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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은 = 엄마다.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어쩌면 어딘가의 창문이 열여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빠의 가르침이 워낙에 강경한지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문단속을 철저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적다는 가설은 그렇다 치자. 이가 딱딱 맞물릴 정도로 추웠다. 바닥에서부터 찬 바람이 올라와 파충류의 혓바닥인양 몸을 핥았다. 덕분에 서리를 맞은 잎사귀가 되어 누렇게 시들 지경이다.
그렇다고 해도 딘은 쉬이 깨어나지 않았다. 일단 잠들면 시체 - 누가 가까이 와서 어깨를 흔들지 않는 이상 그의 의식이「번개처럼 빨리 - 프리 패스」표를 끊고 현실로 재빨리 돌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감각이 둔하다고 존에게 핀잔을 듣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물쇠가 돌아가는 달각 소리만 나도 긴장하여 깨어나는 막내와는 달리 존의 첫째 아들은 옆집에서 격렬한 부부싸움 끝에「불이야~!」소리를 질렀어도 눈을 뜨려 하지 않았다.
『딘... 딘.』
혹자는 건강의 징표라고도 한다. 한참 크는 성장기 어린이답게 여러 번 이름을 불러가며 재촉을 해야 어렵게 깨어났다.

『우.., 지금 몇 시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새미. 물 마시고 싶어서 그러니?』
눈꼽이 붙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아직 한밤중이다. 주변이 새카맣다. 아침이 되려면 멀었다. 미키 마우스 캐릭터가 그려진 손목시계를 내려다보고 새벽 2시라는 걸 확인한 딘은 커다란 베개라는 소품을 품에 안고 나타난 어린 동생이 영 못마땅했다. 나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겠니, 형은 대단히 피곤하단다 - 라는 말이 목에 걸렸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놈의 자식이 혼자서는 냉장고도 못 여는 건가 싶어 미워졌다.

『아니. 목 마르지 않아.』
『그럼 거 뭐시다냐... 화장실 가고 싶어?』
샘은 특유의 뾰로통한 얼굴로 안절부절해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밖에 비 오냐? 천둥이라도 쳤어?』
『아니.』
『나쁜 꿈이라도 꾼 거야?』
『아니.』
『벽장에서 부기맨이 어흥, 해가며 튀어나왔어?』
샘은 대답을 회피하고 강아지 눈빛을 했다.

그 애원의 눈초리에 기가 막혔다. 1번도, 2번도, 3번도 아니라면 답은 하나다. 몸과 머리와의 회선 연결이 그럭저럭 정상화되자 딘은 나쁜 짓을 한 어린이는 꾸중받아야 마땅하다며 콘크리트 저리가라로 표정을 굳혔다.
『너도 이제 다 큰 어른이라고. 벌써 일곱 살이나 되었잖아. 남자답게 굴어. 네 침대로 당장 돌아가.』
『그치만... 춥고... 쓸쓸해. 같이 자면 안 돼?』
희망의 여부를 실터럭만큼도 남기지 않기 위해 칼 같이 잘랐다.
『안 돼.』
『그럼 딱 1시간만. 응? 딱 1시간만 같이 자.』
『지금 나랑 협상을 하자고? 10년은 빨라! 이것으로 얘기는 끝. 난 다시 잘란다.』

어리광을 계속 받아주면 버릇이 나빠진다. 어린 것이 불쌍하다 생각하는 마음에 지금처럼 한 없이 너그럽게 봐주다간 씩씩한 남동생이 아닌 머리에 리본을 묶은 여동생을 갖게 될 판국이다.
아무리 빌어도 양보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딘은 뒤돌아 누워 넓지도 않은 등으로 거부의 오라를 발산했다.
보아라, 형의 빛나는 경광등을. 접근 금지.
『딘.』
『포기해.』
그러나 이 정도로 마음을 고쳐 먹고 물러날 동생이 아니라는 걸 딘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은 이기적이었고, 악당이었으며, 누구보다 고집이 강했다. 하여 샘을 자신의 잠자리로 돌려보내려면 방법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묵사발로 만들어 폭력으로 설득하거나, 하나는 자물쇠를 채워 방안에 가둬두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대단히 효과적일 거라 딘은 생각했다. 그리고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그는 자신이 두 가지 행동 모두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가벼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것으로 무언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샘은 만족스런 신음 소리를 흘려가며 침대 위로 엉금엉금 기어올라왔다. 딘의 옆으로 몸을 뉘이고 꼼지락거리며 안겨왔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등에 닿자 피부가 간지러웠다. 딘은 울컥했다.
『야! 똥강아지!』
『춥단 말이야.』
정말로 차갑긴 했다. 지금 같아선 사람의 체온이 36.5℃라는게 거짓말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양배추 밭으로 서리가 하얗게 내리려 했다. 목덜미에 얼음 알갱이가 닿았다며 소스라치게 놀란 딘은 무의식중에 동생의 몸을 팔로 밀었다. 뭐랄까, 이건 꼭 죽은 사람의 피부처럼 꺼림직스럽다.

《추워요..........》

그래봤자 좁은 싱글용 침대에서 밀고 피하고 할 공간은 충분치 않았다. 옆으로 한 바퀴 구르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니, 정정하겠다. 반바퀴만 굴렀는데도 비탈진 낭떠러지에 엉덩이가 닿았다.
바닥으로의 수직 낙하가 달갑지 않은 관계로 몸에 힘을 빼고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딘은 얼굴 각도는 그대로 둔 채 눈동자만 아래로 굴려 코알라처럼 착 달라붙은 못난이를 쏘아봤다.
『뭐야, 이 자식. 진짜로 고드름이잖아. 네 덕분에 나까지 얼어 죽겠다.』
『이대로 꼭 붙어 있으면 금방 따뜻해질 거야.』
『쳇! 맘에 안 들어. 아무튼 딱 1시간만이다. 1시간이 지나면 네 침대로 돌아가. 알았지?』
당연히 그렇게 요구할 줄 알았다며 샘은 밝은 목소리로 선뜻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1시간 뒤에 날 깨워.』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그 대답에 딘의 입술이 한 일자로 굳어졌다.
임마. 나는 잠들면 시체라니까. 아침에도 제 시간에 맞추어 잘 일어나지 못해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에게 정확히 1시간 뒤에 깨어나는 일이 가능할 것 같냐.......... 라고 해도 연장자의 체면상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고백할 수는 없고. 그럼 뭐야. 아침까지 내내 이 자세로 잠을 자라는 거야?!
극심한 피로와 절망감으로 맥이 빠져버렸다. 팔을 둘러 가슴을 껴안은 동생이 얄밉고 짜증스러웠다.

이대로 가단 단단히 미움을 받게 생겼다고 판단한 샘이 달콤한 말로 형을 구슬르기 시작했다.
『학교에 늦지 않게 아침에 내가 깨워줄게. 시리얼에 우유도 부어주고, 토스트도 만들어줄게.「공부 열심히 하고 오세요」하고 뽀뽀도 해주고. 응?』
『얼씨구? 텔레비전에서 또 이상한 드라마를 봤나 보구먼. 계집애 같은 자식. 뭐냐, 그게. 두꺼운 닭 껍질을 대패로 밀자는 거냐? 공부 열심히 하고 오세요? 뽀뽀? 너, 그러다 고추 없어진다.』

《고추라니오. 나는 여자 아이인데요.........》

동생의 대답이 가늘고 묘한 음색과 겹쳐져 불쾌한 불협화음을 만들었다는 건 미처 깨닫지 못했다. 문장의 뜻과 내용에 충격을 받은 딘은 - 고추가 없댄다 - 손을 아래로 내려 동생의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가랑이 사이가 허전하다. 이럴 수는 없다. 잠이 확 달아났다. 당황하여 속옷 속으로 직접 손을 넣어 재차 확인에 들어갔다. 어쩌면 좋아. 만져지는게 없다. 그의 안색이 누래졌다. 없어, 없어, 없어!

『으아악! 큰일이다! 샘! 네 거시기가 없어! 없다고~!!』
잠 자다 말고 개지랄하고 있네.
보일러가 꺼진 모텔 방이 얼마나 춥던지 개꿈을 꾸어가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하얗게 눈 내린 시베리아 들판에서 닥터 지바고가 썰매를 끌고 달려가는 꿈을 꾸었다. 이대로 있다간 설원에서 조난을 당해 죽게 생긴지라 샘은 SOS 신호를 달나라까지 쏘아보냈다. 나도 그 썰매에 태워달라 손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쌀쌀맞은 오먀 샤리프는 내 알 바 아니라며 쌩 소리를 내며 샘의 곁을 지나쳤다. 그 사실에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러대고 있는데 망할 놈의 형은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충격적인 찬물을 머리 위로 부어가며 그를 못 살게 굴었다.
『으악! 샘! 네 거시기~!』
시끄러워 죽겠다. 내 거시기가 뭐. 잘만 제 자리에 붙어 있구먼.
어렵게 잠들었는데 바로 깨어나게 되어 기분이 대단히 불쾌해졌다. 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베개에서 고개를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흥분하고 있는 딘이 다시금 비명을 질러댔다. 저게 돌았나, 아님 미쳤나. 벌떡 일어나 남의 귀한 주니어가 가방을 싸들고 가출을 했다며 울부짓기 시작했다.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새미, 새미!』
샘은 잔뜩 쉰 목소리로 점잖치 못한 형을 나무랐다.
『어쩌긴. 진정하고 제발 자리에 도로 누워. 형이 멋대로 이상한 꿈을 꾸는 것까진 상관 않겠는데 사지 멀쩡한 사나이를 고자로 만들진 말아줘. 정말이지 민폐야.』
『내가 만졌다고! 만졌어! 그런데 거기가 맨질맨질했어! 다림질을 한 것처럼 맨질맨질했다고!』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내가 못 살아... 제발~!! 그만 떠들고 잠 좀 자자!』
『아냐! 이대론 못 자. 확인을 해야 해. 이건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딘!』

잠에 취한 것이 분명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온 딘이 샘의 이불을 확 들췄다. 샘이 놀라 몸을 웅크리는 것과 동시였다. 확고한 의지를 품고 두 팔을 사용해 동생의 속옷을 힘 주어 아래로 끌어내렸다. 단 한 번의 동작으로 팬티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갔다.
천장을 기어가던 쥐가 실수로 발을 헛딛고 식탁 위의 스프 그릇 속으로 다이빙을 했어도 이보단 덜 놀랬을 거다. 100년에 걸쳐 펄쩍 뛰었을 것을 일시에 경험했다. 샘은 모든게 제 자리에 있어 대단히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형의 얼굴과 차가운 공기 속에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난 자신의 사타구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음, 잘 붙어 있구나. 이 형은 안심했다.』
『지, 지... 지금 도, 도대체...!』
『큰일날 뻔했다, 새미. 난 네가 스스로 여자애라고 했을 적에 슬퍼져 울음이 나올 뻔했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를 깨닫기엔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지러지는 비명과 같이하여「야! 이 미친 놈아! 잠꼬대를 무슨 그 따위로?!」적절한 반응을 보이기까진 1분 20초 정도가 걸렸다.

『이젠 한계야. 이혼해줘.』
『뭐?』
『이혼해 달라고!』
그의 형이 아침 식사용의 팬 케이크를 주문하자마자 샘은 정색하며 덤벼들었다. 커피를 서빙하기 위해 다가온 웨이츄리스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든 말든 상관 안 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위자료는 한 푼도 안 받을게. 그러니까 닥치고 나랑 이혼만 해줘.』
『목소리를 낮춰! 그리고 우리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는 건 기억하고 있는 거니? 샘.』
단단히 화가 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생을 향해 눈총을 던졌다. 졸지에 아침 댓바람부터 사랑 싸움 중인 게이 커플로 오해를 받았다. 흥미진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웨이츄리스에게 멎적은 웃음을 팔고 - 우리들에게 관심을 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아무래도 춥게 잔 탓에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음식물이 닿아 자극을 받은 목구멍이 따끔따끔했다. 역시 근성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얼굴을 찌푸리며 커피 잔에 각설탕을 하나 넣었다. 취향이 아니라는 건 그렇다치고 단 맛이 고통을 완화시켜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아, 하고 의미 불명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렸을 적에 네 똥 기저귀를 누가 갈아줬다고 생각하니. 바로 나야. 네 머리를 감겨주고, 목욕도 시켜줬다고. 그런 이 형이 잠결에 고추 좀 봤다고 그렇게 과민 반응을 보일 것까진 없잖니.』
『과민 반응이라고 말 했어?! 말 했느냐고! 내가 지금 네 살짜리 어린애면 말을 안 해! 거기다 더하기 스무 살이라는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이라고.』
씩씩거리며 계란 후라이를 난도질하던 샘이 엄한 화풀이를 중지하고 승냥이 같은 눈빛을 치켜떴다. 소원 같아선 계란이 아니라 딘의 머리를 나이프로 찢어발기고 싶었다.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이건 너무나 추잡해서 입에 담을 수조차 없다. 세상에... 형이 내 팬티를 내리고 그걸 봤어! 쇼크를 받은 심장이 엇 박자로 뛰었다.

팬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딘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쳇. 그 까짓 것,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수선은...』
『그래? 좋아. 그럼 나에게도 딘의 걸 보여줘.』
『뭐?』
『공평하게 하자. 화장실로 가서 바지를 내리는 거야. 그리고 나에게 딘의 걸 보여줘.』
『뭐?!』
『얼굴색이 왜 파랗게 변하는 건데? 테이블에 음식 흘리지 말고. 별 거 아니라며.』
쩍 벌어진 입에서 흘러내린 부스러기를 휴지로 닦아내면서 샘은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자, 공명정대하게「남자」를 보여봐. 바지 내려.

Posted by 미야

2007/04/15 00:30 2007/04/1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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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ldlsl 2007/04/15 23:47 # M/D Reply Permalink

    푸하하하~딘이 너무 귀엽습니다~~과연 다음편에선 딘이 바지를 내리는 것일까요ㅋㅋ
    ㅋ꼬꼬마 일때도 참으로 사랑스런 윈체스터군요~저런 귀여운 형(?)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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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 루더의 가족 이야기는 지금 다루지 않아요. 쥰쥰이 좋아하는 고딕풍 내장 파이 이야기가 될 예정입니다.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근육통에 좋다는 약을 다리 종아리에 바르면서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맨날 저지른다고 그게 쉬울 성 싶냐. 신용 카드 사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자 신분을 속이고 단순 물류 운반 일용직 잡부로 취업한지 이제 만 일주일.
잔뜩 뭉친 살덩이들이 쇠심을 넣은 가죽 채찍에 맞았다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죽을 맛이다.
야밤에 삽으로 무덤도 파고, 유령에게 당해 벽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적도 있고, 돌진하는 자동차를 피해 다리 위에서 번지 점프를 한 적도 있다. 힘든 일에 어려운 상황을 어디 한 두 번 겪어봤던가. 몸뚱아리는 누구보다 튼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반복하여 무거운 상자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나는 누가 뭐래도 통뼈랍니다」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솜바지를 겹겹이 입고 풍랑 높은 바다에서 미친 듯이 헤엄을 치는 기분이다. 오른팔을 좌우로 돌리자 오래된 나무 문짝이 결이 어긋나 좌우로 뒤틀리는 우득 소리가 났다. 닌자 거북이가 곤봉으로 때렸다. 비명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5m 깊이로 땅 파기는 식은 죽 먹기라고? 미안하다. 5m가 아니라 5cm였다.

이렇게나 힘든데 8년 전에 멕시코에서 건너왔다는 푸에타리코는 불평도 없이 하루 10시간이나 현장에서 일을 한댄다. 몸집도 작은 사내가 얼마나 바지런하게 움직이던지 옆에서 딘은 저 혼자서만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을 할 지경이었다. 여기서 봤다 싶으면 어느 틈엔가 반대편으로 이동해 다시 상자를 굴리고 있다. 축지법을 쓰는 홍길동이다. 누구는 꼼짝 없이 엎어져「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요」라고 울상인데 누구는 흥분 상태의 다람쥐처럼 쌩쌩하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 듣자하니 푸에타리코는 양파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성격 좋은 그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딘이 불쌍하다며 짧은 영어 실력으로「이렇게 하면 허리를 다치지 않아」,「배가 고픈 듯한데 이리 와서 집에서 만든 샌드위치를 같이 먹겠어?」라며 호의를 보이곤 했다. 임신한 아내 사진도 보여줬다.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될 것이다.

멍한 표정으로 전원이 꺼진 새카만 TV를 응시했다.
아버지라...
고개를 흔들며 다시 아픈 다리로 눈을 내리깔았다. 침을 바르면 낫는다는 통설이 있던데. 진짠가 싶어 입에 넣고 쪽 빨아댄 손가락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아빠가 우리들에게 위조 지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면 참 좋았을텐데.』
딘의 불평에 저편에서 압박 붕대를 챙기던 샘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평소라면「진짜로 범죄자가 되고 싶은 거냐」냉정한 목소리로 면박을 주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바른 생활 사나이조차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고백을 하겠다. 사실 샘도 속으로 은근히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법의 복사기로 돈을 품팡품팡 찍어내면 얼마나 편할까.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과도 안녕이다. 구멍난 자동차 지붕만 고치는게 아니라 우주인 암스트롱이 달에 깃발을 꽂은 것처럼 신형 포르쉐 스포츠카를 구입할 수도 있다. 뭐, 그 전에 스포츠카가 형제들 취향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딘과는 달리 공사장 인부로 취업을 나간 샘은 무거운 나무 자재를 나르느라 어깨가 바스라졌다. 그 까짓 것 이러고 콧방귀를 뀐 어리석은 나를 마음껏 꾸짖어 주십시오. 막판엔 시야가 마구 흔들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달팽이 껍질은 빙글빙글」이러고 노래를 불러댔었다. 어디 아프냐며 인부 책임자가 달려와 그의 안색을 살폈을 정도다.

『힘들어... 우리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봐, 딘.』
슬퍼하는 샘의 말에 딘은 강력하게 반박했다.
『너나 그렇겠지. 난 아직 청춘이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아이고 아이고 신음하며 다리를 주무르고 계십니까?』
『틀려. 내가 지금 하는 건 지방 분해를 도와 아름다운 각선미를 갖게 만드는 피부 마사지야.』
『그랬어? 그 심오한 뜻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해. 그런데 말 나온 김에 그 훌륭한 다리 각선미를 한 번 뽐내어보면 안 될까.』
『뭐냐. 그러니까 나더러 지금 모델처럼 워킹을 하라고?』
『역시 이해가 빠르군, 딘. 바로 그거야.』

이 얘기인 즉, 모텔 방문을 누군가가 쾅쾅 두드리고 있으니 누군가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이 오밤중에 뭔 일이오. 아래층에 불이라도 났소?」라고 대꾸를 해주어야 한다는 거다.
다친 어깨를 토닥거리던 샘은 턱짓으로 손잡이 쪽을 가리켰다.
형이 열어.
당연히 딘은 고슴도치처럼 두 다리를 안으로 오므리고 앉아 완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동생이 하는 거다.
샘은「정말로 그러기야?!」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래봤자 딘은 손가락으로 양쪽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이봐요, 문 좀 열어보라니까. 이봐요!』
『쳇. 잠시만요, 곧 엽니다. 연다니까요.』
형의 권리증서 및 연장자 우대의 법이라는 걸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고된 육체 노동으로 파김치가 된 건 둘 다 똑같은데 이럴 때마다 딘은 혼자만 편해지겠다고 같지도 않은 고집을 부린다.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출입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싸구려 과일향 코롱 냄새를 풍기는 관리인을 내려다 보았다. 바나나에 살구향, 그리고 홀애비 냄새가 교묘하게 뒤섞였다.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급한 일입니다.』
마흔이 넘은 것이 분명한 이 사내는 키가 대단히 작아 그 얼굴을 보려면 한참을 고개를 숙여야 했다. 목덜미가 아파 죽겠는데 156cm의 사내와 마주보라는 거냐. 차라리 날 죽여 소리가 혀 끝에 걸렸다.

『무슨 일인데... 읏. 그러죠.』
『할 말이 있으니까... 읏. 그럽니다.』
관리인 또한 한참 높은 곳에 있는 거인을 올려다 보느라 고개를 뒤로 꺾다 못해 벌러덩 넘어질 지경이었다. 전구를 갈아끼우기 위해 사용하는 접이식 사다리가 창고에 있다. 그걸 꺼내와야 하나 고민하며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최소한 사과 궤짝은 필요하겠다. 샘의 얼굴이 멀어도 너무 멀다.
음, 옆에서 보니 아픈 목을 손으로 문지르는 두 사람의 행동이 거울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다.

『나쁜 소식이오. 형씨. 말썽을 부려대던 보일러가 드디어 맛이 갔소.』
『에... 그래서요.』
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쯧쯧! 뭘 모르니까 저런 태평스런 소리가 나오는게지. 하루치 요금을 환불을 해줄터이니 여기서 빨리 나가슈. 밤새 떨다 얼어죽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새벽엔 제법 쌀쌀해요. 난방이 꺼지면 견디기 힘들어지지. 수리공은 해가 뜨고 나서나 올 수 있으니 오늘 밤은 북극 곰과의 댄스요.』
『예?!』
『이 사람이... 영어 몰라? 쿠바 사람이야? 영업 중지라는 것이외다. 당장 체크 아웃 하세요.』
벼락을 맞았다고 해도 이렇진 않다. 갑작스런 비보에 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치만 너무 늦은 시간이고요, 지금 가방을 싸서 당장 나가기엔 상황이...』

잠든 척하고 있어도 귀는 활짝 열려 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딘은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놀라 어버버 입 벌리고 선 동생을 옆으로 밀었다.
『무리한 주문입니다. 피곤해서 못 움직여요. 게다가 이런 밤중에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이보쇼. 그럼 나더러 동태가 된 시체를 두 구나 치우라는 거요?』
남자가 손가락 두 개를 세워보이며 눈빛을 번득였다.

이미 다른 방 손님들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철새들의 대 이동을 시작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모퉁이를 도는 흑인 남자의 등이 보였다. 짜증이 난다고 악을 쓰며 그 뒤를 나이든 여자가 따라갔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갑작스런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건물 자체가 소란스러웠다. 동작이 시원찮은 승강기 포기하고 계단을 통해 걸어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희미하게 욕설이 들려왔다. 좀 떨어진 곳에서 직원이 잠긴 문을 또 두드려댔다. 숙면을 방해받은 트럭 운전사가 신경질을 부려댔다. 여차하면 멱살을 붙잡을 기세다.「어쩌라는 거야?!」라며 누군가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자, 이제는 당신들 차례요. 엑소더스 영화 감상은 끝났느냐며 팬티 차림새의 딘을 흘겨봤다.

『시체는 치울 일 없어요. 3월 초에 얼어죽는게 이상한 거지.』
『몰라서 하는 소리. 이 지역에선 4월에도 눈이 내린다오.』
『그래봤자 얼마나 내린다고. 추위 같은 건 근성으로 이겨낼 수 있어요. 내 말이 맞지? 새미.』
춥다 불평하지 않을 터이니 자신들을 그냥 내버려두라 했다. 내친 김에 하루치 방세를 딱 절반만 받으라고 하면서 웃음을 팔았다.
『근성이면 되고 말고. 우린 아직 젋거든요. 그러니까 쉭쉭. 얘기는 이걸로 끝.』
『어허라, 나중에 후회할텐데.』
『후회가 뭐죠. 후후후 하고 웃다가 회반죽에 걸려 넘어지는 건가요.』
『알았소. 얼어서 죽던지 말던지 자네들 소원대로 하시오.』
힘에 붙여 말리고 싶지도 않은 눈치다. 관리인은「명복을 빕니다」라는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팔라 지붕을 고치느라 거액을 지출하면서 세 개 먹던 샌드위치를 한 개로 줄이고 있는 판국이다. 식비마저 위협받는 마당에 - 샘이 빈혈을 일으킨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싸구려 모텔의 난방 장치가 고장났네 불평을 할 처지가 결코 아니다. 발 뻗고 누울 침대만 있으면 만족. 화장실에서 바퀴벌레 떼거리가 분노의 대탈주 영화를 촬영하는 걸 목격했어도 아무 말 안 했던 그들이다.
가방을 꾸려 여기서 얼른 나가라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더 얘기할 것 없다며 딘은 서둘러 침대로 돌아갔다. 정상적으로 움직이려면 가능한 최대한 숙면을 취해주어야 한다. 끙 소리를 내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내일은 신축 주택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인부들 집합 시간은 오전 7시다. 물론「제 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면」이란 가정이 붙긴 하지만.
엉금엉금 기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졸음이 달라붙은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자, 그럼 신사 숙녀 여러분? 싸게 취침이라는 걸 해봅시다.

『차라리 내기 당구를 하는게 낫겠어.』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샘의 혼잣말에 딘이 한쪽 눈을 슬그머니 올려떴다.
『어엉... 네가 참말로 내 동생 새미가 맞는 겨? 혹시 껍데기만 새미고 내용물은 구멍이 퓽퓽 뚫린 모짜렐라 치즈라던가 하는 거 아냐?』
『뇌에 구멍 안 뚫렸으니 안심해, 딘.』
『너라면 안심이 되겠니? 네 입으로 내기 당구가 낫겠다는 문제성 발언이 나오고 있는데. 내가 아는 새미는 절대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아. 반대로「흘리는 땀의 보람이 있어 내일도 션샤인!」이딴 소리를 읊지.』
『그런 계집애 같은 말을 잘도 하겠다.』
『녹음기 가져다 코앞에서 틀어주랴.』
『음..........』
『됐어. 잠이나 자. 몸이 피곤하니까 신념이 막 흔들리는 모양인데 네가 방황한다고 지구가 거꾸로 돌거나 하진 않을게다.』
여기까지 말하는 동안 이미 의식이 절반은 달아났다. 베개를 껴안고 황홀경에 빠진 나머지 맨 마지막 문장은「거우로 돌거나 하이 앙거든」이라 발음되었다.
생이 불만을 담아 무어라 중얼거렸다.
『지금 뭐라고 말을 하는 건지 못 알아 듣겠어, 딘... 딘?』
『옹, 형은 널 마이 살랑... 푸우.』
채 끝맺지 못 하고 딘은 곧 인사불성이 되었다.

Posted by 미야

2007/04/12 15:58 2007/04/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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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반지 어떻게 해~!! 엉엉. 슬픔에 통곡하며 1시간동안 뚝딱 제조한 정체불명의 날림 글.
전작 <judgment>와 직접 이어지기 때문에 이번 단편만 읽어서는「이게 뭔 소리랴?」가 되어버립니다. 이놈의 술집은 골디와 해왕 다루핀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마족 커피숍의 분점이 아닐까 싶군요. ※


그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문턱 가까이에 이르렀음이다.
주당들의 뺨이 흥분으로 더욱 붉어졌다. 바커신 신 만세.
반복되는 음주 행위 탓에 잉여 지방 축적이라는 고달픈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사내들은 몸무게는 그렇다치고 즐거운 표정으로 각자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무리 중 대장으로 여겨지는 자가 입으로 걸죽한 술을 뿜었다.
『이대로 있기는 그렇잖소? 우리, 환영의 파도타기를 신나게 해보십시다!』
『좋소이다!』
『피아첸차의 성 코라도께서 소중한 손님을 보내주셨네~ 사냥꾼의 수호성인에게 감사하라. 감사하라~♬』

이놈의 광경이 다 뭐란 말인가. 기분이 단단히 상한지라 문짝을 거의 부수다시피 해가며 살기등등하게 가게 안으로 진입해 들어온 딘은 단단한 벽에 부딪치기라도 한 것처럼 멈칫했다. 임신을 했나 싶을 정도로 배가 부푼 아저씨들이 한줄로 나란히 서서 파도타기라는 걸 해보이고 있다. 몸에 꽉 끼는 하얀 티셔츠 탓에 뱃살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리얼하게 드러났다. 아저씨들이 머리 높이를 맞추어 저마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할 적마다 살구색 피부들의 파도가 일렁였다.
내륙 가까운 바다의 파도 높이는 1에서 3미터. 먼 바다의 파고는 5에서 6미터.
죽은 꽁치가 춤 춘다.

피갑칠을 한 유령들만 무서운게 아니다. 중년의 아저씨들도 때로는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딘은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은으로 도금한 휴대용 술통 - 정확하게는 성수통을 꺼내들고 위협의 의미를 담아 빠르게 흔들어댔다.
『성수, 확 뿌려버린다!』
당연히 열정의 파도타기는 당장 중지되었다. 참치 뱃살들은 저마다 목을 웅크리며 딘이 쥐고 있는 물통으로 시선을 모았다. 경험으로 그것이 직접적 살상의 무기가 되어주진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꺼림직스럽다. 뒤집어쓰면 무척 아프다. 하여 무리 중 우두머리가 항의조로 외쳤다.
『너무하잖아! 우린 그저 환영의 제스츄어로...』
『비켜, 살 덩어리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파도타기를 하면 런닝 머쉰과 훌라우프 셋트를 무이자 12개월 할부로 걍 주문시켜 버린다!』
『쳇!』
『어디서 불평이야! 추가로 다이어트 요가 비디오도 주문해 버릴까.』
『알았수! 안 하면 되잖소, 안 하면!』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뱃살들은 강경한 딘의 태도에 항복을 표현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투덜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저 친구는 유머가 부족하군.』
『신경질적이기도 하고.』
『맘에 안 들어. 이게 다 꿈이라는 걸 알면 여유를 부려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나 말일세. 댑다 성수통을 꺼내들고... 버르장머리도 고약해.』
고개 돌리고 수군거려도 다 들린다, 이 자식들아. 딘은 썩은 토마토를 씹었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은 술집 바빌로니아.
결코 존재할 리 없는, 길 잃은 나그네들의 오아시스.

그렇다고 해도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방에서 풍겨나오는 갗 튀겨낸 팝콘의 냄새는 진짜 뺨친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스포츠 중계방송은 미국 전역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종류다. 뺨을 꼬집으면 아프다. 술을 마시면 코가 알딸딸해진다. 여자들은 통통하고, 치마 아래로 드러난 망사 스타킹은 죽도록 섹시하다. 분홍의 립스틱을 바른 웨이츄리스가 딘을 보고 윙크를 보내왔다.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가슴에 꽂고 - 오빠, 내 가슴 만지게 해줄게 - 벌써 작업 들어가셨다.
『여어, 딘~!! 기다렸네. 어여 오시게.』
오래된 친구인양 생색을 내는 악귀도 있겠다, 이게 꿈이라 설득하는게 오히려 더 어렵다.
딘은 내장이 문드러진다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 좀 펴. 그러다 주름살 늘겠네. 가볍게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활달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목소리였다. 흥에 겨운 표정만 봐도 속으로 다른 뜻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딘은 쉽게 이마 주름을 펴지 않았다.
『술 같은 소리! 잠결에 눈을 떠보니 얼토당토않게 넓은 대로변 한 가운데서 머리 꽁지를 박고 있었다 - 라는 줄거리에 화가 안 치밀어 오르면 그건 인간도 아니야. 이게 무슨 짓이야! 덕분에 몽유병에 걸렸다고 착각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찔했단 말이야.』
연보라색 눈동자라는 비인간적 존재를 구태여 숨기지도 않고 상대방 남자는 싱긋 웃었다.
『에이, 듣자하니 차가 망가져 수리소에 보냈다며.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걸어 오라고 한 걸세.』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어라. 그럼 뭐가 문제인가?』
시치미를 뚝 잡아떼고 네마 나타스는 병 뚜껑을 딴 맥주를 슬그머니 건냈다. 어차피 싸우자고 부른 것도 아니겠다, 초반부터 언성을 높이는 건 달갑지 않았다.
『맥주는 싫은가? 아님 동생군과 똑같은 걸로 하던지. 데킬라도 있다네.』

그 말에 골치가 백 배는 더 아파졌다. 딘은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앞뒤로 쓱쓱 문질렀다.
으아... 새미. 너마저.
샘은 술을 잘 하지 못 한다. 알콜 냄새만 맡아도 말이 많아지고 행동이 수선스러워진다. 한 마디로 실수가 는다. 그 사실을 본인도 잘 알고 있기에 샘은 술을 마시는 일에 대단히 주의를 기울인다. 혼자서는 술집에 가지 않고, 행여 마신다고 해도 낮은 도수의 알콜만 마신다.
그런데 뭐? 데킬라? 이놈이 아주 막 가자는 스토리로 놀고 계시는구먼.
넴은 턱짓으로 정신이 밖으로 외출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웅크린 곰을 가리켰다. 아닌게 아니라 진작부터 뻗어 테이블에 고개를 푹 박고 있다. 중이 염불을 외는 듯한 중얼중얼 소리가 계속되는 걸로 보아 아직 잠들지는 않았다. 눈 감고 주정을 부리고 있다.
『내가 임팔라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 씨잉. 눈에 힘주고 형이 노려봐써... 씨잉.』
맑은 콧물을 들이키는 민망한 소리가 보너스로 첨가.
『형은 나만 미워해. 그놈의 똥차가 나보다 소중하냐. 내가 훨씬 소중해! 소중하다고! 쿨쩍.』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떨어졌다. 번개가 치나. 어디선가 우르릉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천둥이 치는 건 딘의 머릿속. 못난 동생을 몽둥이로 때려 죽이기 전에 일단 확인부터 해야만 했다.
『물어보자. 저 녀석, 여기서 모두 몇 잔 마셨지.』
네마 나타스는 민망하다는 투로 멎적게 웃으며 손가락을 세 개 들어보였다.
세 잔 씩이나! 바닥이 꺼지는 듯한 절망감을 만끽했다.
『젠장맞을! 저 덩치를 무슨 재주로 업고 모텔로 돌아가라고!』
『저 정도로 알콜에 약할 거라곤 짐작을 못 해서... 미안하게 되었네.』
『으이그!』
『걱정 마시게. 여차하면 내가 모텔까지 바래다 주겠네.』
『됐어! 여기다 아예 버리고 갈테야. 빗자루로 쓸어버리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오우, 딘 윈체스터가 화났다.』

「딘 윈체스터」라는 이름에 샘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곰이 머리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랍쇼, 형?』
딘을 발견하자마자 좋아서 헤벌레 웃기부터 하고 있다.
역시나 술주정뱅이.
『형아, 형아. 이리 와서 옆에 앉아라. 나랑 노래 부르자. 응? 노래 부르자~』
그리고는 자기가 먼저 큰 소리로 유행가 비슷한 - 그래봤자 그게 노래인지 확신할 수 없는, 하여간 이상망칙한 그 무엇인가를 목 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후렴구가 후룰랄라 어쩌고다. 설마, 스머프의 요들송인 건 아니겠지... 딘의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형, 노래 부르자. 응? 응?』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다. 딘은「저건 나완 상관 없는 놈이예요」라는 표정으로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고 말고. 상관 없는 녀석이다. 모르는 사람이다.
『혀엉~ 왜 그래. 어째서 머리를 그러케 흔들고 이써.』
『안 흔들고 있다! 네 녀석이 몸통을 좌우로 흔들고 있는 거지!』
『히잉. 왜 소리 지르고 그래. 화 내지 마, 화 내면 싫어.』
『징그럽다!』
『기분 안 좋아? 그럼 내가 기분 좋게 해주까? 응? 응?』
『어디다 주둥이를 내밀어! 망할 술주정뱅이! 그냥 엎어져 있어!』
맥주병으로 동생의 정수리를 내려칠 수는 없다. 그래서 주먹으로 때리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따콩.
타격을 받은 곰이 다시 머리를 테이블에 박았다.

『살벌하네.』
동생을 가차없이 응징하는 걸 지켜본 넴이 짤막하게 감상 한 구절을 읊었다.
『흥! 어차피 내 동생이니 당신은 신경 꺼.』
『그래도 형씨가 마구 소리를 질러대니까 조금은 가여워져서...』
다 듣지 않고 딘이 투덜거렸다.
『애시당초 이 녀석까지 불러들인 당신이 잘못한 거야. 거기다 뭐야, 술까지 먹여놓고.』
『그게 막내씨 요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형에게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우울해 하더라고. 우리 예쁜 마누라 탓도 있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겠다 싶어서...』
『댁은 사람도 아니잖아.』
『말 하자면 그렇다는 걸세.』
『됐어. 술은 필요 없어. 그러니 괜찮은 여자나 소개해줘.』
『헉!』
『저쪽의 예쁜 언니 이름은 뭐지?』

무서운 놈.
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코를 만지작대는 딘을 쳐다보았다. 장난치고는 진지하고, 농담치고는 뼈가 있다. 가게 안에 있는 자들 대다수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수작을 걸겠다는 건가. 망사 스타킹의 그녀를 곁눈질하며「좋다, 좋다」이러고 있다. 넴은 턱을 괴고 아이고 한탄했다.
『글세. 소개는 해줄 수 있네만...』
『오!』
『관두는게 좋아. 진작에 자네가 권총을 잘못 발사해 머리통을 깨부순 여자가 바로 저 여자야. 지금은 망가진 몸을 버리고 다른 몸으로 갈아탔지. 얼굴이 바뀌어서 잘 몰랐나 보군.』
『윽!』
미안합니다. 예전 발언은 취소하겠습니다. 여자요? 안 필요합니다.
입안이 바짝 탔다. 한 모금의 맥주를 삼켰지만 갈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니. 인간 하나와 악마 하나는 잠시 침묵했다.

한참만에야 딘이 입을 떼었다.
『설마, 저 망할 여자의 새 몸뚱아리를 감상하라고 이리 부른 건 아니겠고...』
『아, 그건 아닐세. 이걸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
넴은 품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딘에게 건내주었다.

수 십명의 노인들이 정장으로 차려입고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게중엔 아는 얼굴도 몇 있었다. 지긋이 뒷짐을 지고 선 노인은 마이클 프레데닉이다. 지팡이를 쥔 노파는 스텔라. 넥타이를 과감히 생략한 오겐도 보였다. 예술가라 이건가. 양복 속에 입은 건 우습게도 검정색 T-셔츠다.
그들 한 가운데로 감청색 드레스를 입은 10대 소녀가 샴페인 잔을 쥐고 서있다. 긴장을 해서 그런가, 표정이 뻣뻣하다. 그래도 아주 어둡지는 않다. 눈빛이 밝다. 모두로부터 사랑을 받는 귀중한 소녀는 금방에라도 불쑥 얼굴을 돌리고 야릇하게 미소를 머금을 것처럼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녀의 성인식을 축하하기 위해 친척들이 모두 모였구나 싶은 광경이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실상은 이 소녀가 모인 사람들 중에 가장 연장자다. 그녀는「어머니」다.

『행복해 보이는군.』
어쩐지 안심한 것 같은 딘의 말에 넴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좋아하는 자식들 앞에서 기쁘지 않을 어미는 없지 않겠는가.』
『아아. 잘 되었군.』
정말이다. 잘 되었다.

사진을 도로 치우면서 넴이 가볍게 하아 호흡했다.
『진짜야. 자네에게 신세를 졌네, 딘 윈체스터.』
『쉿쉿~ 신세를 졌다는 걸 안다면 다신 우리들 형제 앞에 나타나지 마.』
『흥! 차갑긴.』
『우리가 헌터라는 걸 잊지 말라구. 여차하면 이곳을 쓸어버릴 수도 있어.』
『헤에,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못 할 것 같냐!』
『쯧쯧... 진정하라고, 형씨. 저기서 잠들어 있는 동생이 깨겠어.』

여기까지 말한 넴은 곱게 두 번 접은 메모지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건?』
『일종의 보답이라 생각하게.』
『어엉?』
『미래를 위해 읽어두는게 좋아. 보고 나선 찢어버리게. 내가 일러바쳤다고 알려지면 곤란하거든. 그럼... 난 다른 볼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네. 돌아가는 길은 알지? 오늘 마시는 술은 내가 사는 거니까 맘껏 즐기게. 자, 그럼.』

의심하며 메모지를 펴보았다.
- 뱀파이어 루더의 가족이 복수를 하고자 한다
흥 소리를 내며 딘은 악마가 찔러준 메모지를 박박 찢어 버렸다.

『야, 새미! 일어나!』
『나, 무지 졸린데...』
『이 형님이 흥이 깨졌다. 퍼질러 자지 말고 노래 불러, 자식아.』
『엉. 무슨 노래 부를까.』
『스머프 주제곡이라도 괜찮으니까 불러.』
『요르레이 요르레이 후~』

Posted by 미야

2007/04/10 19:10 2007/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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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플밀크 2007/04/11 07:30 # M/D Reply Permalink

    골디와 해왕 다루핀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마족 커피숍의 분점 ... (푸푸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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