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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21

※ 드디어「던진다, 크앙~!!」엔딩입니다. 생각보다 곱절로 길어진데다 이야기가 엉망으로 꼬여서 머리를 들 수가 없네요. 그래도 도망은 가지 않았잖습니까. 저로선 많이 노력한 겁니다.
후기는 나중에 몰아서 쓰도록 하지요. 다음편은<A signal for help>입니다. ※


그 딱딱하게 생긴 장난감은 더 이상 가지고 놀지 말아주세요.
긴장감 제로의 자세로 손을 내밀어 채근하는 딘의 모습에 헤더는 킥 하고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의 그는 권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땅에 떨어뜨려 흙 묻은 막대 사탕을 어서 내놓으라 야단을 치는 엄마 같았다. 엄마는 - 딘은 딸 아이의 부주의함에 질색하며 그런 걸 입에 넣으면 결국엔 배가 아파질 거라며 무언의 경고를 보내왔다. 덕분에 헤더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자신의 진짜 나이를 잊고 정말로 코흘리개 어린애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이제 그만하자, 헤더. 광대 노름은 충분하지 않아?』
『아직 안 끝났어... 아니, 이대로 끝낼 수 없어.』
『답답하긴! 계속 그래봤자 고통받는 건 너 자신이야.』
『시끄러! 나에게 설교하려 들지 마! 네가 뭘 알아!』
어리고, 새되고, 그리고 절박함이 한껏 담긴 목소리로 그녀가 외쳤다. 금속으로 코팅된 유리를 세로로 길게 찢는 쩌렁쩌렁한 비명이 병실에 가득 찼다. 아울러 그 목소리 만큼이나 헤더의 얼굴 역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농락당하고 있단 말이다! 무엇 하나 내 맘대로 흘러가는 건 단 하나도 없어! 신도, 악마도, 운명도... 모든게 나의 뜻과는 상관 없이 결정되어져 버리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두 손을 놓고 얌전히 당하는 것밖엔 없단 말이다! 이게 말이나 돼?! 이런 걸 참을 수 있겠어?! 내 인생을 봐. 내 꼬락서니를 봐! 그런데도 넌 이런 나에게 훈계를 늘어놓을 참이냐?!』
딘도 지지 않고 버럭 외쳤다.
『그래! 다 큰 어른으로서 훈계할란다. 세상을 헛 살아도 유분수지. 이 어린 계집애야, 세상에서 너 혼자만 비참한 것 같냐?! 제일 불행하다고? 그게 뭐. 웃기지 마!』
냉정하고 차가웠다. 어쩐지 쌀쌀맞기까지 했다. 사실 그것은 속에 든 그의 진심이었다.
『인생이 맘대로 안 굴러가서 속 상한 사람이 세상에서 오직 너 하나 뿐일 것 같냐! 놀고 있네! 밖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과연 몇 명이나 자기 운명을 쥐락펴락 하면서 뜨뜻한 뱃가죽을 두드릴 것 같냐. 다들 꾹꾹 참고 살아가고 있는 거란 말이다! 힘들다고 내색 안 하고, 가식되게 웃으면서 숨 쉬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징징거리지 마!』
 
양손을 뻗어 권총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텅 비어버린 침대를 향해 그 총구를 돌렸다.
『도망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다고 절망까진 하지 말아. 대신 정면에서 한 방 날려.』
헤더의 눈이 휘둥굴 벌어졌다. 그러든 말든, 딘은 헤더의 팔을 움직이게 해 정확히 베개맡을 조준했다. 억눌린 짧은 신음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걸 무시하고 탄창을 갈아끼우는 요령으로 손바닥으로 탁 쳐서 올렸다. 그 그 반동으로 방아쇠에 걸린 헤더의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고, 화약이 폭발하는 굉음에 세 사람 모두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딘!』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샘이 제일 먼저 움직였다. 큰일이다. 병실에서 총을 쏘다니. 빨리 빠져 나가야 한다. 총성을 듣고 사람들이 부랴부랴 이리로 몰려올 것이다. 이미 당직자가 경찰을 호출하는 단축 번호를 눌러대고 있을 터, 1초가 급하다.
『난리 났군. 여기서 나가야 해. 뭐 하고 있어?! 딘!』
하지만 동생의 성난 재촉에도 딘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구멍이 난 베개를 응시하며 여전히 헤더의 작은 손을 꼭 모아쥐고 있었다. 섬세하고도 단호한 의지가 깃들인 입술을 움직여 마침내 그가 길었던 고통에 종언을 고했다. 전쟁은 - 요란하게 일었던 소음과 비명들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재앙과 저주로부터 침범당했던 삶은 겨우 일상으로 돌아오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끝을, 그 마지막을... 피를 담은 잔은 그 살과 같이 하여 목구멍을 넘어갔다.
그는 죽었다. 신이 그를 죽였다.
그의 영혼이 최후의 날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 그분의 뜻대로.
마지막 날에 그 행위대로 심판 있으리.

참았던 오열이 별이 죽고 태어나는 그 시간을 맞이하여 목구멍 속에서 튀어나왔다.
『어떻게 해! 그는 죽었어!』
『그래, 울어. 차라리 속 시원하게 울어버려.』
『다 끝났어!』
『어쩌겠냐...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거야. 어때. 이참에 속 시원하게 한 방 더 날릴 텨?』
그녀의 눈썹이 거의 이마 끝까지 올라갔다.
『.......... 심술궂어.』
『미안. 이런 남자라.』
약간은 민망했던지 복도 걸레질을 하던 더러운 손으로 눈물 투성이의 얼굴을 훔쳤다. 덕분에 소녀의 얼굴로 길게 검은 궤적이 생겼다. 그걸 본 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다행히 새롭게 펑펑 솟구친 눈물이 그 흔적을 지우며 먼지 얼룩을 희석시켰다. 하지만 두 눈두덩이만 하얗고 새카만 구정물로 얼룩이 진 뺨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어쩐지 그 모습이 색깔이 거꾸로 박힌 희귀 팬더곰 같은지라 딘은 부랴부랴 시선을 돌렸다.

『딘! 헤더! 제발. 나가야 한다니까!』
『알았어. 가자. 헤더도 이리와.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나쁜 아저씨들이 잡으러 온다.』
형님은 좌우로 얘들을 끼고 복도 양편을 두리번거렸다. 빨리 생각해내야 한다. 1층 로비로 내려가기 위한 최단 코스와,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을 코스를 두고 저울질했다. 덕분에 오른발과 왼발이 따로 놀았다. 오른쪽 다리는 왼편으로 가자고 성화였고, 왼쪽 다리는 그러지 말고 뒤돌아 뛰어가는게 낫다고 충고했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몸뚱이가 갈지자로 비틀거렸다.

『틀려, 윈체스터. 옥상으로...』
어딘지 넋이 나간 듯한 헤더가 꽉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옥상?』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샘과 딘은 화재시 대피 통로인 비상계단 쪽을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움찔하고 몸을 경직시켰다. 머리에 시커먼 총알 구멍이 뻥 뚫린 노인이 이쪽이라고 손짓했다. 빨리 오라는 것 같다. 서두르라고 입 모양으로 말을 걸었다. 그게 누군지 알 것 같다. 귄터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하는 것도 같고, 원망하는 것도 같다. 제법 깊어보이는 상처로 누런 뇌조각과 피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노인의 형체가 점점 더 희미해졌다. 딘은 이게 무슨 귀신의 조화인가 싶어 눈을 비볐다.
역시나 착각이다. 눈꺼풀을 닫았다 다시 뜨자 피투성이가 된 노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같은 걸 목격한 모양이다. 옆에서 샘이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형. 있잖아. 나 방금 전에 말이지...』
『그래, 나도 봤어. 내 덕분에 정식으로 이승에서 추방당했다 이건가.』
아무튼 608호실의 유령은 더 이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 없을 것이다.
딘은 이를 악물고 좌우로 꽉 붙든 두 아이들을 세게 끌어당겼다.
『서두르자, 새미. 헤더. 올라간다!』

신선하고도 차가운 바깥 공기를 접하자마자 맨 처음 보인 헤더의 반응은 지나치게 교과서적이었다.
『우엑~!!』
허리를 굽혀 역류하여 올라온 신물을 게워냈다.
아이고, 이런. 딘은 술주정뱅이를 돕듯 하여 얼른 손바닥으로 헤더의 등을 쓸어내렸다. 생각과 달리 쏟아내는 량이 영 만만치 않음이다. 이러다 피까지 토하는 건 아닌가 걱정하며 헐떡거리는 그녀를 도왔다.
『괜찮아?』
『괜찮을 것 같나. 죽을 맛이다.』
달걀처럼 갸르스름한 얼굴 양쪽으로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속눈썹의 음영이 도드라졌다. 몇 번을 더 힘겹게 콜록거리며 누런 빛깔의 오물 섞인 타액을 뱉어냈다.
『기분은?』
『최악이야.』
물에 빠진 사람이 그러하듯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며 딘의 옷깃을 꽉 붙들었다.
『식중독과 독감, 유행성 이하선염과 홍역을 같이 앓는 듯한 기분이군.』
독특한 비유였다. 딘은「그걸 다 같이 앓는다면 의식불명인 건 둘째고 상당히 꼴불견이겠네」라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건물 귀퉁이 쪽으로 향했다.
행여 따라오는 사람은 없는지 틈틈이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그렇다고 해도 딘의 눈빛은 어두웠다. 누군가의 시커먼 그림자가 따라 달려오기라도 한다는 투로 녹 슬은 철제 문짝을 노려보았다. 연보라색 눈동자의 키 커다란 누군가를 봤다는 기분도 들고 있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건 같이 어울리기 싫은 악귀와 동류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저쪽으로 비상대피용 계단이 있어. 내려다 보기가 꽤나 아슬아슬하지만 그리로 내려가면 된다.』
『역시 여러 번 와봤군.』
『도주로 확보는 기본이야.』
『그럼 빨리 그리로...』
『아직은 안 돼.』
『응?』
『모든 일에 결말이 있는 거라면, 그 마지막 때라는 것도 분명히 정해져 있는 거겠지. 안 그런가, 윈체스터.』
『오, 이런 제기랄.』
이제 그녀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침착함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고집을 부리는 기미를 보이지도 않고 담담히 요구했다. 마치 이 행동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당하다는 걸 알리려는 듯이 턱을 바짝 치켜 올렸다. 딘은 그녀의 자세에서 뒤틀린 무기력감과 같이 하여 격렬한 에너지를 느꼈다.
『나는 감히 요청하겠다. 그 인간에게 마지막을 준 것처럼, 나에게도 최후라는 걸 줘.』
『헤더!』
『이대로 내가 계속 살아간다는 건 부자연스러워. 죽음의 주문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거지? 그렇지? 그걸 나를 위해 읽어주지 않겠나. 잘못된 것을 한 번에 바로잡는 거야.』
『이봐!』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딘은 머리를 쓸었다.
『진짜지 제멋대로야.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비 내리는 창문 앞에서 청승을 떤다면야 모를까,「날 끝장내 주세요」라고 말하기냐. 앞으로 널「리틀 새미」라고 불러도 되겠다, 야.』
딘의 그 말에 진짜 새미가 꿈틀 몸을 떨었다. 당황한 것도 같다. 동시에 화도 내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딘은 손가락까지 헤아리며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나섰다.
『앞 뒤 안 보고 달려드는 점이라던가, 자기만 편해지면 그만이라는 부분이라던가, 다른 사람에게 무신경한 점이라던가... 진짜지, 너희 둘은 많이 닮았어.』
듣다 듣다 샘이 발끈했다.
『딘?! 그 말 취소해. 난 무신경하지 않아!』
『아냐, 새미. 너도 엄청 무신경해. 너, 지금 나에게「그녀에게 오쿠림바의 나머지 주문을 건내줘. 불쌍하잖아. 그녀가 자살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고 설득할 생각이었지? 네놈 얼굴만 봐도 뭔 소리가 나올지 훤히 다 보여.』
그걸 야단치며 눈을 매섭게 야렸다.
『둘 다 똑같아. 뒤에서 울게 될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잖아. 무신경해.』

바로 지금이다. 품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냈다. 딘은 찰칵 소리를 내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놀랍게도 거기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음악이 아니었다. 마치 장례식 도중인 듯한 서러운 울음 소리... 코를 훌쩍이며 수십 명이 펑펑 울어대고 있다. 그것도 황당하게 죄다 노인들이다.
뺨을 맞은 표정이 된 헤더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딘을 응시했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미리 말해두는데 이건 내 아이디어가 아니야. 마이클 프레데닉 영감이 결정한 거야.』
『설마!』
『다들 한 자리에 모여서 이걸 녹음했어. 그리고 너에게 꼭 전하라는 메시지가 있어. 잠깐 기다려. 일단 들어보지 않을래?』
일시 중지 버튼에서 엄지손가락을 떼었다. 그러자 너무 울어 코맹맹이가 된 노인이 울먹이며 속삭이는 소리가 나왔다.
《어머니, 부탁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헤더의 입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뜨거운 바람을 맞아 바스라진 관엽식물처럼 누렇게 변했다. 피를 들끓게 하는 전율이 척추를 타고 흘러갔다.
『오겐! 마이클! 아아, 내 아이들!』
《우리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녹음기를 도로 끈 딘은 담담하게 말했다. 빳빳하게 힘이 들어간 그녀의 좁은 어깨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오쿠림바의 주문? 죽음의 여신이 남긴 저주? 엿이나 먹어. 넌 아직 정신을 덜 차렸어, 헤더. 아니, 리틀 새미. 너의 아이들이야. 네가 전쟁터에서 살려낸 아이들이라고. 그런 아이들의 부탁을 저버릴 수 있어? 계속 울게 할 수 있겠느냐고. 마이클 프레데닉이 말했어. 손꼽아 널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겠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헤더? 넌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아니, 살아야만 해. 죽긴 왜 죽어.』
『나, 나는...』
더는 듣기 싫다며 딘은 비상 계단으로 몸을 절반이나 내렸다.
행여나 딘 혼자 떠나갈까봐 두려워진 샘은 허겁지겁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고도 계속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날 찾아와도 좋아. 하지만 아마 그때도 난 호락호락 네 부탁을 들어주려 하진 않을 거다. 자! 이제 그만 작별하자. 넌 그만 돌아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웃는 모습으로 암호를 외워. 그게 뭔지는 알고 있지?「뾰족 구두」와...』
『아아...!!』
『네가 외쳐야 할 건「녹색 구름」이야. 그러니까 헤더?』
마지막으로 옥상 바닥에서 발을 떼기 전에 딘은 천진난만함을 가장하며 손을 흔들었다.
『콜 투브. 안녕히... 내 생각이 맞다면 우린 아마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야.』

바람에 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만을 기억하겠다.
행운의 주문을 살짝 혀를 굴려 발음해 보았다.
녹색 구름.
어쩐지 밝고 시원한 맛이 느껴진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딘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오열하는 소녀의 모습을 뇌리에서 강제로 지워버렸다.

어물쩍거리며 따라오던 동생이 이제는 더 못 참는다며 손을 잡아왔다.
『형...』
『오냐.』
그 손가락을 깍지끼며 밝게 웃어주었다.
『우리도 이제 그만 갈까?』
『응.』

뭐, 천장에 구멍 뚫린 임팔라를 보고 폭발한 형을 피해 샘이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났다는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자. 지금은 웅성거리며 모여든 사람들 눈을 피하느라 두 사람 모두 정신이 없었으니까. 정문 바깥까지의 거리는 아직 멀었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경비원들도 장난이 아니었음이다. 공기가 추웠음에도 등이 뜨거웠다. 입술을 깨문고 구부정한 동생의 등을 살짝 밀었다. 그걸 신호삼아 샘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여전히 딘과 손을 잡은 채로.

Posted by 미야

2007/04/08 15:25 2007/04/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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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원의마녀 2008/05/29 17:21 # M/D Reply Permalink

    아잉~ 손 잡기라니..
    본편에서 저런 장면이 나왔드라면 아마 캡쳐해서 프린트 한뒤 액자로 걸어뒀을꺼에요
    ㅎㅎㅎ(이래서 팬픽이란 장르의 묘미가 있는듯)
    저 형제는 넘 애정표현에 매말랐어요..

  2. 언니햐 2010/02/16 14:31 # M/D Reply Permalink

    으헝헝 ㅠㅠㅠㅠㅠㅠ어제 이 픽 정독했는데
    대박이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샘처럼 헤더가
    불쌍해서 자살해도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기적이었군여...
    역시 딘은 어른스러우면서도 생각이 깊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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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20

※ 사람 100명이 모이면 그중에 80명은 대체로 무해합니다. 유해한 인간은 20명인데 이중 5명은 대단한 악질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의인은 100명 가운데 모두 몇 명일까요 한 명도 없답니다.?
왜들 그러고 사나 싶지만 그게 인간이라니 어쩌겠습니까.
다음이 마지막입니다. 진짜지 오래 끌었군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미친 영감의 헛소리였다.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이마에 총알 두 발을 박으러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도대체 평소에 무슨 내용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건지를 진지하게 묻고 싶어졌다. 육체적 고통이 극심하여 머리가 살짝 돈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며 총을 꺼내어 노인이 가까이에서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귄터의 표정에는 공포라는 것이 쏙 빠져 있었다. 애초부터 그런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피아노 건반을 아무리 힘주어 눌러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물기를 잃어버린 먹먹한 눈으로 죽음의 도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도대체...』
『부탁합니다. 이제 그만 나를 보내주시오.』
그건 무리한 주문이었다. 헤더의 표정이 확 나빠지면서 얼굴로 피가 확 몰렸다.
『뭐야?! 이대로 끝내자는 거냐! 그런 뻔뻔하기 짝이 없는! 네가 한 짓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딴 소리를 입에 담는 거냐! 너로 인해 고통받은 나는 어쩌고! 양심도 없는 놈! 너 혼자만 편해지겠다는 거냐! 용서 못해! 절대로 나는 너를 용서 못해! 신은 자비로우시니 아마도 네 기도에 응답하여 널 용서할련지 모르겠다만, 인간인 나는 널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없단 말이다!』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야 맞았다. 아직은 죽기 싫다고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걸 비웃어주며 지옥으로 어서 빨리 떨어지라 저주를 퍼부울 작정이었다. 꼴 사납게 엉엉 울면 더욱 보기 좋을 것이다. 아니면 벌컥 화를 내도 좋았다. 신경질적으로 울부짖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든 말든 심판할 것이다. 공포에 질린 표정을 만끽하며 관자놀이에 총구를 바짝 들이댈 생각이었다. 이건 아니다. 그는 궁지에 몰린 쥐가 되어야 옳았다.

『나를 봐! 그리고 손을 올려 눈을 가려! 겁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란 말이다!』
무덤은 그대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구더기는 그대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맹세코 피 묻은 시트를 쓰레기장에 버려 떠돌이 개들이 핥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너는 이런 나를 기다렸다고?! 거짓말이다. 그건 거짓말이다!』
총을 쥔 오른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모든 것을 불투명한 색유리를 통해 쳐다보고 있는 듯한 감각이다. 빨강이 빨강이었던가, 아님 보라색이었던가. 기분이 나빠졌다.
『죽기 싫다고 빌엇!』
목 안쪽으로 피맛이 느껴졌다.
아니, 이미 알고 있다. 그 뜨겁고도 비릿한 것은 피 섞인 가래 같은 것이 아니다. 탯줄이 붙은 채 죽어버린 갗난 아기처럼 더 원초적이고도 터부스런 것이다.
왼손을 높게 들었다.
『돼지!』
노인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기려는 걸 샘이 나서서 정중히 말렸다.

격심한 증오로 한껏 달아오른 목소리가 잘 갈린 칼날처럼 쨍쨍 울렸다.
『왜 막는 거야, 윈체스터.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냐! 날 비난하려는 거냐!』
『침착해. 그리고 제발 목소리를 낮춰. 우리가 이 안에 몰래 들어왔다는 걸 잊지 말아.』
바깥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샘은 재빨리 왼편으로 움직여 조화가 꽂혀진 싸구려 꽃병을 들었다.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간 채 조용히 문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들킨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뒤돌아 헤더에게 눈짓했다.
『쉬잇. 일이 시끄러워지면 너나 나나 똑같이 곤란해져.』
이대로 화병의 물을 바꾸러 화장실로 가는 척하자. 놀란 직원이 눈을 똑바로 치켜 뜨고 안에서 무슨 일 있느냐고 질문하면 멎적은 표정으로「조카 녀석이 할아버지를 문병왔다가 많이 아프신 모습을 보곤 감정이 격앙된 모양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싸움? 욕설? 고함? 죄다 착각이었다고 우기자. 그것으로 최소한 5분의 시간은 벌 수 있다. 짧으면 짧은 시간이지만, 반대로 길다고 하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샘은 소동이 커지지 않기를 희망하며 흰옷을 입은 직원을 찾아 고개를 길게 뺐다.

오, 있다. 하얀 실내화를 신은 남자가 대걸레를 들고 무심한 태도로 바닥을 쓱쓱 닦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는 청소가 힘들어서 그런지 허리를 구부정히 한 채 도통 이쪽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건만 청소 이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되었다. 별 것 아니었다. 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대로 아무 일도 아닌 척하자. 느릿한 걸음으로 조화가 꽂혀진 꽃병을 들고 걸레질을 하는 남자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세면대는 저쪽에 있다.
그러다 얼씨구. 뭔가를 깨달았다며 뒤로 턴, 빠른 걸음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저기, 있잖아. 복도를 청소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지 않아?』
『......』
비난 아닌 비난에 남자가 걸레질을 하는 동작을 딱 멈췄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자 자신의 것과 흡사하게 생긴 짙은 초록의 눈동자가 보였다.
순간 미움에 겨워 생닭의 모가지를 붙잡고 와지끈 비틀고 싶은 욕구와, 반가움에 사무쳐 으스러져라 포응하고 싶은 두 가지의 상반된 욕구가 펄펄 솟았다. 그러나 두 가지 행동 모두 딘을 필연적으로 죽게 만들 것이 뻔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샘은 형과의 거리를 지금과 같이 유지하며 필사적으로 힘내어 냉정함을 가장했다.
그럼 죽도록 방망이질을 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히 숫자를 세도록 하자. 열 다섯, 백만 마흔 둘, 일흔 여덟에 다시 아홉... 영 엉망이었지만 샘은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 했다.

『딘. 언제부터 이곳에 취직했어?』
취직은 무슨.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딘은 하느님부터 찾았다.
『반나절 전부터. 오, 하느님 맙소사. 새미.』
『오, 맙소사. 딘.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샘은「제임스 브리스콧」이라 적혀진 이름표를 앞뒤로 뒤집어보며 콧방귀를 내뀌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가 다 시들어빠진 할머니들이 득시글거리는 요양원에서 일용직 잡부나 마찬가지인 청소부로 취직한다는 시나리오가 과연 일반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갈 것인지는 둘째다. 싱크대 위로 더러운 양말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는 지저분한 남자가 복도를 반질반질하게 잘 닦아낼 것 같은가. 아닌게 아니라 딘이 헤집어 놓은 복도는 누가 오줌을 질질 싸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물기 투성이다. 요령도 부족하거니와 상식도 꽝.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빙긋 웃었다. 그러나 거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웃음이었기에 가뜩이나 굳은 그의 입술 모양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딘. 이런 곳에선 물 걸레질은 하지 않아. 기름 걸레질을 해야지.』
『응?』
『형이 청소 도구함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들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소리야. 보나마나 제일 앞에 놓여있는 것들 중에서 아무거나 들고 나왔겠지. 칠칠맞게... 내 말이 틀려?』
『그래서 뭐. 어차피 난 진짜 청소원이 아니라고. 이야, 하여간 너 답다. 보자마자 잔소리냐.』
딘은 환하게 웃으며 피를 나눈 친형제의 팔뚝을 툭툭 쳤다. 어쩐지 흐믓한 표정이다. 역시 샘이다. 말 위에 올라탄 김유신 장군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간장의 맛이 어제와 변함 없으니 오늘도 집안은 평온하겠다.
그러다 퍼득 깨달았다. 온도에 반응하여 모양과 색상이 달라지는 신소재 금속도 아니면서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 퍼머를 망친 아줌마처럼 화를 냈다가, 빌라의 열쇠를 잃어버린 부동산 중개업자처럼 당황해 했다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다 실수로 개똥을 밟은 대학생처럼 마구 짜증을 부렸다. 갈피를 잡지 못해 변덕을 부리는 사월의 날씨처럼 엉망이었다. 근심으로 인해 그의 눈동자 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이 자식! 지금 나에게 그딴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잖아! 샘! 엉뚱하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바비 아저씨에게 안 갔어?!』
『안 갔어.』
『잘라 말하면 다냐! 하여간 형의 말은 죽어도 안 들어요! 시키는대로 하면 그 밉상 엉덩이로 뿔이라도 돋냐?!』
『돋아.』
『으이그! 알았어. 돌아서서 팬티 내려. 그놈의 망할 뿔, 내가 톱으로 썩둑 잘라줄게.』
한참을 으르렁대며 동생의 두꺼운 어깨를 미움을 담아 밀었다. 도대체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황소 고집인 건지. 그렇다고 해도 팔뚝 두께만 딘의 딱 두 배 사이즈인 동생이다. 밀었다고 움직이면 샘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딘이 밀친 정도로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에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턱을 치켜들며 대들 듯이 해서 샘이 외쳤다.
『딘! 지금은 내 팬티 내리는게 먼저가 아니야.』
『그럼 뭐가 먼저인데. 똥구멍에 난 털부터 족집게로 뽑아야 하냐?』
『헤더가 이곳에 있어! 나랑 같이 왔어!』
『아앙?』
그게 뭔 소리냐며 딘이 커다란 의문부호를 그렸다.
『미하일 요하넨버그! 본명은 귄테 베르겔트래. 그 자를 죽이러 지금 헤더가 이곳에 와 있단 말이야. 나랑 같이 저 방에 들어갔었어. 608호실, 바로 저기! 지금 그녀가 나치를 죽이려고 총을...』
『워워, 새미. 진정해.』
『진정하고 자시고 할게 뭐가 있어? 608호실이라니까! 이러지 말고 둘이서 같이 가자.』
『아니, 넌 진정해야만 해. 새미?』
딘은 동생의 팔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탐색하는 시선으로 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듣고 내가 이미 다 확인한 거야. 네가 말한 미하일 요하넨버그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 고인이라고.』
이제는 샘이 깜짝 놀랄 차례였다.
『뭐?』
『위암으로 2004년에 그는 죽었어. 격심한 고통으로 마지막은 모습이 대단히 흉했다더군. 네가 말한 608호실은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빈 방이야.』

그건 바보 같은 소리였다. 샘은 믿을 수 없다며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잘못 알았겠지. 형이 실수한 거야. 바짝 말라버린 노인이 저 방 침대에 누워 있었어. 말도 했다고. 그 할아버지, 눈도 깜빡였어. 난 봤단 말이야. 바깥쪽 명찰에도 이름이...』
『이름? 진짜로? 내 눈엔 안 보이는데?』
『하아?』
속눈썹을 깜빡였다. 딘의 지적이 옳다. 동시에 틀리다.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다본 그곳으로는 명찰이 붙어 있지 않았다. 사라졌다. 환장하겠다. 라벨을 붙였다 도로 떼어낸 흔적 같은 것도 안 보인다.
흐트러진 머리를 한 손으로 허둥지둥 쓸어 올렸다. 한쪽 뺨에 달라붙어 있던「미치겠군!」문구가 덕분에 다른쪽 뺨으로 옮겨 붙었다. 그 탓에 간지러워진 양쪽 뺨을 두 손으로 쥐어뜯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형. 이건 진짜로...』
『됐네, 멍청아. 네가 살짝 돌은 건 결코 아닐게다. 누구에게는 사실이고, 누구에겐 사실이 아닌 것뿐이지. 우리가 이런 걸 어디 한 두 번 당해봤냐. 그러니 바보처럼 굴지 좀 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런 동생을 한심하다며 쳐다봤다.

실례하겠습니다. 딘은 방문을 노크하고 손잡이를 단번에 덜컥 돌렸다.
서늘하고 어두컴컴한 방으로 한 걸음 내딛자 알싸한 먼지 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스위치를 만져 어두운 방안의 불부터 켜려 했다. 그래봤자 진작부터 망가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달각 소리를 내며 다시금 위아래로 스위치를 조작했다. 저런, 안 되는 건가. 딘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어슴푸레하게 물체들의 형상을 긴장하여 관찰했다.
음, 네모낳게 생긴 저것은 침대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저것은...

『어이. 아직 이곳에 있는 거 맞지?』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것에 반응, 좁은 어깨를 추은 듯이 움츠렸다. 차갑고도 텅 비어버인 눈동자가 딘을 돌아다 보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무기력하고 힘을 잃은 모습이 왠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형처럼 보였다.
『헤더...』
처음에는 행여 덤비진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강렬한 연민으로 바뀌어갔다. 증오심 하나만으로 버텨온 인생, 그 대상을 영원히 잃어버렸으니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가 - 원수가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 유령이라도 죽이고 싶어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늘로부터의 심판이 아닌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자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자들에겐 천상에서의 빛이 닫지 않는다.
『그 총을 내려놔.』
딘은 부드럽게 명령했다.

Posted by 미야

2007/04/01 19:09 2007/04/0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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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19

※ 딘이 흘린 눈물 한 방울에 보기 좋게 격침, 반짝반짝 라이징 썬 모드를 회복하려면 제법 시일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종결부 진입입니다.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멀리서 보면 5개 동의 신축 아파트 건물로도 보인다. 할로겐 외부 조명등과 산뜻하게 칠해진 밝은 계란색 페인트가 잘 정돈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차를 몰고 가는 내내 주변으로 늦은 퇴근으로 녹초가 된 직장인들의 구부정한 어깨가 눈에 띄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위해 외출을 서두르는 젊은 커플도 나타나지 않았다. 불만 환하게 켜졌을 뿐, 인기척이 완전히 지워진 건물은 흡사 텅 비어버린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안내 표지판에 따라 왼편으로 자동차 핸들을 돌리던 샘은 오래된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마법사의 감쪽같은 눈속임으로 꾸며낸 나무 합판이 와지끈 넘어가자 그 뒷 배경으로 민둥 벌거숭이 허허벌판이 나타난다. 귀부인들은 수건을 흔들며 혼절하고, 채플린은 모자를 살짝 들었다 놓으며 들통난 거짓 앞에서 베시시 웃는다.
모두가 가짜. 후~ 바람을 불면 날아가 버리는 판자 조각. 못 하나 빠졌다고 무너지는 세트.
설마, 그럴 리 없겠지 생각하고 속도를 줄였다.
거리가 더 좁혀지자 건물은 이제 신축 병원처럼도 보였다. 외부 주차장에 세워둔 사설 앰블런스 차량이 모두 석 대나 된다. 하얀 유니폼을 위 아래로 반듯하게 차려입은 뚱뚱한 여자가 네모난 짐꾸러미를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에게서 물건을 인수인계 받는 나이 지긋한 남자 직원도 완벽하게 표백된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심지어 운동화마저 하얗다. 멀리서 보고 있자니 꼬마 유령 캐스퍼의 심술쟁이 삼촌들이 허공으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샘은 조수석에 앉은 헤더를 곁눈질로 훔쳐봤다. 그녀는 아직 이렇다 할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눈치는 있다. 소독약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병원」운운하기엔 아직 이르겠다만, 건물 로비로 휠체어가 일렬 횡대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모양에서 샘은 이 건물의 진짜 기능이 무엇인지를 쉽게 짐작했다.

헤더가 안달하는 어린애를 야단치듯 점잖케 눈짓했다.
『맞아. 요즘 사람들 말로 은퇴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지. 시쳇말로「살아있는 퇴물들의 밤」이랄까. 나이 지긋한 노인들만 모여 사는 곳이야.』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의 제목을 비틀어 표현하면서 저쪽으로 떨어진 곳으로 차를 몰고 가라고 방향을 지시했다. 이미 사전에 여러번 와봤던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도 지리에 익숙했다. 머뭇거림이라는게 없다. 이쪽, 혹은 저쪽이라고 간단히 신호하며 능숙능란하게 숨어들어갈 공간을 찾아냈다.
『여기.』
『이곳?』
『뒤로 돌아 세워. 옳지.』
헤더의 말대로 후진하여 후미진 곳으로 차를 세우면서 고개를 길게 빼봤다. 헤에,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자리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늘어진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완벽한 위장이 되어주었다. 근방으로 가로등도 없어 이 상태라면 얼굴에 일부러 검댕을 칠하지 않더라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겠다. 차량의 색상도 검정이겠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끄자 순식간에 그 존재감이 어둠에 묻혀 지워졌다.

『차는 이곳에 세워두고 올라가자. 정문으로의 접근은 안돼. 그쪽에선 경비원이 일일이 방문자의 이름과 방문 시각을 적고 본인의 싸인을 받아. 게다가 이런 시간에 아들이 손녀를 데리고 할머니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아마 IQ가 한 자리수의 가엾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말이 사실이라고는 안 믿어줄 거야.』
『잠깐! 누가 손녀고, 누가 아들... 이, 이봐! 설정상 네가 내 딸이 되는 거야?』
『CCTV를 피해야 하니까 한참 돌아서 가야 해. 이쪽으로.』
『무리야, 그건! 14년 전의 내 나이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를 만들기는커녕 여자 친구랑 뽀뽀도 못 해봤을 때라고.』
『뭘 듣고 있었나. 거 무지 답답하네. 거기서 왜 정색을 하는 거니. 그러니까 정문으로는 안 들어갈 거라고 한 거잖아. 정말이지 넌 짜증스런 성격이구나.』
차가운 눈으로 째려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비 절감 문제로 외곽에 설치된 CCTV는 한정적이다. 따라서 감시 카메라에 안 찍히고도 건물 앞으로의 접근은 충분히 가능하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제법 머리를 굴려야 한다. 머리를 굴리기만 해야 하던가, 몸은 그 곱절로 굴려야 한다.
샘을 향해 자신의 뒤를 정확히 따라오라고 단단히 주지시킨 뒤에 헤더는 겨울 바람에 얼어붙은 화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신발 자국이 흙에 찍힐까 염려하는 기척도 없다. 용감한건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다. 잠깐 기다리라는 이쪽의 부탁에도 아랑곳 없이 다리 가랑이가 찢어져라 한쪽 다리를 회색의 담벼락에 걸쳤다. 운동 신경은 제법 좋은 편이었다. 체구가 작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엉덩이를 들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발도장 어쩌고는 잊는게 낫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샘 역시 허겁지겁 콘크리트 격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어익후.
바깥쪽에선 1m가 조금 넘는 블록이 안쪽에선 그 깊이가 3m 남짓이나 되었다. 경사진 언덕을 수평으로 깎아 도로를 낸 탓에 안과 밖의 높이가 서로 상이하게 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현기증을 일으켰다. 건너편으로 무작정 뛰어내리려니 망설여진다. 더도 말고 딱 2층 높이다. 저 바닥이 어쩐지 까마득히 멀어 샘은 추락의 공포를 느꼈다. 이걸 헤더는 아무렇지도 않게 뛰었다는 건가. 정말이지 독한 여자다.

『뭘 어물거리는 거야. 서둘러, 고릴라!』
『나는 고릴라가 아니야.』
『알았어, 오랑우탄.』
말이나 못 해야 예쁘지.
종용하는 헤더의 목소리에 발목이 사큰거리는 걸 각오하고 투박한 모양새로 착지했다.

『여기서부터는 자세를 많이 낮춰야 할 거다. 건물 벽에 바짝 붙어서 잘 따라오도록.』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며 시키는대로 했다.
『꽤나 여러번 와봤던 모양이군.』
『사전 답사는 충분히 하자는게 내 철칙이야. 보여? 오른쪽으로 다섯 번째 창문이 안전 장치가 망가져 있어. 그리로 들어가자.』
『와... 상세하게도 알고 있군. 이건 사전 답사 수준이 아닌데.』
헤더는 천천히 손가락을 세었다.
『면회를 왔다고 얘기하고 들어와본 것이 두 번. 여기 근무하는 의사 선생님의 딸이라고 속여먹고 돌아다닌게 한 번.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옥상에도 올라가봤지. 덧붙여 말하자면 그 뇌물이라는 건 캔디바였어. 이럴 적엔 열 네 살의 외모라는게 아주 요긴해지더군.』
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 존이라면 무어라 말 했을까. 배울 점이 많다고 감탄하진 않았을까.

3개동은 일반 거주 시설이라고 한다. 혼자서 식사 준비나 목욕을 할 수 있고, 간단히 방 청소를 할 수 있는 기력을 가진 노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일종의 임대형 아파트로, 약간의 위락 시설을 끼고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가 되어 있었다. 자갈로 포장된 산책로와 테니스장, 그리고 그네가 있었다.
샘은 방치된 테니스장을「이건 농담 맞지?」라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실제로도 테니스장은 격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로서가 아니라, 버려진 공터로밖엔 안 보였다. 흙물이 들어 아무렇게나 굴러더니는 노란 공이 흉물스러웠다. 직원들이 저기서 테니스를 치면 할머니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모르겠다. 헤더의 설명으로는 지하 1층으로도 실내 헬스장이 있다는데 과연 이용하는 입주민들이 있을련지 의문이다. 노인들은 원래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법이다. 아니면 자전거라던가, 역기라던가 하는 것 말고 딘이 좋아하는「매직 핑거」같은 기계가 안마기로 위장하고 놓여져 있는 건가? 샘은 덜덜덜 진동하는 침대에 누워「어, 시원하다~」를 외치는 할아버지를 상상하곤 얼굴을 찡그렸다.

교통 정리를 하는 경관의 표정으로 헤더가 나머지 설명을 덧붙였다.
『나머지 2개동은 병원을 겸한 입원실이야. 상주 직원들의 숙소 또한 이곳에 있어. 죽을 날이 다가와 거동이 불편해진 노인들이「환자」의 타이틀을 쓰고 이곳으로 옮겨오지. 몸은 건강하지만 증상이 심한 치매 환자들은 아래층에, 머리는 멀쩡한데 사지가 맛이 간 환자들은 윗층에... 대충 이런 식이야.』
역시 여러번 뒤지고 돌아다닌 솜씨다. 머뭇거림 없이 직원용 승강기를 타고 4층까지 올라갔다가, 세탁실로 향하는 복도를 통해 10m 가량을 걸었다. 다시 비상 계단으로 나와서는 작동이 영 신통찮은 감시 카메라가 여전히 수리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에 총총 걸음으로 6층까지 올라갔다. 뒷구멍 조사는 그야말로 철저해서 내통자가 적군에게 돈을 받고 성안 내부 지도를 팔지는 않았나 싶을 지경이었다.

복도를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없음을 거듭 살피고 헤더가 짧게 휘파람을 불어 신호했다.
『이쪽.』
그녀가 눈짓으로 가리킨 608호의 입구에는 다음의 이름으로 명패가 걸려 있었다.
「미하일 요하넨버그」
솔직히 말하겠다.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샘은 짐짓 뒤로 물러서는 동작을 취했다.

『본명은 귄터 베르겔트. 오랫동안 찾고 있었다.』
『그 사람이지? 당신을 강간했다는 나치... 그 남자 맞지?』
『이봐? 윈체스터. 당신이 강간당한게 아니잖아. 뭘 겁내는 거야. 개나 돼지 취급을 당한 건 바로 나야. 왜 얼굴을 굳히고 그래. 아님 저 방에 마귀처럼 머리에 뿔 달린 남자가 뜨겁게 석탄을 태워가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삼지창으로 무장하고 너는 누구냐고 야단이라도 칠까봐?』
그녀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킬킬거렸다.
샘은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시선을 피했다.
『틀려. 저 사람이 겁나서 그러는게 아니야. 앞으로 당신이 저 남자에게 할 짓이 마음에 걸려서 그래. 당신... 죽일 거잖아, 저 사람을.』
『응. 신을 대신하여 심판한다.』
『헤더.』
『무서우면 동석하지 않아도 된다. 이대로 밖에서 기다리겠나.』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난 뒤, 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화로 장식된 꽃병이 초라했다. 목욕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고 방치된 탓에 배설물의 악취가 섞인 역한 체취가 느껴졌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 바짝 말라붙은 노인은 너무도 약해보여서 샘이 주먹으로 한대 치면 그대로 숨이 끊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1인용 침대가 만주벌판으로 보일 지경이다. 노인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가냘픈 색색 소리를 내며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편안치 않은 듯, 기진맥진하여 끙끙 신음했다.

헤더는 침대의 오른편으로 가서 가만히 노인의 손을 만졌다.
나이 탓에 흐려진 회색의 눈이 사람 체온에 반응하여 슬그머니 떠졌다.
헤더는 침착한 목소리로 이사야 47장 10절에서 11절의 성경 구절을 암송했다.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노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 야밤에 갑자기 아는 척을 하는 당신은 누구냐고 진심으로 묻는 것 같았다. 노인의 허깨비를 닮은 얇은 가슴이 힘겹게 올라갔다 다시 내려갔다.
헤더는 노인의 손을 더욱 힘 주어 잡았다.
『귄터.』
그동안 숨겨왔던 본명이 불리워지자 노인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런데 그게 무섭다거나, 두렵다는 쪽이 아니었다. 샘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환했다.
『아, 아아...!! 드디어... 드디어...!!』
『생각 나?』
『나고 말고, 여지껏 지금 이 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소.』
노인이 확인하듯 헤더의 오른손을 잡고 손가락을 헤아렸다. 그 손가락이 모두 여섯임을 확인하고나자 놀랍게도 그는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헤더... 헤더. 그게 당신의 이름이었지.』
『기억하는군.』
『당신은 아름다웠지. 지금도 변함 없이 아름답군. 천사가 되면... 모두 그렇게 되는 건가.』
질문에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나는 천사가 아니야, 귄터.』
『그치만 하느님의 사자잖소... 마침내 나의 기도에 응답하여 내려온... 콜록. 그렇지?』
그는 확신에 가득차 다시금 편안한 웃음을 흘렸다.

Posted by 미야

2007/03/27 21:23 2007/03/2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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