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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Orion 10

「하필이면 대학생이냐?」라는 속마음을 고스란히 읽어내린게 분명하다. 한쪽 눈썹을 갈매기처럼 휘게 만든 고든은 두툼한 서류뭉치로 핸릭슨의 어깨를 쳤다. 시선은 노랗게 불이 켜진 승강기 버튼으로 고정시킨 채 말이다.
『이보게, 고든.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그러니까 머리통이 아닌 어깨를 쳤지.』
입 모양만으로「잘 해봐」말을 덧붙인 그는 땡 소리를 내며 멈춘 승강기 안으로 서둘러 몸을 구겨 넣었다. 자판기가 있는 2층으로 가기 위해서다. 꼭두새벽에 가까운 시간이기도 하거나와 일거리가 폭발을 일으킨 오늘 같은 날이면 햄버거 가게로 줄 서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때가 되면 배꼽시계가 어김 없이 난리를 치는 법이고, 시끄러운 알람을 끄기 위해 고든은 2층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려는 것 같았다.
『내 것도 부탁함세! 콜라 하나랑 땅콩 초콜릿 둘~』
다시 작동을 시작한 승강기 안에서「지랄한다」답변이 흐릿하게 들려왔다. 핸릭슨은 쓰게 웃었다.

『오래 있게 해서 미안합니다.』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안절부절해 하던 청년이 핸릭슨의 인사치레에 고개를 들었다.
『예.』
이 어중간한 답변은 실제로 그가 이 건물 안에 오래 머물렀다는 의미다. 새벽을 꼬박 달려 피곤하기도 하겠거니와 이곳의 의자는 영 불편하다. 체력이 받쳐주는 젊은 대학생 신분으로도 눈자위 밑이 꺼지는 건 피할 수가 없다. 거기다 심리적 불안감까지 더해져 안색이 나빴다.
말이 좋아 참고인 자격이지「최초 발견자는 유력한 용의자다」법칙에 따라 임시로 억류된 상태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을 적에 괜히 손을 씻는 척하며 따라붙는 사람까지 있으니 그리 즐거운 기분은 아닐 터, 핸릭슨은 그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투로 운동선수 스타일로 짧게 다듬은 뒷통수를 문질렀다.

『좀 그렇지?』
청년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뭐랄까... 이상해요.』
『뭐, 그렇겠지. 행방불명된 사람을 폐가에서 발견한다는 경험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니까.』
순간 대학생 청년이 핸릭슨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방금 전의 말이 비꼬는 식으로 들렸던 걸까? 그래서 화가 났나?
약간은 달랐다. 딱 꼬집어 이거다, 하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묘한 뉘앙스가 있었다. 여섯 살 어린아이가 미적분에 관한 책을 읽고 있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우아한 귀부인이 우산도 없이 걸어가고, 토끼가 회중시계를 쳐다보며 파티에 늦었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핸릭슨은 덩달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샘 윈체스터.』
『아니오. 저기... 뭐가 잘못되었다는게 아니고요. 이런 일은 아무래도 처음이라.』
말을 얼버무리며 청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은밀히 숨기는게 있는 사람 특유의 미소였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네.』
곤란한 화제에서 안전한 화제로 적절하게 말을 바꿨다. 직구를 던질 때가 있는가 하면, 커브를 던져야 할 때가 있다. 처음부터 바짝 긴장하게 만들어 입을 다물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건 나중으로 하고... 핸릭슨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 분은 괜찮다고 하던가요?』
『몸 상태가 안정되어 이젠 안심해도 된다더군. 후두부에 상처가 있지만 의사 말로는 그리 심각하진 않다고 했네. 탈수증이 약간 있고...』
『그거 다행이군요.』
『뻑치기를 당한 것치곤 운이 좋았지.』
『뻑치기?』
『둔기로 머리를 쳐서 순식간에 기절시킨 다음에 피해자의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걸세. 아마 그녀가 가지고 있던 지갑을 노렸던 모양이야. 노숙자나 뭐, 대충 그렇고 그런 자들의 소행이겠지.』
대학생이나 되어서 뻑치기가 뭔지도 모를 것 같지는 않은데... 또다. 젊은이는 엄숙한 장례식장에서 빨간색 구두를 신은 문상객과 마주쳤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범인이 노숙자라고 그 여자 분이 말하던가요.』
『아니. 우리 입장에선 우라질인데 자신을 폭행한 사람을 전혀 못 봤다고 했네. 갑자기 불꽃이 팍 튀면서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고 하더군. 날아오는 돌에 정통으로 맞은 것 같다나. 정확하게는「하늘에서 운석이 추락했다」표현했지만.』
『그렇담 누군가 악의적으로 돌을 던져...』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어두운 밤에 물매로 돌을 던져 걸어가는 여자를 명중시켰다면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 이상의 업적일테지. 우연이라는 걸 아주 배재할 수는 없겠으나 날아오는 돌에 당한 건 절대로 아니야. 가까이 접근해서는 이렇게, 이렇게-』
두 팔을 들어 야구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제스츄어를 취하던 핸릭슨은 입으로 기합을 넣는 이엽, 소리도 냈다. 말이 좋아 야구 방망이지 전적으로 두더쥐 잡는 시늉이었지만 유명 대학교 재학 중이라던 예의바른 청년은 입을 꾹 다물고 이렇다 참견은 하지 않았다.

『힘도 없는 여자를 때리다니, 진짜지 나쁜 놈이야. 가지고 있는 거 전부 내놔 위협만 해도 지갑을 얌전히 건내줬을텐데. 그런데도 일부러 때렸단 말이야.』
『처음부터 죽일 의도였다는 말씀인가요.』
『글세... 사실은 그게 좀 복잡하네.』
운전하던 차에 기름이 떨어졌다. 핸드폰과 지갑만 챙겨들고 여자가 차 밖으로 나간다. 부근에서 히치하이크를 하던 거렁뱅이가 그런 그녀를 보곤 이게 웬 떡이냐 조용히 다가간다. 그리고는 몽둥이를 높게 들어-
『여기까지는 그럴 듯하지?』
핸릭슨은 검지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로 둥글게 원을 그렸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영 말이 되질 않아.』

시간이 지나 기절했던 여자가 눈을 뜬다.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낌과 동시에 갈증도 느낀다.
『그런데 무슨 하느님의 기적처럼 코앞으로 생수병이 있었다더군. 보통 편의점에서 파는 1리터짜리 생수병 말일세.』
『물병?』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라 마시면 위험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더군. 뚜껑을 따서 절반은 바닥에 흘리고 절반은 어떻게 마셨다고 했네. 그리고는 다시 기절했고.』
『머리에 입은 상처 때문에...』
『아니. 약물 때문이었네.』
『예?』
『물에 수면제가 들어가 있었어. 범인이 사전에 준비해뒀던 거지. 여자를 때려눕히고, 으슥한 폐가로 옮겨놓곤, 여자 앞으로 약을 탄 생수병을 놓아두었어. 깨어나면 마실 수 있도록.』
돈을 노린 범행이 아니다. 남의 지갑만 원하는 노숙자는 그렇게 복잡하게 머리를 쓰지 않는다.

『범인이 왜 그랬을 것 같나?』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전혀 모르겠네, 샘 윈체스터. 정말이지 답답해 죽겠어. 단순한 의견이라도 좋으니 머리 나쁜 경찰들을 위해 추측을 한 번 해보지 않겠나.』
『.......... 강간을 하기 위해?』
『좋아. 그건 꽤 그럴 듯하군. 피해자에게 강간당한 흔적이 없다는 점만 빼면.』

거의 눕다시피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핸릭슨은 가볍게 끙 소리를 냈다. 기름칠이 덜 된 관절에서 귀에 거슬리는 삐그덕 소리가 났다. 남자는 마흔이 넘으면 녹슬기 시작한다. 때문에 다리를 외로 꼬는 작은 동작에도 다소의 무리가 따르게 된다. 결혼도 하지 못한 핸릭슨은 그 점이 슬펐다.
『브렌켄릿지에 있는 그 폐가엔 무슨 일로 가게 된 거지?』
샘의 안색은 처음보다 더 나빠졌다.
『우연입니다.』
『우연이라고?』
한밤중에, 차편도 없이,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장소에, 그것도 혼자서.

핸릭슨의 표정에서 호의가 지워졌다.
『처음에도 이렇게 말했지. 동행인 남자와 차를 타고 가다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차에서 내렸다. 무작정 길을 걸었고, 어쩌다보니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집 앞에 이르게 되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집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쓰러진 여자를 발견했다.』
『맞습니다.』
『그 싸웠다는 자의 성함은?』
『이름은 딘이라고 합니다. 성은 모릅니다.』
『그 사람과는 어떤 관계인가.』
『관계라고 할 것도 없는 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왜 싸운 거지? 샘 윈체스터.』
이쯤해서 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제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거군요.』
핸릭슨은 시치미를 뚝 잡아뗐다.
『자네가 범인인가?』
샘은 이를 악물었다.
『범인이 아닙니다.』
『그렇군. 그럼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지. 왜 싸움이 벌어졌지?』
『그냥요! 그냥 말다툼이 벌어진 거예요! 제기랄, 지금 제가 취조를 받는 건가요?』
『취조는 무슨. 절차상의 사전 조사일세.』
『아무리 봐도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싫으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네.』
『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나중에「매우 수상했음」메모를 붙여놓을 거잖아요!』
『메모는 안 붙여놓네. 다만 전화를 걸어대지.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소중한 세금으로 다른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게 내 일이라서. 자, 그래서? 왜 싸웠던 거지? 마약인가? 아님 노름 빚?』

질린다는 시늉을 해보이며 두 팔을 벌렸다.
『그냥 싸웠다는 부분에만 집중하면 안 될까요. 형사님.』
『말하기 곤란한가.』
『곤란하고 자시고를 떠나 개인적인 거라서요.』
『그 여자를 죽이자, 말자, 그러고 의견이 틀어져 싸웠던 건 아니고?』
『당연히 아니죠! 난 그 여자가 누군지 알지도 못해요! 기가 막혀서.』
『좋아요... 댁은 차에서 내렸어. 그런데 왜 하필 브렌켄릿지로 갔나. 거긴 외진 곳인데다 인가가 없는 곳이라고. 밤에는 불빛이 전혀 안 보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댁은 그쪽으로 걸어갔어. 게다가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된 다리까지 건너면서.』
『알게 뭡니까. 어차피 부근 지리에 대해 아는 지식이 전혀 없었어요! 다리에 붙은 표지판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고요! 무작정 걷고, 또 걸었을 뿐입니다. 화도 났고, 판단력도 없었어요!』
『그리고 나서 여자의 흐느끼는 신음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겁니다!』
『귀신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 나라면 무서워 한걸음에 달아났을 거야.』
『겁에 질려 달아나질 않은게 그럼 제 잘못이라는 거예요?!』
팔짱을 낀 청년이 죽을 힘을 다해 핸릭슨을 쏘아보았다.

Posted by 미야

2009/05/10 22:43 2009/05/1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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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J 2009/05/11 00:23 # M/D Reply Permalink

    뭐랄까?............정말 샘다운 행동이군요-
    그나저나 딘은 무슨 생각인걸까요?-샘이 신고할 거란 건 딘의 시나리오엔 없는 일일까요...........엄,,,,,다음 편도 완전 궁금해요!!!!!

  2. 리다 2009/05/11 02:47 # M/D Reply Permalink

    으아아악! 헨릭슨을 다시 보게 돼서 너무 좋아요! ㅋㅋㅎ 고든은 동료인가 보군요! 그나저나, 여자하고 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요. 그리고 샘은 이대로 말하기 곤란한 일을 무마시킬 수 있는가! 두둥.

  3. 나마리에 2009/05/11 07:39 # M/D Reply Permalink

    헨릭슨!!! 게다가 고든도!!! 너무 반가워요!!!! 뭐랄까.; 헨릭슨은 딘을 쫓고, 고든은 샘을 쫓던 사람들인데.. 여기 나와 앉아있으니... ㅎㅎㅎㅎ 둘 다 참 멋있던 아저씨들이라 참 좋아했는데 말이죠. 아웅~
    딘은 샘을 제대로 골탕 먹이는군요. ㅠㅠ (길들이려는 건가? 하는 위험한 생각이 드는 저.. ㅋㅋㅋ)

  4. 마리 2009/05/11 17:42 # M/D Reply Permalink

    앗... 반가운 헨릭슨이여요ㅎㅎㅎ
    진짜지 샘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딘은 머리도 좋지ㅋㅋ

  5. 생강 2009/05/18 00:26 # M/D Reply Permalink

    오.. 핸릭슨요원 ㅎㅎㅎㅎ
    딘은 샘에게 뭘 원한 걸까요...
    그냥 샘을 다시 보기 위한 구실을 만든 건 아닐지,, 안타깝게 끝내놓고 샘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속셈(?)이라던지~ 다음편 기대중입니다~^^

  6. 달려라ㅋㅋㅋ 2009/05/18 01:36 # M/D Reply Permalink

    재밌당 >< 딘은 어디로 토낀겁니깡 ㅋㅋㅋㅋ

  7. ㅋㅋㅋ 2009/06/03 23:49 # M/D Reply Permalink

    잘봤어요!!
    재밌네요 딘이 샘에게 무슨짓을 한걸까요 으히힛
    다음편 기대할게요!

  8. ameretat 2009/06/13 16:47 # M/D Reply Permalink

    너무 멋져요ㅠㅠ 정말 좋았습니다.
    뭐랄까, 새로운 느낌의 딘과 샘이랄까요..취향인데. 이런거.<
    다음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9. 언니햐 2010/02/21 19:30 # M/D Reply Permalink

    얼른 보고싶습니다 다음편을 주셔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기나오는 샘이랑 딘은 완전 제스타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S☆N-fanfic] Orion 09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흐릿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왼쪽 어깨로 앉은 사악한 악마 한 마리가 쉬어빠진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아주 끝내줘. 그러니까 계속 점잖게 굴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뭐라고 그러겠어?
이제는 완전히 드러누운 자세가 되어버린 샘은 무방비한 태도로 그 다음을 기다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일 의지도 없다. 될 대로 되라 심정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리하게 삽입을 당하면 무척 아플 것이다. 하지만 고통 다음으로 느껴질 쾌락에 대한 기대가 컸다. 뜨겁고 단단한 것을 몸속에 가득 채워 넣고 민감한 내벽을 반복해서 문지르는 거다. 더욱 깊게, 더욱 강하게 -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항문 근육이 움찔거리며 수축했다. 그때로부터 시일이 제법 흘렀음에도 샘의 몸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딘과의 행위를, 그 열락의 감각을... 그러니까 탐욕스럽게 반응하는 것이다. 수치스러움과는 겨우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 기대감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딘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곧바로 샘에게서 떨어졌다. 그와 시선도 맞추지 않았고, 이렇다 말도 하지 않았다. 바지와 속옷을 발목 아래까지 내린 채 벌렁 드러누운 샘을 내버려두고 그대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자동차 밖으로 나간 딘은 노상에서 소변을 눌 때처럼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섰다. 스스로 뒤처리를 하는 건 빠르게 끝났다. 딘은 짧게 음 소리를 냈고, 붉게 발기된 성기를 몇 번 잡아당기는 것으로 간단하게 사정했다. 이미 몇 번이나 그렇게 해본 투다.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에 대고 정액이 묻은 손가락을 탁탁 털곤 바지 지퍼를 닫았다.

그제야 속옷을 허겁지겁 끌어올린 샘은 낯 뜨거움에 얼굴을 붉혔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덥혀졌던 체온이 차디차게 식어갔다.
나는 화가 나지도 않았고, 마음이 상하지도 않았어. 딘이 위로 올라 타주길 원하지도 않았고, 엉덩이가 크게 벌려지는 걸 기대한 적도 없어 -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저것들이 모두 반어적 표현임을 감안하자면 지금 그가 느끼는 실망감의 정체는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었다.
날 안아주지 않아 실망했다고? 내가 완전히 미쳤군 - 망연자실하여 입을 벌렸다.
어떻게 바지의 버클을 채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노망이 난 나머지 오늘이 화요일인지 수요일인지도 구분 못하는 늙은이처럼 그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어이. 담배라도 피울래?』
이미 불을 붙인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있던 딘은 유리창 너머로 샘에게 담배를 권했다.
『아니. 나, 담배 안 피워.』
『하지만 아버지와 전화로 말다툼을 하고 난 뒤에는 꼭 핀다며.』
『누가 그런 말을 해?』
『주둥이가 가랑잎만큼 가벼운 네 친구가. 이름이 랠프랬던가... 랜돌프였던가.』
샘은 허망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걸 신호로 딘은 들이밀던 담배를 도로 치웠고, 다시 두 사람 사이로 어색한 적막감만 맴돌았다.

이따금씩 하얀 연기가 허공을 향해 뿜어졌다.
부끄러웠다. 참담했다... 2분 동안 내내 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잘못을 곱씹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거였다면 딘은 담배를 피우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약 올리는 말이나 어떠한 비아냥거리는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폐를 더럽히는 행위에만 열중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인 건지, 아니면 샘을 배려하기 위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방금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언급하기 싫은 건 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마치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 샘의 마음은 더더욱 안 좋았지만... 어차피 애정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으니 실수였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껄끄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태도로 딘이 자신의 목덜미를 문질렀다.
『브렌켄릿지.』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 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라고?』
딘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예의 단어를 반복하여 말해주었다.
『브렌켄릿지.』
소름끼치도록 깊은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샘은 담배 냄새 섞인 딘의 체취를 가까이서 맡을 수 있었다. 싸한 맛이 느껴지는 남자의 냄새였다.
『그 여자가 있는 곳이야.』
찰칵 소리를 내며 조수석의 손잡이가 잡아당겨졌다.
『이제 됐지? 도중까지만 태워다주겠다고 했으니 그만 내려. 여기서부터는 난 가지 않아.』
같이 가지 않아. 우습다. 그 말을 듣는게 어쩐지 벌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샘은 빠른 걸음으로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었다. 자동차 엔진에 시동을 거는 소음은 한참 뒤에야 들려왔다. 딘은 꽤 오랫동안 그의 뒷모습을 전송하며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걸 깨닫자 가슴이 욱씬 조여오는 듯했지만 그 통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좋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샘은 편한대로 아예 생각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 대신 브렌켄릿지, 주술의 단어처럼 딘이 가르쳐준 주소를 중얼거리며 낯선 장소에서의 낯선 공기를 코와 입으로 하나 가득 들이마셨다.
멀지 않은 곳으로 강이 흐르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강이라고 하기보단 개울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날씨가 가물어 그 많던 물이 다 마르고 바닥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었다.
『완전 엉터리야...』
확실히 그렇다. 강이든 바다든, 상관없지 않을까. 돌부리에 걸려 잠시 비틀거리던 샘은 어둠으로 채워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동쪽이란 방향이 없었다. 서쪽도 없다. 동서남북이 송두리째 지워진 어둠은 샘이 느끼는 절망과 많이 흡사했다.
『빌어먹을!』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갑자기 구제불능의 바보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나쁜 자식!』
돌을 주워 이미 멀리 가버린 사람을 향해 던졌다.
『쳇!』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그 순간만큼은 찾아내야 할 시체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대신 샘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건 오직 하나 - 끝까지 갈 수 있었음에도 절제의 미덕을 발휘한 딘이 이번에는 그를 안지 않았다는 거였다.

속이 단단히 상한 샘은 돌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멀리 던질 수 있었다.
강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 다 썩어가는 다리를 만났다. 겉모습만 위태위태한 것이 아니라 안전상의 문제로 통행을 금한다는 표지판이 정면으로 크게 붙어 있었다. 달빛에만 의지해서 그 다리를 건넌다는 건 모험이었다. 하지만 딘은 그 장소를 지나야 한다고 못을 박았고, 실제로 겁대가리를 상실한 그 남자는 임팔라를 운전해 그 위를 두 번씩이나 왕복하여 지나치기도 했다.
『무거운 자동차가 지나갔는데 사람이 못 지나갈 이유가 없지.』
질끈 주먹을 쥔 샘은 가급적 아래를 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오른발을 올려놓았다.
이곳을 지나 20분을 더 가면 - 어디까지나 자동차로 운전했을 때가 기준이니 오로지 두 다리로만 이동해야 하는 샘의 입장에선 몇 시간은 걸어야 할 것이다 - 오래 전에 버려진 집이 한 채 나온다고 했다.

「버려진 집이라고? 글쎄... 경찰들이 그곳에 대한 수색을 빠뜨렸을 것 같진 않은데.」
「어쩌면. 하지만 그렇게 꼼꼼하게 뒤져보진 않았을 거야. 빗물에 썩은 마루가 폭싹 주저앉은 부분이 있는데 그걸 소파로 가려놓았거든. 얼핏 봐선 지나치기 쉬워. 손전등으로 대충 비춰봐선 바닥 아래로 구덩이가 있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거야. 가구를 치우고 냄새 지독한 카펫트까지 걷어야 하니까.」
그러면서 딘은 웃었다.
「그거 알아, 샘? 경찰은 게을러.」
그 의견에 딱히 이렇다 맞장구칠 기분은 아니다. 글쎄다... 그보다는 시체를 감추기엔 지나치게 눈에 띄는 곳이라서 열심히 수색할 기운이 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사람이 살지 않게 되어 버려졌다고 해도 그로부터 10년은 지나지 않은게 확실하다. 활짝 벌이진 입구 주변으로 쓰레기가 널렸어도 아주 험한 상태는 아니었다. 유리창도 부분적으로만 깨졌고, 지붕의 형태는 온전했다. 지하수가 마른 탓에 외지로부터 수도를 끌어와야 한다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지금도 거주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을씨년스런 분위기도 페인트만 바르면 도로 산뜻해질 것이다. 청소를 하고, 문짝을 손보고, 천장에 핀 곰팡이를 닦아내고...
『휴우, 내 팔자야.』
좌우를 살펴 부근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샘은 부러진 의자 나부랭이를 옆으로 치웠다.
생각보다 기척이 커서 깜짝 놀랐지만 그 소리를 듣고 뛰쳐나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호흡을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이제부터 시체를 찾아야 한다.
반쯤 무너진 벽과 썩은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카펫트, 커다란 소파.
딘이 사전에 설명한 바 그대로였다.

딱 하나만 빼고.

인상을 쓰며 더러워진 여자의 머리카락을 노려보았다. 구덩이에 빠져 있을 거라던 여자가 바닥에 얼굴을 향한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혼잣말을 주워 삼키며 더 가까이 접근해봤다.
낡은 바닥이 삐그덕거렸다.
순간, 에이미의 몸뚱이가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것처럼 꿈틀 움직였다.

얼마나 놀랐던지 샘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깜짝이야! 이, 이봐요?! 괜찮아요?』
『제발... 물을 좀... 목이...』
『세상에. 아직 살아 있잖아! 정신이 들어요? 이봐요!』
『도와줘...』
『그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 도와줄 사람을 찾아봐야겠어요!』
『안돼! 날 혼자 두고 가지 말아요.』
죽었다던 여자가 멀쩡히 살아 있었다. 탈진하여 숨이 가늘었지만 의식이 있었다.

뒷통수에 굳은 피가 엉겨붙은 걸 눈여겨 보던 샘은 조바심을 내며 질문했다.
『이 상황에 이상한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요... 당신, 혹시 지금 입에 뭐 물고 있는 거 있어요?』
여자는 초점이 잘 맞지 않는 흐릿한 눈을 들어 샘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셔츠 조각이라던가! 하여간! 입에 뭐 물고 있느냐고요!』
도움을 받게 되어 천만다행이지만 하필이면 정신 나간 미친놈에게 구조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끙끙 신음하던 여자가 마룻바닥에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911에 전화... 부탁... 허억.』
벌레구멍(윔홀)에 빠졌다던 에이미 웰치는 그렇게 해서 샘 윈체스터에게 발견되었다.

Posted by 미야

2009/05/03 22:53 2009/05/0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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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2009/05/04 17:37 # M/D Reply Permalink

    아닛,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 에이미가 살아있었군요...딘이 에이미를 살려둔 이유가 대체 뭘까영, 그리고 샘을 놔두고 부릉부릉 임팔라를 타고 사라져버린 이유도...으아아, 궁금해요!

  2. 나마리에 2009/05/04 21:41 # M/D Reply Permalink

    너무 좋아요!!!!!!!!!!
    저도 모르게 열락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가.. 기대가 좌절되고 경악하는 샘!!!
    우아아앗! ㅠㅠ

  3. T&J 2009/05/05 00:42 # M/D Reply Permalink

    오오오오=기다렸던 만큼 멋진 글입니다.
    샘의 열락을 한순게 차갑게 식혀버린 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무튼-여자가 살아있다는 데서 안심이에요...그래요, 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구요...........ㅡ.ㅡ;

  4. 아이렌드 2009/05/05 20:51 # M/D Reply Permalink

    대체... 길가에 던져두고 간 이유가 뭐야!!!
    (횽아의 멱살을 붙잡고 앞뒤로 탈탈 흔들고 싶어요...)

  5. 노랑괭이 2009/05/06 05:16 # M/D Reply Permalink

    오래전에 본 내용이라서 앞에 내용이 뭐였는지 잊어버렸군요.. 다시 1편부터 봐야겠네요

  6. 식흐 2009/05/06 12:25 # M/D Reply Permalink

    꺄악 ㅠㅠ// 이 맛에 들른다니까요 ㅠㅠ
    미야님 팬픽은 끝까지 읽고 나서도 기억에 오래 남아서 정말//////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으으 '살아갈 이유'에 오리온도 추가해야겠어요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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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Orion 08

※ 수성 페인트로 현관과 부엌 벽을 칠했어요. 아직 다 칠하진 못하고 팔과 다리가 아파 도중에 뻗었는데 괜한 짓을 시작했다 싶더라고요. ※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도서관에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허나 샘에겐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한다거나, 양치질을 하면서 동시에 머리를 감는다거나, 세탁기를 돌리면서 식탁을 정리하는 건 무척 어려웠다. 어느 한쪽으로도 집중이 되질 않아 결국 두 가지 일을 망쳤다. 매사에 요령이 부족한 샘은 그래서 하던 일을 꼼꼼하게 마무리한 뒤에야 다른 일에 눈을 돌렸다.
그의 학업 성적이 좋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 동시에 아버지와 사이가 나쁜 원인도 이것에 있다. 풀을 뽑으면서 X와 Y의 답을 구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샘에겐 불가능했고, 어쩔 수 없이 우거진 뒤뜰의 잡초는 어른 키 높이가 되도록 내버려두었다. 덕분에 매년 여름이라는 계절이 돌아올 적마다 존은 마당 꼬락서니가 아마존 정글처럼 되었다고 푸념을 늘어놓기 일수였다. 하나뿐인 아들이 힘든 일에 농땡이를 부린다고 오해하며 화도 냈다. 한 마디로 햇볕 뜨거운 로렌스에선 풀이 자라는 속도가 학교 숙제를 끝마치는 것보다 더 빨랐다는게 비극이었다.

「진정하자. 싫든 좋든 나중에라도 아버지와 입을 맞춰둬야 해. 사슴 사냥을 나갔다는 양반이 알고 보니 미국전지역농민대회에 참석 중이었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귀청 따가운 록 음악을 들으면서 앞으로의 일을 궁리하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사냥 중엔 외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제시카에게 미리 언질을 두기 잘했어. 아버지가 전화기에 대고 퉁명스런 목소리로 사냥은 뭐고 농민대회는 뭐냐 반문하는 날엔 모두 망하게 되니까... 마무리가 되는대로 로렌스에 들려야겠어. 나중을 위해 현금 영수증이나 모텔 숙박기록 같은 것도 챙겨둬야 해. 제리코가 아닌, 로렌스로 향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니까.」

일을 망치지 않으려면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
고맙게도 딘이 파리한 이쪽의 안색을 살피며 음악의 볼륨을 낮춰주었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아까보단 훨씬 나았다. 샘은 팔짱을 낀 자세로 계속해서 에이미와 그 썩어가는 육신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지문을 남겨선 안돼. 사전에 장갑을 껴야 할 거야. 핀셋이 있음 더 좋고...」
슈퍼마켓에서 파는 냉동 닭만 보고 자란 동급생과는 달리 샘에겐 죽은 동물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죽은 너구리나 다람쥐를 땅에 묻어준 적도 있다. 요리에 사용할 오리의 멱을 뜯어본 적도 있다. 그렇다고 죽음에 익숙한 건 아니다. 이제 곧 시체를 만져야 한다고 생각하자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에이미의 턱을 잡고, 그 입을 벌려...
「내가 죽인게 아니니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앞으로 그가 할 일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인지를 근심하다 곧 그 생각마저 접었다.
음악이 시끄럽다.
아니, 테이프는 진작에 꺼지고 지금은 잔잔한 심야 라디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대신 샘의 두뇌회전을 방해하는 건 딘의 성가신 입방정이다.

『만약에 말이야. 경찰이 너보다 빨리 에이미를 발견하면 어쩔래?』
핀셋으로 여자의 목구멍에서 찢어진 옷가지를 끄집어내는 상상은 중지되었다.
샘은 화가 치밀었다.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툭툭 내던진 질문이었지만 그런 걸 묻는 딘의 의중은 그를 살살 약올리려는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제시카를 속이고,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해 타개책을 궁리하고, 알리바이를 공작하고... 성실한 샘 윈체스터 만세.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면서 손발이 차가워졌다.
눈빛을 다르게 하고 얼굴을 빳빳하게 세운 샘을 향해 딘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내가 그 여자를 안 죽였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불확실한 가정과, 수많은 가설들이 머리 꼭대기에서 춤을 추었다.
『만약에 에이미가 아닌 다른 여자가 죽어있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일련의 질문들에 대해 샘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가 자동차 핸들을 잡고 있다는 걸 잊고 주먹으로 딘의 얼굴을 후려친 것이다.
『이해를 못 하겠어. 뭐가 목적이지?!』
타이어가 찢어지는 굉음을 내며 육중한 차체가 미끌어졌다.
『그저 단순히 날 놀리고 싶었던 거야?!』
위험하게도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이 벌어졌다.
『도대체 내가 뭘 해주길 바라?!』
그 와중에 짝 소리가 나게끔 뺨을 맞았다.
『오냐! 그냥 너 죽고 나 죽자!』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허탈하게 웃고 싶기도 했다. 딘의 뺨을 강하게 부여잡고 입술을 맞부딪치며 이 틈새로 으르렁 소리를 흘려보냈다. 이 남자를 증오한다. 이 남자를 진심으로 증오한다. 피가 나도록 이로 물어뜯으며 빨아당겼다.
마찬가지로 딘도 샘의 입을 가르고 뜨거운 혀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멱살을 붙잡고, 흔들면서, 새파랗게 멍이 들만치 이마를 찧고, 거칠 것 없이 서로를 미워했다.
『내가 뭘 원하느냐고?』
싸늘하게 죄어드는 목소리로 딘이 으르렁거렸다. 날렵하게 생긴 눈초리가 지금만큼은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두 손으로 목이 졸리게 된 형국에 미소가 나올 리 만무하지만 - 혼란과 동요로 가득차 그 또한 샘의 목을 세게 눌렀다.
『나도 몰라!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악귀처럼 변한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해간다. 어쩌면 붉은 것도 같다.
불쾌감이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밀착된 신체에 부적합한 열기가 몰려들었다. 어이없게도 입맞춤의 농도는 더욱 깊어졌다. 샘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 딘의 허리를 더듬었다. 셔츠 위로 뜨거운 손바닥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했다. 어쩌면 권총과 같은 무기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청바지 앞섶이 문질렀을 적엔 제법 뜨끔했지만 그런 의미에선 이쪽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딘은 샘의 셔츠 단추를 이미 세 개까지 뜯어 날렸다. 체중을 실어 찍어 누르며 배꼽에서부터 가슴까지 단숨에 쓰다듬었다.

『오호라, 칼을 갖고 있군, 샘.』
『아무렴 내가 빈손으로 나왔을까봐?』
『그래봤자 애들 장난감이잖아. 더 그럴 듯한 건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거야?』
호신용으로 가져왔던 등산용 나이프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딘의 손은 샘의 허리와 엉덩이를 집요하게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그런 걸로는 생선도 못 다듬는다고.』
『알아. 나도 쪽팔린다는 생각은 했어. 하지만 제다이의 광선검은 마트에서 안 팔더라고.』
『하! 광선검!』
반쯤 발기된 샘의 성기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조소했다.
『다 큰 어른이 장난감 막대기 같은 거에 너무 집착하면 못 써요, 새미.』
『말도 안돼. 집착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잖아! 그리고 지금 딘이 잡아당기고 있는 건 절대로「장난감 막대기 같은 거」가 아니란 말이얏!』
노여움 속에 성욕과 비슷한 감정이 섞여있다.
그게 두려워서, 당혹스러워서 호흡이 더욱 흐트러졌다.
『그만 눌러, 딘.』
『너야말로 그만 비키시지.』
『무거워.』
『내가 할 소리다. 내 다리를 누르고 있는 건 바로 너라고.』
비슷하게 욕설을 주고받으면서도 두 사람은 악착같이 서로에게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계속해서 딘을 노려보았다.
바지의 지퍼를 열고 그 속으로 손을 넣은 딘은 뚫어져라 쏘아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샘의 발기된 성기를 정성껏 주물렀다. 정확하게 어디를 어떻게 만지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고 그렇게 한다는게 문제였다. 샘은 입술을 깨물었다. 옷 위로 스치는 것뿐인데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끔찍스러울 정도로 오싹하다. 덕분에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하앗, 하앗 내뱉는 숨소리가 스스로가 듣기에도 민망하게 컸다. 쾌감이 달려 허리가 들썩거리려 했다.

사랑하기에 애무하는 것도 아닌데.
느낀다. 느껴버린다.
밉다.

『당신은 내가 알고 있던 세계를 파괴했어!』
옳고 그름이 명확한 세계였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곤란에 처한 사람을 도우며,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눴다. 사랑이 충만했으며, 믿음이 있었고, 신뢰가 있었다. 바르게 살면 칭찬을 듣고, 나쁜 일을 저지르면 벌을 받았다.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렸다고!』
짐승이 사는 세계로 똑바로 추락해버렸다.
그 추악한 세상에선 선과 악이 명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착한 사람이 악한에게 뼈 채로 씹어 먹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젠 나라는 인간마저 파괴하려는 거야?! 대답해!』
딘은 이렇다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대신 속옷 위를 왕복하는 움직임이 더욱 빠르게 했다. 손톱으로 긁자 둥근 모양새의 젖은 얼룩이 한층 더 선명해졌다.
『아앗, 아앗!』
참지 못하고 교성을 질러댔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바지를 속옷과 같이하여 아래로 끌어내렸다.
『역시 넌 절조가 없어.』
그것은 무척이나 기뻐하는 목소리였다.
애액을 흠뻑 흘리고 있는 성기를 향해 살짝 혀를 가져가면서 굵어진 혈관을 따라 핥아 올렸다.
강렬한 자극에 몸이 오그라질 지경이다. 딘이 양손으로 사타구니를 누르면서 뾰족하게 혀를 세워 선단을 간질이자 어렵게 참았던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다.
『아아앗... 아앗?!』
한계를 느꼈는지 신음소리는 흐느낌을 닮아갔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딘이 전부를 집어 삼키려는 듯 입술을 벌려 샘을 입에 가득 담았다.
이젠 어쩔 수 없다. 모르도르의 암흑의 계곡에서 추악한 괴물 골룸과 나란히 추락한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신의 어리석음과 유약함을 책망하지만 바로 이것을 너무나 원했음을 거짓으로라도 부정할 수가 없다. 제일 정직한 곳에서 신호를 보내왔고, 거친 숨소리와 같이해서 딘의 입안에 전부 뿜어내면서 괴로움에 눈을 감았다.
흘러나온 탁액을 전부 삼키고 나서야 딘은 입을 떼어냈다.
가볍게 기침을 터뜨린 그는 별 거 아니라는 느긋한 자세로 여전히 조금씩 흘러나오는 샘의 정액을 손가락으로 마저 닦아냈다.

Posted by 미야

2009/04/20 00:18 2009/04/20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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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J 2009/04/20 09:14 # M/D Reply Permalink

    오오-역시 어김없이 올라와 있군요-좁은 임팔라 안에서, 거친 행위는 뭔가 더 섹시하게 느껴져요...헐....감정이 극에 다다르면 본의가 드러나게 마련이죠-고민하고 숨겨도 자신에게만은 숨길 수 없었던 '정말 원하던 것'앞에 샘은 무너질까요?-하.하.하. 이 소설 안에서의 샘딘은 감정선이 너무 팽팽해서 늘 긴장하고 읽게 됩니다.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2. 노랑괭이 2009/05/06 06:22 # M/D Reply Permalink

    씬이 좋기는 하지만 둘다 한덩치 하는지라 몸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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