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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다쳐

※ 덥구먼유... 메롱메롱입니다.


마녀는 괘씸한 남자친구를 아주 뒈지게 만들 작정은 아니었나 보다.
극적인 효과까진 보지 않았지만 소금물 목욕 이후 샘의 상태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밸속에서 내몽이여. 형은 루즈랑케 아몽하고 닥락거릴능?』
음... 녀석은 이제 술도 마실 수 있다.

보다 위협적으로 보이게끔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알다시피 마이애미 쪽으로 이 포즈로 아주 유명한 경찰이 있다. 음주난봉을 벌이는 취객을 제압하려면 능력 좋은 경찰관 흉내도 나쁘진 않을 터, 신분증을 보자고 요구하면 보여줄 수도 있다. 간단하다. 주차장으로 나가서 자동차 선반만 열면 된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 몸은 법집행 관련 쪽의 신분증은 다섯 개인가 여섯 개인가 갖고 있다. 물론 진품이 아니긴 하지만.

『하여간 못 말려. 네놈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아들을 수 있음 미 합중국 대통령이다.』
『몽게몽게.』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은 몽게몽게가 아니야, 샘.』
『알랍니다. 벵길거리는 좀삭이긴.』
『아, 쫌~!!』

개구리 내장 맛이 난다는 콜라도 버전 업그레이드 되어 구토약이 섞인 탄산음료가 되었다. 그놈의 토기가 올라온다는 문제만 극복하면 먹거리 고민은 끝이다. 나는 냉장고를 향해「파이팅, 콜라!」응원하고 싶어졌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고 샘은 날 바보 취급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콜라는 호날두가 아니다. 알게 뭐람. 나는 콜라 앞에서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 의향도 있었다. 샘은 더 기분이 나빠져 나를 향해 멍청이, 얼간이, 원숭이 별별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렇다 한들 특별히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입에 넣고 씹던 감자 튀김을 샘이 내 침대 위로 고스란히 뱉어냈을 적에만 화가 났다. 젠장, 나더러 오늘밤 어디서 자라고.
기름기가 밴 시트는 진작에 벗겨냈기 때문에 내 침대는 포근함이라던가, 안락함이라던가 하는 단어와는 이미 거리가 멀었다. 곁눈질로 소파를 살폈다가 다시 황폐해진 침대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라도 좋으니까 밖으로 나가 괜찮은 여자 한 명을 낚아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와 그녀의 침대를 마음껏 찬미하고 싶어졌다.

『묵말, 묵말어.』
위스키 석 잔에 구제불능으로 혀가 꼬부라져선 목이 마르다는 걸 저렇게 표현하고 있는 동생을 놔두고 그렇게 할 수 없다는게 속상할 뿐.
『엉아, 묵말...』
내가 아놀드 슈워제네거였음 말이지. 널 번쩍 들어 구석에 처박았어, 쨔샤.
그렇게 궁시렁대며 곤죽이 된 샘의 몸을 꽉 붙들었다. 녀석은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간다. 의식이 불분명하면 평소보다 곱절은 더 무거워진다. 휘청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앞으로 이동해야 할 거리를 짐작했다. 바람이라면 다섯 발자국 미만이었음 좋겠다. 그 이상이면 둘이서 같이 나동그라질 확률이 높다.
『아놀더 슈어제거.』
빌어먹게도 샘은 재밌어 하는 눈치다. 킬킬 웃으며 엉겨붙었다.
『올랴~! 번들 들어 궁상 처바가라~!!』
제발, 샘.
더욱이 이젠 졸린 눈치다. 목덜미에 대고 얼굴을 부비부비 문지르더니 분명히 하품했다.

좋지 않았다. 좋을 리가 없잖는가. 목덜미 쪽으로 소름이 돋는 것과 동시에 발이 삐끗했고, 누가 밀고 누가 당겼는지 모르게 우당탕 굉음을 내며 고꾸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크하하하 웃어댔다.
너나 실컷 웃으세요. 하지만 내 무릎은 무덤에 들어갈 날이 멀지 않은 영감탱이의 그것처럼 콕콕 쑤씨고 아팠다. 그것으로 주정뱅이를 보살피고 싶은 욕구가 말끔이 증발했고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바닥을 기어갔다. 입으로는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 다 지겨워, 지겹다고, 이젠 다 포기할테다. - 항의하듯 께룩거리는 샘을 뒷발로 밀쳤다.

『혀-엉.』
『시꾸랍!』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샘은 내 발목을 잡고 징그럽게 늘어졌다.
이것도 역시 좋지 않았다. 좋을 리가 없잖는가. 네 발로 기어가는 사람을 뒤에서 덮치면 그림이 무척 상스럽게 되어버린다. 등으로 묵직한 체중이 실리자 나는 발톱을 세운 고양이가 될 지경이었다. 남들이 이 광경을 보면 천하의 딘 윈체스터가 덮쳐지고 있다고 착각할 거 아냐. 아, 짜증나.

『무겁다.』
『미안.』
『무겁다고!』
『미안.』
『너어~!! 미안한 줄 알면~!!』
튀어나온 말은 거기까지.
동생은 콧물을 훌쩍이며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지 마, 형. 날 두고 포기하지 마.

뭐, 게슴츠레 눈을 뜨고 그런 말을 해봤자 이쪽에서 크게 감동받거나 그럴 일은 없지만...
충동적으로 몸을 돌려 동생의 몸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술기운 탓인가.
샘의 체온이 지옥의 그것처럼 불구덩이다.

Posted by 미야

2009/08/06 13:33 2009/08/0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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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J 2009/08/06 19:33 # M/D Reply Permalink

    으악,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은 날이 갈수록 커지네요.....악, 좋아요.....ㅠㅡㅠ 젠장, 별거 아닌 걸로 헐트시키고 심장 쥐어짜는 녀석들 같으니라고.....휴가 갔다 오니 소설이 올라와 있고....크헉, 은혜로운 밤이로군요...

  2. 나마리에 2009/08/06 21:39 # M/D Reply Permalink

    동생을 으스러져라 껴안았으니, 이제 다음 수순은 형님이 사고 치는 건가요? T^T
    귀여워요. 흑.

계속해서 휘적휘적

※ 즉석에서 휘갈겨 여전히 제목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여자가 있어.
딘이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 딘이 싫어하는 타입의 여자.

여기서 여자를 보는 눈이 나랑 (바보)형이 서로 똑같은 거 아니냐 묻지 말아줘. 딘의 취향이 곧 내 취향이라는 건 아니니까. 다만 여자를 보면 머리 어딘가에서 오른쪽, 왼쪽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며 움직여. 그게 오른쪽으로 회전하면 딘이 실실 웃음을 쪼개기 시작해. 언제 여자 엉덩이로 손을 내려도 괜찮을지를 열심히 계산하면서 말이야. 그게 왼쪽으로 돌면? 음... 굳이 설명할 필요 없지 않나. 여자 앞에서「치마를 두른 전봇대보다 못한 존재」라고 말하는 건 정말 심한 짓이지.

『벨라, 이 개 같은 년.』
벨라는 분명 왼쪽.
『지금 누가 누구에게 신경질이야! 내가 일을 망쳤다고? 웃기고 지랄하네!』
흥분하거나 화가 나면 딘의 목소리 톤은 가성의 영역까지 앙칼지게 올라간다. 스스로는 잘 모르는 듯하다. 제임스 해필드*도 아니면서 높은 음으로 소리를 질러대면 쇼핑센터 주차에 실패하고 엉뚱한 담벼락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뚱뚱한 중년 아줌마처럼 되어 버린다. 내가 방금 자동차 타이어를 날려먹었어 - 아우성을 치는 딘의 목소리는 더도 말고 딱 그거였다.
『그딴 마법 주머니는 진작에 태워버렸다! 그래서 뭐!』
벨라는 지금 휴대폰을 귀에 대지 않고 멀직히 떨어뜨려놨을 거다.
『네 고객의 사정따윈 알 바 아니쥐! 흥!』
안 그랬다면 쩌렁쩌렁한 음성에 고막이 상당히 아팠을 터.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
귀신을 사냥하는 형이나 나나「보통」과는 인연이 먼 이상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괴상함의 단계를 A, B, C로 나누어 구분하자면 우리는 겨우 C-레벨이라고나 할까.
마녀의 저주가 걸린 마법 주머니를 엄청난 웃돈을 주고 거래를 하는 인간들이야말로 괴상함의 A 클래스다. 잘못 건드리면 죽을 수도 있어요 - 친절한 충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돈 냄새에 코를 킁킁거린다. 이게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희귀 아이템이라고 착각들 하고 있는 겐지. 그게 아니라면 크롬 도금된 가짜 성배를 지하 금고에 넣어두고 좋아라 하는 바보들일 것이다.

『1만 달러?!』
딘의 눈동자가 도토리처럼 땡그래졌다.
『내가 태워버린 그... 그게 1만, 1만... 1만 달러라고?! 도, 돈이 썩었냐?』
벨라도 지지 않고 악을 써대는 모양이었다. 푹신한 솜 대신 지폐를 가득 채워넣은 베개를 베고 잠든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그녀다. 고가로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을 우리가 도중에 가로채어 불살라 버렸으니 듣기 좋은 소린 나오지 않을 터, 이쪽에서도 잘 들렸다.
영국식 엑센트가 실린, 음절 딱딱 끊긴「엿 먹어」.
『뭐?! 엿 먹어?! 제기랄. 살을 빼고 싶음 저주 주머니 같은 건 집어 치우고 츄리닝 입고 운동장이나 뛰라고 그래! 당해보질 않아서 그런 태평스런 소리가 나오는 거지! 먹지도 못하고 토하는게 다이어트인 줄 알어?! 너도 똑같아! 변비에나 걸려버렷, 이 똥돼지 뱃살 마녀 계집아!』
발을 쾅쾅 굴러댄 딘이 마침내 핸드폰을 던졌다.
『여자들이라니!』
아까부터 왼쪽으로 돌던 내 머릿속의 화살표는 이제 가속이 붙은 움직임을 보였다.

줄리아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문제의 마녀는 토마스라고 하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남자와 사귀었다. 평범하게 영화를 보고, 평범하게 식사를 하고, 평범하게 뽀뽀를 하고.
하지만 딘과 나는 그들의 연애가 결코 평범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음. 그게... 줄리아가 마녀라서 그런게 아니라.

『토마스 212kg, 줄리아 197.5kg. 와우!』
『차별하는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둘이서 자가용을 몰고 나가 평범한 해변가 드라이브를 즐기는 건 불가능했겠어.』
『그래도 합계 409.5kg이야, 딘. 일반적인 승용차의 최대 적치물 하중은...』
『닥치고 목욕에 집중해주지 않겠니? 동생아.』
『집중이 가능할 것 같아? 무지하게 따갑단 말이야.』
『어쩔 수 없잖아, 소금물인데.』

활짝 열린 욕실문 저쪽으로부터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딘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잔소리했다.
『욕조 속에서 발가락만 꼼지락거리지 말고 구석구석 잘 닦아.』
『제발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세요. 지금 어딜 보고 있는 거야!』
『고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손바닥으로 가린 고추.』
『정신병 걸리겠구먼... 남의 거기를 봐서 뭘 하겠다고!』
『네가 남이냐? 이 몸은 네가 젖병을 빨았던 시절부터 널 보아왔다고.』
삐죽대던 형은 아예 입구에 몸을 기대고 섰다.

『좋아, 새미. 그럼 이 형에게 말해봐. 뭔가 화~ 하고, 뻥~ 하고, 뽀로롱 하고...』
『그딴 의성어로 표현하면 내가 알아먹을 것 같어?』
『달라지는 게 있냐고 묻고 있는 거다.』
달라져? 대답 대신 두 팔을 벌려보였다. 화~ 하고 느낌이 있냐고? 아무 것도 못 느끼겠다.
딘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가랑이 사이로 집중되었다.
참방 소리를 내며 얼른 팔을 물속으로 담궈 중요 부위를 가렸다.
『젠장,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그게 언젠데.』
『몰라.』
『모른다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느날 토마스는 줄리아와 말다툼을 했다. 원인은 사소한 거였다. 줄리아의 새 옷이 토마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색이 칙칙하다고 했다. 그리고 가슴이 너무 파인 것 같다고도 했다.
줄리아는 발끈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화살이 토마스의 머리 스타일로 옮겨갔다. 그녀는 남자친구의 머리가 1950년대를 연상시킨다고 쏘아붙였다. 머리숱이 적어 보인다고도 했다.
다음은 지독했다. 줄리아는 현관에 놓여진 우산을 들어 토마스를 때렸고, 신나게 얻어맞은 토마스는 숨을 씩씩거리며 그녀더러 뚱뚱한 돼지라고 욕했다. 격분한 줄리아는 남자친구의 면상을 할퀴기 위해 팔을 휘둘렀는데 그 충격으로 집의 판자가 떨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도 토마스는 돼지, 돼지 이러고 떠들어댔고...
진짜지 그러고 싶었을까. 얘기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진다.

『한심한 남자... 그래서 보란 듯이 날씬해져 돼지의 오명을 벗겠노라 줄리아가 그 마법 주머니를 만든 거군.』
『틀려. 그건 토마스를 골탕먹이려고 만든 거야. 어떤 마녀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저주할 수는 없으니까.』
토마스는 다른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퀴벌레를 환장하고 먹어치웠다고 한다.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졌을 적엔 몸무게가 158kg으로 줄어 있었다.
『오, 베리아트릭 수술보다 효과적이네. 엄청 살 빠졌잖아.』
『부탁이니 진취적이고도 획기적인 비만 치료법이 개발되었다는 투의 발언은 삼가줘, 샘.』
줄리아와 토마스가 화해를 하고 잠시나마 엇갈렸던 서로의 감정을 다시 확인했을 무렵, 그의 몸무게는 99kg였다. 그녀는 오히려 살이 붙어 207kg. 아뿔싸. 좌우대칭이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
『굉장한데.』
『마약 중독자처럼 푹 꺼진 뺨을 하고 지금 감탄이 나오냐.』
쯧쯧 혀를 찬 딘이 대포장 소금 봉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쪽의 눈치를 살펴가며 욕조에 소금을 더 넣었다.
 
『어떠냐, 새미. 뭔가 화~ 하고, 뿅~ 하고, 샤라랑~ 하고...』
『그딴 의성어로 묻지 말라니까. 몰라. 아무 느낌 없어.』
아무 느낌이 없긴. 온몸이 따가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아니면 그저 내 신세가 서러운 건지도 모른다.

무릎을 세우고 정 중앙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양말 먹고 싶어, 딘.』
대꾸할 말을 잃은 딘은 그저 새미, 새미, 새미 이러고 내 이름만 불러댔다.

Posted by 미야

2009/07/31 15:45 2009/07/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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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마리에 2009/07/31 17:55 # M/D Reply Permalink

    푸하하하핫. 저주걸린 새미 뒷 편이군요. 미야님!! 너무 좋아요!!!
    바람직한 목욕씬!!! >.<)/

  2. T&J 2009/08/04 01:05 # M/D Reply Permalink

    아,놔-마지막 샘의 대사를 보며 왜 토끼발 에피의 아이 로스트 마이 슈즈.가 생각나는 거냐며...ㅋ샘 귀엽네요.

  3. 제노 2009/08/09 00:29 # M/D Reply Permalink

    딘의 양말이라니 저도 먹고 싶...아... 이러면 안되는데..

    귀여워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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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복구

제목도 없는 습작입니다.


맛있게 생긴 베이컨 버거를 외면하고 영양가 없는 풀쪼가리에 데면데면 포크질을 하는 동생을 보며 내가 어떤 생각을 할 거 같아.
저건 남자도 아니고, 인간은 더더욱 아니야.
제길, 사만다. 이러라고 널 낳은게 아닌데.

『낳지 않았잖아.』
『그래. 낳지 않았어. 그래서 천만다행이라는 거지.』
『이거 왜 이래?! 아침부터 콜레스테롤 덩어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삼키는 쪽이 비정상 아냐?』
『얼씨구? 네가 지금 나한테 정상, 비정상을 따지겠다는 거냐?』

샐러드는 훌륭한 식품이다. 이몸은 그 주장에 콧방귀나 뀌는 입장이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낸 엄청량 분량의 자료들이 코앞으로 들이닥친 상황에선 억지로라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자들이 엄청 많았다. 거기에 샘은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도 그어났다. 글쿠나. 샐러드는 좋은 식품이다.
나는 살짝 긴장했다. 기회다 하고 샘은 이걸 나에게 먹으라 강요하려는 건가.
결론만 말하자면 샘은 나에게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먹은 건 그쪽이다.
덧붙이자면 그「먹었다」라는 존재는 야채가 아니다. 샘은 출력한 종이를 먹었다.
그것도 나 모르게 화장실에 숨어 질겅질겅.

『이 염소 새끼야. 꾸역꾸역 잘도 처먹고.』
『시끄러!』
『형 앞에서 발끈해봤자지. 헌터라는 놈이 보란 듯이 저주에나 걸리고. 확인하기 전까지 내가 상자를 열지 말라고 그랬잖아.』
『그게 내 잘못이냐고. 상자를 열고 확인하라는 소리로 들었단 말이야.』
『오우, 그러셨어요? 혹시 보청기 필요하세요?』
힐난하는 말에 샘은 입을 앙 다물고 날 노려보았다.

어쨌든 상자는 열렸고, 샘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우리가 쫓던 마녀는 성격이 아주 나쁜게 확실하다. 성격 좋은 마녀 따위가 세상에 있을소냐 - 거기에 대한 논의는 나중으로 하고, 작금의 이 상황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
『그래, 샐러드는 먹을 만하냐.』
내가 듣기에도 지친 목소리다.
『자꾸 긁어대지 말어. 충분히 토할 것 같으니까.』
답변하는 동생의 목소리는 그보다 곱절로 지친 목소리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보통 마녀의 저주라고 하면 생니가 왕창 빠지거나, 정수리 부근 머리카락이 이유도 없이 불탄다거나, 멀쩡하던 눈이 먼다거나 이래야 정상 아니야? 그런데 이 마녀는 아주 치사하게 굴었어. 세상에... 사람이 먹는 걸 갖고 장난을 쳤다니까.
지금까지 샘이 충동에 못 이겨 제 아가리에 쑤셔 넣은 걸 언급해보리? 신문지. 화장지. 핸드크림. 화분흙. 세제. 빨지 않은 양말을 황홀한 표정으로 입에 물고 있는 걸 목격했을 적에 나의 섬세한 심장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어. 덧붙여 동생이 좋아 죽는다며 쪽쪽 빨아댄 양말은 내 거였다고. 기절초풍할 일이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변태 같잖아.』
『아닌 척해도 변태 맞거든.』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닌데!』
『목소리 낮춰. 사람들이 쳐다보잖냐. 그리고 소리를 질러대고 싶은 쪽은 바로 나야.』
『형이 화낼 일이야?! 이건 내가 화낼 일이라고.』
『방구 뀐 놈이 역정낸다고 이놈이 어디서 큰소리 뻥뻥 치네. 형이 보기엔 안 그렇다고, 이 자식아. 최소한 자기가 신던 양말을 입에 물었어야지! 왜 하필 내 양말이냐.』
내 비난에 샘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노한 것도 같고,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다. 무척 비참해하는 것도 같다. 아니면 그 어느 쪽도 아닌 건지도 모른다.
『네 거, 내 거가 어딨어. 우리 사이에.』
『어쭈? 다음에 내가 속옷 좀 빌려달라고 애원하면「네 거, 내 거가 어딨어. 우리 사이에」라고 말하겠구나? 그래서 언제 네놈이 이 형에게 팬티 입으라고 빌려줬냐? 아니잖아!』
『티셔츠는 빌려줬잖아.』
항변하는 동생의 말에 한쪽 눈썹이 저절로 치켜 올라갔다. 하여간 이놈은 누구에게 버르장머리를 배웠는지 꼬박꼬박 말대꾸다. 화가 치밀어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무나 감사하여 차마 입이 안 떨어집니다요. 샘 윈체스터 씨. 그 귀한 티셔츠를 빌려줬으니 황송해서 어쩔스까요! 이 형이 만장하신 가운데 두가닥 닥닥, 탭탠스라도 출까요?』
『됐어.』
짜증이 나는 건 서로 마찬가지. 샘은 샐러드 접시로 시선을 내렸다.

『바비 아저씨는 뭐래.』
『알 것도 같다며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래.』
『그 조금이 어느 조금인데. 한 시간? 하루? 아님 일주일?』
『샘.』
역겨워하는 표정을 감추지도 못한 채 샘은 포크로 찍은 양상추를 억지로 입에 넣었다.
사람은 누구나 때에 맞춰 음식을 먹어야 한다. 물도 마셔야 한다. 출출한 배를 채우는 행위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런데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할 거라 누가 생각이나 해봤을까.
두어번 씹던 샘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흐트러지는 호흡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토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목울대가 심각하게 요동치는게 고스란히 보였다. 그래도 토할 수 없었던 동생은 초자연적인 파워로 뱃속을 진정시키려 기를 썼고, 하느님이 보우하사 입에 들어가 있던 걸 용케 삼켰다. 그렇다고 해도 죽을 지경인 건 여전했는지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빌어먹을... 이게 어떤 맛으로 느껴지는 줄 알아?』
『알고 싶지 않아.』
『염소 똥을 바른 썩은 낙엽 같아.』
『친절한 설명 고맙다. 정말 우아한 식사 예절이구나, 동생아.』
『커피는 또 어떻고. 식초에 석탄 알갱이를 갈아 넣었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야.』
『그럼 콜라는?』
『더 싫어. 콜라는 상한 콩스프 냄새가 나. 게다가 개구리 내장 맛이 난다고.』

힌트는 있었다. 어...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비슷한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었다.
『나도 기억나. 모래를 주워먹고 죽은 남자에 대한 내용이었지?』
『정확하게는 고양이 변소용 모래야.』
『윽.』
『이식증이라고 착각될 소지가 있었지. 하지만 이식증은 보통 두 살짜리 어린애나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법이잖아. 어제까지 스테이크를 먹던 사내가 갑자기 머리카락을 주워먹고 있으니 귀신 장난이 분명하지. 아버지가 알아내신 바에 의하면 그건 마녀의 소행이었어. 그래서...』
『그럼 아빠가 처리했어?』
『아니. 케일럽 아저씨가 처리했어. 그래서 저주를 어떻게 풀었는지 아빠가 메모를 안 했어.』
나는 인상을 다시 구기고 동생을 응시했다.
『좋아. 헛구역질은 관두고 소시지를 먹어보는 건 어때, 샘. 원래 싫어했던 거니까 이번엔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도전해볼텨?』
나의 제안에 샘은 기진맥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어 도리질했다.

《그래. 샘은 어떻게 하고 있니.》
수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바비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런 기색이 잔뜩 묻어 있었다.
『죽으려고 하고 있어요. 오늘만 벌써 다섯 번 토했어요.』
《억지로 먹이지 마라. 자꾸 토하면 식도가 망가져. 그냥 푹 쉬게 하려무나.》
『아무 것도 안 먹겠다고 하면 괜찮죠! 녀석이 엉뚱한 걸 자꾸 먹고 싶어해요.』
《참으라고 해라.》
『말은 쉽죠. 우리 둘 다 참을성이 바닥나고 있다고요, 바비.』

샘은 과자 냄새를 맡고 있다는 투로 자기 신발의 냄새에 열중하고 있었다. 진저리가 난 나머지 아랫배에 힘을 팍 주고 기함을 질러댔다. 화들짝 놀란 샘은「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또리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늦었다. 바비가 듣지 못하게끔 수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 욕을 퍼부었다.
『엉덩이에 말뚝 박아버린다! 네가 찰리 채플린이냐?! 신발에 왜 군침을 흘려!』
『그치만 여기서 좋은 냄새가...』
『들고 있는 거 내려놓고 얼른 침대로 가!』
그리고는 다시 바비에게로 집중했다.
『급해요, 급하다고요, 바비.』

늘 쓰고 있는 모자 속으로 연필의 뾰족한 부분을 재주껏 찔러넣은 바비가 가려운 곳을 긁적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다행스러운 거라면 이 마녀의 저주는 그렇게 강한 종류는 아닌 것 같더구나.》
『그래요?』
《어쩌면 소금물에 목욕하는 방법이 통할지도 몰라.》
『오!』
《추가적으로 다른 재료를 더 넣어야 하긴 하겠지만...》
여기까지만 듣고 나는 다시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샘! 당장 입에 넣은 거 뱉어내!』

어디서 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샘은 강아지가 아니고, 야단 맞았다고 꼬리를 내리는 강아지는 더더욱 아니며, 말 잘 듣는 착한 강아지 또한 아니었다.
『형, 이거 정말 끝내주...』
『죽을래?!』
저 녀석은 왜 내가 벗어던진 양말에 사족을 못 쓰는 걸까.
설마, 내 발에서 고양이 똥 냄새가 나는 건가.
불안해져 슬그머니 발을 올려 냄새를 맡아봤다.
아...
숨을 멈춘 채 눈물을 닦았다.
구려.

《그럼 노트에 받아 적거라, 딘. 박하, 라타니아, 생강...》
전화기 저편에서 바비의 차분한 - 차분함을 위장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Posted by 미야

2009/07/29 15:16 2009/07/2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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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마리에 2009/07/29 22:08 # M/D Reply Permalink

    오오 이거 너무 좋은데요!
    웃기는 마녀 저주 거린 샘 너무 좋아요!
    미야님 저주를 걸어놓았으면 풀어도 주셔야죠! 뒷 얘기는 없나요?
    하다못해 새미 목욕 시키다가 사고 치는 얘기라도~ ㅎㅎㅎ

  2. T&J 2009/07/31 09:10 # M/D Reply Permalink

    억, 미야님.....ㅠㅡ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완전 좋아요~~딘이 벗어던진 양말을 물고빠는 새미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주가 풀린 뒤에 더 심하게 토하지 않을지...;;;;다음편....있는 거죠?...엉엉....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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