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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redemption 12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어쩌냐. 망했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게「심판」편의 헤더가 벌써 나와버렸...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구원」이 맞고, 종결까진 쬐끔 더 남았습니다. ※


나사로야 나오너라. 무덤으로 한 걸음 내딛은 자는 신의 부름에 기꺼이 뒤를 돌아보았다.
사실은 깨어났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빨리 와달라는 동생의 부르짖음에 딘 윈체스터는 언제 기절했었느냐며 고개를 벌떡 들었다.
『형, 어딨어!! 혀엉~!!』
『새미?!』
『형, 빨리 와줘! 형!』
아무래도 동생의 상태가 이상하다. 눈은 고스란히 뜨고 있어도 보이는게 없는 모양이다. 잘 올라가지도 않는 팔을 움직여「난 여기에 있다」라고 표현을 했음에도 샘은 반복하여 딘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찾았다. 약에 취한 것도 아닌데 초점을 잃고 풀어진 눈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었다. 동생은 자면서도 침대 밖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몽유병 환자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같은 자리를 맴돌며 손을 갈고리처럼 굽혔다. 손전등 하나 없이 어두운 방을 있는 힘껏 부딪쳐가는 그런 느낌이다. 길을 잃었고, 방향을 잃었고, 제정신도 잃었다.
『으아악~!!』
별안간 샘은 하늘을 올려다보곤 땅이 꺼져라 대성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건 둘째다. 핏기가 사라져 가뜩이나 멀건 얼굴이 한층 더 새하얗게 되었다. 쏟아지는 눈물이 턱선을 따라 옷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양손으로 눈가를 가렸어도 흐느낌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왔다.

몸서리치며 엉엉 우는 동생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져 샘의 시선이 닿는 곳을 쳐다봤다.
환장하겠다. 딘의 눈에 보이는 거라곤 마른 나뭇가지에 걸린 까마귀 깃털 둥지가 전부다. 무얼 보고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딘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머저리 같은 자식! 계집애처럼 질질 짜긴 왜 짜. 임마! 여길 봐! 형은 여기에 있다니까!』
아무리 외쳐도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동생의 어깨가 아래로 처지면서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입을 벌리고 저 혼자 무어라 무어라 악을 쓰더니 갑자기 큰 대자로 쓰러져 꼼짝을 하지 않았다.
『샘! 임마!』

대흉의 대흉.
신문의 운세란으로「오늘이 당신들 형제들의 제삿날입니다」라고 적혀져 있었던 모양이다. 최소한「쫄딱 망했습니다」라고 적혀진 건 확실했다.
넘어진 채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 동생 걱정만으로도 충분히 미칠 지경인데 기척을 죽이고 다가온 체스터가 뒤쪽에서부터 딘의 목을 끌어당겼다.
『으읏!』
자연스럽게 상체가 뒤로 들리면서 효과적으로 목이 졸려왔다. 아등바등 기를 쓰고 어떻게든 이 위기상황을 모면하고자 노력해봤다. 그래봤자 목을 휘감은 브라질산 보아 구렁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착 감기는게 더 심해졌다. 머리로 피가 몰리면서 귀에서 심상치 않은 쉭쉭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단 혈관이 터져 정말 죽겠다.

동생은 의식불명이고, 자신은 목이 부러지기 일보 직전.
『새, 새!! 이잇!』
기를 써가며 손을 뻗었지만 동생에게 닿지 않는다. 그게 안타까워서, 속상해서, 미친 사람처럼 다리를 동동 굴러댔다.
 빨리 저리로 가서 샘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자기 혼자서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못난 동생인데.
이놈의 정신 나간 체스터 자식은 방해만 놓고 사람을 귀찮게 만들고 있어.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은 딘은 손톱을 바짝 세워 체스터의 팔뚝으로 깊은 고랑을 만들었다.
그러든 말든 자기 의지와는 상관 없이 움직이는 체스터는 피부가 길게 찢어져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젠 진짜로 살의를 느꼈다. 봐주지 않겠다며 딘은 팔꿈치를 세워 뒤편을 가격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상대방의 갈비뼈가 불길한 우득 소리를 내었음에도 그의 몸을 조이는 힘은 한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환장하겠다. 이건 완전히 괴물이다. 배에 힘을 주어 다시 한 번 더 쳤다.
안 된다. 빠져나갈 수가 없다. 딘은 이를 갈며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고개를 바락바락 세웠다.

철컥.
바로 그때, 살인과 폭력의 의지를 품은 차가운 금속이 경고의 음색을 발했다.
황당함에 황당함을 더하면 바로 이렇게 되는 것이다. 목을 조르던 사람이나, 목이 졸려 죽게 생긴 사람이나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펄쩍 뛰었다.
《무...슨?》
여전히 딘을 뒤에서 끌어안은 그대로 체스터가 천천히 뒤를 돌아다 보았다.
딘도 거칠게 후후 숨을 불어가며 그나마 움직임이 자유로운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국제인도주의법 위반이다, 병사.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건 옳지 않지.』
성인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어린 여자였다.
숨 쉬기도 버거운 판국이라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었지만 딘은「학교는 어떻게 하고 여기에 있는 거니.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엄마는 알고는 계셔?」라고 진지하게 묻고 싶어졌다.
독일산 윌터 권총, 소녀, 그리고 제네바 협정.
상대는 기껏해봐야 고작 열 세살로밖엔 안 보였다. 체격도 왜소하고 키도 그리 크지 않아 체스터를 한참 올려다 보아야 했다. 콧잔등을 덮은 주근깨가 여인의 성숙함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양 갈래로 묶어 푸른색 리본으로 마무리한 머리카락이 소설 속「빨간머리 앤」이미지를 그대로 카피했다. 네모난 도시락 가방과 방금 깎은 연필, 그리고 끈으로 묶은 교과서만 소품으로 주어지면 아마도 완벽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런 아이가 능숙한 자세로 총을 다루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진작에 총을 사용해본 적이 있는 동작이다. 정확하게 체스터의 미간 한 가운데를 조준하며 한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머뭇거림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못 느끼는 것 같다. 갑옷이라도 뚫어버릴 강한 눈빛이 정면을 향했다.
물론 딘도 겨우 일곱살이 되었을 적에 총을 만져봤었다. 아빠의 허락 하에 담벼락에 세워둔 빈 맥주 깡통을 명중시키고 만세 삼창을 불러가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과녁은 어디까지나 빈 깡통이었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로 총구를 들이댄 건 열 여덟이 훨씬 넘어서였다. 그것도 쏘겠다는 생각은 요~ 만큼도 품지 않은 채였다. 구멍이 뚫리면 시뻘건 피가 솟구치는 몸뚱이에 대고 총알을 박아넣는 미친 짓은 결단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초로 사람을 상대로 권총을 들이밀었을 적엔 볼썽사납게 다리를 덜덜 떨어댔다. 다리만 떨어댔던가. 총구도 흔들렸다.
그런데 저 어린 여자는... 냉정한 자세로 당장에라도 쏠 기세다.

『더 이상의 전투 의지가 없는 자를 상대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위협을 가해선 안된다는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건가.』

《너는...》
당혹스러워하는 그와는 달리 여자는 한층 더 침착해졌다.
『지금의 그대의 행동이 바로 불명예다, 병사. 명예를 원한다면서 명예롭지 않은 행위를 저지른다는 점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나.』

《그것은...》
『이승에 속하지 않는 자여, 심판하겠다! 다시 돌아가 너의 조상들에게 아뢰어라. 당신들의 아들은 전투 중에 적군이 쏜 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하였노라고. 포로가 되지 않았다고, 끝까지 싸우다 죽음을 맞이하였노라고! 병사! 자랑해라. 기뻐하라. 편히 눈을 감아라. 내가 그대에게 명예를 주겠다!』
이어 뜨거운 화약이 폭발하는 탕- 소리가 하늘을 찢었다.


목을 조르는 힘이 그 즉시 사라졌지만 딘은 그러고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칠게 후후 숨을 불어대며 뒤를 돌아다보니 흉한 모습으로 체스터가 널부러져 있었다.
단, 죽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총상으로 짐작되는 상처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땅바닥을 적시는 대량의 출혈 같은 걸 발견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자면 계속되는 신입생 환영회에 지쳐 나가 떨어진 얼뜨기 대학생처럼도 보였다. 술을 진탕 마신 끝에 필름이 끊어졌다는 식이다. 팔과 다리를 X자로 엇갈려 쓰러진 모습이 희극적이다. 나뭇가지로 꾹꾹 찔러보면「졸려 죽겠으니까 제발 귀찮게 하지 말아줘」라고 신경질을 부릴지도 모르겠다. 맞아서 붓고 새파랗게 질린 안색이 대단히 끔찍스럽다는 점만 빼면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설마, 하늘을 향해 총을 쐈다던가... 그럴 리 없다는 점에서 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은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총구를 아래로 내리면서 소녀가 질문했다.
『헤이, 윈체스터? 괜찮냐고 물어봤잖아.』


딘은 거기에 답하지 않고 곧장 동생을 향해 기어갔다.
두손으로 샘의 머리를 받쳐들고 호흡을 확인했다. 맙소사, 큰일났다. 숨을 쉬지 않는다. 그걸 깨닫자 더럭 겁이 났다. 차가운 호수에 빠져 질식한 사람처럼 샘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다급한 맘에 무작정 뺨을 때렸다.
『샘! 왜 이래, 너! 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눌러봤다. 맥이 전혀 잡히질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래서도 안 되는데. 딘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도중에 고장을 일으키고 멈추어 선 자동차의 엔진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빠삭하게 꿰고 있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춘 사람의 심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아는게 전혀 없었다. 도움을 구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틀렸다! 의사의 흰 가운은 이곳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딘은「아빠, 나 무서워!」속으로 비명을 질러대며 동생의 몸을 흔들어댔다. 연거푸 뺨을 때렸다. 차갑게 식어가는 피부를 문지르고 비비며 이름을 불렀다.
『샘! 무서우니까 장난은 그만하자! 샘! 일어나! 새미!』


돌아가는 내용이 영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비켜.』
『뭐?』
『방해하지 말고 물러서.』
그러더니만 자신의 체중을 실어 전속력으로 샘의 가슴을 향해 발길질했다.
지금 뭔 짓을 하는 거냐고 말릴 짬도 없었다.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금 샘의 가슴 - 정확하게 심장이 있는 부위를 세게 걷어찼다.

『..........!!』
발도장이 선명히 찍힌 가슴을 움켜쥐고 샘이 눈을 부릅떴다. 나오지도 않은 굵은 기침이 목구멍에 걸려 괴로웠던 것 같다. 다듬지 않은 커다란 생선 토막이 목에 꽉 막혀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을 하곤 고개를 돌려 왈칵 토하려는 동작을 취했다. 커다란 조약돌을 잘못 삼켰다는 식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켁켁거렸다. 배를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가죽이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저러다 내장은 물론이고 심장까지 통째로 뱉는 건 아닐까 무서워진 딘은 재빨리 팔을 펼쳐 동생의 굳은 몸을 감싸안았다.
『새미! 얼른 숨 쉬자! 숨 쉬어!』
『으... 으!』
『이 꼴통아! 숨 쉬라고! 형 말이 안 들려?! 하나, 둘, 하나, 둘! 들이쉬고, 내쉬고!』
임산부 훈련시킨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딘은 동생의 머리카락을 쓸고 또 쓸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드디어 기침이 터져나왔다. 딘은 환호했고 샘은 콜록거리며 잊었던 호흡을 가까스로 되찾았다.
『아파... 아파 죽겠어... 딘?』
『그래, 임마! 잘 했다, 잘 했어! 이래야 내 동생이지!』
눈물 콧물을 바가지로 쏟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이긴 했지만 제대로 숨 쉬는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딘은 동생의 이마에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어댔다.

『어이구, 눈 시려워 못 봐주겠다.』
화상도 이런 화상이 없다며 예의 권총 소녀가 혀를 끌끌 찼다.
『소문으로만 듣던 윈체스터의 실체가 이런 거였다면 정말 실망인 걸.』
그리고는 다시 총구를 들어 딘의 머리를 조준했다.
죽이겠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일종의 위협의 제스츄어였다. 여섯 개의 손가락으로 -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다섯 개가 아니었다 - 총을 쥐고 있을 뿐, 여자의 검지손가락은 방아쇠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불순한 의도이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음을 깨달은 딘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동생을 뒤로 감추고 여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망할!』
여자가 혀를 내밀어 건조해진 입술을 핥았다.
『틀려. 내 이름은「망할」이 아니다.』
『그럼 쌍년.』
『입이 걸어, 윈체스터. 동생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그야말로 대단한 대접이시군?』
『CHRISTO!』
이건 또 뭡니까. 딘의 단호한 외침에 여자의 한쪽 눈썹이 둥글게 구부러졌다.
『뭐야, 윈체스터. 지금 내가 악마인가 아닌가를 테스트 해본 거야? 그거, 무지 재미 없네. 성당도 아닌데 예수 그리스도를 여기서 왜 찾아. 지금 나랑 장난이라도 하고 싶어?』
『미안해, 악마라고 오해해서. 사과할게.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런 식으로라도 확인해볼 수밖에. 당신은 나랑 같은 헌터도 아니지? 열 세살짜리 동업자가 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어.』
『쳇! 나야말로 미안해, 키가 작아서. 열 네살이야.』
『그럼 다시 정정하지. 열 네 살의 동업자가 있다는 이야긴 금시초문이야.』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딘의 태도에 소녀가 다소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못 들어봤겠지. 난 댁 같은 헌터가 아니거든. 난 괴물은 잡지 않아. 사람을 잡지.』
그리곤 왼손을 내밀어 - 이쪽은 손가락이 정상적으로 다섯 개였다 - 재촉을 담아 흔들어댔다.
『길게 수다를 떨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만 입 닥치고 오쿠림바의 그걸 나에게 넘겨.』
안 그랬다간 알지? 총구가 다시 딘에게서 샘으로 옮겨갔다.
『뒈질년!』
『신나게 욕을 퍼부어도 좋아. 하지만 빨리 결정해주기 바라. 난 인내심이 많지 않거든.』
철컥 소리가 흡사 천둥처럼 들렸다.
애써 평점심을 유지하던 딘의 눈빛이 악귀의 그것으로 변질되었다. 무게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동생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샘의 머리를 날려버리겠다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동생을 죽이려면 나부터 먼저 죽여야 할 거야.』
『원한다면 기꺼이.』
여자가 총을 쥔 팔을 시원하게 앞으로 뻗었다. 나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웃는 얼굴도 아니었다.

Posted by 미야

2007/01/31 15:48 2007/01/3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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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1 19:38 # M/D Reply Permalink

    제가 너무 망상에 쩔어있던 탓일까요..;; 바로 이거야!!! 라고 외치면서; 즐겁게 봤답니다. 역시 딘은 천성이 빅브로 예요-ㅋㅋ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습니다//요즘 간만에 제대로 겨울날씨인데 따뜻하게 지내고 계신지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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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redemption 11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슈카와 미나토의《꽃밥》에서 일본어 주문 및 일부 모티브를 빌려왔습니다. 작가의 일자무식으로 엉터리의 극치를 달린다 해도 웃으면서 넘겨주세요. 주의사항, 일부 표현이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자동차에 올라타자마자 문 닫을 짬도 없이 열쇠를 꽂아넣고 시동부터 걸었다.
이대로 그냥 보낸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들입다 달려나온 체스터가 커다란 돌을 들어 앞 유리창을 찍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무려 세 번씩이나 내리쳤다.
자잘하게 부서진 안전 유리의 파편이 운전석으로 고스란히 쏟아져 내렸다.
딘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순간이었다. 팔을 교차시켜 깨진 부스러기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면서 절망의 고함을 내질렀다.
『캭, 저놈의 미친 새끼!! 나의 귀여운 베이비에게 무슨 짓을?!』
『딘! 그러고 있지 말고 뒤로 빼!』
그렇지만 후진 기어를 넣기도 전에 운전석 문이 벌컥 열렸다.
아차 싶은 순간에 남자의 팔뚝이 딘을 붙잡아 바깥으로 내동댕이쳤다. 던지기만 했던가. 묵직한 체중이 곧바로 어깨를 찍어눌렀다. 무릎이 꺾이면서 그대로 미끌어졌다. 재빠르게 등짝으로 올라탄 체스터가 고개를 들지 못하게끔 딘의 머리를 세게 눌렀다. 바닥에 닿아 납작하게 짓눌린 코가 비명을 질러대는 가운데 입안으로 쓴 맛의 흙이 가득 차올랐다.

꼴불견.
화도 나거니와 창피해서 미칠 지경이다. 남자에게 깔려 강제로 흙을 씹어대고 있다니.
확실히 오늘의 그의 운세는 대흉이다.

『당장 딘을 놔줘~!!』
형이 넘어지자마자 급 흥분한 샘이 성경책을 왼손에 쥔 채로 조수석에서 튕겨나왔다. 이성을 잃은 곰은 흉기나 마찬가지인 앞발을 들어 사냥꾼의 머리를 쳤다. 덕분에 딘이 야금야금 먹어치워야 할 흙의 량은 두 배로 증가했다. 킹콩 두 마리가 사이좋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로 올라가 미녀의 소유권을 두고 각자의 가슴을 치며 으르렁대고 있음이다. 그다지 튼튼하게 만들어지지 못한 짝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철근 휘어지는 소리를 내며 두꺼운 벽돌 파편을 380미터 상공 위로 마구 뿌려댔다. 쉽게 말하자면 누굴 압사시킬 일 있느냐며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마구 두드렸다는 얘기다. 성인 남자를 둘씩이나 등허리에 태우고 말타기 놀이를 하라는 건 체격적으로 무리한 주문이었다.
제발 흙은 그만 먹자. 완전히 깔린 상태에서 딘은 사람 살리라고 아우성을 쳤다.

『딘! 땅에서 헤엄은 그만 치고 일어나!』
머리 꼭대기 부근에서 샘이 야단을 치며 악귀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오오,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거였단다, 동생아.
기왕이면 넘어진 형을 일으켜 세워주고 친절하게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면 안 되겠니.
『으악!』
미안하다, 샘. 보아하니 내가 욕심을 과하게 부렸구나. 소리로 보자면 체스터에게 역습당했군.
호흡곤란에 빠진 딘은 축 늘어져 손톱으로 흙을 파는 동작을 멈추었다.

꽉 쥔 주먹이 오른뺨을 향해 돌진했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이는 건 둘째다. 샘은 고무 풍선이 쾅 하고 터졌다는 착각에 빠져 잠시 비틀거렸다. 여기에 사정 봐주지 않고 두 번째 주먹이 정통으로 코와 입술 부위를 후려쳤다. 시야가 화~하게 변해간다 싶었는데 돌연 장면이 바뀌어 안전띠도 매지 않은 채 수직으로 똑바로 낙하하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관광객이 되어버렸다. 아래를 내려봐도 바닥이 안 보이고, 위를 올려다봐도 하늘이 안 보인다. 밑도 끝도 없는 새까만 정경에 어랍쇼 하면서 고개를 똑바로 했다. 그러자 재차 날아오는 커다란 주먹이 보였다. 펀치는 정확히 샘의 눈두덩이로 와서 작렬했다.
『아윽!』
눈알이 타들어가다 못해 터지는 줄 알았다. 그 감각이 어찌나 끔찍스럽던지 신음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성경책을 여전히 손에 쥔 상황에서 샘은 그대로 뻗어버렸다.
《이대로 영원토록 수치를 입을 순 없다. 자! 명예를 회복할 시간이다. 돌려다오.》
피투성이가 된 체스터의 손이 의기양양하게 성경책을 잡았다.
의식의 끈이 절반은 끊어진 상황에서도 샘은「이걸 놓았다간 나중에 딘에게 살해당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살해만 당할까. 딘의 성격 같아선 무연고자의 비석 아래로 탐탁치 않은 동생을 생으로 파묻어버릴 것이다. 실제로 머리 위로 삽질한 흙이 마구 끼얹져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존재할 리 없는 벌레들이「맛있는 식사~♡」합창하며 피부 위를 스멀스멀 기어갔다. 그러자 초조해졌다. 흙은 흙으로, 먼지는 먼지로 아멘 송구가 외쳐지기 전에 달아나자. 샘은 죽을 힘을 다해 벌떡 일어나 - 사실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체스터로부터 떨어졌다. 그래봤자 발목에 힘이 빠지면서 얼마 걷지도 앉아 도로 주저앉았지만, 성경책을 무슨 부적인양 가슴에 껴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늘로부터 굵은 바람이 불어닥쳤다. 커다란 비행기가 저공으로 날아다닐 적에나 부는 그런 바람이었다.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손으로 허공을 할퀴었다.
진흙투성이의 군복을 입은 어연 일본인 청년이 바람을 등지고 서서 그런 샘을 똑바로 서서 내려다 보았다.
나이는 기껏해야 스무살 전반. 새카맣게 탄 뺨으로 피 섞인 검댕이 소복히 내려앉았다.
처음 대하는 낯선 눈동자가 억제된 분노를 발산하며 샘을 고스란히 휘어잡았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통곡.
허무하게 살육당하는 생물들의 비명.
기괴한 울음 소리를 내며 풀들이 엎드렸다.

《나의 이름은 시게타 히토시. 54연대 청풍부대 소속 일등병이다.》
이것은 환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이 지나쳐 구역질나는 폭약과 기름 냄새를 고스란히 맡을 수 있었다. 샘은 뒷걸음치며 자기가 머리를 맞아도 단단히 맞은 모양이라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는 지금의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다.
공포에 질린 샘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을 목 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딘~! 디인~!! 어딨어, 딘!』
꼭꼭 숨어 있지만 말고 빨리 나와라. 특유의 시건방진 미소를 지으며「이 머저리 동생놈아, 여기서 또 청승이냐」이러면서 야단을 쳐주었음 좋겠다. 밟아도 좋고, 머리를 쥐어박아도 좋다.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샘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형의 뾰족뾰족한 고슴도치 머리를 찾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맨날 보스인 척하는 키 작은 참견쟁이가 도무지 나타날 생각을 하질 않았다.
입안이 말라갔다. 맥박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그를 에워싼 나무들이 여름의 폭풍처럼 우람해졌다. 끈적거리는 공기와 커다란 풀들이 생소하다. 덥다. 한 겨울의 라스베가스의 공기가 아니다. 땀으로 옷이 젖었다.

《스테이플러 상병! 스테이플러 상병! 뭘 하고 있나!》
주변으로 확 하고 엄청난 열기가 치솟았다. 엉겹결에 손을 들어 코 주변을 막았다. 나무가 타고, 기름이 타고, 생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생전 못 맡아본 악취였다. 토기가 올라오면서 골이 흔들렸다. 그것은 단순히 누린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보지 말고 참호를 불질러버렷! 명령이다! 확인할 것 없이 모조리 불질러버렷!》
깊게 판 땅바닥 아래로 석탄이 되어버린 사람의 팔뚝이 보였다. 뜨거운 불길에 바싹 구워진 피부는 전자렌지에 넣고 너무 데운 소시지처럼 세로로 튿어졌다. 길게 벌려진 살갗으로 빨갛고도 누런 진물이 흘러내렸다. 검게 변한 손들이 수초처럼 흔들렸다. 열기에 오그라든 손가락에서 샘은 살려달라는 애원을 들었다. 그것이 너무나 시끄러워서 샘은 두 귀를 틀어막았다.

퍼부어지는 검은 기름이 다시 물처럼 흐르면서 짧고도 강렬한 불꽃을 일으켰다. 착란을 일으킬 정도의 빛이 두 눈을 아프게 만들었다. 끔찍스러워 이를 악물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그래봤자 이미 사방이 시체다. 주인을 잃은 군화가 떨어져 있다. 잘려진 발목을 담고 있는 채다. 그 옆으로 흉강이 벌려진 사내가 하늘을 향해 드러누웠다. 움직임을 잃은 심장과 쪼그라진 폐가 열려진 갈비뼈 틈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폭발과 함께 튕겨나간 위장과 내장은 이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휘어진 군번표가 깨끗하게 잘려나간 귓불과 같이 하여 발에 밟혔다.

『제발 그만해!』
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머리가 쪼개질 것처럼 아파왔다.
《명령이다. 진격을. 남동부 비행기지를 함락하라!》
근방으로 폭발음이 들려왔다. 굵은 바람이 다시금 불어닥쳤다.
『딘?! 제발! 어딨어, 어딨냐고! 왜 날 도와주러 오지 않는 거야! 난 여깄어! 딘~!!』

슬로우 모션으로 한 무더기의 군인들이 뛰어갔다.
오늘은 서른 아홉의 동료가 죽었다. 어제는 마흔 다섯의 전우가 죽었다. 그렇다면 내일 모레는?
이제 그들은 겨우 구릉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교전은 사흘 밤낮동안 계속되었다.
《진격하라~!!》
뛰는 사람들로 인해 땅이 흔들렸다. 강한 기름 냄새가 다시금 코를 찔렀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샘은 구르고, 미끌어지고,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면서 어떻게든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마스 스테이플러 상병! 이 머저리야! 진격하라는 명령이 들리지 않는가!》
관목들이 그의 얼굴을 할퀴고 때렸다. 서쪽, 동쪽, 남쪽. 방향을 잃고 같은 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누군가 팔을 뻗어 그를 잡으려 했다. 그것이 좋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샘은 손길에 닿지 않기 위해 옆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서둘러 어깨를 돌린 탓에 균형을 잃고 곧장 넘어졌다. 두꺼운 잡초가 쿠션 역할을 해주었음에도 한바탕 미끄러진 등가죽이 타는 듯이 아파왔다.

『아!』
일어나기 위해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잡았다.
아니, 그것은 사람의 뼈. 살과 가죽을 고스란히 간직한 뼈. 부패하기 시작한 죽음. 노출된 피는 이미 말라붙어 있었다.
『딘~!! 어딨냐고~!! 왜 날 데리러 오지 않는 거야~!! 딘!』
샘은 목놓아 형을 찾으며 잡았던 뼈를 도로 놓아버렸다.

다리를 저는 못 생긴 늙은 노파가 쉰 목소리로 낄낄거리며 조롱의 웃음을 터뜨렸다.
오쿠림바!
그녀는 손으로 생명의 실을 끊는 흉기를 쥐고 있다.

호오, 호오, 반딧불의 호흡, 반딧불의 호흡.
이쿠마츠노, 치토세모모토세, 헤니켄토.
찰나와 백년의 시간, 인형을 토닥토닥 흔들어, 그 심지를, 뼈를 튕겨내어.
소리를 내어, 호오, 호오, 생명으로부터 혼을 내친다.
나의 이름으로 된 주문을 외워라, 명을 끊는 나의 주문을 읽어라.

아케쿠레노, 요모츠히라노사카, 고가네모네노.
히토시키리, 아시타노핫코쓰, 타노만토, 유쿠스.

노파의 얼굴은 다시금 변형되어 동양인 청년의 것으로 바뀌었다.
화염에 그슬려 새카맣게 변한 동료를 품에 안고 시게타는 외쳤다.
《오쿠림바의 주문을! 우리에게 명예를! 포로로 잡힐 순 없다! 숭고한 죽음을 내려줘!》
샘은 필사적으로 거부의 뜻을 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숭고한 삶은 있지만 숭고한 죽음이라는 건 없어.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야.』
순간 청년은 교활한 미소를 띄고 턱을 치켜 올렸다.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라고? 그대의 전우의 끔찍스런 죽음을 생생히 목격하고도 같은 소리가 그 입에서 나오는지 어디 두고 보자.》

시게타 히토시가 손가락을 들어 머리 위를 가리켰다.
포탄에 맞고 튕겨올랐는지 높은 나뭇가지 위로 팔과 다리가 부러진 남자가 걸려 있다.
가로로 길게 갈라진 배에서 내장이 흘러내렸다. 핏덩이에서 구역질나는 냄새가 났다.
아직 식지 않은 뜨거운 살점이 주룩 하고 샘의 뺨으로 떨어졌다.
『아아앗?!』
초점을 잃은 녹색의 눈동자가 자신의 것과 너무도 닮아 기가 막혔다.
몸이 빳빳하게 굳어왔다. 그게 누구인지를 깨달은 샘은 입을 틀어막고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이건 거짓말이야~!!』

나무에 불이 붙었다. 숲이 탄다, 사람이 탄다. 생명이 탄다.
딘의 몸으로도 불이 붙었다.
하늘이 벌겋다.
아니, 벌겋게 달아오른 것은 샘의 눈.

속이 메스껍다.
엄마가, 제시카가, 아빠가... 그리고 딘마저 그를 떠났다.
이 넓은 세상에 나만 하나 남아서.
혼자가 되어버려서.
그럴 바엔 차라리.

『딘... 언제까지고 지켜준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
폭주하던 샘의 심장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벌컥 뒤틀리며 동작을 중지했다.
쿵 하고 대자로 쓰러진 샘의 콧구멍으로 차가운 흙덩이가 파고들었다.

Posted by 미야

2007/01/27 23:34 2007/01/2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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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림베리 2008/12/26 18:39 # M/D Reply Permalink

    아우~ 정말 샘은 왜이렇게 여자같은지..마지막에 딘을 외치는 모습에 bitch란 말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ㅋㅋㅋ 잘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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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redemption 10

※ 훈남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2005년 9월 13일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하여 미국 기준 목요일 21:00에 2시즌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


딘은 바짝 긴장했다.
오쿠림바의 저주가 이 성경책 속에 숨겨져 있다.
솔직히 말해볼까. 갈라진 제단에서 회색의 재가 쏟아지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표지로 살짝 손을 가져갔다가 뜨거운 불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떼었다. 다행히 여호와의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나무와, 돌과, 흙과, 번제물을 다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싹싹 핥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책을 상자에서 꺼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최고 보안 등급의 실험실에서 치명적 바이러스가 든 밀봉 용기를 취급하는 과학자인양 두손으로 조심스럽게 움켜쥐고 숨을 멈추었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마음이 불편해서인지 책 한권의 무게가 돌덩이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형의 동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샘도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기껏해야 요양원 말단 직원인 주제에 고성능 폭탄을 제거하는 특수 요원 흉내를 내고 있으니 덩달아 불안해질 법도 하다. 갑자기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았다. 배경음으로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깔렸다. 빨간 선을 자르면... 베버리는 진저리를 쳤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가운 물을 마셔야 한다는 의무감이 용솟음쳤다.
『왜 그러시나, 젊은이.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수?』
눈을 동그랗게 뜬 노부인은 블라우스 끝단을 놓았다 잡았다 하면서 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의 움직임은 행여 잘못 만지기라도 하는 날엔 단숨에 가루가 되어버리는 오래된 양피지 조각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더티 블론드의 사이비 과학자가 모두의 시선을 받아가며 꾸물꾸물 첫 장을 넘겼다.

창세기 제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한참만에 딘이 고개를 들고 바보 천치의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상 없군요.』
폭발은 없을 거란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딘을 제외하고 모두 합해 세 사람이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잠깐만. 세 사람?
흠칫 놀라 경련을 일으켰다. 어느틈엔가 한 사람이 더 추가되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열 세 번째의 계단을 밟았음을 직감한 딘은 악 소리가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고 샘의 팔목을 붙잡았다.
『샘!』
『아읏!』
꽉 잡힌 팔이 대단히 아팠거니와 성 카틀레야 요양원 수습 직원의 가명은 새까맣게 망각한 채 자신의 본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댄 형이 민망스러웠다. 그래서 샘은 짧게 비명을 지르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갑자기 왜 그래?!』
영문이나 알고 보자는 동생을 향해 딘이 턱짓으로 앞을 보라 시늉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건 딘 뿐만이 아니라 베버리 홀리도 마찬가지였다. 부인은 검정 뿔테 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이게 누구야. 체스터? 체스터 너니?』

형제가 앉은 소파 바로 뒤로 두꺼운 초록색 후드 티를 입은 청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서있었다. 나흘은 물 구경을 못한 몰골이다. 샤워는 물론이고 면도도 하지 못했다. 넘어져 길바닥을 뒹굴기라도 했는지 옷이 엉망진창이었다. 바지에 묻은 구정물 얼룩은 채 마르지도 않았다. 덩어리진 머리카락에선 노숙자 특유의 악취가 살짝 풍겼다.
때문에 깐깐한 성품의 노부인은 오랜만에 본 조카를 보고도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이게 웬 날벼락이야」이라며 질겁하곤 자리에서 움직이려 하질 않았다. 코를 쥐고 멀리 도망가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반갑게「어서 오렴~」인사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포옹을 시도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려면 박애주의 정신으로 전신 갑옷을 두른 테레사 수녀여야 할 것이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소매춤에서 더러운 오물이 흘러내렸다. 갈색이었고, 끈끈해 보였다.
예순이 넘은 나이로 허리를 굽혀 바닥 청소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베버리는 이 앓는 소리를 냈다.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고모 집에 쳐들어왔다는 건 알고는 있니. 환장하겠네. 체스터!』
소매춤을 걷어올리는 시늉은「이리 와서 한 대 맞자」라는 의미다.
『네 아빠에게 당장 전화해야겠다. 그 꼬락서니는 또 뭐니! 도박장에서 날밤 지새웠니?!』
베버리는 길길이 뛰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 도중에 슬그머니 생각을 바꿨다.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우리집에서 당장 네 못난 자식놈을 끌고 가거라!」고 호통을 치기 전에 차라리 경찰을 부르는게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나쁜 쪽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만하면 거리가 제법 가까웠음에도 조카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공기 자체가... 뭐랄까, 악독했다. 베버리는 정체불명의 위협을 느꼈다. 십 수년 전에 노상 강도를 만났을 적의 끔찍스런 기억이 고스란히 재생되었다.
『얘야?』

조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맙소사. 베버리는 얼어붙었다.
검은자위는 어디로 도망가고 온통 흰자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오른손으로 번득이는 칼을 들고 있다.

『샘! 이걸 들고 당장 밖으로 나갓!』
럭비공 다루듯 스테이플러의 성경책을 동생에게 집어던진 딘이 뒷문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뒤돌아보지 말고 달렷!』
동생에게 그리 명령한 뒤, 소파에서 벌떡 일어선 딘은 스프링처럼 튕겨나가 베버리의 몸을 옆으로 밀쳤다. 간발의 차이로 은색으로 번쩍이는 흉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웅큼 베어냈다.
무릎의 통증을 호소하며 할머니가 나뒹굴었다. 그래도 도로 일으켜 세울 짬은 없었다.
『아이고, 내 다리가!!』
『움직이지 마요! 그대로 누워 계세요!』
이거 안 좋다. 저치의 칼을 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자세이다. 어설픈 동네 깡패로 취급하고 섣불리 덤볐다간 단박에 동맥이 잘린다.

서둘러 겉옷을 벗어들고 체스터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적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음을 확인하고 도움닫기 했다. 팔꿈치를 휘둘러 상대의 턱을 후려갈겼다. 짜르르 하고 둔탁한 감각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정통으로 먹였다.
『...!』
그래도 체스터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딘의 겨드랑이로 손을 찔러 넣었다. 큰일이다 싶어 서둘러 몸을 빼려 했지만 이미 어깨를 꺽는 기술이 들어간 뒤였다. 그렇다면 억지로 뿌리치며 몸을 비트는 것보단 흐름에 맞추어 힘을 빼는 편이 낫다. 잡아 당기면 끌려가고, 오른쪽으로 눕히려 들면 오른쪽으로 눕는다. 그래야 데미지가 적다.
순순히 끌려오는 딘의 움직임에 기술을 간파당했음을 깨달은 체스터는 도중에 자세를 바꿔 주먹으로 딘의 목울대를 정통으로 때리려 했다. 상대를 제압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다. 오로지 죽이기 위한 동작이었다. 일격에 급소를 치려고 하다니, 자칫하다간 목숨이 달아나게 생겼음을 깨달은 딘은 허겁지겁 왼팔을 들어 방어했다. 가드를 올리는 것과 동시에 따악 하고 뼈 부러지는 통증이 엄습했다.

《돌려다오, 병사. 그것은 나의 것이다...》
코앞에서 죽은 사람의 호흡이 확 하고 와닿았다.
그게 견딜 수 없게 싫은지라 딘은 마구 몸서리쳤다.
『이놈이!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찾으러 다녔을 적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만!』
《오쿠림바의 주문을... 나에게 명예를 돌려다오.》
『시끄럿! 명예를 아는 자가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려 들어?! 그건 파울 플레이야!』
《포로로 잡혀선 안 된다. 군인은 전장에서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
『미쳤어?! 너나 죽어. 새미를 두고 내가 죽을 것 같냐! 그리고 이거 하나 분명히 하자. 우린 병사가 아니라 민간인이다, 임마!』

죽어라 체스터의 손목을 움켜쥐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비틀었다.
『정신 차려, 체스터 스테이플러! 언제까지 유령이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둘 거야!』
정신 확 들게 박치기라도 해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으르렁대며 체스터의 얼굴을 손등으로 때렸다.
『네 몸에서 확 내쫒아버려! 사내 자식이 언제까지 질질 끌려다닐 거냐!』
《돌려줘. 오쿠림바의 그것을 다시금 내게로...》
『진짜 징글징글하네!』
《덤벼라, 병사!》

목젖으로 따끔함이 느껴졌다.
따갑다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따뜻한 것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다고 겁 먹을 줄 아냐! 화가 치밀어 체중을 실어 체스터를 힘껏 밀어냈다. 그 충격으로 발을 헛디딘 체스터가 껑충 걸음으로 벽쪽으로 물러섰다.

『딘!!』
『얼씨구. 저 바보는 왜 아직도 안 달아나고 있는 거래? 하여간 사람 말을 죽어도 안 들어요!』
동생 목소리에 잠깐 주의를 흐트려뜨렸더니만 곧바로 반격당했다. 눈앞으로 천장이 한 바퀴 빙그르 돌면서 쾅 하고 어깨가 바닥에 닿았다. 죽이는 돌려 메치기다. 눈물이 쏙 우러나면서 노란 별똥별이 피츄피츄 소리를 냈다.
『으윽, 이거 진짜 아프네.』
하지만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쳇! 이 정도로 이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넘어진 자세 그대로에서 체스터의 종아리를 구둣발로 세게 걷어찼다. 예기치 못한 공격에 체스터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이때다 하고 다시 그의 다리를 걸어 아예 넘어뜨렸다. 커피 테이블 위에 깔아둔 유리판이 깨지면서 볼펜이니 잡지니 하는 것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저주의 욕설을 중얼거리며 욱씬거리는 몸을 추슬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술이 찢어졌는지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바닥에 피가 섞인 타액을 뱉고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튕겼다. 아뵤오~
『옆을 봐!』
동생이 소리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훈수따윈 집어치워, 새미! 안 봐도 이 형은 알고 있다고!』
무릎을 굽혀 가볍게 피하고 체스터의 옆구리로 크게 한 방 찔러 넣었다.
『끄읍!』
헐떡임이 커지면서 체스터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폐가 오그라들었으니 당분간은 호흡 곤란.
『마무리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리를 90도로 올려 정확히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꾸룩 소리를 내고 체스터가 무릎을 꿇었다.
『됐다! 지금이야! 달아나자!』

자세한 설명은 생략이다. 샘과 딘은 뒷마당을 향해 눈썹아 휘날려라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스테이플러의 성경책은 가지고 있는 거지? 새미!』
『갖고 있어!』
『임팔라의 키를 줄테니 먼저 가서 시동 걸고 있어!』
『맙소사, 딘. 이 마당에 먼저고 나중이 어딨어?!』
샘이 날카롭게 소리를 질러대며 뒤편을 곁눈질했다.
『벌써 쫓아오고 있단 말이야!』

유령에게 빙의가 된 상태에선 스스로의 의식은 없다. 따라서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고통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자면 무적의 용사나 마찬가지다. 쓰러진게 언제였다고 곧바로 회복하여 육상 선수 칼 루이스처럼 달려오고 있다. 단, 여전히 눈동자는 뒤로 돌아간 상태이다. 진짜 무섭다.
『돌아보지 말고 뛰어!』
숨을 헐떡거리면서 딘이 샘의 등을 떠밀었다.
체스터와 거리는 겨우 20미터 가량 벌어져 있을 뿐이다.
『샘! 이 곰팅아! 더 빨리 뛰어!』
딘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최고 속도로 뛰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샘은 살인 기계 터미네이터에게 쫓김을 당하는 미래의 지도자 동지 존 코너의 기분이 어떠했을 거라는 걸 체득했다.
어떻냐고? 간단하다. 다음의 딱 한 마디로 요약된다.
죽을 맛이다.


※ 엉터리 글쟁이 생활을 하면서 역사상 최고의 오로라 타자치기 속도를 기록했습니다.
후우, 1월 24일 딘 윈체스터의 생일을 축하합... 그런데 왜 글이 이 꼬라지야!
다음 편은 예정대로 주말에 작성하겠습니다. ※

Posted by 미야

2007/01/24 21:01 2007/01/2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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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24 22:04 # M/D Reply Permalink

    헉. 9편 감상을 올리려 했는데 어느새 10편이 올라와 있더군요. 감상은 한번에 몰아서 쓰지 뭐- 라고 생각하며 단숨에 읽었습니다 ㅋㅋ 역시 슈퍼내츄럴의 묘미 중 하나는 형제들의 고생담(;;)일까요. 쫓기면서 열나게 뛰고있는 형제들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는군요. 으하하하- 저도 딘의 생일을 축하하며 오늘 하루는 밤 새며 슈퍼내츄럴을 다시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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