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Next »

person of interest (13)

《제로스 너무 좋아 -> 딘 윈체스터 너무 좋아 -> 핀치 사장님 날 가져요》로 발전하는 건 어울리지 않으나 사람의 앞날이라는 건 추측할 수 없기에 운명은 그 의미를 가지는 법이라고 전설의 고향 시절 먼 나라 왕녀님께서 말씀하셨습지라.
편의에 의해 번호를 붙였으나 순서는 큰 상관 없고 끈적이는 거 없습니다. 분량 짧습니다.


가게 내부는 매우 협소해서 성인 남자 열 명이 동시에 앉으면 어깨가 서로 부딪칠 것 같았다. 재수가 나쁘면 아홉은 제 자리에 남고 한 명은 문밖으로 튕겨나갈지도...
『그거야 맨날 소 잡아먹는 당신들 덩치가 너무 커서 그런 겁니다. 이 야만인 거인 족속들아, 우리 가게는 아담한 거지 절대 안 좁아.』
40대 중반 나이로 추정되는 동양계 외모의 직원이 볼멘 얼굴을 하고 투덜거렸다. 말투로 보아 일본계로 짐작되는, 얼굴이 달덩이처럼 동그란 사내였다.
동시에 바 스툴에 엉덩이를 걸친 단골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거 인종 차별 발언 아니야? 듣기 불편한데, 필립.』
『내 키는 겨우 198cm라고.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적당한 사이즈!』
『나도 필립처럼 해산물 좋아해요. 스테이크는 안 좋아한다고요. 맨날 소 안 잡아먹어요.』

누가 뭐라고 그랬수? 필립이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테이블을 정리하며 마른 행주를 보란 듯이 탁탁 털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강박증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잠시 인상을 찡그리더니 체리 그림이 인쇄된 유리컵의 위치를 바로잡고 긴 스푼이 담겨진 스텐레스 재질의 식기통을 정렬했다. 조금 더 왼쪽으로... 옳거니. 그리고는 다시 1mm 이동한다.
리스는 그런 종업원의 행동을 재밌다는 투로 관찰했다.
『아, 더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손님.』
그리고 그 시선의 뉘앙스를「매출의 증가 = 앗싸 좋구나」로 이해한 그가 대놓고 반색을 했다.
『온더락 말고 더 센 걸 드릴까요?』

웃기게도 기존의 손님들은 종업원의 이러한 관심이 리스에게로 향하는 걸 질투하는 듯했다. 198cm의 장신이 뉴욕 표준이라고 주장한 사내가 애인을 뺏긴 표정을 지으면서 맥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러면서 45°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무어라 중얼거렸는데 귀 밝은 리스가 듣기로는「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소똥 개똥 말똥구리」정도의 가벼운 욕설이었다.
물론 말똥구리 씨는 욕설을 못 들은 척했고 빈 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까와 같은 걸로.』

박스터 스트릿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이곳은 위치상 차이나타운 끝물이라서 관광객들이 들이닥치는 일이 없다. 다시 말해 어쩌다 기분 꼴리는 맛에 골목 안까지 들어오는 이방인들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목을 축이러 가게 문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뜨내기가 아닌 대부분 친숙한 얼굴들이었고, 이들은「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질 좋은 서비스, 위생적인 화장실, 입담 좋은 바텐더」등등의 공유를 환영하지 않았다.
《우리 가게야! 우리 꺼!》
불만 많수다 - 내용의 현수막을 써붙인 남자가 노골적으로 리스를 흘겨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말다툼을 벌릴 배짱은 없다. 것보다 그의 직업이 사무원이다. 값싼 장신구와 기념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파는 회사에 근무한다. 독서가 취미인 얌전한 사람이었다. 그가 저지른 유일한 폭력 행위는 클립으로 잔소리 심한 매니저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것보다, 필립. 정답 발표는 하지 않을 건가.』
클립 폭력남이 슬슬 대머리 증상을 보이며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네? 정답이라뇨.』
『있잖아, 그거.』
『있긴 뭐가 있어요. 우리 가게엔 날벌레는 없다고요.』
『누가 날벌레 타령을 했다는 거야. 정답 말이야, 정답! 누가 범인이지? 역시 살인자는 피자 배달원이지?』
필립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겹다는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거 이거, 꽤 성급하신 분이네. 처음 오신 손님도 있는데 누가 범인이냐, 살인자냐 그러면 놀란다고요.』그는 재빨리 리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양해를 구하는 눈짓을 했다.『연상 게임입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고 형사가 나오는 드라마에 목을 매는 분들이죠. 아무튼 다들 못 말린다니까요.』

문제. 낡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여자는 부자 동네에서 가사 도우미 겸 보모로 일해왔다. 발견자는 피자 배달원이고, 문은 강제로 열린 흔적이 없었다. 배달원이 저기요, 여기요, 아무도 없나요, 이러면서 거실 안으로 들어가자 피를 흘린 여자가 천장을 올려다 보는 자세로 누워 있었으며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녀는 가슴과 팔에 총을 두 방 맞았다. 자,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강도잖아, 강도. 두고 볼 것도 없이 강도 소행이라고.』
『에릭은 맨날 강도로 몰아간다니까. 그 머리는 장식품인가요? 강제로 문을 열고 침입한 흔적이 없었다고 하잖아요.』
『누가 빈집 털이범이래? 주문하신 피자가 도착했습니다, 이러고 기다렸다가 문 열어주면 털어가는 거야. 그래서 범인은 피자 배달원! 내 말이 맞죠? 벡스턴 씨.』
『그건 너무 단순한 판단일 걸요. 듣자하니 벽에 박힌 총탄을 칼로 파내어 가져갔다고 했잖아요. 그게 강도가 할 일이예요? 뭔가 아귀가 맞질 않는다고요.』
『기념품 아니었을까. 세상엔 맛이 간 놈들 많잖아.』
『내 생각엔 그 여자의 고용주가 범인이야. 즉, 바람이 났던 거지.』
『그래서 애인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허! 듣자 하니 그 고용주가 판사였다며. 판사가 그렇게 타락했다면 미국의 앞날은 코 푼 휴지야.』
『모두 닥쳐요. 범인은 피자 배달원! 여자에게 흑심을 품고 덤볐는데 일이 틀어진 거야. 그래서 여자가 죽었고, 남자는 에그머니나 내가 실수했네 기겁을 했고...』
『뭐? 피자 배달하는 놈들이 영수증 말고 총을 들고 다녀? 도대체 어떤 놈이야, 어떤 놈!』
『여긴 뉴욕이잖아, 에릭.』
『이봐요, 누가 나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 개나 소나 다 총 들고 오빠인 거야?』
『피자 배달원은 개가 아니고 소는 더더욱 아닙니다.』
『요점은! 총이라고, 총!』

이쯤해서 198cm의 남자가 장단을 추었다.
『순찰관인 나도 비번인 날엔 총을 못 가지고 다닙니다. 피자 배달원 강도설은 그래서 틀렸다고 봅니다. 것보다 재밌는 가설이 따로 있는데 말이죠... 여러분.』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수트 입은 남자... 이건 절대 비밀입니다. 어디 가서 누설하면 안 되요. 8번 서를 중심으로 소문이 돌아요. 닌자술을 익힌 청부살인업자가 있다고 합니다. FBI가 추적하는 중이고요.』
『오~!!』
『맨손으로 벽을 타고 쭉쭉쭉 올라가서 여자 집을 침입한 거래요.』
『오옷~!?』
『유유히 일을 마치고는 그 사람이 피자를 주문한 거죠. 왜 그랬느냐고요? 그야 닌자들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어엉?』

그때까지 쥐 죽은 듯 온더락만 홀짝거리던 남자가 배를 잡은 채 미친 듯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니까 너는 영원히 순찰관인 거다!」라는 모두의 비난이 그 뒤를 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2/05/23 12:57 2012/05/23 12:57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483

Leave a comment

person of interest (12)

핀치의 번들거리는 안경알 위로 혐오감이 떠올랐다면 이야기는 180°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의 얼굴 위로 떠오른 건 두려움이었다. 그것도 촌구석에서 닭이나 키우던 촌뜨기가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의 비행접시를 목격했을 적의 충격과 맞먹는 것이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우레가 치고, 녹색의 살인 광선이 대지를 덮는... 방목되던 닭들마저 심장마비로 쓰러졌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여자들은 냄새를 잘 맡았다. 핀치의 감정이 공포라는 걸 깨닫자마자 그녀들은 보드라운 깃털을 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리제모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악녀였지만 부처님께 귀의하고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 - 그들 중 한 명이 어르고 달래고자 핀치를 포옹하려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도를 하려고 했다. 핀치는 스프링 단추가 작동했다는 투로 재빨리 벽에 가서 붙었고, 그녀의 팔은 허공을 훑었다. 핀치는 발끝으로만 선 자세에서 진땀을 흘려댔다.

『여, 여러분? 저, 저는 이러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에이, 뒤로 빼긴.』
눈웃음을 치던 여자가 몸을 밀착해왔다. 핀치의 뺨으로 확 하고 피가 몰렸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이건 다 자연스러운 거라고요. 그럼 댄스 룸으로 갈래요?』
『전 다리가 불편해서 춤을 못 춰요. 그런데 댄스 룸이라뇨.』
『정말 순진하시네. 춤은 우리가 추는 거예요. 댁은 잠자코 무릎을 모은 채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요.』
까르르 웃는 소리가 더 커졌다. 누군가 핀치의 넥타이를 잡아당겼고 장난스럽게 안경을 벗겼다. 시야가 흐려지자 심장 뛰는 소리가 곱절로 커졌다.
『15분에 300달러예요. 팁은 별도구요.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데 우린 옷은 안 벗어요.』
『$*()@_%』
가엾게도「끈 팬티는 옷이 아닙니다!」라는 비명은 속으로 삼켜졌다.

불경기는 거리의 모습을 서서히 낡아가는 모습 그대로 박제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10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지킨 간판의 칠은 벗겨지고, 빌라의 모퉁이 돌은 떨어져 나가고, 거리 가로등은 녹슬고... 그렇게 서서히 몰락해 가는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몰라서 그렇지 불경기는 매우 빠른 모습으로 거리의 풍경을 바꿔놓는다. 수퍼마켓이 문을 닫으면 대신 건전함과는 거리가 먼 술집이 들어온다. 길거리 마약상이 계단에 퍼질러 앉으면서 꽃집, 빵집, 서점, 카페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굳게 내려진 셔터로 울긋불긋한 낙서가 뒤덮힌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너무 빨라 디지털 업데이트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거다. 컴퓨터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쉽게 말해 빌딩 주소지에 건물은 없고 공터만 남았다는 말씀.

뒷문을 이용해 - 라기 보단 자물쇠를 뜯고 가게 내부로 들어온 리스는 제일 먼저 가게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검정 셔츠의 사내의 복부로 강한 어퍼컷을 날렸다. 감정은 없다. 대신 기술은 있다. 명치를 강한 파워로 정확히 때리면 상대방은 심장 발작을 일으킨 사람처럼 벌렁 쓰러져 경련만 일으키게 된다. 좋은 점은 이 정도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고, 더더욱 좋은 점은 끽 소리 내지 못한 채 이쪽 용건에 훼방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쿵, 하고 거구의 문지기가 일격에 쓰러지는 기척에 비쩍 마른 남자가 리스 쪽을 쳐다보았다. 창고에서 술을 꺼내오고 화장실이나 청소하는 잡부인 것 같았다. 아니면 바텐더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기엔 행색이 초라했지만... 알게 뭐람. 리스는 일부러 그를 무시한 채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이 경우엔 죽일 기세로 노려보지 않는게 더 좋다. 짐작한대로 마른 체격의 남자는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옆으로 얌전히 비켜섰다. 리스는 옷깃을 짐짓 정리하는 척하며 남자를 지나쳤다.

『여러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말이 댄스 룸이지 얇은 합판으로 공간을 나눈 벌집 구조의 매음굴이었다. 얼룩이 잔뜩 진 카펫 위로 소파가 보였고 그 옆에는 술잔을 내려놓을 수 있는 조그마한 유리 테이블이 있었다. 그게 전부다. 그 좁은 칸막이 안에서 춤을 춘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실상은 팬티만 입은 여성이 엉덩이를 남자 사타구니에 비빈다는 의미밖에는 없었다.
『우리 보스가 저 남자를 붙잡아 오라고 시켜서요.』
- 보스? 당신의 보스는 나 아니었나요?
핀치는 콧물 투성이가 되어 리스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를 소파에 눕히기 위해 몸싸움 중이던 여자 또한 벌떡 일어났다.

리스는 출렁거리는 하얀 가슴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주의하며 - 그보다는 핀치가 흘린 맑은 콧물에 더 시선이 갔다 - 깔고 앉은 사내를 어서 내놓으라며 손짓했다.

여자가 거부의 뜻으로 인상을 구겼다.
신경질적인 고양이 분위기의 여자였다. 목소리 또한 카랑카랑했다.
『우리는 마르텔로냐 씨의 허락을 받고 일해요.』
구역 보스 이름이 마르텔로냐인가. 잘 모르는 이름이군.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점잖게 웃었다.
『우리 보스도 마르텔로냐 씨의 사업을 존중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영업을 방해해선 안 되죠. 전 아직 이 사람에게서 팁도 못 받았다고요.』
리스는 핀치에게 눈짓했다. 빨리 저 여자에게 팁을 줘요.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리스가 눈짓하기 이전에 핀치는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에 지폐를 던지느라 바빴으니까. 아마 지갑에 넣어둔 현금 전부를 꺼내 뿌리는 것 같았다.

『이젠 됐죠? 쁘띠앙.』
『OK. 그 사람, 끌고 가요.』
지폐를 줍기 위해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리스는 핀치의 넥타이를 쥐고 끌어당겼다.

Posted by 미야

2012/05/22 17:03 2012/05/22 17:03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481

Comments List

  1. 비밀방문자 2012/05/22 21:49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미야 2012/05/23 13:18 # M/D Permalink

      ㅇㅅㄹㅇ님. ^^ 그런 "전문적인" 어려운 말씀 마세요. ^^;; 그런 거 몰라욤. 모님 블로그에 올라온 "수미상관" 도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는데 뭐였드라 이러고 뒤졌다고요. ^^;;

  2. 비밀방문자 2012/05/23 18:04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미야 2012/05/23 20:31 # M/D Permalink

      음홧홧홧... (눈물)
      플롯 파괴는 콘티 작성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털푸덕)
      이야기를 순서대로 배치하려면 먼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생각나는대로 마구마구 적어나가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버닝이 급작스러워서 제어가 되질 않고 있어요.
      희곡 이론은 읽어본 적 없는데 한 번 찾아볼까봐요. ^^

Leave a comment

person of interest (11)

순서 없음, 분량 없음, 끈적이는 거 없음.

『마치 캔들러의 소식을 알고 있을 법한 사촌이 뉴욕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리스 씨.』

핀치의 말에 리스는 의외라는 투로 눈을 크게 떠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는 핀치가 만든「기계」가 인식한 아홉 자리 SSN(사회보장번호)의 주인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해 기계가 알려온 번호의 주인은 손버릇 고약한 마치의 남편이었고, 그는 엉성하게 제작된 사제 폭탄 위에 기절한 채 엎어진 몰골로 리스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말은 구조였지만... 음. 이쯤해서 리스는 스스로를 방어하듯 팔짱을 꼈다.
불법 총기류 구입을 한 물증도 있겠다, 집은 폭발로 날아갔겠다, 애덤 캔들러는 체포되어 지금 감옥에 있다.
경찰은 리스가 도중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따라서 거구의 트럭 운전수가 홧김에 질산암모니아와 부탄가스로 자기 집을 박살내려 했고, 엉성한 실력 탓에 그의 뒷통수가 불길에 그슬린 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아울러 요란한 모양새의 자살을 기도했는데 도중에 마음을 바꿔먹고 집밖으로 뛰쳐나온 거라며 비웃었다.

마누라를 밥 먹듯 때린 죄밖에 없던 애덤의 입장에선 꽤나 억울할 거다.
그러나 리스는 그 오해를 풀어줄 이유를 못 느꼈다.
오히려 그는 애덤의 혐의를 부채질할 자료를 카터를 통해 부풀렸다. 앞으로 15년 정도는 거리에서 당신 얼굴을 보는 일 없기를 삼가 바랍니다 - 인터넷 거래명세표를 조작해 애덤이 폭탄 제조에 필요한 재료 몇 가지를 직접 구입한 것처럼 꾸몄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리스는 애덤을 구조한게 아니라 빅 엿을 먹인 셈이었다.

『흠... 혹시 마치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건가요?』
생각에 잠긴 리스의 침묵을 다른 방향으로 오해한 핀치가 짐짓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고 그러면 곤란해요, 미스터 리스.』
리스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핀치의 힐난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앞으로 DHA가 풍부한 등푸른 생선이나 뇌에 좋은 레이신, 비타민B 섭취를 늘릴게요, 핀치. 그나저나 기계가 보내온 번호도 아닌데 마치 캔들러를 여전히 추적하고 있었던 건가요? 다 끝난 케이스라고 여겼는데... 놀랍네요.』
『지금 농담해요?』
세상의 모든 고민거리를 홀로 끌어안은 핀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두라며 일갈했다.
『아내가 남편을 폭탄으로 날려버리려고 했는데「아, 그러셨어요~」이러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녀에겐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들이 있어요. 마치가 구제 불능의 폭발광이면 어쩔 겁니까.』

글쎄다. 단순 노동자의 대명사이기도 한 마트 계산원이 어느날 갑자기 사제 폭탄 제조광으로 거듭 태어나는 일은 흔치 않다. 뉴스에선 인터넷만 뒤져도 폭탄 제조법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한탄하지만 애국법 개정 이후로는 그것도 다 과거 이야기다. 구글에「폭탄」이러고 검색어를 쳐보자. 엄청나게 맛이 없어 눈물 없이는 먹을 수 없는 오물렛, 산책로에서 치워지지 않은 개똥이 검색 결과로 튀어나온다. 요즘엔 그런게 폭탄이다.

『작정하고 배우겠다면야 길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생활에 찌든 아이 엄마에겐 폭탄 제조법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는게 문제죠. 일단 만드는 방법이 단순하지 않아요.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은 마치로서는 공책에 필기를 해가면서 화학 공식부터 공부를 해야 하죠. 저더러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를 읽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마치는 오디세이 저리가라로 폭탄 어쩌고를 대단히 싫어했을 겁니다.』
『그건 추측이잖아요.』
『타당한 추측이죠, 핀치.』

폭탄은 마치가 만든게 아니다.
그리고 애덤을 때려눕히고 작동하는 폭탄 위에 내던진 사람 또한 마치가 아니다.
『일단 마치의 완력으로는 남편을 기절시키는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전 마치에게 숨겨진 애인이나 남동생이 조력자로 있었던 건 아닐까 조사를 해봤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키 큰 고용인을 내려다보고 싶다는 희망을 담아 핀치가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뭐요? 조사를 했다고요? 하지만 저에게 그런 말 한 적 없잖아요.』
『그야 조사 결과가 썩 신통치 않았으니까요. 마치 캔들러는 사람 관계가 참 짧은 사람이더군요. 지인도 많지 않고 결혼 후 연락을 하고 산 혈육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리스는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당신이 찾아낸 그 사촌이라는 사람도 마치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은 거의 없을 겁니다 - 라고.

하지만 핀치는 고집스러웠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리스를 뒤로한 채 홀로 자동차를 몰아 마치의 사촌이 살고 있다던 장소를 찾았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의 말대로 할 걸, 이러고 땅을 치고 후회했다.
주소에 적혀진 장소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네온싸인이 켜진 가게였다.
그래봤자 술집이겠거니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젖통을 드러낸 미지의 숙녀들이 봉을 잡고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뒤돌아 달아나려고 했으나 겨드랑이를 붙잡혔다.
벌거숭이 여자 네 명이 에워싸고 지갑에 있는 돈을 전부 쓰지 않으면 못 나갈 거라고 했다.
얼어붙은 그를 향해 여자들이 호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Posted by 미야

2012/05/21 14:31 2012/05/21 14:31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478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3408
Today:
55
Yesterday:
290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