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11)

순서 없음, 분량 없음, 끈적이는 거 없음.

『마치 캔들러의 소식을 알고 있을 법한 사촌이 뉴욕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리스 씨.』

핀치의 말에 리스는 의외라는 투로 눈을 크게 떠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는 핀치가 만든「기계」가 인식한 아홉 자리 SSN(사회보장번호)의 주인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해 기계가 알려온 번호의 주인은 손버릇 고약한 마치의 남편이었고, 그는 엉성하게 제작된 사제 폭탄 위에 기절한 채 엎어진 몰골로 리스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말은 구조였지만... 음. 이쯤해서 리스는 스스로를 방어하듯 팔짱을 꼈다.
불법 총기류 구입을 한 물증도 있겠다, 집은 폭발로 날아갔겠다, 애덤 캔들러는 체포되어 지금 감옥에 있다.
경찰은 리스가 도중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따라서 거구의 트럭 운전수가 홧김에 질산암모니아와 부탄가스로 자기 집을 박살내려 했고, 엉성한 실력 탓에 그의 뒷통수가 불길에 그슬린 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아울러 요란한 모양새의 자살을 기도했는데 도중에 마음을 바꿔먹고 집밖으로 뛰쳐나온 거라며 비웃었다.

마누라를 밥 먹듯 때린 죄밖에 없던 애덤의 입장에선 꽤나 억울할 거다.
그러나 리스는 그 오해를 풀어줄 이유를 못 느꼈다.
오히려 그는 애덤의 혐의를 부채질할 자료를 카터를 통해 부풀렸다. 앞으로 15년 정도는 거리에서 당신 얼굴을 보는 일 없기를 삼가 바랍니다 - 인터넷 거래명세표를 조작해 애덤이 폭탄 제조에 필요한 재료 몇 가지를 직접 구입한 것처럼 꾸몄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리스는 애덤을 구조한게 아니라 빅 엿을 먹인 셈이었다.

『흠... 혹시 마치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건가요?』
생각에 잠긴 리스의 침묵을 다른 방향으로 오해한 핀치가 짐짓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고 그러면 곤란해요, 미스터 리스.』
리스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핀치의 힐난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앞으로 DHA가 풍부한 등푸른 생선이나 뇌에 좋은 레이신, 비타민B 섭취를 늘릴게요, 핀치. 그나저나 기계가 보내온 번호도 아닌데 마치 캔들러를 여전히 추적하고 있었던 건가요? 다 끝난 케이스라고 여겼는데... 놀랍네요.』
『지금 농담해요?』
세상의 모든 고민거리를 홀로 끌어안은 핀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두라며 일갈했다.
『아내가 남편을 폭탄으로 날려버리려고 했는데「아, 그러셨어요~」이러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녀에겐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들이 있어요. 마치가 구제 불능의 폭발광이면 어쩔 겁니까.』

글쎄다. 단순 노동자의 대명사이기도 한 마트 계산원이 어느날 갑자기 사제 폭탄 제조광으로 거듭 태어나는 일은 흔치 않다. 뉴스에선 인터넷만 뒤져도 폭탄 제조법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한탄하지만 애국법 개정 이후로는 그것도 다 과거 이야기다. 구글에「폭탄」이러고 검색어를 쳐보자. 엄청나게 맛이 없어 눈물 없이는 먹을 수 없는 오물렛, 산책로에서 치워지지 않은 개똥이 검색 결과로 튀어나온다. 요즘엔 그런게 폭탄이다.

『작정하고 배우겠다면야 길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생활에 찌든 아이 엄마에겐 폭탄 제조법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는게 문제죠. 일단 만드는 방법이 단순하지 않아요.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은 마치로서는 공책에 필기를 해가면서 화학 공식부터 공부를 해야 하죠. 저더러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를 읽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마치는 오디세이 저리가라로 폭탄 어쩌고를 대단히 싫어했을 겁니다.』
『그건 추측이잖아요.』
『타당한 추측이죠, 핀치.』

폭탄은 마치가 만든게 아니다.
그리고 애덤을 때려눕히고 작동하는 폭탄 위에 내던진 사람 또한 마치가 아니다.
『일단 마치의 완력으로는 남편을 기절시키는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전 마치에게 숨겨진 애인이나 남동생이 조력자로 있었던 건 아닐까 조사를 해봤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키 큰 고용인을 내려다보고 싶다는 희망을 담아 핀치가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뭐요? 조사를 했다고요? 하지만 저에게 그런 말 한 적 없잖아요.』
『그야 조사 결과가 썩 신통치 않았으니까요. 마치 캔들러는 사람 관계가 참 짧은 사람이더군요. 지인도 많지 않고 결혼 후 연락을 하고 산 혈육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리스는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당신이 찾아낸 그 사촌이라는 사람도 마치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은 거의 없을 겁니다 - 라고.

하지만 핀치는 고집스러웠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리스를 뒤로한 채 홀로 자동차를 몰아 마치의 사촌이 살고 있다던 장소를 찾았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의 말대로 할 걸, 이러고 땅을 치고 후회했다.
주소에 적혀진 장소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네온싸인이 켜진 가게였다.
그래봤자 술집이겠거니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젖통을 드러낸 미지의 숙녀들이 봉을 잡고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뒤돌아 달아나려고 했으나 겨드랑이를 붙잡혔다.
벌거숭이 여자 네 명이 에워싸고 지갑에 있는 돈을 전부 쓰지 않으면 못 나갈 거라고 했다.
얼어붙은 그를 향해 여자들이 호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Posted by 미야

2012/05/21 14:31 2012/05/21 14:31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478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698 : 699 : 700 : 701 : 702 : 703 : 704 : 705 : 706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19332
Today:
1038
Yesterday:
133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