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13)

《제로스 너무 좋아 -> 딘 윈체스터 너무 좋아 -> 핀치 사장님 날 가져요》로 발전하는 건 어울리지 않으나 사람의 앞날이라는 건 추측할 수 없기에 운명은 그 의미를 가지는 법이라고 전설의 고향 시절 먼 나라 왕녀님께서 말씀하셨습지라.
편의에 의해 번호를 붙였으나 순서는 큰 상관 없고 끈적이는 거 없습니다. 분량 짧습니다.


가게 내부는 매우 협소해서 성인 남자 열 명이 동시에 앉으면 어깨가 서로 부딪칠 것 같았다. 재수가 나쁘면 아홉은 제 자리에 남고 한 명은 문밖으로 튕겨나갈지도...
『그거야 맨날 소 잡아먹는 당신들 덩치가 너무 커서 그런 겁니다. 이 야만인 거인 족속들아, 우리 가게는 아담한 거지 절대 안 좁아.』
40대 중반 나이로 추정되는 동양계 외모의 직원이 볼멘 얼굴을 하고 투덜거렸다. 말투로 보아 일본계로 짐작되는, 얼굴이 달덩이처럼 동그란 사내였다.
동시에 바 스툴에 엉덩이를 걸친 단골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거 인종 차별 발언 아니야? 듣기 불편한데, 필립.』
『내 키는 겨우 198cm라고.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적당한 사이즈!』
『나도 필립처럼 해산물 좋아해요. 스테이크는 안 좋아한다고요. 맨날 소 안 잡아먹어요.』

누가 뭐라고 그랬수? 필립이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테이블을 정리하며 마른 행주를 보란 듯이 탁탁 털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강박증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잠시 인상을 찡그리더니 체리 그림이 인쇄된 유리컵의 위치를 바로잡고 긴 스푼이 담겨진 스텐레스 재질의 식기통을 정렬했다. 조금 더 왼쪽으로... 옳거니. 그리고는 다시 1mm 이동한다.
리스는 그런 종업원의 행동을 재밌다는 투로 관찰했다.
『아, 더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손님.』
그리고 그 시선의 뉘앙스를「매출의 증가 = 앗싸 좋구나」로 이해한 그가 대놓고 반색을 했다.
『온더락 말고 더 센 걸 드릴까요?』

웃기게도 기존의 손님들은 종업원의 이러한 관심이 리스에게로 향하는 걸 질투하는 듯했다. 198cm의 장신이 뉴욕 표준이라고 주장한 사내가 애인을 뺏긴 표정을 지으면서 맥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러면서 45°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무어라 중얼거렸는데 귀 밝은 리스가 듣기로는「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소똥 개똥 말똥구리」정도의 가벼운 욕설이었다.
물론 말똥구리 씨는 욕설을 못 들은 척했고 빈 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까와 같은 걸로.』

박스터 스트릿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이곳은 위치상 차이나타운 끝물이라서 관광객들이 들이닥치는 일이 없다. 다시 말해 어쩌다 기분 꼴리는 맛에 골목 안까지 들어오는 이방인들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목을 축이러 가게 문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뜨내기가 아닌 대부분 친숙한 얼굴들이었고, 이들은「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질 좋은 서비스, 위생적인 화장실, 입담 좋은 바텐더」등등의 공유를 환영하지 않았다.
《우리 가게야! 우리 꺼!》
불만 많수다 - 내용의 현수막을 써붙인 남자가 노골적으로 리스를 흘겨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말다툼을 벌릴 배짱은 없다. 것보다 그의 직업이 사무원이다. 값싼 장신구와 기념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파는 회사에 근무한다. 독서가 취미인 얌전한 사람이었다. 그가 저지른 유일한 폭력 행위는 클립으로 잔소리 심한 매니저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것보다, 필립. 정답 발표는 하지 않을 건가.』
클립 폭력남이 슬슬 대머리 증상을 보이며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네? 정답이라뇨.』
『있잖아, 그거.』
『있긴 뭐가 있어요. 우리 가게엔 날벌레는 없다고요.』
『누가 날벌레 타령을 했다는 거야. 정답 말이야, 정답! 누가 범인이지? 역시 살인자는 피자 배달원이지?』
필립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겹다는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거 이거, 꽤 성급하신 분이네. 처음 오신 손님도 있는데 누가 범인이냐, 살인자냐 그러면 놀란다고요.』그는 재빨리 리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양해를 구하는 눈짓을 했다.『연상 게임입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고 형사가 나오는 드라마에 목을 매는 분들이죠. 아무튼 다들 못 말린다니까요.』

문제. 낡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여자는 부자 동네에서 가사 도우미 겸 보모로 일해왔다. 발견자는 피자 배달원이고, 문은 강제로 열린 흔적이 없었다. 배달원이 저기요, 여기요, 아무도 없나요, 이러면서 거실 안으로 들어가자 피를 흘린 여자가 천장을 올려다 보는 자세로 누워 있었으며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녀는 가슴과 팔에 총을 두 방 맞았다. 자,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강도잖아, 강도. 두고 볼 것도 없이 강도 소행이라고.』
『에릭은 맨날 강도로 몰아간다니까. 그 머리는 장식품인가요? 강제로 문을 열고 침입한 흔적이 없었다고 하잖아요.』
『누가 빈집 털이범이래? 주문하신 피자가 도착했습니다, 이러고 기다렸다가 문 열어주면 털어가는 거야. 그래서 범인은 피자 배달원! 내 말이 맞죠? 벡스턴 씨.』
『그건 너무 단순한 판단일 걸요. 듣자하니 벽에 박힌 총탄을 칼로 파내어 가져갔다고 했잖아요. 그게 강도가 할 일이예요? 뭔가 아귀가 맞질 않는다고요.』
『기념품 아니었을까. 세상엔 맛이 간 놈들 많잖아.』
『내 생각엔 그 여자의 고용주가 범인이야. 즉, 바람이 났던 거지.』
『그래서 애인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허! 듣자 하니 그 고용주가 판사였다며. 판사가 그렇게 타락했다면 미국의 앞날은 코 푼 휴지야.』
『모두 닥쳐요. 범인은 피자 배달원! 여자에게 흑심을 품고 덤볐는데 일이 틀어진 거야. 그래서 여자가 죽었고, 남자는 에그머니나 내가 실수했네 기겁을 했고...』
『뭐? 피자 배달하는 놈들이 영수증 말고 총을 들고 다녀? 도대체 어떤 놈이야, 어떤 놈!』
『여긴 뉴욕이잖아, 에릭.』
『이봐요, 누가 나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 개나 소나 다 총 들고 오빠인 거야?』
『피자 배달원은 개가 아니고 소는 더더욱 아닙니다.』
『요점은! 총이라고, 총!』

이쯤해서 198cm의 남자가 장단을 추었다.
『순찰관인 나도 비번인 날엔 총을 못 가지고 다닙니다. 피자 배달원 강도설은 그래서 틀렸다고 봅니다. 것보다 재밌는 가설이 따로 있는데 말이죠... 여러분.』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수트 입은 남자... 이건 절대 비밀입니다. 어디 가서 누설하면 안 되요. 8번 서를 중심으로 소문이 돌아요. 닌자술을 익힌 청부살인업자가 있다고 합니다. FBI가 추적하는 중이고요.』
『오~!!』
『맨손으로 벽을 타고 쭉쭉쭉 올라가서 여자 집을 침입한 거래요.』
『오옷~!?』
『유유히 일을 마치고는 그 사람이 피자를 주문한 거죠. 왜 그랬느냐고요? 그야 닌자들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어엉?』

그때까지 쥐 죽은 듯 온더락만 홀짝거리던 남자가 배를 잡은 채 미친 듯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니까 너는 영원히 순찰관인 거다!」라는 모두의 비난이 그 뒤를 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2/05/23 12:57 2012/05/2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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