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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09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건전지향이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당했다고 항의하셔도 전 모릅니다. 어익후 싶으면 재빨리 마우스를 움직여 윈도우를 닫는 당신의 멋진 센스를 보여주세요. ※


이름이 베로니카인지 스테파니인지... 하여간 딘이 질색하는 전갈좌의 여자이거나, 감히 얼굴을 쳐다보기가 두려워질 지경의 엄청난 박색인가 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잔인하기로 소문난 마피아 두목의 애인 정도는 되는 모양이라고 샘은 생각했다.
물론 원하지 않았음에도 실수로 여자를 임신시킨 남자의 대부분이 책임을 회피하며「걸음아 나 살려라」를 외치고 달아나곤 한다. 친부 확인을 위한 DNA 검사에 필요하다며 면봉으로 입안을 닦으려는 걸 한사코 거부하며「이건 꿈이야~!」절규한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딘이 보이는 반응은「생화학전 발생시 대처요령」을 너무도 닮아 옆에서 지켜보기가 대단히 민망했다.

한 모텔에서 하룻밤 이상을 보내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곧바로 결재를 취소하고 다음 모텔로 발걸음을 옮기는 황당한 짓도 두어 번 저질렀다. 그야말로 돈이 썩어나는 짓이었다.
부정 발급받은 신용카드 다섯 장을 산뜻한 마음가짐으로 가위로 잘라버렸다.
사용하던 핸드폰을 정지시키고 배터리를 빼버렸다. 대신 일회용 핸드폰을 현금을 주고 사왔다.
기껏해봤자 콜라와 햄버거를 사러 가는 주제에 허리 뒷춤으로 권총을 끼고 나갔다.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같은 경로로 한 번 이상 걷지 않았다. 자동차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식당 테이블에 앉을 적엔 유리창 가까운 곳에 앉으려 하지 않았다. 뒷문이 가까우면 더욱 좋다.
이동의 무작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사위를 던져 다음 목적지를 결정했다.

슬슬 짜증이 치솟았다. 차라리 속 편하게「내가 미워 죽을 지경이라는 거 잘 알거든? 그러니까 날 죽도록 패는 걸로 끝내자. 전치 5주까지 허용해줄게」라고 자수하는게 남자답지 않을까 싶다. 동생이 엿듣지 못하도록 화장실에 꼭꼭 숨어 - 심지어 콸콸 물소리가 나도록 수도꼭지까지 세게 틀어놓았다 - 누군가와 15분여간 전화 통화를 하고 나온 딘을 죽어라 쏘아보면서 속으로 욕이란 욕은 죄다 퍼부어댔다.
진짜지 나쁜 놈이다. 게다가 칠칠맞다. 어떻게 하룻밤 상대와 뒹굴면서 콘돔 끼는 걸 잊어먹냐.
그래, 핸드폰 너머로 무료 법률 상담소의 변호사는 조언이랍시고 무어라 지껄이셨는지? 샘은 넌더리를 내며 허리로 손을 얹었다. 퉁명스런 목소리로 귀찮은 기색을 감추지도 않은 채《잘 하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계속 달아나십시오》라고 했다면 그 자질이 의심스럽다. 아울러 그 엉터리 조언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딘의 정신 상태 또한 의심스럽다.

『뭐? 내가 뭘 잊었다고?』
수도꼭지를 도로 잠구고 화장실에서 나온 딘은 냉장고에서 나물 반찬이 구더기와 합창하며 썩어간다는 투로 인상을 찌푸렸다. 길거리에서 좋아라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남녀 커플만 보고도 부끄럽다고 귀가 벌겋게 변하곤 하던 동생이 무슨 까닭인지 정색해가며 대놓고 콘돔 운운하고 있음이다.
침대 매트리스 위로 일회용 핸드폰을 훌쩍 던지다 말고 딘은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다.
저 놈이 뭔가를 잘못 먹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관자놀이 부근에 대고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너, 지금 살짝 돌았냐.』
『머리가 돈 건 딘이지 내가 아니야.』
『아니. 내가 보기엔 네가 돌았다. 뜬금없이 콘돔 이야기를 왜 꺼내는건데.』
『실수했다며.』
『내가?』
『임신시켰다며.』
『뭐?! 누구를?! 외계인을? 말도 안 돼. 어쩌다 고무 모자 쓰는 걸 잊었다 해도 난 항상 버릇처럼 빼고 나서 사정한단 말이다. 그러고도 임신할 수 있으면 성처녀 마리아님인게지. 제발이지 웃기는 소리는 하지 말아줘, 새미.』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엉뚱한 쪽으로 비난까지 들었다. 블라블라 행성인의 짬짜 소린 더 이상 듣기 싫다는 걸 명확히 하며 딘은 손사레를 쳤다.

그런데도 동생은 의심의 눈초리를 한사코 거두려 하질 않았다.
『정말 아니야?』
『쯥! 건방지게 네 살이나 위인 지 형에게 도끼 눈깔 치껴뜨는 거 봐라. 이봐! 그렇게 날 애기 아빠로 만들고 싶어? 미안하지만 난 아직 스물 여덟밖엔 안 됐어.』
『스물 여덟씩이나 된 거지. 우리가 만년 청춘인 줄 알어? 어쨌든 아니라는 얘기 맞지? 잘 알았어. 그럼 한 가지 더 묻자. 왜 우리가 이런 식으로 도망다니는 거야? 이건 마치 프로급 추적자가 붙었다는 식이잖아.』

그의 형은 아직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 그것이 샘의 신경줄을 야금야금 갉아댔다.
헤더라는 이름의 나치 헌터가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주문을 손에 넣었다. 하루라도 빨리 빼앗긴 물건을 회수해야 한다. 자칫하다간 많은 사람이 희생당할 수 있다. 방송용 마이크에 대고 만장하신 가운데 그녀가 죽음의 주문을 읽어버리기라도 하면 이건 완전히 대 재앙이 되어버린다. 전화기를 사용하는 건 또 어떻고. 문제의 비디오를 본 사람은 일주일만에 반드시 죽게 된다는 일본 공포 영화의 줄거리가 곧 현실로 닥쳤다. 무심코 빨간 불이 들어온 전화 응답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녹음된 메시지를 듣자마자 숨이 덜컥 멎어버린다고 해보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우려할만한 사태다.

이쯤해서 샘은 두 팔을 활짝 벌려보였다.
『원래대로라면 우리가 헤더의 뒤로 따라붙고, 그녀가 도망을 쳐야 맞는 거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다.
헤더의 뒤를 쫒는 건 뒷전이다. 반대로 꽁무니로 불 붙었다는 식으로 달아나고 있다.
『그런데도 형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고 있잖아. 이제 슬슬 나도 한계야.』

그러신가요. 한계라굽쇼.
가까운 의자에 걸터앉은 딘은 한숨과 같이하여 짧게 다듬은 고슴도치 머리를 위 아래 방향으로 싹싹 문질렀다. 내심 당황했을 적에 곧잘 보이는 그만의 독특한 버릇이다. 손바닥으로 옮겨진 자신의 머리카락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아보는 - 조금은 더럽다 싶은 버릇 역시 마찬가지다.
자, 이제 뭐라고 해보시지? 샘은 어깨를 바짝 세운 채 그가 무슨 말을 할지를 기다렸다.

『있잖아, 새미.』
『응.』
『내가 밖에 나가서 하루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너 혼자서라도 재빨리 장소를 떠야 한다. 날 기다린답시고 시간을 낭비하면 결코 안 된다.』
이게 무어라 씨불렁거리고 있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딘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의자 다리를 찼다.
『샘! 얌마!』
『아까 한 말은 안 들은 걸로 할테니 다시 시작해봐.』
『젠장... 그러니까 혼자가 되면 날 찾을 생각은 말고 바비 아저씨에게 가 있으란 말이다.』
그래? 살짝 걷어차는 것으로도 안 된다면 힘 주어 걷어차는 수밖에.
아까보다 흔들리는 충격이 곱절이었다. 의자 채 몸이 뒤로 벌러덩 넘어갈 뻔했다. 날뛰는 야생 버팔로 등짝에 올라타 굴러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던 신참 카우보이씨는 단박에 안색이 퍼래졌다.
『샘! 형에게 이게 무슨 짓이야!』
『다음 번엔 의자 다리가 아닌 딘을 직접 찰 거야. 신중하게 생각하고 다시 말해봐.』
착해빠진 샘이 거칠게 나오는 건 어디까지나 보통 일이 아니다. 덩치와는 달리 묘하게 계집애 같은 구석이 있어 술취한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거기에 응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는게 그의 특기다. 이렇게 폭력적으로 나온다는 건 그의 머리가 짜증으로 가득 찼다는 증거... 딘은 신중해지기로 했다.
『알았어. 그럼 다시 말할게. 이 형이 용돈 줄테니 좋은데 가서 여자랑 일주일만 놀고 와.』
참으로 신중해졌다.
이번엔 딘이 아니라 샘의 안색이 검게 변했다.
『정말로 발로 찬다... 딘.』
『말로만 재잘재잘 떠들지 말고 진짜로 덤벼보시지, 재키 찬. 하지만 그랬다간 알지? 곱절로 두둘겨주마.』

형제는 장난이 아닌 얼굴을 하고 서로를 죽을 기세로 응시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귀신처럼 변한 형에게 반죽음 당할 것을 각오하고 - 주여, 어린 양을 보호하소서 - 오른발을 들어 딘의 다리를 거세게 찼다.
신장의 차이가 있으니 당연히 다리 길이에서도 차이가 난다. 이쪽에서 맞았다고 반사적으로 다리를 뻗어봤자 샘의 몸뚱이까지 닿지 않는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는 딘은「오른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때린다 - 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준다」라는 작전은 진작에 포기하고 의자를 뒤로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이 긴장하여 권투 선수의 가드 자세를 취하는 걸 노려보며 소매춤을 걷어 올렸다.

닭 싸움의 첫 번째 공식,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상대를 기를 꺾어라.
『넌 오늘 나에게 죽었어, 새뮤얼 윈체스터.』
빠르게 간격을 좁히면서 샘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찔러넣었다. 그걸 샘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무릎을 올려 막았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들어올린 동생의 다리를 재주껏 잡아챈 딘은「뛰어봤자 네놈은 벼룩이다」라는 표정으로 장딴지를 교묘히 끌어올렸다. 한쪽 다리로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 없게 된 샘은 당연히 비틀거렸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딘은 동생의 왼뺨을 향해 펀치를 찔러넣었다.
아파하는 표정이 상당히 맘에 안 들지만.
꾹 참고 팔꿈치로 다시 샘의 가슴을 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한 박자 숨을 몰아쉰 샘은 뜻밖의 괴력으로 딘의 오른팔을 움켜잡았다. 깜짝하는 사이에 등뒤로 팔이 돌아갔다. 독특한 고통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이쿠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하고 있으면 형의 체면이 살지 않는다. 봉쇄당한 팔은 냅두고 발을 뒤로 걷어차 샘의 정강이를 때렸다. 동생이 악 소리를 냈다. 붙잡힌 부분이 느슨해졌다. 기세를 몰아 체중을 실어 동생의 발을 다시금 짖밟았다.
죽을상을 하고 있는 샘이 이번에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위쪽에서 아래로 왼팔 스트레이트 펀치를 길게 찔러넣었다.

『이 나쁜 놈아! 아빠보다 더 나빠! 형은 나빠! 진짜 진짜 고약해!』
맞은 부위를 움켜쥐고 샘이 악을 썼다.
『그래! 난 동생이나 패는 나쁜 놈이다! 그래서 뭐. 코피 나게 다시 맞아볼텨?』
『왜 나에게 말을 안 해주는 거야~!!』
이럴 적엔 왜 때리는 거냐고 말해야 앞뒤 문맥이 맞는 거 아닐까.
딘은 주먹을 휘두르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대학에서 공부까지 한 놈이 틀린 문장을 뱉고 있다.
왜 때리느냐고 항의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아래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나쁜 놈아! 나쁜 놈아! 말을 왜 안 하느냐고~!! 왜 나에게 말을 안 해!』

맞아서 억울한게 아니다.
그까짓 것, 침을 살짝 바르고 하룻밤 자면 그만이다.
코를 훌쩍이던 샘은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있는 딘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봤다. 그들이 도망치는 까닭을.
그 첫 번째. 그들 형제들의 입을 봉하기 위해, 증거 인멸을 하고자 죽이려 들고 있다.
「뭐 하러?」소리가 나왔다. 그들이 재판장에 나가 증인석에 올라가 성서에 손을 올릴 것 같냐. 그럴 일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라고 애원해도 못 한다. 딘은 현재 살인 용의자로 경찰에 수배되어 있다. 증인석에 올라가려다 감옥부터 가게 생겼다.
다음으로 생각해낸 것은「복수」였다.
『그치만 우린 나찌가 아니잖아.』
하여 두 번째 가설은 두고 볼 것도 없이 기각.
세 번째로 생각해낸 것은... 샘은 딘을 벽으로 몰아붙였다.
『원하는게 아직 우리에게 있는 거야. 그렇지? 오쿠림바의 주문... 아직 형이 갖고 있는 거 맞지.』
『어허라, 샘. 진작에 빼앗겼다고 내가 말 안 했던가.』
『그렇다면 전부를 빼앗긴게 아니라 일부만 빼앗긴 거야. 내 추측이 맞지? 그렇지? 그렇잖아!』

여기까지 몰아붙이는데「절대로 그건 아니란다」라고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딘은 옷깃을 붙잡은 샘의 팔을 뿌리치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널 위해서야.』
그리고 세 살짜리 아기처럼 울먹거리는 동생을 설득하려 했다.
『널 보호하기 위해서야.』
순간 팍,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딘은 눈을 휘둥글 떴다.
동생의 주먹이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가 벽에 똑바로 박혀 있었다.

으스스하다. 저걸 정통으로 맞았다간... 샘의 어두워진 눈동자를 똑바로 쏘아보며, 절대로 쫄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딘은 또 한 번 주장했다.
『이봐, 날 보라고. 새미? 날 봐. 난 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해야 한단 말이다.』
『이건 날 보호하는게 아니야. 말려 죽이는 거지!』
『날 믿어.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다. 넌 잠자코 있기만 하면 된다고.』
『어떻게 형을 믿어! 모르는 여자랑 하룻밤 자면서 콘돔도 안 쓰는 형인데.』
『썅! 빼고 나서 사정한다니까!』
『칠푼이!』
『멍청이.』
딘은 길고, 길고, 기다란 숨을 내쉬며 동생의 잘난 머리를 손바닥으로 찰싹 후려갈겼다.
『알았어. 다음부턴 꼭 콘돔 낄게. 맹세하마.』
뭔가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울기 직전의 동생을 달래고자 그렇게 말하고 보는 딘이었다.

Posted by 미야

2007/02/24 20:49 2007/02/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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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2007/02/26 02:34 # M/D Reply Permalink

    ㅋㅋ 역시나 투닥거리는게 귀엽죠~ 그나저나 딘 횽아는 어찌하려고...;; 소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앞으로도 파이팅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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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08

※ 딘 윈체스터 러브에 몸부림치는,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도 살짝 눈 감아주는 당신의 멋진 센스~!! 크아냥! ※


응접실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마이클 프레데닉은 기습적으로 주먹을 쥐고 딘의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심판이 경기 시작을 아직 외치지 않았는데 권투 글러브를 낀 팔을 휘두른 격이다. 아니면 휘슬을 불기 전에 프리킥 공을 찼다. 반사신경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이런 건 못 피한다. 미처 대처하지 못한 딘은 코를 움켜쥐고 아이쿠 소리를 냈다.

『이봐요!』
비틀거리는 딘을 재빨리 자기 등뒤로 감춘 샘은「우리 형은 당신이 때려도 되는 동네 북이 아니다」라는 걸 명확히 하며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한 번 더 손찌검을 하는 날엔 맹세코 죽여버리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일국의 장관이나 대통령을 장기말처럼 손에 쥐고 들었다 놓았다 하며 가지고 놀던 인간이다. 기껏해봤자 가짜 기자증이나 들고다니는 애송이의 협박에 기가 죽을 리 없었다. 샘의 키가 자칫하다간 천장에 닿게 생겼다는 건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 눈치다. 흥분한 곰이 씩씩거리며 독선적 분노를 드러내든 말든, 혐오감에 가득차 더러운 걸레 쳐다보는 듯한 시선은 마지막까지 바뀌지 않았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생각보다 노인의 주먹이 매웠다. 얼얼한 콧잔등을 어루만지다 말고 딘이 푸념했다.
『나이가 칠순이면서 평소에 무슨 운동을 하는 거요. 두 번 쳤다간 사람 잡겠수.』
그 말에 갸름하고도 거만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경멸의 눈초리가 노골적으로 딘을 향해 쏟아졌다.
『입 다물 기회를 놓치지 말게. 정말로 사람을 잡는다는게 어떤 건지 보여줄까. 저 두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네! 나아가 당연히 몰랐어야 했고! 그걸 단박에 망쳐놓다니. 자넨 생각이 있는 건가, 아님 없는 건가! 할 얘기와 하지 말아야 할 얘기가 뭔지 구분도 못 하나?!』
그리고는 혀를 사용해 먼젓번의 주먹질보다 훨씬 더 무서운 타격을 가했다.
『후레자식 같으니!』

듣고 있던 샘은 움찔 몸을 떨었다. 저질스런 쌍욕을 곧잘 입에 달고 다니는 딘이지만《후레자식》이라는 욕 만큼은 결단코 입에 담지 않았다. 아울러 누군가 그 욕을 퍼붓기라도 하는 날엔 눈이 뒤로 돌아간 모습으로 광분하여 날뛰었다. 실제로 그들은 엄마 없이 홀애비 밑에서 자랐고, 따스함을 잃어버린 가정에서 엉망진창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바로 그 객관적인 사실이 날카로운 갈고리 발톱이 되어 가슴을 후벼팠음이다. 상처가 견딜 수 없이 쓰라려 견딜 수 없었다. 정학 3주가 다 뭐라냐, 입이 걸었던 체육 교사가「후레자식」운운하자 들입다 발길질을 날려 쓰러뜨린 적도 있다. 딘에게 있어 그것은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성당 담벼락에「당나귀 자지, 너네 엄마 보지」라고 낙서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누군가 그 말을 꺼내기라도 하는 날엔 이유 불문하고 가차없이 응징하고 보았다.

이번에도 나이 칠순의 노인을 거꾸로 들어 패대기질을 치지는 않을까 싶어 샘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정말로 던진다면... 크아, 후환이 두렵다.
하지만 딘은 묵묵히 참았고, 그 사실이 샘을 놀라게 했다.
흘깃 옆을 보니 형의 코가 루돌프 사슴코처럼 새빨갛다.
그런데도 딘은 자기가 맞은게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여기서 유추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딘이 드디어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가 아니라, 샘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

『이리로.』
마이클 프레데닉은 잠자코 자기 뒤를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남의 집이었음에도 여러 번 방문하여 내부 구조가 어떻다는 걸 훤히 꿰고 있는 듯했다.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는 일 없이 곧장 움직였다. 일본 우키요에 스타일의 화려한 붓꽃 그림이 그려진 색 유리창을 지나 좌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레이스가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이 부채를 쥐고 있는 로코코 풍의 그림 접시가 일렬로 놓여진 장식장을 똑바로 보며 계단턱을 밟았다.
그 와중에도 집안은 기이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뭐랄까, 모두가 숨 죽여 그들을 몰래 훔쳐보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방해받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조용한 곳으로 가세.』
독촉을 받은 형제들은 어느새 잰걸음이 되었다.

『음... 당신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구먼요.』
딘의 물음에 마호가니 재질의 서재 문을 한쪽 팔로 밀다 말고 그가 눈을 흘겨떴다.
『지금 농담하나, 이 사람아! 그걸 내가 어떻게 다 아나. 남들보단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으로 일의 진상은 나 역시 모르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으로 가득 찬 방이었다. 구석으로 서가 높은 곳을 사용할 적에 이용하는 발판이 보였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여러 개 놓여졌다. 다만 채광을 위한 창이 대단히 작아 방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편에 속했다.
책장에 빽빽이 꽂힌 책들은 실제로 사람 손을 타며 읽혀지는 것들이라기 보다는 수집의 의미로 한 곳에 모아둔 것처럼 보였다. 오래된 서적 특유의 희미한 방부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게중에서 자주색 가죽으로 정장된 몇 권의 책들은 대단히 진귀해 보였다. 화려한 금박은 기계로 찍어낸 것이 아니고 장인이 손으로 손수 금물을 붓으로 찍어 그린 것들이었다. 분위기로 보아 대단히 난해한 철학 서적이거나 어려운 인문학 책이려니 생각한 샘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제목을 읽었다. 그리고는 곧 짜게 식었다.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워터십다운의 토끼들》이었다.

마이클은 자기집 서재인양 익숙한 몸동작으로 달각 소리를 내어 스탠드 조명의 줄을 잡아당겼다. 부드러운 조명이 팽팽하게 날이 선 신경을 다소 완화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가까운 걸상을 턱짓으로 가리킨 뒤, 가까운 쪽의 의자를 끌어당겨 본인부터 앉았다.

『신분상 모사드와 CIA에 연줄이 있어. 싫든 좋든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게끔 되어 있지.』
여기까지 말한 그는 실크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며 괴로운 얼굴을 했다.
『나보다 세 살 어렸던 알렉스 루치노바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해였으니 1971년이군. 당시에 시몬 비젠탈 센터(국제 유대인 인권단체) 쪽으로 이상한 소문이 돌았는데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나치 헌터 중에 현상금엔 일절 관심을 드러내지 않고「처형」을 하는 자가 있다는 거였어.』
손가락으로 이마 중앙을 가리키는 동작은 아마도 그곳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일 거다. 그것도 두 번을 연달아 찍었으니 총알 구멍도 나란히 두 개라는 소리다. 확실히 처형식이다.

『나치... 헌터요?』
그들에겐 다소 생소한 단어였다.
알아듣기 귀찮은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겠거니 지레짐작한 딘은 아예 귀를 막아버렸고, 샘은 손바닥을 마주비비며 우물거렸다.
전범 재판은 어쩌고?
마이클 프레데닉은 그런 샘을 보리차를 맥주로 알고 마시는 얼간이로 취급했다.
『이래서 철부지 코카 콜라 족속들은 맘에 영 안 든다니까. 이보게!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웠던 요제프 멩겔레*가 교수형을 받았던가? 아니잖아. SS장교 중에 재판을 피해 달아난 자가 모두 몇인지 아나. 마틴 보르만*이나 하인리히 뮐러* 같은 자는 여전히 그 행방을 몰라. 독일이 분할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난민 행렬에 교활하게 끼어들어 신분을 감춘 자들만 수 천이 넘어.』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이들을 사냥하는 팀이 결성되었다.
사재를 털어 나치 헌터의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도 생겨났다.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거액의 현상금을 걸어 이를 독려하는 자들도 나왔다.
단, 사적이고 개인적인 복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룰이었다.

『서른 여덟의 가족을 한꺼번에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손에 칼을 쥐고 싶어하는 법이지. 그러나 너도 나도 칼을 잡고 원수의 목을 치면 사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아. 증오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코앞에서 봤던 우리들일세. 똑같은 일을 역사적으로 고스란히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피곤한 표정을 하고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노인은 뒷짐을 지고 서가쪽으로 이동했다.
이제 그의 눈 높이에 꽂혀진 책은《마농레스꼬》가 되었다.
곰삭아 퀴퀴한 맛이 나는 로맨스 소설에 관심을 둔 것도 아니면서 그는 지은이 아베 프레보의 이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룰이 깨졌으니 이목이 집중되었지. 그래서 모사드가 개입했네.』

특수 요원이 망원 렌즈를 사용해서 룰을 어긴 나치 헌터의 모습을 찍어 상부에 보고했다.
별 감흥 없이 사진을 들쳐보았던 마이클은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극도의 어지럼증에 굴복하여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비서가 큰일 났다고 소리를 지르며 한 걸음에 달려왔다.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 사진! 결코 남에게 보여서는 안되는! - 그래서 의사를 부르겠다는 걸 억지로 만류하고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손바닥으로 부채질부터 했다. 모두에게 나가라고 야단을 쳤다.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가운데 독한 위스키를 연거푸 다섯 잔을 마셨다.
맙소사.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덥지도 않은데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고개를 비스듬이 돌린 채 엉뚱한 곳을 응시하던 사진 속의 여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얼굴이었다.
『사진을 처음 본 날짜까지도 잊혀지지가 않아. 1972년 2월 8일, 시각은 17시 5분이었어.』
정말로 그녀가 헤더일 리 없다고 되풀이하여 되뇌였다. 비슷한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리고 헤더의 생존한 가족들과 친척들을 일일이 머릿속에서 떠올려봤다. 그러길 1시간, 그는 사진 속의 소녀가 헤더와 혈연 관계에 놓인 다른 사람이라는 가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외모가 쌍둥이처럼 똑같았다는 점과는 별개로... 여자의 오른손은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손깍지를 끼고 그가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난 연락을 받았단 말이야.』
『연락이오.』
의외다. 개인적으로 연락까지 받았다니. 딘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마이클 프레데닉은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줄줄 외웠다.
『1972년 8월 23일, 수요일. 14시 20분. 우리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를 적었네.「뾰족 구두」와「녹색 구름」... 그건 배급용 빵을 훔칠 적에 서로 주고 받았던 암호일세.』
껌을 짝짝 씹던 길거리 처녀가 봉투를 은근슬쩍 자동차 유리창 속으로 들이밀었다.
암호를 한 눈에 알아본 그는 크게 당황하여 누가 보낸 거냐고 물었다.
여자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곤 너무 높아 위태로워 보이는 빨간색 하이힐을 따각거리며 고층 건물의 그늘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즉석에서 뜯어본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노출된 자신에 대한 정보를 그가 가진 권한으로 모두 지우라는 부탁이었다.
핏기 가신 고개를 들자 먼 발치에서 그녀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여름의 햇살 아래서 이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입속으로 정제되지 않은 소금의 맛이 느껴졌다.
무섭게도 헤더는 수용소에서 보았던 열 네 살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하지만 언 데드가 되었다고 하면 설명되어지긴 한다.
그렇다고 해도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로 서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태양을 전혀 거리끼지 않는 언 데드라... 매우 특수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설과는 달리 언 데드가 햇빛을 보고 타죽는 일은 없다. 그래도 작렬하는 태양 아래선 천 년의 수명을 누린 뱀파이어도 똑바로 서있지 못 하는 법이다.
『틀려, 새미. 주술로 되살아난게 아니야.』
샘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박에 꿰뚫어본 딘이 고개만 살짝 돌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잔 새파랗게 살아 있었다고.』

이쯤해서 딘은 가장 궁금해하던 걸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자주 연락을 했던 거죠.』
『자주? 자주라는 말을 쓸 수는 없지. 1972년부터 2006년까지 모두 합해서 겨우 다섯 번이었어. 매번「뾰족 구두」라고 발송인을 밝힌 봉투가 왔고, 안에는 이쪽에서 답장을 부칠 사서함 주소가 들어가 있었네. 사서함 주소는 매번 달랐고 요구하는 것도 그때그때 달랐네. 괜찮은 정보국 요원을 소개해달라는 것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거액의 돈을 부쳐달라고도 했네. 난 아무 소리 않고 시키는대로 했지.』
『헤에, 당신... 직책을 이용해서 그녀의 나치 헌터 일을 도왔군요.』
『닥치게! 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그 일을 했을 걸세! 나, 나는... 나는!』
노인이 뺨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안색이 창백했다. 그리고 이마가 여전히 번들거렸다.

『화낼 것 없어요. 당신을 비난하려는게 아니니까. 그럼...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것은?』
『2006년 12월 28일.』
『이번엔 무엇을 요구하던가요.』
『미하일 요하넨버그라는 사내의 사회보장 번호와 주소. 그리고...』
『그리고?』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용무라고 하면서 딘 윈체스터라는 자에 대한 정보를 정중히 부탁했네. 내가 어떻게 자네의 본명이 뭔지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나. 응? 자칭 주간 월드뉴스의 스탠리 플래니건 기자 나으리?』
딘은 당황해서 한 박자 느리게 호흡했다.
『겍!』
『그래서 말인데...』

표정을 바꾼 그가 딘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여 이리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딘은 쓴 표정으로 얌전히 시키는대로 했다.
스탠드 불빛 아래서 두 사람이 입술만 움직여 무어라 소곤거렸다.
제법 심각한 내용이었던 모양이다. 놀란 표정의 딘이 잠시 고개를 들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요?!』
마이클이 쉬, 소리를 내며 도둑이 개 꾸짖는 표정을 지었다.
머리를 맞댄 두 사람의 소곤거림이 재차 이어졌다.
뒤에서 멀뚱 보고만 있던 샘은 울컥해서 호주머니로 손을 넣고 뺨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러든 말든 딘은 경직된 표정으로 마이클 프레데닉과 눈을 맞췄다.
『그게... 진짜요?』
『진짜일세.』
『.......... 이런 미친!』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딘의 모습은 5층 베란다에서 추락한 사람처럼 흉흉했다.

『딘? 딘! 왜 그래. 그가 뭐라고 말했어? 무슨 내용이었는데 그래?』
새파랗게 질려 뒷걸음치는 딘의 옷자락을 붙잡고 샘이 질문했다.
그런 동생을 죽어라 쏘아보며 딘이 펄떡대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옆에서 쫑알거리지 좀 마랏!』
『딘? 그가 뭐라고 했냐고. 응? 뭐라고 했어?』
『젠장! 말해줘? 말해줘?! 오리건주에서 만난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하룻밤 불장난 상대가 내 아이를 덜컥 임신해가지곤 나라는 인간을 찾는답시고 사방을 쑤셔대고 있댄다!』
『에엑?! 그, 그...!! 그런!』
뿌리 깊은 혐오감과 즐거운 기대감이 엉망으로 뒤섞여 샘은 억 소리를 냈다.
형이 곧 아빠가 되어요. 나는 삼촌이 되는 거예요. 어쩌죠. 우린 제대로 된 직업도 아직 없는데.
『멍청아~!! 거짓말이다! 그런 뻔한 바보 같은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거냣?!』
흥분한 것이 분명한 딘은「어디라도 좋으니까 핵폭탄아 떨어져라!」식의 얼굴로 집밖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07/02/22 21:48 2007/02/2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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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원의마녀 2008/05/29 09:37 # M/D Reply Permalink

    한순간이지만 흐뭇했어요. ㅎㅎ 아이라니..
    근데 왜 제 망상속엔 엄마는 어디가고 새미삼촌과 딘아빠 사이에 조그마한 딸아이 모습이 그려지는 걸까요 -ㅁ-;;;(더군다나 들판을 달리는 망상 -ㅁ-썩었구나...ㅋㅋ)

  2. 스라 2015/05/21 16:27 # M/D Reply Permalink

    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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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07

※ 한글로 작성해선 바로 이어붙이기 해버립니다. 그래서 접기 기능을 잘 안 쓰지요. (질질 늘어지는 모양을 눈으로 보고 나서야 아차 소리를 내고 있다)
뭐, 내용이 어두워졌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어지는 줄거리는 역사적 사실과 많이 틀릴 수 있습니다. 기아병에 대한 내용은 마빈 해리스의《작은 인간》책을 참조했습니다.
케엥, 형제가 말다툼 하는게 좋아요. 이런 건 별로...
그나저나 3월까지 장기 휴방. 어쩌라고? 우리더러 죽으라고? ※


처음엔 아버지와 형들이 끌려갔다.
어디로 간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나치 친위대의 호송 트럭에 실려가면서도 그들은 가족에게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입을 벌려 소리를 내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람을 타고 트레블링카, 헬름노 등등의 이름을 들었다. 아우슈비츠 이름도 누군가 수군거렸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버지가 어머니와 눈을 맞췄다. 그걸 지켜보던 어머니는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행여나 군인들에게 몹쓸 짓을 당할까봐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떨고만 했다. 그런 어머니를 누나 에르시가 붙잡았다.

남자들이 올라탄 트럭이 떠나자 이번엔 어머니와 누나들 순서가 되었다.
공포에 질린 어머니가 참지 못하고 탄식의 소리를 냈다.
오겐 맥콰드는 몸부림치며 자식놈 옷가지나마 붙잡으려던 어머니의 하얀 손을 잊지 못했다.
《저 아인 겨우 일곱 살이란 말예요! 제발! 죽이지 말아주세요! 죽이지 말아줘요!》
날카롭게 비명을 질러대던 어머니의 머리를 그들이 총신으로 두들겨 팼다.
어머니는 피를 흘리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래봤자 그는 홀로 남겨졌고, 누이와 어머니가 어디로 간다는 이야기 역시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1944년, 9월의 마지막 주의 일이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죽어야 했네. 노동 현장에 투입되기엔 나이가 어렸고,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든. 그네들 말대로라면 금쪽 같은 식량을 축내기나 하는 버러지였지. 하지만 나치는 우릴 죽이기를 주저했어.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는 당시 암스테르담에서 이름 높았던 다이아몬드 세공 기술자였거든. 여기 있는 스텔라의 아버지는 금 세공 기술자, 마이클의 아버지는 보석 감정가였네. 헤더의 부모님도 보석 세공사였고. 다시 말하자면 나치는 우리들 아버지들을 공짜로 부려먹기 위해《여차하면 가스실로 보내버릴 수 있는 어린 자식놈》이라는 인질이 필요했던 걸세. 그건 말도 못 하게 효과적이었지. 생각을 해보게. 하루에 열 여섯 시간을 노동하면서 군소리조차 할 수 없었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횟가루가 발려진 아이의 시체가 구덩이에 던져지게 될 거라는 경고를 들었단 말이야. 그리고 몸에서 짜낸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보내주겠다고도 했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몸이 가루가 되도록 다이아몬드를 만지고, 또 만지고, 다시 만지고...』

그렇게 해서 한 자리에 모인 전문 기술자들의 자녀들 숫자는 마흔 다섯이나 되었다.
나이가 제일 어렸던 마리아는 다섯 살.
게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던 헤더는 열 세 살.
오겐은 일곱 살, 스텔라와 마이클은 각각 여덟 살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 다섯 분의《만찬》을 준비할까요?』
비서 힐케마이어가 조심스런 얼굴로 응접실 문을 열고 이쪽의 분위기를 살펴왔다.
세 명의 노인이 호흡을 같이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 기아병이라는 것에 대하여 아는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움직여 어렵사리 질문했다.
오겐의 물음에 샘은 가볍게 에, 소리를 냈다.
말 그대로다. 너무 굶어서 생기는 질병이다. 물질의 풍요로움에 신음하는 현대 미국에선 결코 보기 힘든, 물론 깡마른 슈퍼 모델들에겐 일찍이 저주스런 직업병이 되었지만, 영양 섭취가 충분치 못 했을 적에 인간이 겪는 신체적 반응이 바로 기아병이다.
샘은 손가락을 깍지끼고 자신이 아는 것을 신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갈증이 심해지고, 소변의 양이 늘고, 입안이 마르고,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기자라서 그런가. 한참 젊은 사람임에도 잘 아는군. 그런데 조금 더 굶으면 그러한 증세는 오히려 줄어들게 되네. 몸은 허약해지고 추위를 많이 느끼게 되지. 의기소침해져서 자신들의 배고픔에 대해서조차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네. 피부는 건조해지고 각종 신체 기능은 서서히 중지되기 시작해. 그리고 머리털이 빠져. 근육이 분해되고 장기가 피부에 달라붙지. 이때가 되면 이미 말도 못하게 고통스럽네. 몸이 이미 완전히 축났으니까.』

수용소에선 성인 기준으로 하루 800 칼로리만이 섭취 가능했다.
독가스만이 살인 무기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나치는 그들을 굶겨서 죽이려는게 명확했다.
먹을 것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스텔라가 눈물을 보이며 울먹거렸다.
『그것이 성장기 어린애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를 생각할 수 있어?!』
생존을 두고 동포 전부가 경쟁 상태로 들어갔다.
독방에서 바퀴벌레를 잡아먹은 빠삐용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규정된 배급량은 하루에 두 번, 얇게 잘라낸 검은 빵 한 조각에 반 그릇의 멀건 스프가 다였어. 그나마 제대로 배급이 되었을 적의 이야길세.』
몇몇의 이기적 어른들은 퀭한 눈빛을 한 아이들에게 식사를 주려 하지 않았다.
배고픔은 선한 사람도 아귀로 만들었다. 그들은 아이들 몫의 빵을 빼앗아 자기 목구멍 속에 넣었다.
쥐들조차 등을 돌리고 달아났다. 44년의 12월은 혹독했다.

사용인들이 신호를 받고 손님들에게 정중하게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자리를 함께 한 딘과 샘은 할 말을 잃었다. 이름만 만찬이고 이건《개 먹이 페스티벌》이었다.
검은 덩어리에선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딱딱한 빵은 눈으로 보기에도 돌덩이처럼 보여 과연 이로 씹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손으로 만져보니 까끌한 촉감이 강철 부스러기 같았다.
스프는? 말을 말자. 색깔 자체가 역겹다.
당황한 것이 분명한 딘은 최고급 식기에 담겨진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를 두고 난감한 눈치다. 무엇 하나 부족한게 없는 사람들이「극악의 다이어트 식단」을 실험하고 있다? 이런 미친 짓을.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 헤더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세 명의 노인은 조용히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잠자코 빵을 스프에 찍어 입에 넣었다.
하는 수 없어 샘도 이들을 따라했다.
단, 딘은 동생과 달리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빵이 필요했네...』
오물오물 음식을 씹던 오겐이 손바닥으로 뺨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슬픔과 분노에 차서 외쳤다.
『빌어먹을 빵들!』
아이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던 헤더는 책임을 느꼈다.
그 참혹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애썼다.
어른들에게 애원하고, 빌었고, 때로는 몸을 팔았다.
오겐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망할 것... 그놈의 더러운 나치 놈에게...!』

기껏해야 두 덩이의 빵을 흥정하기 위해 헤더는 바닥에 손바닥을 짚고 엎드렸다.

- 나, 나는 남창이 아녜요! 거기에 넣지 말아주세요!
- 무슨 소리. 너는 돼지다. 그리고 나는 돼지의 항문을 범하는 못된 놈이고. 자! 허리를 들어!

그 장면을 구석에 숨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던 오겐은 한참만에 헤더가 보물처럼 품에 안고 돌아온 빵을 도저히 입에 넣을 수 없었다.
그걸 그녀는 단호한 투로 억지로 씹고, 삼키게 했다.
「이것은 나의 피와 살이다. 오겐? 구토가 나도 절대로 뱉으면 안된다.」
시키는대로 하면서 오겐은 소리를 내지 않고 오열했다.
그들이 믿는 신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밤새도록 절망했다.
아름다웠던 누이, 그리고 어머니, 그리고 첫사랑...
그녀의 살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그리고 그걸 먹었다.
토하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겐. 모욕은 생명과 비교하면 하찮은 것이거든.」
눈물 범벅이 된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헤더는 웃어보였다.
누구보다 상처받았으면서도.
마흔 다섯의 아이들을 자기 목숨처럼 지키려던 여인은 힘 주어 밝게 웃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딘이 수저를 들었다 도로 놓았다. 테이블을 때리는 탕 소리가 모두의 눈썹을 찌푸리게 했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응?』
『헤더는 어떻게 죽은 거죠.』
오겐과 스텔라가 어랍쇼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그러니까 자네의 조부님은 무어라 하셨는가. 네마 나타스는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네. 그저 헤더가 죽었다는 말만... 음, 그게 좀 수수께끼 같긴 했어.』

스텔라가 기억하는 네마 나타스는 매우 친절한 남자였다. 키가 훤칠했고 잘 생겼다. 헤더가 보살폈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마리아를 종종 무릎에 앉혀놓고 이상한 말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에 노랫가락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어느 나라의 노래냐고 물어봤더니「바빌로니아」라는 먼 나라의 아주 오래된 노래라고 했다.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의 노래라고... 그러면서 네마 나타스는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던 분홍과 노랑의 캔디 같은 것을 마이클이나 스텔라에게 나눠주었다.

헤더는 왜 오지 않는 거냐고, 보고 싶다고 오겐이 울면 멋있는 사내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거라고 늠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굳세게 자라야 한다. 헤더는 너희들이 백발의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죽는 것을 저 먼 곳에서 언제까지나 지켜볼 거다. 그러니 나에게 약속해주겠니?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 멋진 남자와 여자가 되겠다고. 헤더의 근사한 자랑거리가 되겠다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장거리 여행이 가능해질 때까지 아이들은 영국군의 보호를 받았다.
그때까지 헤더의 빈 자리를 대신 메워준 사람이 멋쟁이 네마 나타스다.

스텔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방 직전에 발진티푸스가 돌았어. 헤더 언니는 아마도 병에 걸렸던 것 아닐까.』
『아녜요. 매번 기침을 하긴 했어도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었어요.』
『베른게르의 말로는 가스실로 끌려갔다고...』
『틀려요! 가스실로 가는 행렬에선 아무도 헤더 누나를 못 봤습니다!』
『저어... 이건 진짜 끔찍스런 가정이지만 언니를 강간했다는 귄터 놈이 총으로 쐈다는 말도 있어. 연합군을 피해 달아나면서 언니를 쐈다는 거야.』
『귄터 그 개자식! 날로 뼈를 씹어도 모자를 놈!』
『내 생각으로도 귄터가 언니를 죽인 것 같아. 그래서 넴 나탁이 우리에게 알리질 않은 거고.』
『스텔라? 그 멋쟁이씨의 이름은 네마 나타스라고 하잖아요.』

이쯤해서 딘은 의자를 뒤로 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푼을 마이크처럼 손에 쥐고서 말이다.
『자자, 신사 숙녀 여러분? 이쯤해서 연극은 그만 둡시다.』
그리고 질렸다는 표정으로 모두를 둘러보았다.
『헤더는 죽지 않았잖습니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아님 정말로 모르는 겁니까. 당신들이 사랑한다는 그 헤더는 여전히 열 네 살의 나이로 살아가면서 사람을 사냥하는 헌터가 되었잖소.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으며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뭐요? 전염병? 가스실? 지금 개그하자는 거요? 그 망할 여자랑 내가 코앞에서 마주친게 한 달도 넘지 않았소.』

스텔라가 심장 부위를 움켜쥐고 쥐어짜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색색거렸다.
『허억! 지금 뭐라는 거야... 저 사람?』
핏기 가신 얼굴로 마이클 프레데닉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당장 입 다물어, 딘 윈체스터!!』
오겐도 만만치 않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마이클? 마이클! 저 사람은 스탠리 플래니건이라고 자기 소개를...』
길게 얘기할 것 없다며 그가 단호히 턱을 굳혔다.
『오겐, 그리고 스텔라? 이번 일은 내가 처리함세. 그러니 자네들 두 명... 가짜 기자 양반은 날 따라오도록.』
그리고는 하얀 네프킨을 결투를 신청하는 장갑이라도 되는 양 테이블에 내던졌다.

Posted by 미야

2007/02/19 23:00 2007/02/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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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2 18:48 # M/D Reply Permalink

    커헉! 헤더가 나오면서부터 급전개되고있는듯한 느낌입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역시 형제는 붙어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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