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judgment 19

※ 딘이 흘린 눈물 한 방울에 보기 좋게 격침, 반짝반짝 라이징 썬 모드를 회복하려면 제법 시일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종결부 진입입니다.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멀리서 보면 5개 동의 신축 아파트 건물로도 보인다. 할로겐 외부 조명등과 산뜻하게 칠해진 밝은 계란색 페인트가 잘 정돈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차를 몰고 가는 내내 주변으로 늦은 퇴근으로 녹초가 된 직장인들의 구부정한 어깨가 눈에 띄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위해 외출을 서두르는 젊은 커플도 나타나지 않았다. 불만 환하게 켜졌을 뿐, 인기척이 완전히 지워진 건물은 흡사 텅 비어버린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안내 표지판에 따라 왼편으로 자동차 핸들을 돌리던 샘은 오래된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마법사의 감쪽같은 눈속임으로 꾸며낸 나무 합판이 와지끈 넘어가자 그 뒷 배경으로 민둥 벌거숭이 허허벌판이 나타난다. 귀부인들은 수건을 흔들며 혼절하고, 채플린은 모자를 살짝 들었다 놓으며 들통난 거짓 앞에서 베시시 웃는다.
모두가 가짜. 후~ 바람을 불면 날아가 버리는 판자 조각. 못 하나 빠졌다고 무너지는 세트.
설마, 그럴 리 없겠지 생각하고 속도를 줄였다.
거리가 더 좁혀지자 건물은 이제 신축 병원처럼도 보였다. 외부 주차장에 세워둔 사설 앰블런스 차량이 모두 석 대나 된다. 하얀 유니폼을 위 아래로 반듯하게 차려입은 뚱뚱한 여자가 네모난 짐꾸러미를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에게서 물건을 인수인계 받는 나이 지긋한 남자 직원도 완벽하게 표백된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심지어 운동화마저 하얗다. 멀리서 보고 있자니 꼬마 유령 캐스퍼의 심술쟁이 삼촌들이 허공으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샘은 조수석에 앉은 헤더를 곁눈질로 훔쳐봤다. 그녀는 아직 이렇다 할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눈치는 있다. 소독약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병원」운운하기엔 아직 이르겠다만, 건물 로비로 휠체어가 일렬 횡대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모양에서 샘은 이 건물의 진짜 기능이 무엇인지를 쉽게 짐작했다.

헤더가 안달하는 어린애를 야단치듯 점잖케 눈짓했다.
『맞아. 요즘 사람들 말로 은퇴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지. 시쳇말로「살아있는 퇴물들의 밤」이랄까. 나이 지긋한 노인들만 모여 사는 곳이야.』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의 제목을 비틀어 표현하면서 저쪽으로 떨어진 곳으로 차를 몰고 가라고 방향을 지시했다. 이미 사전에 여러번 와봤던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도 지리에 익숙했다. 머뭇거림이라는게 없다. 이쪽, 혹은 저쪽이라고 간단히 신호하며 능숙능란하게 숨어들어갈 공간을 찾아냈다.
『여기.』
『이곳?』
『뒤로 돌아 세워. 옳지.』
헤더의 말대로 후진하여 후미진 곳으로 차를 세우면서 고개를 길게 빼봤다. 헤에,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자리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늘어진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완벽한 위장이 되어주었다. 근방으로 가로등도 없어 이 상태라면 얼굴에 일부러 검댕을 칠하지 않더라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겠다. 차량의 색상도 검정이겠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끄자 순식간에 그 존재감이 어둠에 묻혀 지워졌다.

『차는 이곳에 세워두고 올라가자. 정문으로의 접근은 안돼. 그쪽에선 경비원이 일일이 방문자의 이름과 방문 시각을 적고 본인의 싸인을 받아. 게다가 이런 시간에 아들이 손녀를 데리고 할머니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아마 IQ가 한 자리수의 가엾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말이 사실이라고는 안 믿어줄 거야.』
『잠깐! 누가 손녀고, 누가 아들... 이, 이봐! 설정상 네가 내 딸이 되는 거야?』
『CCTV를 피해야 하니까 한참 돌아서 가야 해. 이쪽으로.』
『무리야, 그건! 14년 전의 내 나이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를 만들기는커녕 여자 친구랑 뽀뽀도 못 해봤을 때라고.』
『뭘 듣고 있었나. 거 무지 답답하네. 거기서 왜 정색을 하는 거니. 그러니까 정문으로는 안 들어갈 거라고 한 거잖아. 정말이지 넌 짜증스런 성격이구나.』
차가운 눈으로 째려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비 절감 문제로 외곽에 설치된 CCTV는 한정적이다. 따라서 감시 카메라에 안 찍히고도 건물 앞으로의 접근은 충분히 가능하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제법 머리를 굴려야 한다. 머리를 굴리기만 해야 하던가, 몸은 그 곱절로 굴려야 한다.
샘을 향해 자신의 뒤를 정확히 따라오라고 단단히 주지시킨 뒤에 헤더는 겨울 바람에 얼어붙은 화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신발 자국이 흙에 찍힐까 염려하는 기척도 없다. 용감한건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다. 잠깐 기다리라는 이쪽의 부탁에도 아랑곳 없이 다리 가랑이가 찢어져라 한쪽 다리를 회색의 담벼락에 걸쳤다. 운동 신경은 제법 좋은 편이었다. 체구가 작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엉덩이를 들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발도장 어쩌고는 잊는게 낫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샘 역시 허겁지겁 콘크리트 격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어익후.
바깥쪽에선 1m가 조금 넘는 블록이 안쪽에선 그 깊이가 3m 남짓이나 되었다. 경사진 언덕을 수평으로 깎아 도로를 낸 탓에 안과 밖의 높이가 서로 상이하게 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현기증을 일으켰다. 건너편으로 무작정 뛰어내리려니 망설여진다. 더도 말고 딱 2층 높이다. 저 바닥이 어쩐지 까마득히 멀어 샘은 추락의 공포를 느꼈다. 이걸 헤더는 아무렇지도 않게 뛰었다는 건가. 정말이지 독한 여자다.

『뭘 어물거리는 거야. 서둘러, 고릴라!』
『나는 고릴라가 아니야.』
『알았어, 오랑우탄.』
말이나 못 해야 예쁘지.
종용하는 헤더의 목소리에 발목이 사큰거리는 걸 각오하고 투박한 모양새로 착지했다.

『여기서부터는 자세를 많이 낮춰야 할 거다. 건물 벽에 바짝 붙어서 잘 따라오도록.』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며 시키는대로 했다.
『꽤나 여러번 와봤던 모양이군.』
『사전 답사는 충분히 하자는게 내 철칙이야. 보여? 오른쪽으로 다섯 번째 창문이 안전 장치가 망가져 있어. 그리로 들어가자.』
『와... 상세하게도 알고 있군. 이건 사전 답사 수준이 아닌데.』
헤더는 천천히 손가락을 세었다.
『면회를 왔다고 얘기하고 들어와본 것이 두 번. 여기 근무하는 의사 선생님의 딸이라고 속여먹고 돌아다닌게 한 번.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옥상에도 올라가봤지. 덧붙여 말하자면 그 뇌물이라는 건 캔디바였어. 이럴 적엔 열 네 살의 외모라는게 아주 요긴해지더군.』
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 존이라면 무어라 말 했을까. 배울 점이 많다고 감탄하진 않았을까.

3개동은 일반 거주 시설이라고 한다. 혼자서 식사 준비나 목욕을 할 수 있고, 간단히 방 청소를 할 수 있는 기력을 가진 노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일종의 임대형 아파트로, 약간의 위락 시설을 끼고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가 되어 있었다. 자갈로 포장된 산책로와 테니스장, 그리고 그네가 있었다.
샘은 방치된 테니스장을「이건 농담 맞지?」라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실제로도 테니스장은 격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로서가 아니라, 버려진 공터로밖엔 안 보였다. 흙물이 들어 아무렇게나 굴러더니는 노란 공이 흉물스러웠다. 직원들이 저기서 테니스를 치면 할머니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모르겠다. 헤더의 설명으로는 지하 1층으로도 실내 헬스장이 있다는데 과연 이용하는 입주민들이 있을련지 의문이다. 노인들은 원래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법이다. 아니면 자전거라던가, 역기라던가 하는 것 말고 딘이 좋아하는「매직 핑거」같은 기계가 안마기로 위장하고 놓여져 있는 건가? 샘은 덜덜덜 진동하는 침대에 누워「어, 시원하다~」를 외치는 할아버지를 상상하곤 얼굴을 찡그렸다.

교통 정리를 하는 경관의 표정으로 헤더가 나머지 설명을 덧붙였다.
『나머지 2개동은 병원을 겸한 입원실이야. 상주 직원들의 숙소 또한 이곳에 있어. 죽을 날이 다가와 거동이 불편해진 노인들이「환자」의 타이틀을 쓰고 이곳으로 옮겨오지. 몸은 건강하지만 증상이 심한 치매 환자들은 아래층에, 머리는 멀쩡한데 사지가 맛이 간 환자들은 윗층에... 대충 이런 식이야.』
역시 여러번 뒤지고 돌아다닌 솜씨다. 머뭇거림 없이 직원용 승강기를 타고 4층까지 올라갔다가, 세탁실로 향하는 복도를 통해 10m 가량을 걸었다. 다시 비상 계단으로 나와서는 작동이 영 신통찮은 감시 카메라가 여전히 수리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에 총총 걸음으로 6층까지 올라갔다. 뒷구멍 조사는 그야말로 철저해서 내통자가 적군에게 돈을 받고 성안 내부 지도를 팔지는 않았나 싶을 지경이었다.

복도를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없음을 거듭 살피고 헤더가 짧게 휘파람을 불어 신호했다.
『이쪽.』
그녀가 눈짓으로 가리킨 608호의 입구에는 다음의 이름으로 명패가 걸려 있었다.
「미하일 요하넨버그」
솔직히 말하겠다.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샘은 짐짓 뒤로 물러서는 동작을 취했다.

『본명은 귄터 베르겔트. 오랫동안 찾고 있었다.』
『그 사람이지? 당신을 강간했다는 나치... 그 남자 맞지?』
『이봐? 윈체스터. 당신이 강간당한게 아니잖아. 뭘 겁내는 거야. 개나 돼지 취급을 당한 건 바로 나야. 왜 얼굴을 굳히고 그래. 아님 저 방에 마귀처럼 머리에 뿔 달린 남자가 뜨겁게 석탄을 태워가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삼지창으로 무장하고 너는 누구냐고 야단이라도 칠까봐?』
그녀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킬킬거렸다.
샘은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시선을 피했다.
『틀려. 저 사람이 겁나서 그러는게 아니야. 앞으로 당신이 저 남자에게 할 짓이 마음에 걸려서 그래. 당신... 죽일 거잖아, 저 사람을.』
『응. 신을 대신하여 심판한다.』
『헤더.』
『무서우면 동석하지 않아도 된다. 이대로 밖에서 기다리겠나.』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난 뒤, 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화로 장식된 꽃병이 초라했다. 목욕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고 방치된 탓에 배설물의 악취가 섞인 역한 체취가 느껴졌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 바짝 말라붙은 노인은 너무도 약해보여서 샘이 주먹으로 한대 치면 그대로 숨이 끊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1인용 침대가 만주벌판으로 보일 지경이다. 노인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가냘픈 색색 소리를 내며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편안치 않은 듯, 기진맥진하여 끙끙 신음했다.

헤더는 침대의 오른편으로 가서 가만히 노인의 손을 만졌다.
나이 탓에 흐려진 회색의 눈이 사람 체온에 반응하여 슬그머니 떠졌다.
헤더는 침착한 목소리로 이사야 47장 10절에서 11절의 성경 구절을 암송했다.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노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 야밤에 갑자기 아는 척을 하는 당신은 누구냐고 진심으로 묻는 것 같았다. 노인의 허깨비를 닮은 얇은 가슴이 힘겹게 올라갔다 다시 내려갔다.
헤더는 노인의 손을 더욱 힘 주어 잡았다.
『귄터.』
그동안 숨겨왔던 본명이 불리워지자 노인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런데 그게 무섭다거나, 두렵다는 쪽이 아니었다. 샘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환했다.
『아, 아아...!! 드디어... 드디어...!!』
『생각 나?』
『나고 말고, 여지껏 지금 이 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소.』
노인이 확인하듯 헤더의 오른손을 잡고 손가락을 헤아렸다. 그 손가락이 모두 여섯임을 확인하고나자 놀랍게도 그는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헤더... 헤더. 그게 당신의 이름이었지.』
『기억하는군.』
『당신은 아름다웠지. 지금도 변함 없이 아름답군. 천사가 되면... 모두 그렇게 되는 건가.』
질문에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나는 천사가 아니야, 귄터.』
『그치만 하느님의 사자잖소... 마침내 나의 기도에 응답하여 내려온... 콜록. 그렇지?』
그는 확신에 가득차 다시금 편안한 웃음을 흘렸다.

Posted by 미야

2007/03/27 21:23 2007/03/2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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