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뉴암스테르담을 연속 시청하고 상태 메롱이라능. 실험적으로 써봤습니다. 본편으로는 들어가지 않아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피곤을 풀기 위한 수면이 아니다. 생리적으로 자지 않으면 죽어버리니까 의무적으로 잠을 청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편안한 베개니, 아늑한 이불이니 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소원하는 건 그저 꿈을 꾸지 않았으면 하는 것 하나 뿐...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불면은 필연적으로 악몽을 불러들였다. 붉고 붉은 이미지만 계속된다.「꿈」이란 단어는 그래서 더 이상 달콤하지 않다. 샘은 침대라는 사물을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절망은 그의 유일한 벗이 되어주었다.
-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걸 기억해? 내가 가르쳐준 걸 기억하니?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너는 계속해서 싸워나갈 수 있어. 살짝 떨리며 흐려지는 형의 목소리... 섬세한 체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는 것 같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은 고쳤다. 대신 딘의 유품이 되어버린 에뮬렛을 만지막대는 새 버릇이 생겼다.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것으로 지긋지긋한 모든 걸 끝장내고 싶어질 적마다 충동을 억누르며 에물렛을 만졌다. - 포기하면 안 돼, 샘 윈체스터. 싸워야만 해. 이를 악물었다. - 그것이 딘이 바라던 거야. 위안을 얻고자 손을 가슴으로 올렸다.
『후욱!』 만져지는게 아무것도 없자 샘은 침대에서 단숨에 몸을 일으켰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목에 걸려 있어야 할 에뮬렛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딘을 매장하고 난 뒤로 한 번도 몸에서 떼어낸 적이 없는 물건이다. 그게 왜 없지, 언제 사라졌지, 어디다 떨어뜨렸나, 누가 훔쳐갔나, 비통함에 젖어 목을 잡아뜯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다 구석으로 굴러다니는,「내 것이 아닌」더러운 양말을 발견했다. 안심한 나머지 다리가 풀려버렸다. 만약 이것이 꿈의 연속이라면,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게끔 행복한 꿈이다. 주먹으로 눈두덩이를 누른 채 심호흡했다. 이제 그는 에뮬렛이 아닌 딘의 젖꼭지를 희롱하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바비는 말을 삼갔다. 단순히「오늘은 구름이 두꺼운게 비라도 내릴 것 같다」라고 혼잣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홀로 남은 어린 윈체스터가 무척이나 상처를 받을 것임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뭐라도 먹지 않으련?」묻지 않았다.「소파에 누워 눈을 붙이렴」권하지도 않았다. 울고 불고 난리라도 치면 차라리 손을 써볼 수 있었을 것을, 몰골이 참담한 청년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바닥에 쌓인 먼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시신은 곧 부패하기 시작했다. 발톱에 찢긴 틈새로 튀어나온 내장은 비참한 냄새를 풍겼다. 사방에서 파리가 앵앵거렸고 딘의 피부는 검푸른 빛깔로 변색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부풀었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티끌로 돌아가기 위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이제 딘은 더 이상 섹시하지도, 핸섬하지도 않았다. 송장의 코와 입으로 벌레가 부지런히 드나들었고 치명적이었던 상처 틈새로 하얗게 구더기가 꼈다. 벌레들은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살을 씹어댔다.
더 이상 흉한 꼴을 무시할 수 없었던 바비는 밖에서 네모난 판자를 주워왔다. 그리고 만성적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반나절 내내 땅땅거리며 망치질을 했다. 그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처럼 웅장하게 울려퍼졌다. 『화장은 하지 않을 거예요, 바비.』 일주일만에야 입을 연 샘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장작과 휘발유는 필요없어요.』 점수를 후하게 줘도 엉성한 궤짝이라고밖엔 표현할 수 없는 나무 관으로 시신을 옮기고자 기를 쓰던 바비는 동작을 잠시 멈췄다. 『그렇게 하자구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소금은 뿌려야겠구나, 얘야.』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던 바비를 향해 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제가 가서 소금을 가져올게요.』 겨우 대화다운 걸 나눴다고 바비는 내심 안도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샘의 눈빛은 지독하리만치 공허해서 바닥이 없는 늪을 연상시켰다. 그 속으로 돌을 던지면 언제까지 가라앉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극단적이고도 비합리적인 좌절감 속에서 샘의 영혼은 조각조각 부서지고 있었다.
- 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요. 유품이 되어버린 딘의 에뮬렛을 자기 목에 걸면서 샘은 그렇게 잘라 말했다. - 나는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자격도 없어요.
걱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늙은 헌터는 반복해서 안부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조차 싫었던 샘은 핸드폰 번호를 아예 바꿔버렸다.
난 싸워야만 해. 딘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 허나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여전히 송장 냄새가 났다. 꿈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딘은 계속해서 썩어갔다. 부풀어 올라 검게 변한 그의 얼굴은 대단히 기괴하다. 아름다웠던 안구는 진작에 사라져 지금은 뻥 뚫린 두 개의 구멍에 불과하다. 얇은 종이처럼 변해버린 피부는 허물을 벗기 시작하고, 가스가 차오른 몸은 가끔씩 쿨렁 소리를 내며 요동친다. 걸죽한 액체로 변한 살덩이들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흘러내리고, 관절끼리의 연결은 느슨해진다. 딘 윈체스터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계속해서 부패하고, 또 부패한다. 사방에서 썩은내가 났다. 독한 보드카에서조차 썩은 냄새가 풀풀 풍겼다. 들녘에 핀 이름 모를 꽃으로 벌이 아닌 파리가 앉는다. 왜냐하면 꽃은 보기와는 달리 향기롭지 않았고, 그것 역시 매일매일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죽기보다 곱절로 어려운 일이었다.
떨림이 가라앉았다. 침착함을 되찾은 샘은 세수하는 동작으로 얼굴을 문지른 뒤 딘을 찾았다. 『형, 어딨어?』 화장실 불은 꺼져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샘은 방안을 두리번거리다 커튼 틈새로 밖을 살폈다. 2초 뒤, 그는 복도로 통하는 문을 열고 어두운 계단을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신의 은총으로 지옥으로부터 벗어나 지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지옥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노라 했다. 하지만 악몽을 꾸었고, 술을 지나치게 마셨으며, 가끔씩 멍한 표정을 짓곤 했다. 특히 밤이 힘들었다. 때로 그는 잠드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늙은 나귀처럼 등을 구부리고 숨을 죽였다. 추적하여 쫓아오는 검은 그림자가 문 밖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긴장했다. 그는 예전처럼 수다를 떨지 않았다. 깔깔 웃지도 않았다. 대신 이를 꽉 다물고 근육을 부풀렸다. 딘의 귀에는 팔 벌리고 선 재앙이라는 놈이 내는 발소리가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차하면 주먹을 날릴 기세로 앞을 주시하곤 했다. 역설적으로 말해 뒤돌아 도망치는게 불가능했기에 투쟁의 의욕은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딘 윈체스터가 입은 은혜의 실체다.
1층 주차장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팽팽하게 날이 선 공기가 주변을 에워쌌다. 그들은 뭔가의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샘의 판단으로는 단순히 잡담을 나누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실수로 당신 자동차 옆구리를 긁었소」이상의 심각함이 그 장소에 있었다.
훔쳐보는 샘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등 돌리고 선 카스티엘 쪽이 먼저였다. 『샘... 윈체스터.』 두 사람은, 아니. 한 인간과 한 천사는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피곤에 쩔은 천사라니. 피식 웃음이 나올 노릇이다. 과로사가 내일 모레라는 인상으로 눈밑의 다크서클이 장난이 아니다. 두 손을 공손이 깍지끼고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엔 파워가 가득했지만 번개와도 비슷한 눈빛만 빼면 나머진 죄다「과장님, 이러다 나 쓰러져요」다. 유행에 뒤쳐지고 구김진 코트는 추레하기까지 해서 방금 전까지 격무에 시달린 말단 사무원처럼도 보였다.
『무슨 일이야? 형.』 딘은 제대로 짜증이 났다는 얼굴을 하고 구석으로 퉷, 침을 뱉었다. 이가 덜덜 떨리는 건 단순히 춥기 때문이다. 『카스티엘과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 옷을 두껍게 입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소름이 돋는 것이다.
『별 거 아닐세, 샘.』 카스티엘은 어쩐지 난처해 하는 눈치다. 『뭐랄까... 좀 사소한 문제라네.』 『사소한?』 『내가 천사라고 해도 전자기적 문제엔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일세... 그래서 나 대신 경찰의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해서 실종신고 한 건을 취소시켜 줬으면 해서.』 『예?』 『이 남자는 자신의 죽은 육신이 하느님의 일에 쓰임받는 것에 기꺼이 동의했지만 그 가족은 아니었나 봄세. 심장마비로 잡작스럽게 죽었다는 걸 모르고 그 고모되는 여인이 실종신고를 냈더군. 지난 9월에 미네소타 주로 출장갔다가 그대로 사라졌다고 하면서 말일세.』 코가 시렸던 샘은 보기 좋게 재채기를 터뜨렸다.
『젠장젠장젠장곱배기! 절대로 안 도와줄 거야.』 딘은 콧방귀를 뀌며 침착하지 못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날 뭘로 생각하는 거야. 내게는 남이 싼 똥을 치우는 취미는 없다고.』 그리고 자세를 삐딱하게 했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을 가족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카스티엘은「불쌍하다」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여러 번 반복하여 굴리며 인상을 썼다. 너무나도 거룩한 신의 사자에겐「지상 잡 것들의 감정」은 이해가 어려운 것이리라. 그것은 인간이 개의 감정을 쉽게 알지 못하는 것과 흡사했다.
셔츠를 훌렁 벗어던진 딘의 어깨로 손바닥 모양의 화상 자국이 드러났다. 카스티엘이 남긴 흔적이다. 이 몸은 하느님의 소유다,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양새가 뚜렷했다. 『딘, 날씨가 추워.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셔츠를 도로 입도록 해.』 노트북을 열고「불법으로」경찰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하던 샘은 잠시 잔소리했다. 『난 감기따윈 안 걸려, 새미.』 『하긴... 속설에 의하면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린다고 하지.』 『누구더러 바보라는 거냣!』 베개가 슝 하고 날아들었다. 그걸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샘은「내가 그렇다고 했어? 속설이라고 했잖아, 속설」푸념했다.
Posted by 미야
2008/11/18 15:37
2008/11/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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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충격에 빠진 나머지 성 정체성에까지 혼란이 와버렸다. 『난 임신하지 않았어요!』 원래는 비웃어야 마땅하나 마찬가지로 정신이 나간 딘은 미친 장단에 맞춰 마카레나 춤까지 췄다. 『당연하지! 내가 피임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데! 콘돔을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어!』 『정말이예요. 저놈의 낯짝 두꺼운 형은 맨날 나한테 콘돔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거든요. 상점 직원이「형씨에겐 거시기 사이즈가 맞지 않을테니 요놈은 선반에 다시 올려놓고 한 칫수 더 큰 걸 가져오쇼」라고 지적할 적마다 얼마나 무안한지... 잠깐만! 내가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그거랑 이거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 『상관이 뭐가 없냐, 인석아! 나 골탕 먹으라고 일부러 맞지 않은 사이즈로 골라왔다 이거지! 어쩐지 맨날 헐렁하더라.』 『왜 나에게 신경질을 부려? 그런 건 직접 사!』 『앞으로 임신하면 모두 네 책임이야. 그런 줄 알아.』 『얼씨구?! 그게 왜 내 책임이야. 형은 책임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남자답게 책임지면 되잖아! 임신했어? 그럼 쑥덕 낳아!』 『뭐? 그럼 누가 애를 키워! 난 못 키워!』 『징그럽게 못난 놈. 눈 부릅뜨고 하는 말 좀 봐라.』 『하지만 난 아기 안는 방법도 모른단 말이야!』 『누가 네놈의 똥기저귀를 갈았다고 생각하냐. 그런 건 나한테 맏겨.』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웃긴다, 남자 둘이서. 이것도 대화라고 하고 앉았나. 『가만 있어봐, 샘. 어차피 너나 나나 수컷이라 죽었다 깨어나도 임신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나 개도 아닌데 수컷이라는 말은 쓰지 마. 남자, 남성, 사내라는 등등의 점잖은 표현이 얼마든지 있잖아. 형은 침대에서 짐승일지 몰라도 난 인간이야.』 『그으~래. 넌 나완 다르게 인간이지.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냐, 새미? 넌 남자가 아니잖아. 이 세상의 어느 남자가 분홍색 셔츠를 즐겨 입고 화장실에서 브러쉬로 눈썹을 그리겠냐. 응?』 울컥한 동생은 뒷자석에 자리한 제3자의 시선도 까마득히 잊었다. 『외모를 단정하게 다듬는 건 비난받을 짓이 아니야, 딘. 게을러서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는 사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그리고 난 눈썹을 그리진 않아. 잔털을 정리할 뿐이지!』 『시끄러, 쨔샤. 족집게로 눈썹을 뽑아대며 눈물을 질질 짜는 주제에 단정함 운운하는 건 역겨워.』 『누가 눈물을 질질 짠다는 거야! 언제 본 적은 있어?!』 『이거 왜 이러시나.「으, 따가워, 따가워」소리를 질러대는데 내가 모를 것 같아?』 『미치겠다. 형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에다 귀를 대고 막 그래?!』 『그래! 네놈이 안에서 하도 끙끙거리니까 무슨 문제가 생겼나 무서워져서 그랬다!』 『변태.』 『닥쳐! 넌 내가 변기에 앉아 똥을 쌀 적에도 앵앵대며 절대로 화장실 문을 못 닫게 했었어! 그러기만 했게. 옆으로 바짝 붙어서 코를 움켜쥐곤「형아, 똥 다 쌌어?」물어봤다고! 그것도 10센트짜리 동전에 그려진 인물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맞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진지하게! 우리 둘이서「누가 더 변태인가요」대회에 나가면 네가 1등을 먹는다는 걸 아셔야지!』 『기가 막혀. 그건 내가 코흘리개였을 적 얘기잖아. 그리고 난 그딴 대회엔 참가하지 않아.』 얼굴이 벌개진 샘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난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테니 형이나 그 잘난「파이 많이 먹기」대회에 출전하시지!』 『기억력이 엉망이구나, 새미. 초기 치매냐. 형은 슬프다. 누가 더 변태인가요, 대회라고.』 『잘났어! 가서 바지 내리고 좇이나 열심히 흔들어.』 감정이 상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뒷좌석의 조나단 - 그 이름이 아니라고 했지 않았나 - 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줄 것도 아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른 딘은 자기 혐오에 몸부림쳤다. 아닌게 아니라 조나단은「그럴 줄 알았어. 문제가 없긴 뭐가 없어. 심각하기만 하잖아.」시선으로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새까맣게 때에 절은 셔츠를 입고 구멍난 양말을 신은 망령난 늙은이를 마주보고 있다는 식이다. 이제 곧 그는 악당을 취조하는 형사인양 손깍지를 끼고「속옷을 갈아입은 것이 언제죠?」라고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길게 자란 손톱과 떡진 머리를 지적하며 입술을 비틀 것이다. 딘은 국물을 식탁에 흘리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낯뜨거움을 느꼈던 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죄송해요. 방금 점잖치 않은 말을 써서.』 자~알 한다, 새미. 거기서 왜 변명하고 앉았냐. 시어머니 앞에서 밥그릇이라도 깼냐. 『우리가 늘 이렇게 싸우는 건 아니고요,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예요.』 딘은 못난 동생을 옆으로 확 떠밀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자기에게 말을 할 적엔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굴더니 지금은 온몸으로「나는 나쁜 어린이가 아닙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돌변해도 괜찮은 건가. 여름의 날씨가 갑자기 겨울로 바뀌면 곡식은 말라죽고 질병이 창궐하는 법이다. 날씨의 변덕은 수박만한 우박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음... 그러니까 지금은 그저 의견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예요.』 샘은 내 말이 맞지? 형도 빨리 맞다고 해, 이런 투로 눈치껏 운전석을 힐끗거렸다. 딘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려, 넌 집채만한 우박에 맞아 죽어도 싸.
욱씬거리는 통증을 호소하는 목덜미를 세게 눌렀다. 옛 속담에도 호랑이 굴이 무너지면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아, 거기서 무너진게 호랑이 굴이 아니던가. 아무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잡소린 그만두고 나와서 형이나 도와.』 딘은 투철한 직업 정신에 입각하여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었다. 『쇠파이프로?!』 샘은 믿을 수 없다며 눈을 치켜떴다. 『미쳤어?!』
유령은 순철을 싫어한다. 그래서 헌터들은 몸을 방어하기 위해 순철로 만든 나이프를 하나쯤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베고 찌르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다. 순수한 철은 관리가 어려울뿐더러 너무 물러 무기로서의 기능을 100%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가정이나 군대에서 사용하는 칼에는 크롬, 니켈, 텅스텐, 바나듐 같은 금속이 첨가된다. 최근에는 비철인 티타늄이나 세라믹 재질로만 만들어진 것도 통용되는 추세다. 다시 말해 아무 가게로 들어가 별 생각 없이 25달러짜리 중국산 칼을 구입하면 귀신은 혓바닥을 메롱거리게 된다는 말씀, 그래서 윈체스터 형제들은 장식용 칼은 진작에 관두고 공사장에서 슬쩍해온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편을 선호했다. 운동장에서 야구 배트 휘두르는 감각으로 적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는 것이다.
『그걸로 저 사람을 치겠다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생을 향해 딘은 대놓고 눈을 흘겼다. 그리고 신성한 의무를 떠넘겼다. 『최근에 이 형이 아팠잖니.』 『뭐?! 나, 나보고 이 사람을 치라고?!』 『응.』 그게 우리가 늘 하던 일이잖아 - 딘은 가볍게 응수하고 뒷트렁크를 도로 닫았다.
『싫어! 천사를 쇠파이프로 때렸다고 나중에 하느님에게 작살나게 혼나면 어쩌라고!』 『글쎄다. 난 오히려 천사를 사칭한 놈을 잡아줘서 고맙다고 감사패를 받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딘은 특유의「하겠다는 거야, 아님 말겠다는 거야」으름장을 놓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되기 위해선 특별한 역경을 뛰어넘어야 한다며 가서 여자애 치마를 들추고 오라 명령했을 때가 생각났다. 딘은 그런 면에선 대단히 모질었다. 죽은 개구리를 머리에 올려놓기도 했었고, 납작하게 눌린 바퀴벌레를 운동화 밑창 아래로 끼워넣기도 했다. 축구공만 잘 찬다고 딘 윈체스터의 자랑스런 동생이 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무릇 남자라면 - 이가 갈린다 - 곱게 빗은 여자애들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겨 리본 장식이 된 머리핀이 땅바닥에 떨어지게끔 해야 했다. 샘은 방광이 오줌으로 가득 차기라도 한 것처럼 안절부절해 하며 뒷자석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덩치 큰 상급생과 붙어 주먹질을 하는 건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여자애들을 울리는 건 질색이다. 마찬가지로 무저항의 귀신 코딱지 등등을 공격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 이상 가능한 냅두고자 하는게 그의 바람이다. 딘은 그런 동생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언젠가 큰 화를 불러올 거라 경고하곤 했으나... 젠장, 세상엔 긁어 부스럼이라는게 분명히 존재한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초록 점퍼의 사내는 샘이 보기에 매우 익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찌든 양말을 싱크대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딘에게 제대로 짜증을 부릴 적에 그가 짓곤 하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못할 짓이다.
『오해가 없도록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이봐, 샘!』 『제발, 딘!』 게거품을 무는 딘을 향해 애원의 몸짓을 보인 뒤, 샘은 이마로 베어나온 축축한 땀을 닦았다. 『아무튼 설명하겠습니다.』 「부디 그렇게 하십시오.」 『이것은 쇠파이프입니다.』 「저도 압니다.」 『부탁이니 그런 눈초리로 쳐다보지 말아주시겠어요. 아무튼 이 빨간 부분은 피가 아녜요. 녹이 슬어 그런 겁니다. 우린 이걸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정말입니까. 뒷트렁크에서 그걸 꺼내든게 어쩐지 지금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만. 당신네들, 그걸로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요. 설마... 강도질?」 『아니예요! 우린 고속도로 강도가 아니예요! 그러니까 이건... 음, 얘기하자면 복잡한데...』 말을 대충 얼버무린 샘은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냉장고에 자석 붙이듯이 해서 살짝 들이밀었다. 파이프의 끝자락이 사내의 옷에 톡 하고 닿았다. 그게「휘둘러댄다」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하나도 맞지 않는 행동인지라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딘은 숨이 막혀 죽으려 했다. 『이 계집애야!』 『젠장,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설명은 차분히 들을테니 그 흉물은 일단 치우고 봅시다. 그래도 되겠지요?」 기분이 불쾌한 것이 분명한 사내가 창백한 손을 들어 쇠파이프를 가만히 밀어냈다.
샘은 눈을 휘둥글 치켜떴다. 놀란 건 당연하고 기뻐서 손뼉까지 쳤다. 『딘! 이거 봤어?! 방금 전에 이거 봤냐고! 이 사람이 쇠파이프를 만졌어!』 진짜로 이 사람은 천사인가봐, 외치며 환하게 웃었다.
끔찍스런 두통을 느낀 딘은 머리통을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Posted by 미야
2008/11/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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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딘을 좋아하면서 딘샘이면 이상한 건가요? 알게 뭐람, 샘 굴리자.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날 수를 다 채우고 바닥으로 찢겨져나간 10월의 달력은 윈체스터 가문에선「凶 」을 상징한다. 이맘때면 딘은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형을 마주 대하는 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닥쳐올 겨울을 암시하는 회색의 하늘이 모든 걸 대변한다. 11월은 영 재수가 없다.
격렬한 근육통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모텔에서 제공한 이불이 얇았나, 어깨가 춥다. 어쩌면 몸살 기운이 있는 건지도... 그렇게 몸을 뒤척이다 진실을 깨달았다. 악령이 되어버린 남자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탓에 어깨부터 등허리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물도 없이 억지로 삼킨 타이레놀은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않았다. 『끄응.』 이게 내 팔이 맞나 싶은 걸 억지로 굽혀 손목시계부터 확인했다. 오전 8시 13분,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어중간한 아침이다. 다만 오늘이 평일이 아닌 일요일이라는 걸 감안하자면 아마도 빠른 편에 속할 것이다. 직장 생활에 지친 평범한 미국인들은「난 닭이고, 당나귀예요. 깨우지만 말아요」호소하며 베개를 힘껏 붙들고 있을 터, 부족한 잠을 보충한답시고 맘껏 게으름을 부려도 괜찮은게 일요일 아침이다. 하느님도 쉬었다는데 인간이라고 쉬지 못할 까닭은 없다. 일중독자 부장님과 사장님은 물렀거라. 시간은 잔잔한 시냇물처럼 느릿느릿 흘러갔다.
버릇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웃한 침대를 살폈다. 아침 잠이 많은 딘은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올린 채 몸을 둥글게 말고 있다.「좋은 아침, 새미」라고 인사를 해주지 않는 걸로 봐선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숨죽인 채 단순히 그런 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굳모닝 인사를 받지 못했다고 심통이 나던 시절과는 진작에 작별했다. 소년은 그런 걸로 상처받지 않는다. 11월 2일, 기뻐하자. 오늘은 축복 가득한 일요일이다.
세면대 앞에 선 젊은이는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다. 피부는 거칠고 눈가엔 잔주름이 깊었다. 그리고 눈동자에 빛이 없었다. 창백한 형광등 탓이 아니다. 갈가리 찢겨 피 흘리는 심장을 가진 사람 특유의 음습함이 그곳에 있었다. 『내 이름은 샘 윈체스터입니다.』 겨우 한 발자국 이웃한 곳으로 바닥없는 절망이 넘실거리고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긴장하지 않으면. 눈을 감은 채 1분 정도 깊은 심호흡을 했다. 주의하자. 실수로 고꾸라지는 날엔 통째로 새카만 어둠에 삼켜지게 된다.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풍선껌 맛의 치약을 짜서 꼼꼼하게 칫솔질을 하기 시작했다. 분홍색의 치약은 순식간에 새하얀 거품으로 바뀌어 입안에 가득 찼다. 아랑곳하지 않고 구석구석 문질러 닦았다. 오른쪽, 왼쪽, 위쪽, 아래쪽, 따끔한 감각에 거품을 뱉어내자 약간의 피가 섞였다. 눈살을 찌푸리고 수도꼭지를 틀어 벌거적적한 흔적을 지웠다. 잇몸이 약해진 모양이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 섭취를 늘려야 할 것이다.
《난 정말 잘났어, 이렇게 대단할 수가, 너무 멋있어서 무서울 정도야~♪》 스텐포드 대학교에서 만난 그의 괴짜 친구는 하루에 세 번씩 저 말을 반복하곤 했다. 이른바 긍정적 마인드를 위한 자기 암시다. 《헤이! 댁도 어서 날 따라서 말해보라우. 땅만 쳐다보지 말고.》 리처드는 샘이 수줍음 많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런 행동이 도서관 책벌레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난 정말 잘났어~♬ 크게 외치라우, 전액 장학생 샘. 으쓱, 으쓱. 대단해~♬》 오해다. 샘이 입을 꼭 다물고 그 흉물스런 대사를 따라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 샘은 땀이 흥건한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억지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히려 밑바닥 별종이지.
비누칠도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오늘에 이르러 그 별종에겐「하느님의 사자마저 난감해한」이라는 요란한 수식어까지 따라붙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의 어머니도, 여자 친구도 죄 없이 죽임을 당해 천장에 매달렸다. 희생제물의 갈려진 배로 흘러내린 붉은 피는 샘의 얼굴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가엾은 여자들의 몸으로 검푸른 불길이 치솟았고, 그는 살과 내장이 타들어가는 매캐한 연기를 코로 들이마셨다. 그러고도 평범함을 갈구한다면 미친놈이다. 애초부터 잘못되었다. 아예 태어나지 말 것을... 신경질적으로 거울을 문질렀다. 하지만 반사된 영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태어났기에 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못 견뎌하며 입술을 깨물어도 거울 저편의 청년은 그 행동을 똑같이 따라할 뿐이다.
『아침이야. 그만 일어나, 딘.』 자는 척하고 있는게 맞았다. 이불 속에서 몸을 말고 있던 딘은「망할, 내 바지 어딨어」등등의 어줍잖은 대사를 주워삼키지 않았다. 대신 팔을 뻗어 협탁에 놓인 리모컨을 쥐었고, 달팽이가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느릿한 동작으로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전원이 켜진 텔레비전에선 식칼로 통통통 양파를 써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눈치껏 보자면 호텔 주방장이 출연하는 전문 요리 프로그램은 아니고 결혼 12년차 주부가 자신만의 솜씨를 자랑하는 듯했다. 분홍색 앞치마를 걸치고 열심히 야채를 다듬는 모습은「엄마」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통조림 콩을 꺼내들고「인스턴트 식품이 모두 죄악인 건 아니랍니다」설명했다. 아니, 그게 죄악이 아니란 말이야? - 딘이 콧방귀를 뀌는 것과 동시에 냄비에 콩이 쏟아졌다. 옆에서 허둥거리는 남편이「여보, 내 넥타이가 안 보여」라고 말하면 딱일 것 같다. 평범하고 또 평범하다. 딘은 그걸 감정이 상실된 무뚝뚝한 얼굴로 지켜봤다.
『딘?』 재촉한 것도 아닌데 그는 리모컨을 다시 들어 채널을 바꿨다. 화면은 차분한 파란색이 되었고 패널로 참석한 저널리스트가 11월 4일에 치러질 미국 대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연필로 종이 모서리를 꾹꾹 찔러가며 세치 혀로 일장연설을 퍼부어댔다. 그렇다고 해도 윈체스터 형제들은 정치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망할 릴리스가 루시퍼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점엔 변화가 없을뿐더러 도움도 되어주지 않을 것이다. 의회에서 악마부활 금지법을 통과시키고 초자연적 빙의방지 특별 위원회를 결성시킬 성 싶은가. 껄껄 웃으면서「뭐? 악마? 루시퍼? 그건 새로 찍는 맨인블랙 3탄이오?」이죽거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딘은 한참동안 텔레비전 너머를 쳐다봤다. 그러다 변화의 미국 등등의 이야기를 한쪽 귀로 흘리면서 방광을 비우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샘의 귀로는 자신의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는 딘이 아직까지 자기에게 단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셔츠의 단추를 목 위에까지 차곡차곡 잠궜다. 남들이 얼굴색이 왜 좋지 않으냐 질문하면 이렇다 대답할 핑계꺼리가 필요하다.
『촌구석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이 시간에 문을 연 가게가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다.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서 이곳이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닌 꾸며진 영화 세트장인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앞에서부터 뒤쪽까지 빙 둘러봐도 셔터가 내려진 가게가 대부분이다. 장삿꾼들끼리 사전에「주일은 온전히 쉽니다」약속이라도 한 모양이다.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인양 홀로 문을 연 곳은 간단한 물건만 취급하는 편의점이 전부, 그렇다고 열량이 많은 초컬릿 바와 콜라로 식사를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동작은 그래서 신경질적이었다. 식성이 아무리 좋아도 댓바람부터 냉동 피자로 끼니를 때우는 건 싫다. 딘은 한숨을 삼킨 채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샘의 동작은 더욱 부산스러워졌다. 시리얼에 차가운 우유를 부어먹는 건 샘도 사양하고 싶었다. 『도대체 다들 어디로 간 거야! 땅 파서 지구 반대쪽으로 사라졌나!』 딘은 재차 투덜거렸고, 샘은 아예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음식점을 하나 보긴 했는데 잘못 본게 아니라면 앞에 걸린 푯말은「닫혔음」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평범한 샌드위치일 뿐인데. 쳇.』 조수석에 앉은 샘은 딘의 불평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원.하.는. 평.범.한. 샌.드.위.치.
못 찾을 만도 하다. 영원히 구할 수 없으리라.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일요일은 싫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발언을 입에 담은 딘은 길게 내민 입을 삐죽거렸다. 『따뜻한 밥 한 숟갈 제대로 먹기 힘들고.』 그들은 15분 전부터 문을 연 식당을 찾는 일을 포기했다. 『청승맞게 이 꼴이 다 뭐야.』 시골의 식당은 일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다. 촌부들은 배를 곪는 외지인이라는게 뭔지 모른다. 딘은 교회로 가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노부부를 정신줄 놓고 쳐다봤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으로 지팡이를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평온해보여 화가 치민다. 천천히 길을 걷는 노인의 온화한 분위기가 비뚫어진 마음 구석을 자극했다. 타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불행을 깨닫는 건 비참하다. 깊숙이 파인 세 줄의 이마 주름은 그래서 도로 펴지지 않았다.
『젠장, 미친 척하고 교회라도 갈까.』 『에? 딘은 기도를 하지 않잖아.』 『그래도 넌 기도하잖니.』 거기까지 말한 딘은 동생의 멍이 들지 않은 쪽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가서 하느님에게「가게 문을 열어주세요」라고 해.』 샘은 살짝 웃었다. 『진심이야?』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리는 것이리라. 딘은 이것밖엔 할 일이 없다는 투로 자신의 발잔등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신발코에 생긴 얼룩이 양파를 닮았다고 상상하는 듯했다. 무려 5분간이나.
샘의 미소는 맹물이 잔뜩 들어간 오렌지 주스처럼 서서히 그 맛을 잃어갔다. 악수를 청한 손을 감싸쥔 카스티엘의 피부는 냉랭했다. 온기라곤 터럭만큼도 없었다. 「샘 윈체스터. 악마의 피가 흐르는 소년...」 그는 모든 불행의 원흉이다. 더러운 피. 모두를 비참하게 만든다.
『미안.』 딘은 동생의 사과를「창피해서 그런 걸로는 기도할 수 없어」로 해석한 것 같았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쓰게 웃었다. 『하긴, 카스티엘이 알면 대놓고 우릴 비웃어댈 걸. 전능하신 양반에게 고작 기도한다는게 밥 좀 줘요, 라니. 내가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사람이 한 끼 굶는다고 설마 죽겠냐. 관둬, 관둬. 기도따위 하지 않아도 돼. 교회엔 가지 말자.』 『딘.』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야.』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피로한 목구멍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듯한 거친 소리만 튀어나왔다. 샘은 한참 뒤에야 그게 울음을 닮았다는 걸 깨닫곤 소스라쳤다.
Posted by 미야
2008/11/06 21:12
2008/11/0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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