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12)

핀치의 번들거리는 안경알 위로 혐오감이 떠올랐다면 이야기는 180°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의 얼굴 위로 떠오른 건 두려움이었다. 그것도 촌구석에서 닭이나 키우던 촌뜨기가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의 비행접시를 목격했을 적의 충격과 맞먹는 것이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우레가 치고, 녹색의 살인 광선이 대지를 덮는... 방목되던 닭들마저 심장마비로 쓰러졌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여자들은 냄새를 잘 맡았다. 핀치의 감정이 공포라는 걸 깨닫자마자 그녀들은 보드라운 깃털을 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리제모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악녀였지만 부처님께 귀의하고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 - 그들 중 한 명이 어르고 달래고자 핀치를 포옹하려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도를 하려고 했다. 핀치는 스프링 단추가 작동했다는 투로 재빨리 벽에 가서 붙었고, 그녀의 팔은 허공을 훑었다. 핀치는 발끝으로만 선 자세에서 진땀을 흘려댔다.

『여, 여러분? 저, 저는 이러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에이, 뒤로 빼긴.』
눈웃음을 치던 여자가 몸을 밀착해왔다. 핀치의 뺨으로 확 하고 피가 몰렸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이건 다 자연스러운 거라고요. 그럼 댄스 룸으로 갈래요?』
『전 다리가 불편해서 춤을 못 춰요. 그런데 댄스 룸이라뇨.』
『정말 순진하시네. 춤은 우리가 추는 거예요. 댁은 잠자코 무릎을 모은 채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요.』
까르르 웃는 소리가 더 커졌다. 누군가 핀치의 넥타이를 잡아당겼고 장난스럽게 안경을 벗겼다. 시야가 흐려지자 심장 뛰는 소리가 곱절로 커졌다.
『15분에 300달러예요. 팁은 별도구요.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데 우린 옷은 안 벗어요.』
『$*()@_%』
가엾게도「끈 팬티는 옷이 아닙니다!」라는 비명은 속으로 삼켜졌다.

불경기는 거리의 모습을 서서히 낡아가는 모습 그대로 박제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10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지킨 간판의 칠은 벗겨지고, 빌라의 모퉁이 돌은 떨어져 나가고, 거리 가로등은 녹슬고... 그렇게 서서히 몰락해 가는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몰라서 그렇지 불경기는 매우 빠른 모습으로 거리의 풍경을 바꿔놓는다. 수퍼마켓이 문을 닫으면 대신 건전함과는 거리가 먼 술집이 들어온다. 길거리 마약상이 계단에 퍼질러 앉으면서 꽃집, 빵집, 서점, 카페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굳게 내려진 셔터로 울긋불긋한 낙서가 뒤덮힌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너무 빨라 디지털 업데이트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거다. 컴퓨터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쉽게 말해 빌딩 주소지에 건물은 없고 공터만 남았다는 말씀.

뒷문을 이용해 - 라기 보단 자물쇠를 뜯고 가게 내부로 들어온 리스는 제일 먼저 가게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검정 셔츠의 사내의 복부로 강한 어퍼컷을 날렸다. 감정은 없다. 대신 기술은 있다. 명치를 강한 파워로 정확히 때리면 상대방은 심장 발작을 일으킨 사람처럼 벌렁 쓰러져 경련만 일으키게 된다. 좋은 점은 이 정도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고, 더더욱 좋은 점은 끽 소리 내지 못한 채 이쪽 용건에 훼방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쿵, 하고 거구의 문지기가 일격에 쓰러지는 기척에 비쩍 마른 남자가 리스 쪽을 쳐다보았다. 창고에서 술을 꺼내오고 화장실이나 청소하는 잡부인 것 같았다. 아니면 바텐더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기엔 행색이 초라했지만... 알게 뭐람. 리스는 일부러 그를 무시한 채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이 경우엔 죽일 기세로 노려보지 않는게 더 좋다. 짐작한대로 마른 체격의 남자는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옆으로 얌전히 비켜섰다. 리스는 옷깃을 짐짓 정리하는 척하며 남자를 지나쳤다.

『여러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말이 댄스 룸이지 얇은 합판으로 공간을 나눈 벌집 구조의 매음굴이었다. 얼룩이 잔뜩 진 카펫 위로 소파가 보였고 그 옆에는 술잔을 내려놓을 수 있는 조그마한 유리 테이블이 있었다. 그게 전부다. 그 좁은 칸막이 안에서 춤을 춘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실상은 팬티만 입은 여성이 엉덩이를 남자 사타구니에 비빈다는 의미밖에는 없었다.
『우리 보스가 저 남자를 붙잡아 오라고 시켜서요.』
- 보스? 당신의 보스는 나 아니었나요?
핀치는 콧물 투성이가 되어 리스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를 소파에 눕히기 위해 몸싸움 중이던 여자 또한 벌떡 일어났다.

리스는 출렁거리는 하얀 가슴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주의하며 - 그보다는 핀치가 흘린 맑은 콧물에 더 시선이 갔다 - 깔고 앉은 사내를 어서 내놓으라며 손짓했다.

여자가 거부의 뜻으로 인상을 구겼다.
신경질적인 고양이 분위기의 여자였다. 목소리 또한 카랑카랑했다.
『우리는 마르텔로냐 씨의 허락을 받고 일해요.』
구역 보스 이름이 마르텔로냐인가. 잘 모르는 이름이군.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점잖게 웃었다.
『우리 보스도 마르텔로냐 씨의 사업을 존중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영업을 방해해선 안 되죠. 전 아직 이 사람에게서 팁도 못 받았다고요.』
리스는 핀치에게 눈짓했다. 빨리 저 여자에게 팁을 줘요.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리스가 눈짓하기 이전에 핀치는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에 지폐를 던지느라 바빴으니까. 아마 지갑에 넣어둔 현금 전부를 꺼내 뿌리는 것 같았다.

『이젠 됐죠? 쁘띠앙.』
『OK. 그 사람, 끌고 가요.』
지폐를 줍기 위해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리스는 핀치의 넥타이를 쥐고 끌어당겼다.

Posted by 미야

2012/05/22 17:03 2012/05/2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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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2/05/22 21:49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미야 2012/05/23 13:18 # M/D Permalink

      ㅇㅅㄹㅇ님. ^^ 그런 "전문적인" 어려운 말씀 마세요. ^^;; 그런 거 몰라욤. 모님 블로그에 올라온 "수미상관" 도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는데 뭐였드라 이러고 뒤졌다고요. ^^;;

  2. 비밀방문자 2012/05/23 18:04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미야 2012/05/23 20:31 # M/D Permalink

      음홧홧홧... (눈물)
      플롯 파괴는 콘티 작성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털푸덕)
      이야기를 순서대로 배치하려면 먼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생각나는대로 마구마구 적어나가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버닝이 급작스러워서 제어가 되질 않고 있어요.
      희곡 이론은 읽어본 적 없는데 한 번 찾아볼까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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