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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01

※ 오로지 버닝만이 살 길이다... 목 말라. 켕.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2007년 1월로 배경이 넘어갔습니다.
이건 영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마우스를 움직여 윈도우를 닫아주세요. ※


따스한 물에 잠겨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부력으로 인해 무게 감각을 상실한 몸뚱이는 천국의 깃털만큼이나 현실감이 없었다.물, 그리고 다시 물... 아니, 그는 깨달았다. 온몸을 휘감은 이것의 정체는 사람의 체온이다.
호흡과 같이 하여 가라앉았다가 천천히 떠올랐다. 숙취를 닮은 나른함이 뼛속까지 파고들면서 긴장이 풀린 근육들이 하나둘씩 그 개체성을 잃어갔다. 다리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손가락이 녹아내렸다. 살점이 풀어지고 새하얗게 변질된 피부가 허물인양 벗겨졌다. 퉁 소리를 내며 미처 부패되지 덩어리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동시에 저 아래로부터 작은 기포가 무수히 떠올라 물에 젖지 않은 머리카락을 둥글게 감쌌다. 기포는 다시 물방울이 되어 그의 귀와 목덜미를 간질였다.

부지런히 할짝이는 혀의 움직임에 곱게 바스러지려던 정신이 가까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느꼈다.
아프다... 반복하여 문질러 붉게 부어오른 피부가 쓰라렸다. 자신의 것이 아닌 손이 배를 문지르며 천천히 올라와 가슴을 쥐었다. 여자의 것도 아닌데 너무 세게 쥐어짠다 - 딘은 불평하며 거부의 뜻으로 몸을 틀었다. 그래봤자 젖꼭지를 비벼대며 요령껏 잡아당기는 손가락은 오래지 않아 그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뒤쫓아와 예의 행동을 한치의 오차 없이 반복했다.
우와, 스토킹 기질이 있는 전갈좌의 여자다. 아무래도 잘못 걸렸다. 침대에서 남자를 리드하려는 여자는 딱 질색인데.
납덩이의 무게를 자랑하는 졸음과 싸우며 가슴 돌기를 애무하던 팔을 붙잡았다.
음, 어렵게 잡고 보니 상대의 손목이 대단히 굵다. 손도 크다. 그거 참... 딘은 난감했다.
바이킹의 촌색시, 아마존 숲의 여전사, 야만인들의 여왕 쏘냐.
어쩌다 내가 이런 괴물과?

쉬어빠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피곤하니까 적당히 하자.』
당연히 여왕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머뭇거림 없이 돌려져 눕혀졌다. 손바닥으로 그의 양쪽 눈을 가리곤 뜨거운 호흡을 코앞에서 뿜어댔다. 어쩐지 그 숨결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반복하여 속삭이는 것 같아 별안간 갈비뼈 안쪽이 욱씬거렸다.
『와, 황송하네. 정말로 그렇게 내가 좋은 거야?』
대답 대신 뜨거운 입술이 내려와 그의 코를 가볍게 문질렀다. 쪽쪽 소리를 내는 사랑스런 키스, 혀끝을 세워 살갗을 길게 핥으며 자극해왔다. 이로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가볍게 빨아당겼다.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은 교태를 부리고 있다. 당신도 빨리 나를 좋아해주세요 - 여자는 보드라운 젖은 소리를 내며 입술로 눈썹 가장자리를 눌렀다.

그래도 난 깊은 입맞춤은 딱 질색인 걸.
잘 모르는 사람과 타액을 섞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입안 구석구석을 더듬는 혀는 너무 직접적이라 콘돔도 쓰지 않고 삽입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입술을 열어달라고 그렇게나 애원하는데도 적극적으로 응해주지 않는 걸 미안해하며 가볍게 뺨에 키스했다.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일부러 차갑게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니니까... 토닥토닥 머리를 어루만지곤 위로를 담아 상대의 어깨로 팔을 둘렀다.

우와, 딘은 살짝 긴장했다. 손목만 굵은게 아니라 손바닥으로 만져지는 어깨 또한 단단한 근육 투성이다. 손등으로 가볍게 쓸어보니 탄력이 장난 아니다. 혹시 이 여자, 취미로 25kg짜리 역기를 매일 서른 번씩 들었다 놓았다 하는게 아닐까. 슬그머니 손을 아래로 내려 팔뚝을 어루만졌다. 이쪽도 역시 근육질. 모르긴 몰라도 밥 먹고 아령 운동만 죽기 살기로 한 모양이다.
『끝장의 바이킹 촌색시...』
질려하는 그의 혼잣말에 안쪽 허벅지를 살살 비벼오던 상대방이 동작을 딱 멈췄다.
그리고 부루퉁한 목소리로 화를 냈다.
『지금 누구더러 촌색시라는 거야, 형.』

에. 지금 뭐라고.
순간 팍 하고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면서 전기 콘센트로 불꽃이 튀었다.
『Shit!』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면서 빠앙, 하고 지나가는 차가 경적을 울렸다. 운전대를 잡은 채 팔자 좋게 백일몽이라. 단단하게 하나로 뭉쳐진 심장이 반역을 꿈꾸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딘은 두 눈을 부릅뜨고 브레이크부터 밟았다.
하느님 아부지. 지금 제가 운전하면서 쿨쿨 잠들었던 겁니까. 그것도 동생을 상대로 불알 변태짓을 하는 꿈을 꾸면서요?!
결론만 말하자면 양손으로 핸들만 잡고 있었다. 그가 목숨처럼 애지중지하는 쉐비 임팔라는 2차선 도로 갓길에 얌전히 정차되어 있었고, 그것도 눈치로 보자면 엔진을 끄지 않은 채 자리에 멈추어선지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곁눈질로 주변을 살펴보니 흙바닥에 난 바퀴 자국이 부드러운 커브를 그리고 있다. 이는 곧 정상적으로 속도를 줄여가며 자동차를 세웠다는 뜻이다. 날리는 흙먼지, 타이어 고무가 타는 냄새, 일직선으로 그어진 스키드 마크, 짜부라져 죽은 개구리 시체 기타등등 일절 없음, 급정거를 했다는 흔적은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었다.

저편으로 낡은 픽업 트럭 한대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다시금 지나갔다.
상향 조정된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시렸다.
『빌어먹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하여 하얗게 질린 손가락이 운전대에 달라붙어 꼼짝을 하지 않았다. 시험 삼아 명령을 내려봤다. 주인님이 원하신다, 손가락아 움직여라. 틀렸다.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는 손은 여전히 핸들을 잡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백미러를 올려다보니 창백하게 질린 멍청이가 귀신에게 홀렸다며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어쩐지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딘은 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야 손목시계만 쳐다보면 확인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상황에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곳이 어디며, 어쩌다 여기까지 튕겨져 나왔느냐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겠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기억이 나는 건 벌거벗은 동생이 손을 아래로 내려 거길 더듬으며 섹시한 비음 소리를 냈... 다가 아니지! 당황하여 황급히 고개를 가로젓고 ◀모양의 리모컨 버튼을 조작해 보다 앞쪽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돌렸다.

로드 하우스로 전화를 걸어 정보통 애쉬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게 저녁 7시 10분.
사가지고 올 물건이 있다면서 샘이 겉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게 7시 30분.
식어빠진 햄버거의 포장지를 벗기며 TV를 틀어 내일의 날씨를 확인했다. 8시 정각.
그리고... 그리고? 젠장, 딘은 손등으로 이를 힘껏 박아넣었다. 머리가 먹통이다. 언제 열쇠를 꺼내 자동차 시동을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텔 밖으로 왜 나왔는지조차 깜깜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TV를 켰을 적에 입고 있던 청바지도 아니었다. 모르는 사이에 옷도 갈아입었다. 환장하겠다. 설마, 몽유병? 아니면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가 도로 풀려났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밤 9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더도 말고 1시간 가량이 공백이다.
그걸 깨닫자 두근거림이 더 심해졌다. 가까스로 움직이게 된 손을 들어 뻣뻣해진 뺨을 쓸어내렸다. 어느새 자라난 수염 탓에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그 감촉이 묘하게 현실적이라 임팔라 운전석에 덩그마니 앉아 있다는 이 상황 또한 대단치도 않은 꿈의 연속일지 모른다는 나태한 억지 가정이 여지없이 박살났다.
1시간! 도둑 맞은 1시간!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가 올라왔다.

「누가 뭐래도 이것은 검정」이 내려앉은 주변은 어쩐지 오싹했다.
가늘고 긴 도로를 양편으로 빈약한 상점가가 자리를 잡았다. 셀프 주유소와 편의점, 그리고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불 꺼진 이층 건물이 여럿 보였다. 딘은 고개를 길게 빼고 혹시라도 알아볼 수 있는 간판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2초만에 절망했다. 주변이 대단히 어둡기도 하거니와 이거다 싶은 걸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이래선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꼼짝을 못 한다. 위로 올라가야 하는지, 아니면 내려가야 하는지조차 판단이 서질 않았다. 동서남북 자체를 모르는 판국이다.
주머니를 뒤져봐도 핸드폰은 나오지도 않고... 한숨쉬며 일단 운전석에서 내렸다.

발밑을 쳐다보니 추위에 노랗게 죽어버린 풀들이 보였다. 바닥으로 종이 포장지며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가 수북했다. 건조한 흙에서 기계 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코를 킁킁거리다 말고 엣취 재채기했다. 하얗게 입김이 나오면서 어깨가 부르르 떨려왔다. 평년에 비해 포근한 날씨라고 해도 1월의 밤은 제법 쌀쌀하다. 따뜻한 동생의 품에 안겨 몸을 뒤치락하던 꿈속이 그립... 단단히 미쳤어! 표정을 바꾸고 딱 소리가 나도록 자기 머리를 때렸다.
『꼴 사납게 욕구 불만이냐. 씨잉, 아무데서나 발정하고 말이야.』
실수로 팬티를 더럽히지 않아 다행이다.
쓴 웃음을 지으며 시려오는 손을 비볐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걷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편의점은 굳게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셀프 주유소는 진작에 망했는지 사람이 안 보였다. 불경기라는 이름의 핵폭탄에 얻어맞고 멸망당한 거리에서 홀로 불을 밝힌 건 허름한 1층짜리 길거리 술집이 전부, 그 이름도 유치찬란하여「바빌로니아」다.
딘은 초록의 잎사귀를 흉내낸 거짓된 네온싸인 간판을「이건 농담이지?」라는 심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허공에 붕 떠서 어둠을 무찌르고 있는 이놈의 흉악한 형광의 불빛을 보고 메디아에서 시집 온 아리따운 왕녀 아미타스를 위해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만든 공중정원의 초록을 연상하라는 거냐. 정말로 그런 의도였다면 장난치곤 진짜 심하다. 영광스런 고대 왕국의 이름은 창고를 개조하여 만들어 놓은 것 같은 허름한 술집 이름으로는 결단코 어울리지 않았다. 120kg의 몸무게의 여자에게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오드리 햅번」이라는 이름을 붙인 꼬락서니다.

『하아, 이걸 어쩐다.』
내키지 않았다. 딘은 먼저 도착한 손님들이 뒤죽박죽으로 세워둔 낡은 자동차들로 불안한 시선을 던졌다. 부식이 심각한 구형의 검정 데소트엔 먼지가 어찌나 두껍게 내려앉았던지 세차를 하려면 물을 끼얹는 대신 차라리 칼로 긁어내는게 더 빠를 것만 같았다. 앞 유리창에 부착한「by American (국산품 애용)」스티커에 환멸감이 솟구쳤다. 제발 닦고 살자. 나라 망신이다, 이것들아 - 차는 내버려두고 멕시코로 도주한 2인조 강도를 상상하며 딘은 층층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축구경기 중계방송이 시끄럽게 귀를 때렸다.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인 크리스토퍼가 못 보던 손님을 또 한 명 보내주셨구먼. 반갑소이다.』
인상이 좋아보이는 40대의 사내가 절반쯤 마신 진토닉 잔을 들어올리며 만세를 불렀다.
『리버플과 첼시 중에 어디가 좋나, 자네는?』
그리곤 어처구니없게도 이쪽의 대답을 채 기다리지도 않고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사실 축구는 재미가 없지. 나라도 채널을 당장 돌려버리라고 말할 걸세. 왜 저딴 걸 보고 있느냐고 비난을 퍼부울 자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닐세. 딱딱한 공을 이리저리 발로 차는게 전부인데 뭐가 신난다는 거야. 리버플? 첼시? 아무나 이겨라... 딸꾹.』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술을 너무 마셔서 뇌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무어라 할 말을 잃은 딘은 입가를 끌어당겨 억지로 웃는 표정을 만들고는 계속해서 만세를 불러대고 있는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그렇고 말고요. 아무나 이기면 되는 겁니다.

슛~!! 골인이다~!! 허름한 바깥 분위기와는 틀리게 가게 안쪽은 신명났다.
고주망태가 된 술꾼들은 노래도 불러대고, 춤도 추고, TV도 보면서 저마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플로어에는 느린 템포의 컨트리 송이 흘러나왔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은 여자가 남자 친구의 농담에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거의 동시에 와 하는 함성 소리가 TV 앞으로 몰려 있는 한 무더기의 스포츠 팬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그래봤자 헛발질이었는지 다들 어이쿠 하면서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때리며 안타까워 했다. 휘슬을 제때 불지 않았다며「죽어라, 심판!」이라 욕하는 사람도 나왔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욕을 한다고 경기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 터인데 다들「맞아, 죽여야 해!」라며 동감을 표현했다. 진짜지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은 부류 넘버 원이다.

행여라도 끌려가는 일 없도록 주의해가며 - 스포츠 팬들은 그 장소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파도 타기를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 딘은 공중전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빨리 샘에게 전화를 걸도록 하자. 어쩌면 그 바보 동생은 형이 감쪽 같이 없어졌다며 불안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걱정으로 녀석의 머리카락이 모조리 빠져버리기 전에「미안해, 샘. 형이 드라이브 나왔다가 시간 가는 걸 깜빡했어. 문단속 잘 하고 먼저 자렴」이라 말해줘야 한다. 그게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도 샘을 안심시키기 위해선 적당히 사실을 숨겨야 한다.
전화는 왼편 구석으로 숨어 있었다. 딘은 크게 기뻐하며 성큼 걸음으로 그쪽으로 다가갔다.

『크리스토퍼에게 감사하라. 여행자들의 성인께서 못 보던 얼굴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음이니.』
어랍쇼. 그 대사는 방금 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찾다 말고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의「아무나 이겨라」아저씨가 아닌, 말쑥한 외모의 동갑내기 사내가 맥주병을 들고 환호했다. 검정의 재킷과 바지가 늘씬한 몸에 잘 어울렸다. 사내의 눈이 어둠속에서 반짝 빛났다. 그런가 싶더니... 눈빛이 기묘하게 변화했다. 인간의 것이라고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연보라색이었다.
착각인가 싶어 눈자위를 비볐다.
피곤해서 그런가. 다시 쳐다보니 평범한 갈색이다.
『멀뚱 서있지 말고 이쪽으로 오시게. 애인에게 걸 전화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헤이~!!』
검은 머리카락의 카사노바 사내가 양쪽으로 여자를 둘씩이나 끼고 딘을 향해 반갑게 손짓했다.

Posted by 미야

2007/02/07 07:24 2007/02/0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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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8 22:57 # M/D Reply Permalink

    스스로 The beast가 되는 기분이었답니다. 으헝헝.ㅠㅠ

    역시 실제 드라마에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한 것이 있다니까요!!
    ㅋㅋ 요즘엔 미야님의 소설만 보며 살고있다구요-

  2. 아몬드 2007/02/09 09:24 # M/D Reply Permalink

    이러는거 대단히 싫어하신다는 걸 알지만 난입합니다. 주말에 여행가신다고 하던 걸 봤습니다. 다음편은 내놓고 가요오~ 살아있는 고양이를 만지게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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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one for night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redemption 이야기가 도중에 엉성하게 끝나버렸다며 옆구리 찔림을 무지하게 당한 관계상 추가분으로 나갑니다. 배경은 여전히 2006년입니다. 현대물에는 쥐약이오니「이건 아니잖아」할지라도 살짝 넘어가주는 당신의 멋진 센스를 보여주세요. ※


저기요, 제가 이래뵈도 살인 용의자로 수배되었거들랑요.
그래서 남들 이목이 집중되는 건 하나도 반갑지 않지라.

한 명은 쭈구렁바가지 흑인 할머니로 기관지가 닳은 기침을 터뜨리며 갖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신경질적으로 들었다 놓았다 했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가래 끓는 기침을 하고 있으니 환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야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기엔 병원 비상구 쪽을 힐끔거리는 눈매가 지나치게 날카롭다는 문제가 있다. 어찌나 매섭게 비상구 쪽을 쳐다보던지 굵은 주사바늘을 들고 엉덩이를 위협하는 간호사로부터 재빨리 도주해야할 처지의 가여운 환자가 아닌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뭐,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 노인네 옆으로 앉은 청년은 짙은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흰둥이다. 할머니의 보호자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피부색이 적절하지 않았다. 손주, 조카, 질녀의 남자친구 등등의 가족 관계는 사실상 무리다.
그렇다면... 에이, 말을 말자. 뒷골목 건달들이나 입고 다닐 법한 오래된 가죽 재킷이 거동이 힘든 노인을 돕는 사회 복지국 직원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의료용 실로 바느질을 한 이마의 상처가「공무원」이미지와 100만년 정도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새파랗게 변색된 턱 아랫부위의 멍자국이「복지」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러니 최소한 반 세기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이들 두 사람은 이도 저도 아닌 남남이 맞을 거다. 공통점이라고 해봤자 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 벽에 걸린 시계를 20분씩이나 열심히 보고 있는게 전부, 어쩌다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를 차지하였을 뿐인 남이다.
뭐? 틀렸다고? 아님 말고.

째깍 소리에 어쩐지 침이 말라간다. 남자 쪽이 부지런히 손바닥을 비볐다.
『미치겠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라바.』
딘은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한 병원 의자가 불편해서 그렇다는 점은 둘째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조합이라는게 어찌나 이질적이던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안 빼놓고 그들을 힐끔거렸다. 게중엔 노골적으로 쳐다본다는게 큰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위 아래로 쳐다보는 인간들도 나왔다.
짐 크로우법 (흑인 차별법) - 흑인 할머니와 백인 청년은 같은 의자에 나란히 앉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딘은 지금이 2006년이 아니라 혹시 1956년인 건 아닌가 의심해가며 다리를 흔들었다. 정말로 그랬다간 큰일이다. 아직 암살당하지 않았을 - 1968년은 멀었으니까 -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거품을 물고「주여, 저 불손한 자들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내렸던 뜨거운 불벼락을 내리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게 될 터인데, 그 기도에 응답할 하느님은 그 눈이 너무나 커서 사람 개개인을 잘 구분 못 하시는 관계로 광범위한 구역으로 엄청난 불똥을 쏟아부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얌전히 앉아 있을 뿐인데 잠시 뒤엔 신이 내리는 불벼락에 튀겨지게 생겼군.」
그렇게 생각한 딘은 만성 두통이 짜증난다는 식으로 고개를 숙인 채 손바닥으로 눈 아래를 가렸다.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가 이상한 커플을 다 봤다는 식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나갔다. 구내 전화기를 들고 경비실로 연락해「이곳에 수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신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안해져서 먹은 것이 없는 속이 울렁거리려 했다.

『이러고 있는지 벌써 20분이나 지났단 말예요.』
라바는 딘의 불평에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다시금 비상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쥐처럼 영리하고, 고양이처럼 교활한 눈빛이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토마스 영감이 아직 오케이 신호를 안 보내주고 있는 걸.』
『신호가 올 거라는 건 맞아요? 알고 보니 영감님이 천국으로 황급히 돌아갔다거나, 저승사자의 호출을 받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거나...』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연 안 되겠니, 얘야. 나도 짜증이 나는 건 마찬가지란다. 젠장, 담배 한대 피울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군. 어째서 병원 건물에선 흡연 금지라는 거야! 빌어먹을 것들.』
『사탕 하나 드릴까요.』
『아니. 괜찮다. 이럴 줄 알고 니코틴 패치를 팔뚝에 붙이고 나왔거든.』
『그렇다면서 빈 손가락을 쪽쪽 빨며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요?』
『시끄럿!』
『저기요? 나에게 화낼 기운이 있으면 토마스 스테이플러 할아버지에게 영험한 전자파나 쏘아보내쇼. 이제 25분 지났거든요. 정말로 그 영감님이 신호를 보내긴 보내준대요?』

다시 째각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였다.
그 소리가 시한 폭탄이라도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딘은 병원 로비에서 주워온 오래된 잡지를 - 순전히 건성으로 - 팔랑거렸다. 조류에 휩쓸려 실종된 스쿠버 다이버가 무려 27시간 30분동안 허우적거린 끝에 해변으로 올라왔다는 기사가 눈에 밟혔다. 그거 참 고생 꽤나 했수다. 딘은 내키지 않은 글자들을 휙휙 넘기고 쭉쭉빵빵의 누나들을 찾았다. 이야, 이거 괜찮다. 기대하던 여자 가슴 사진이 나왔다. 전구에 불이 반짝 들어왔다. 그런데 제목이「보다 간편한 유방암 검사법」이다. 뭐 이런게 다 있어. 1초도 지나지 않아 필라멘트 전구가 다시 꺼졌다. 병들고 아픈 가슴이 아니라 건강하고 통통한 젖가슴을 보여달라.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페이지를 넘겨 반라의 여자들이 나오는 화장품 광고와 속옷 광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여간 남자들이라니. 라바는 잡아먹을 눈빛을 하고 지팡이로 딘의 발잔등을 찍었다.
무지하게 아팠음이다. 딘은 오른발을 움켜쥐고 신음소리를 토했다.
『컁...! 갑자기 왜 이래요?!』
『점잖치 못한 녀석! 목덜미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묻히고 나온 주제에 속옷 광고를 보고 뜨거운 콧김을 뿜어?! 겁 대가리 없이 85B컵 브래지어를 손에 쥐고 무덤에 들어갈 놈 같으니!』
『에?! 여자의 머리카락이라뇨.』
『놀란 척하긴. 증거물을 눈앞으로 들이밀어야 마지 못해 인정할 거냐? 옛다, 이 칠푼아. 짧은 머리가 네 취향이었구나.』
그러면서 라바는 딘의 셔츠 깃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머리카락 하나를 잽싸게 집어올렸다.

갈색에 가까운 금발. 살짝 컬이 져서 구불거린다. 길이는 대단히 짧아 한 뼘도 채 되지 않았다.
딘은「이게 뭐야」라며 눈썹을 찡그렸다. 진짜로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머리카락이 다른 곳도 아닌 목깃에 붙어 있었다는 거냐. 우와, 그게 사실이라면 진짜 짜증난다. 같이 자지도 않은 창녀의 머리카락이 옮겨 붙은 거라면 정말로 심각하다. 거미가 기어다니게 생긴 싸구려 모텔에서 잠을 청했다고 해도 그렇지, 먼젓번 손님의 머리카락조차 쓸어내지 않았다면 더 심한 것도 잔뜩 굴러다닌다는 얘기가 된다. 청결이나 위생에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몸이라고 해도 충분히 소름 돋는 일이었다.
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침대 밑에서 쓰다 버린 콘돔을 찾아내기라도 하는 날엔 벽에다 모두 열 두발의 총질을 해버릴테다.

그런데 잠깐만. 아무리 봐도 이거, 여자의 것이라고 하기엔 무지하게 짧다.
『남자... 거네요.』
『에?』
이번엔 라바가 뒤집어졌다.
『남자?! 나암자~?! 허어억! 설마, 너?!』
『워워, 진정하세요, 할머니. 그러다 틀니 튀어나오겠수. 아무렴, 게이도 아닌데 내가 뜬금없이 남자랑 잤을 거 갔...』
거기까지 말한 딘은 진실이 뭔지를 깨닫고 즉각 입을 다물었다.
맙소사. 따지고 보면 남자랑 잔게 맞다. 동생의 염색체는 XX가 아니라 XY니까. 하늘에 맹세코 부끄러운 짓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지만, 한 침대에 누워 이불 하나 덮고 잤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웃던 걸 멈추고 획 소리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맞춰오는 라바 역시 냉기 폴폴 날리는 냉동고 고드름이었다.
고드름은 팔을 뻗어 말썽쟁이의 잘난 머리통을 쥐어패려고 했다.
『이 녀석, 이 녀석!! 여기가 쾌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라고 정신이 헤이해져서 사고를 친 거냐?!』
『우왓?! 아녜요, 아니라고요. 어흠! 이거, 동생 새미의 머리카락이예요. 라바도 저번에 봤었죠? 곰처럼 덩치 커다란 녀석 말예요.』
『설명 안 해도 알아. 내가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인줄 아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샘의 머리카락이 거기에 왜 붙니.』
그런 곳에 머리카락이 붙으려면 상당한 신체적 접촉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늘 그가 동생의 옷을 빌려 입었다고 한다면야 설명은 제법 간단해지지만, 두 사람의 체격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적었다.

딘이 팔을 벌리며「그딴 식으로 오해받는 건 억울해」타령을 했다.
『그야 녀석이 갑자기 다섯 살짜리 골칫덩이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열이 40℃ 가까이 펄펄 끓어선《엄마, 안아줘. 형아, 가지마》이러면서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 바람에 조금 고생이라는 것을... 아,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바. 샘은 이제 다 나았어요. 오늘 아침에도 해열제를 숟가락으로 직접 먹여주려던 저에게《징그러우니까 당장 떨어져!》라고 고함을 질렀답니다. 그리고《어째서 킹 사이즈 베드 하나에 둘이 나란히 누워있는 거야?》라며 제 모가지를 움켜잡았죠. 하여간 자랑스런 통뼈라니까요. 언제 아팠느냐며 도로 튼튼해졌어요. 그러니 제 동생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그제야 라바는 딘에게 동생의 안부를 전혀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수치스러워 노인의 뺨이 새빨갛게 되었다. 죽은 사람의 영기에 닿아 살짝 머리가 돌았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체스터 문제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네 동생은 이제 괜찮니?》라고 단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다.
제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다. 그래도 이렇게나 사람이 뻔뻔해질 수 있는 거였나.
당황하여 노인은 말을 더듬었다.
『나, 나는... 그러니까...』
『아, 이제 30분이 다 되어가네요.』
딘은 별 상관 없다며 동생의 머리카락을 바닥에 버리는 대신 셔츠 호주머니 속으로 잘 집어넣었다.

어차피 동생 말고는 모두가 남.
아픈 건 다 나았느냐 진작에 물어봐주지 않았다고 왜 화를 내야만 하나.
이 넓고 넓은 세상에 가족은 오로지 단 두 사람만 남아서...
괜찮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니까 아직은 살아갈 수 있다.
딘은 돌돌 말아 쥐고 있던 잡지책으로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어디 보자. 탈모로 고생하는 남성들의 눈이 번쩍 뜨일 법한 획기적인 정보가 나왔다고 한다. 음, 대머리여 안녕. 기사 내용을 고스란히 외워두었다가 돌아가서 샘에게 알려주면 분명히 멋질 것이다.

『정말 미안하구나, 얘야.』
『에? 뭐가요.』
어리둥절해 하는 딘의 반응에 라바는 조금 놀랐다.「왜 이 사람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지?」라며 긴장하고 있다. 그래서 라바는 깨달았다. 이 아이는 사람이 무안해질까봐 단순히 겉치례로「우리들 형제에게 신경 안 써주셔도 됩니다」라고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심이었고, 그에겐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도와달라 손 내밀지 않을 것이다.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어도 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며 있지도 않은 실력으로 설쳐대는 주제에.
자기들 문제엔 신경 끄라며 두께 20미터의 콘크리트로 벽을 쌓고 있다.
진짜지 지랄 맞은 아이들이다.

노인은 가슴으로 불이 치솟는 걸 느끼며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딩딩.』
『왜요, 할머니. 아까부터 사람 불안하게 자꾸 눈을 야리고.』
『후우. 이걸 어쩐다. 잔소리를 한다고 들을 귓구녕도 아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어나서 움직이자. 토마스 영감이 손짓하면서 우릴 찾고 있으니까 내 가방을 챙겨서 날 따라오렴. 3층으로 올라가자.』

그들이 비상구 쪽으로 이동하자마자 전등이 깜빡깜빡 움직였다. 환상적인 효과다. 덕분에 빳빳하게 굳은 시체와 악수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섬짓해진 어깨를 부르르 떨며 난간을 잡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이 탓에 근력이 부족한데다 지팡이까지 지참한 라바는 한참 뒤에서 어기어차 소리를 내며 어렵게 뒤따라왔다.
힘을 내라는 의미인가, 전등의 깜빡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닥쳐, 영감!』
아닌게 아니라 어깨 높이까지 차오른 숨을 씩씩거리며 어렵게 삼키던 라바가 불평을 퍼부어댔다. 카바레 조명등처럼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조명 탓에 눈앞이 뱅뱅 도는게 더욱 심해졌다. 인기척 없는 비상 계단에서의 우웩, 헉구역질 소리는 엄청 큰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평범한 보통 사람의 눈을 가진지라 라바와는 다르게 죽은 사람을 볼 수 없는 딘은 어디를 보고「전등을 갖고 하는 장난은 제발 그만두세요」를 애원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라바의 구토가 더욱 심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안아들고 위로 올라가야 한다. 체격적으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라바는 말랐는데다 몸집도 어린애처럼 작았다. 단, 할멈의 그 알량한 자존심이 큰 문제였다. 송장 취급은 싫다 - 그녀의 성격이라면 흰둥이 애송이 놈이 어부바를 외치며 등을 돌리는 순간, 이때다 하고 지팡이를 휘둘러댈 것이 분명했다. 노파가 휘두른 지팡이에 이미 맞아본 역사가 있는 딘은 6년 전의 실수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라바가 에베레스트산을 정복 중인 산악인의 역경을 흉내내는 걸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라바.』
『다 올라왔어, 다 올라왔다고! 제기랄, 200달러 받은 것만큼 일 하기 진짜 힘드네.』
다행이었다. 씩씩거리는 노인의 손이 마침내 3층 출입구에 닿았다. 암스트롱이 달에다 착륙 깃발을 꽂았다.

병원이라는 건 어디를 가든 대략적으로 비슷비슷하다. 토끼굴처럼 복잡하고, 다람쥐의 도토리 창고처럼 정신 사납다. 지나가는 사람도 많고 시선도 많다. 비상 출입구에서 튕겨나오기 전, 딘은 숨을 죽이고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복도 중앙을 차지한 간호사들의 데스크는 번쩍거리는 분위기의 아래층과는 달리 보다 현실적이었다. 절전 중인 컴퓨터 모니터가 시커먼 화면을 드러내고 있었고, 뒤로는 챠트를 든 수 간호사가 볼펜을 입에 문 모습으로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호출을 받았는지 의사 가운을 입은 젊은 남자가 총총 걸음으로 뛰어갔다. 옳커니, 지금이다. 라바가 아무도 없는 복도 구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인 토마스 영감으로부터「진격!」싸인을 들은 모양이다. 좌우를 두리번거리지도 않는다. 믿음으로 아멘이다. 머뭇거림 없이 312호실을 향해 지팡이를 놀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런 라바와는 대조적으로 딘은 꼬리가 잘려나간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저편으로 베버리 홀리가 남동생 부부와 심각한 모습으로 잡담을 나누는게 눈에 보였다. 서둘러 고개를 돌려 벽을 쳐다보며 라바의 뒤를 따라갔다. 베버리 홀리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처지다. 행여라도 마주치는 날엔「어머, 이게 누구야~」라는 즐거운 인사를 나누게 되는 수준으론 절대로 안 끝난다.
청소부인 것이 확실한 덩치 큰 흑인이 운반대를 밀고 T자형으로 꺽어진 복도 저편을 지나갔다.
흠칫해서 제자리에 멈추어섰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라바가 그런 딘을 손짓으로 재촉하며 도둑이 개 꾸짖듯 했다.
『서둘러! 우리에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어!』
뺨이 푹 꺼진 모양새의 체스터는 2인실 병동에 저 혼자 누워있었다. 여전히 창백한게 많이 아파 보인다. 저 사람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딘은 그저 황송하기만 했다.
『됐다! 딩딩은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라. 영감은 밖에서 단단히 망 보고 있으쇼.』
병실 문을 찰칵 소리내어 닫음과 동시에 라바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체 데올레, 치치, 루에아스 데 모주바!』
그게 어느 나라 말인지 딘은 모른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그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마담 라바 본인도 모른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다시 그 딸이 딸에게로 전수한 비밀의 주문이다. 먼 옛날 아프리카의 주술사들이 사자의 발톱에 할퀴어진 전사들의 영혼을 그 몸뚱이에 도로 붙들어 놓고자 읊어대었던 힘 있는 말이라고 한다. 물론 사실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다. 어쩌면 변비에 좋은 치료 말이 혼란 중에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눈물 빠지는 일이긴 하다. 그러니 믿는 바 그대로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고결한 주문일 거라고 넘기자.
『첫 번째 거울을 침대 밑으로.』
신호를 받고 재빨리 가방 속 물건을 꺼내 침대 아래로 집어넣었다.
『두 번째 거울은 체스터의 얼굴 앞으로.』
네모난 손거울을 평평하게 들고 잠에 빠져든 환자 앞으로 가서 섰다.
『폼바지라 다스, 토그마토 지 초초!』
다시 주문을 외우며 어쩐지 똥 냄새를 풍기는 붉은 연고를 체스터의 이마에 찍어 발랐다.
주사를 놓으러 방으로 들아온 간호사가 에그머니나 비명을 질러대고 서둘러 창문을 여는 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세우만토 페 데올레, 품파지라 모토!』
기도에 반응, 순간 체스터가 후우... 하고 제법 긴 호흡을 토해내었다.
어쩐지 계란 썩은 냄새가 나는 호흡이었다. 거울을 들고 옆에서 보조 역을 자처하던 딘은 어이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 방귀 냄새가 차라리 달콤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바는 눈썹 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아니, 멀리 달아나기는커녕 오히려 체스터에게 고개를 숙여 귓가에 입술을 바싹 가져갔다.

『나는 네가 200달러를 주며 부탁한 것에 대하여 답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야.』
그리고는 비쩍 마른 손으로 체스터의 가슴을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네 할애비로부터의 전언이다. 잘 귀 기울여 들으렴. 늦게 알려주게 되어서 정말 미안하다. 네 진짜 엄마에 대한 걸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야. 우린 네가 상처받는 걸 보기가 무서웠단다. 하지만 그렇게나 원한다면 지금껏 감추어왔던 비밀을 알려주마. 단,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해주렴.』
체스터가 퉁퉁 부운 눈을 어렵게 치켜떴다.
『후...회하지 않아요, 할아버지.』
『알았다. 비밀을 말해주마. 네 엄마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스낵바를...』
이야기를 전하는 라바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반대로 어린애가 내는 듯한 체스터의 가느다란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딘은 아찔해졌다.
이것은, 이것은... 병원에서 존이 자신에게 비밀을 말해주었을 때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동생을 지켜주어라.」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도 엿들어선 안 된다며 매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만약 지킬 수 없게 된다면...」
입술만 움직이는 건 아닐까 싶도록 작은 목소리였다.
「동생을 네 손으로 죽이거라.」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체스터가 그들을 쳐다보았다.
안타깝게도 그가 원하는 자비를 내려줄 수 있는 자는 라바나 딘이 아닌, 오로지 하느님 뿐이었다.
딘은 들고 있던 손거울을 내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원에서 멀어졌음을 깨달은 체스터 스테이플러가 숨 죽여 흐느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쩐지 불만인 듯한 얼굴이구나, 딩딩.』
『그럴지도.』
『왜. 그 아이에게 끝까지 비밀을 지켰어야 옳았다고 생각하니?』
『때로는 진실이라는게 더 나쁠 때가 있어요. 체스터를 봐요. 자기 엄마가 아무에게나 몸을 팔던 술집 창부라는 걸 알아버렸잖아요. 나아가 미군의 사생아로 태어난 자기 아이를 다시는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까지요. 태평양 전쟁 시절의 살육 행위를 속죄한답시고 덜컥 입양해서 키웠다는 것까지 뭐 하나 대단한 거 없네요. 200달러를 내고 자신이 알아낸 진실이 뭔지를 봐요. 똥 같잖아요. 이건 형편 없다고요.』
병원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담배에 불부터 붙이던 라바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담뱃불은 흡사 반딧불처럼 반짝였다.
『진실은... 원래 그런 거란다. 꿈처럼 달콤한 건 오로지 거짓 뿐이지.』
딘의 눈이 칼날처럼 가늘어졌다. 뜻을 알 길이 없는 불편한 미소를 띄우고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라바는 담배를 하늘 높이 튕겼고, 다시금 반딧불의 불꽃이 반짝였다.

『이제... 가야지?』
『갈 거예요, 라바.』
『오늘 같이 와주어서 고마웠다.』
『별 말씀을.』

라바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딘의 등을 묵묵히 쳐다보기만 했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는 법 없이, 그녀가 애뜻하다 생각하는 어린 흰둥이는 사람과, 자동차와, 이질적 어둠에 먹혀 순식간에 그 형체조차 없어졌다.

우주의 절대 온도에 가까운 신이여, 36.5℃의 체온을 가진 우리들 인간들과는 멀어도 너무나 먼 당신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신이여!

어쩐지 그게 슬퍼져 라바는 사막으로 올 리 없는 눈을 찾으며 천천층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Posted by 미야

2007/02/04 19:22 2007/02/0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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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redemption 13

※ 딘 윈체스터의 곰 덩치 동생 돌보기 프로젝트,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이후 내용은 judgment로 곧장 이어집니다. 슬레이어즈 팬픽 쓰던 버릇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나오네요. 줄줄, 끊어질락 말락 비엔나 소시지... 켕. ※


익숙한 헤비매탈의 전자 기타 멜로디가 오늘따라「요단강 건너서 얼굴 좀 봅시다」장송곡 가락으로 들리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이다. 아니, 어쩌면 현실일지도.
딘은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쉬고 보았다. 마음 같아선「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결번이오니, 확인하시고 이쪽으론 다신 연락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친절한 전화 서비스의 안내 문구를 흉내내고 싶었다. 물론 상대방이 전혀 안 속아줄 거라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서도.

《딩딩, 이 망할 자식아~!! @(!*#*!_~!!》
폴더를 열자마자 기다렸다며 터져나오는 우렁찬 할머니의 욕설에 핸드폰을 얼른 귓구멍에서 떼어내고 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눈을 질끈 감고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았다.
그래봤자 마담 라바 애브리의 속사포 같은 욕설은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이쪽에서 듣던지 말던지 상관 없다는 식이다.「의자에 앉았다가 엉덩이에 난 종기가 터져 방석에 피바람을 일으킬 자식!」으로부터 시작하여「발가벗고 냉장고에 깔린 모습으로 일주일 뒤에 바퀴벌레랑 같이 세트로 발견될 놈!」까지, 내용도 다양하고 표현도 가지각색이다.
「고양이처럼 세수하고 세균 박멸했노라 우길 놈!」이라는 건 욕인지 아닌지 약간 헷갈린다.
「일주일 내내 셔츠도 안 갈아입는 놈!」라는 표현은 부정 못할 사실이니 감히 반박을 못 하겠고...
그래도「똥개랑 같이 유통기한 지난 햄버거를 놓고 싸워댈 자식아!」라는 말이 욕이라는 건 쬐끔 알겠다.

흘끔 눈꺼풀을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해봤다. 쉬지 않고 악담을 퍼부어 3분 4초가 지났다.
《일을 그따위로 하려면 당장 집어치워! 고향으로 내려가 차라리 동냥질을 하란 말이닷!》
 여기까지가 3분 12초.
마침내 라바는 참았던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길었던 여정에 쉼표를 찍었다.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딘은 재빨리 끼어들어 넙죽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라바. 안부 전화 고마웠습니다.』
《딩딩~!! (#&!(@#~!!》
괜한 짓거리였던 것 같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4분 16초짜리 욕설이 추가되었다.

딘은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주무르며 1년간 들을 욕말을 단 10분 내에 압축해서 한꺼번에 들어야 하는 자신의 팔자를 저주했다. 욕 먹을 짓을 저질렀다는 점에선 감히 불평해선 안 되는 거긴 하지만...「질펀한 염소똥을 헤어젤 대신 머리에 바르고 다닐 주변머리」운운엔 질려버렸다. 그래서 울컥했다.
『저기요, 라바. 전 귀찮아서 헤어젤 같은 건 안 쓰거든요?』
《목소리 낮게 내리까는 거 봐라. 그래서 뭐. 지금 나에게 신경질 부리겠다는 거야? 100년은 빨라! 이 무우를 깍뚝썰기한 놈아!》
무우를 깍뚝썰기를 하면 안 되는 거였던가. 그렇다면 채썰기는 괜찮다는 건지.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라바의 으르렁거림에 딘은 곱절의 피곤함을 느끼며 두툼한 반창고를 붙인 아픈 이마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애가 야구 배트 대용품으로 휘두른 권총에 얻어맞아 - 그것도 같은 자리를 연거푸 두 번이나 맞은 탓에 병원 응급실에서 무려 네 바늘이나 꿰맸다. 구멍이 뚫리지 않았으니 천만 다행 아니냐고? 그런 섭섭한 말은 말자. 골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아 지금도 눈앞이 어지럽다.
딘은 인상을 찡그리며 얼른 상처에서 손을 떼었다. 살짝 닿기만 했을 뿐이데 피멍이 든 자리가 오줌을 지리도록 쓰라렸다.

『아무튼 잘못했어요.』
《얼씨구! 이젠 우는 소리까지!》
『하.하.하. 그럼 웃을게요.』
《됐어! 억지 웃음도 징그럽다. 아무튼 이번에 너희들 두 사람, 전문가답지 않았어.》
 
그 점에 대해선 변명할 말이 없다. 그래서 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애꿎은 천장만 노려봤다.
사람을 제대로 구하기를 했나, 오쿠림바의 주문을 회수하기를 했나.
스코어로 따지자면 0점. 퍼펙트로 망한 게임이다.

『후우... 체스터는 어떻대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고 앉았냐! 머저리 같은 자식. 놀란 제 고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관들에게 발견된 이후부터 계속 병원 신세다. 전신 타박상에 갈비뼈 골절로 당분간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말인데, 지금 꼭 할 말은 아닌 듯 하다만... 많이도 때렸더구나, 너희들.》
딘은 찔끔해서 숨을 삼켰다.
거듭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게 맞았거든요? 그냥 어깨동무하고 동점 처리 하도록 하죠.

라바는 혀를 끌끌 차며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경찰은 약물 중독을 의심하는 모양이야. 흰자위를 드러낸 채 칼을 휘둘렀다고 증언이 나왔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게다가 수류탄이 터지네, 철모가 날아가네, 눈 뜨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으니 점수가 팍팍 깎였지. 앞으로도 경찰 신세 제법 지게 생겼어. 덧붙여 약물 재활치료 센타에 강제 등록될 거야. 올해가 몇 년이냐는 의사의 질문에 체스터가 무어라 대답했는지 아니? 소화 17년이라고 하드라. 그걸 서기로 고치면 1942년이라나? 놀란 의사가 그럼 여기가 어딥니까, 하고 물었더니 연합군 포로 수용소라고 하면서 마구 울더래. 대마초 한 번 안 피워봤다고 주장해봤자 씨도 안 먹히게 된 거지.》
딘은 신음했다. 빙의되었을 적의 충격이 아무래도 기억의 혼란을 가져온 듯하다. 자신의 경험인지, 타인의 기억인지조차 구분을 못하는 걸 봐선 앞으로도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거다.
회복은 과연 될까. 그건 아무도 장담하지 못 한다. 최악의 경우엔 자신이 누구인지 평생 헷갈릴 거다. 맞지도 않은 헤로인 치료는 그렇다치고 이래저래 힘들겠다.

『끄응... 토마스 할아버진 뭐래요. 아직 거기에 있나요.』
《아니. 손주 상태를 살피러 진작에 떠나 지금은 이곳엔 없다. 아마도 그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여 돕고 있겠지. 가여운 양반! 죽어서도 쉴 짬이 없다니... 쯧. 아무튼 너희들에게 전언이다. 이를 갈며 나중에 어디 두고 보자고 하더라.》
큰일났다. 죽은 사람에게 원한을 샀다. 후환이 무서워서 이젠 함부로 죽지도 못 한다.
목소리만 들어도 불처럼 전화기를 노려보고 있을 마담 라바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딘은 화염이라도 튀어나오진 않을까 싶어 귓밥에서 핸드폰을 살짝 멀리했다.

《그래, 체스터는 그렇다고 하자. 아무튼 죽지는 않았으니까. 오쿠림바의 주문은 어떻게 된 거냐, 딩딩.》
딘은 적당한 단어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입술을 문질렀다.
그거요? 깔끔하게 망했죠. 오른쪽 손가락이 모두 여섯 개인 계집애가 갑자기 튀어나와선 우리들 눈앞에서 낼름 채갔답니다 - 라고는 입을 찢는다고 해도 말 못 하겠고.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자가 들고 있던 총으로 실탄이 아닌 공포탄이 장전되어 있었다는 걸 진작에 알아차렸더라면 양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상대방은 키도 작은 어린애였다. 눈 딱 감고 주먹으로 때리곤「용서해, 난 신사가 아니거든」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팔을 길게 뻗어 총신으로 머리를 때리려고 들었을 때, 딘은 비로소 동생에게 신경을 쓰느라 자신의 주의력이 한참 흐트러졌음을 깨달았다.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몸으로 어쩜 그걸 까마득히 몰랐을 수가 있냐! 상처가 벌어지든 말든 벽에다 머리를 박고 싶어졌다.
공포탄에 쫄아 그 천하의 윈체스터가 꼼짝을 못 하다니. 완전히 바보 멍청이 짓을 했다.

『드릴 말이 없습니다.』
쓰러진 채 성경책에서 떨어진 낡은 종이를 손으로 쥐고 빼앗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봤다. 그러나 물체가 둘로 겹쳐서 보이는 판국에 손가락으로 힘이 들어갈 리 없었다. 여자는 다시금 권총을 휘둘러 딘의 머리를 때렸고, 그것으로 블랙 아웃 해버렸다.
오쿠림바의 주문은 하늘로 훨훨.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여자의 차가운 눈동자가 콜 투브- 유태식으로 안녕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꼭 쥐었던 손을 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놓아라 말아라 옥씬각씬 씨름하면서 종이의 일부가 찢어져 나갔다는 점이다. 더하여 천운이 따라주어 딘의 손아귀에 남은 일부분은 텅 비어 있는 공란이 아니었다.
《螢の息》
꼼꼼하고 예쁜 글씨체이다. 모르긴 해도 여성이 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걸 무어라 소리내어 읽으면 되는 건지 그는 모른다. 솔직히 딘의 지식으로는 이것이 어느 나라 글자인지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게 초밥을 먹는 사람들이 쓰는 글자라는 건가. 거꾸로 보이도록 종이를 들었다는 것도 모르고 딘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행인게 전부가 날아가진 않았어요, 라바.』
그렇고말고. 싸움은 이제부터다.
딘은 다시 주먹을 쥐었다. 두고 보라지, bitch! 다음에 만나면 눈물 쏙 빠지게 만들어주마.

설욕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던 것도 잠시, 갑자기 껴안아오는 힘에 떠밀려 벌러덩 쓰러졌다.
출렁이는 침대 쿠션이 무시무시하다. 딘의 안색이 당장 새파랗게 변했다.
『으앗?! 새, 새미잇!!』
오쿠림바가 다 뭐라냐. 마담 라바고, 체스터고, 육손의 여자고 순식간에 새카맣게 잊어먹었다.
『진정하자, 샘! 임마!』
곰에게 덮쳐졌다 - 그렇게밖엔 말 못 한다. 형의 팔과 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그 커다란 손으로 피부를 더듬어댔다. 셔츠를 목 위로까지 들어올리고 뱃가죽을 눌러댔다. 맨 살에 닿는 동생의 뜨거운 호흡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엄마야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놈의 자식은 왜 이렇게 뜨겁느냔 말이다. 열에 들떠서 그렇다고 해도 이래선 불타는 석탄 더미에 깔린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진다. 망할. 젠장, 얼어죽을.

『배에 구멍 안 났어, 안 났다고! 형은 안 죽었다고 했지! 으...읏!』
손으로 만져선 영 만족이 되지 않는지 뺨을 가슴에 대고 살갗을 비벼댔다. 온기를, 체온을, 하다못해 위장에서 나는 꾸루룩 소리까지 들려달라고 요구하며 샘은 매달려왔다. 멀쩡하게 잘만 살아 있다고, 죽지 않았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못 믿는 눈치다. 울다가, 잠들었다가, 깨어나선 다시 울곤 했다. 그리고는 코를 문질러대며 자신의 형이라는 인간의 체취를 기를 쓰고 확인하려고 했다.
『형이... 나무 높이 올라가 있었어.』
『Shit! 이게 누굴 원숭이로 만들고 있어.』
『원숭이 아니니까 다신 나무에 올라가지 마. 안 올라갈거지? 그렇지?』
『안 올라갈게. 그러니까 제발 떨어져~!!』
너무 엉겨붙어서 숨 쉬기가 힘들었다. 체중이 90kg에 가까운 몸뚱이는 흉기나 다름 없다.
딘은 동생의 머리를 뒤로 밀치며 놀란 것이 분명한 마담 라바에게「잠시만요」라고 말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일단 이 망할 것부터 처치하도록 하자.

『딘... 죽지 마. 죽으면 안돼.』
『새미? 네 멋대로 날 죽였다가 살렸다가 막 해라?』
『유령... 아니지?』
『사람이다! 사람!』
『진짜로 딘이야? 정말로 살아 있는 거야? 만약 이게 꿈이면 난 어쩌지.』
『어쩌긴, 이대로 한대 맞자.』
『흐읏! 정말 딘이야...?』
『뚝 그쳐! 지겨워서... 또 우냐! 창피해서 이걸 그냥!!』

때리겠다고 윽박질러놓은 주제에 손가락을 내려 동생의 귓볼을 쓰다듬었다.
어렸을 적에도 이렇게 하면 동생은 곧 잠이 들곤 했었다. 샘은 귀를 만지는 걸 좋아한다.
가볍게 만지작대는 촉감에 크게 훌쩍이던 소리가 살짝 잦아들었다.
『하는 수 없지. 이리 와. 형이 안아줄테니 조금 더 자.』
『안 죽은 거지?』
『지금은 안 죽은게 맞는데 너 때문에 곧 죽겠다, 야.』
『미안... 미안... 그러니까 죽지 마.』
『닥치고 빨리 정상으로 돌아와라. 다섯 살짜리 애 보는 건 이제 그만 졸업하고 싶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형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민폐쟁이 동생은 또다시 잠으로 빠져들었다.

전화, 전화. 동생의 몸부림이 가라앉기가 무섭게 딘은 정색하고 핸드폰을 다시 귀로 가져갔다.
『라바?』
진작에 끊겨 뚜뚜 신호음만 들려왔다.

아아, 피곤하다.
낯 뜨거운 킹 사이즈 베드에 동생과 같이 나란히 누워 전화기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다 냅두고 도망이라도 가버릴까. 라스베가스까지 온 김에 카지노라도...
슬쩍 몸을 빼려 하자 눈치가 귀신인 동생이 으스러져라 껴안아오며 움직임을 원천봉쇄했다.
정신 나갔음에도 끝까지 용의주도한 놈.
투덜거리며 눈을 감았다.

『귓볼 만져줘... 형.』
『바랠 걸 바라세요.』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며, 동생이 원하는대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슬프다. 아기 요람 속으로 다 커다란 남자 둘이 들어가 참 잘 하는 짓이다.
한숨지으며 열에 들떠 손가락을 입에 문 동생의 등을 토닥거렸다.

Posted by 미야

2007/02/02 15:36 2007/02/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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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3 16:15 # M/D Reply Permalink

    이번편은 그야말로 모니터를 부여잡고 킹콩처럼 울부짖으며 봤답니다.. ㅠㅠ 으헝헝..
    정말이지 이런 샘딘 너무 귀엽잖아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샘은 딘에게 약간 냉정한 것이 사실이라 이렇게 격한(;;)애정표현을 하는 샘은 너무너무 기특하군요- 다음편이 무지 기다려집니다--^^

  2. 크림베리 2008/12/26 18:52 # M/D Reply Permalink

    꺄아아아~~샘 너무 귀여워요~~오오~ 어리광쟁이 샘이라니 ㅋㅋㅋ 2미터 거구의 샘이 딘한테 매달리는게 너무 웃기고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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