로 다시 골랐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실밥이 터진 곳은 없는지, 구멍이 나지는 않았는지 세심하게 확인했다. 의사나 검시관이 보더라도 놀림이 대상이 되지 않는 그런 종류여야 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오늘도 나는 괜찮을 거야.』

욕실로 가기 전에 기함을 멈춘 자명종 시계를 베개에서 도로 꺼냈다.
이제 아침 7시 16분이다.

Posted by 미야

2013/02/01 16:19 2013/02/01 16:19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849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 28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1443
Today:
121
Yesterday:
215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