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의 취향에 따라 때로 그 내용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을 적엔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을 닫는 멋진 센스를 보여주세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딘 윈체스터에게 있어 67년도 세비 임팔라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① 동생에게조차 운전대를 넘기길 거부 - ② 광고 전단지라도 붙여놨다 싶으면 끝까지 쫓아가 이단옆차기 - ③ 카메라로 그 우아한 모습을 찍어 고이 모셔두고 - ④ 얼굴에 검댕 묻혀가며 고장 난 부분을 직접 수리... 살인혐의로 수배중인 주제에 경찰서 증거물 보관 창고에 몰래 숨어들어가 임팔라를 꺼내왔을 정도다. 지나치게 눈에 띄는데다, 기름 값이 장난 아니게 들고, 단추 하나만 누르면 웬만한 건 자동으로 조작되는 요즘 자동차와는 달리 부랴부랴 핸들을 돌려 유리창을 내려야 한다는 불편함 따위는 머리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완벽했다. 낡은 클래식 카에 대한 숭배는 유별나서 알 아크사 순교자여단에서 차량 아래로 폭탄을 설치했다고 알려와도 밖으로 몸을 날리는 대신 장렬하게 같이 폭사하는 편을 택할 것이 뻔했다.
『딘!』 형이 운전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에 샘은 대신 움직여야만 했다. 『나와!』 딘은 차문을 벌컥 열어젖힌 동생을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어쩐지「내가 왜?」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샘이 분명한 의도를 갖고 옷자락을 움켜쥐자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그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안으로 뒷걸음질 쳤다. 『제발~!!』 샘은 자신의 팔이 평균치보다 1인치 더 길다는 점에 감사했다. 크고 단단한 손바닥을 가졌음에 기뻐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잘도 피하며 묘기를 연출하던 딘을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잔뜩 흥분한 딘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뜨거운 피가 몰린 관자놀이가 무섭게 불끈거렸다. 『네놈 머리빡에 기생충이라도 들어갔냐?! 상대가 틀렸잖아!』 울부짖다 말고 자동차 뒷자석을 향해 신랄하게 손가락질했다. 여기서 생략된 말은「내가 아니라 저놈을 끌어내야 맞다고!」다. 하지만 자음과 모음이 제대로 된 언어로 조합되기도 전에 딘은 몸을 휙 돌렸다. 오로지 운전석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미치겠네. 딘!』 형의 움직임이 다람쥐처럼 얼마나 잽싸던지 샘은 하마터면 그를 놓칠 뻔했다. 『진짜지 바지를 질질 흘리고 돌아다니는 로완 앳킨스*(미스터 빈)처럼 굴거야?!』
그들은 헌터다. 설령 입싸움에 정신이 팔렸다고 해도 제3자가 자동차에 몰래 올라타는 걸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게다가 세비 임팔라 양은 나이를 하도 잡수셔서 이쪽에서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도 문을 열고 닫을 적마다 듣기 싫은 찌그덩 소음을 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커 주유소에서 몰래 기름만 넣고 도망치기란 절대로 불가능할 거라며 형제들은 농담 아닌 농담을 나누기도 했었다. 『어. 난 아무 소리 못 들었는데.』 허리춤에 손을 올린 딘은 그쯤해서 온전하고도 정상적인 사고를 했다. 『맙소사! 문도 안 열고 저게 어떻게 안으로 들어왔지?!』 『바로 그거야, 딘.』 겨우 한숨 놓았다는 어조로 샘이 대꾸했다.
이 경우엔 38구경 권총은 그다지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를 감을 잡지 못한 채 딘은 임팔라 주변을 천천히 배회했다. 안쪽에 앉은 그것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샘은 만약을 위해 반대편으로 자리를 잡고 다리를 벌렸다. 그런다고 해봤자 낭패다. 각종 부적이니 암염탄이니 하는 귀중한 장사 밑천(?)은 죄다 트렁크 속에 모셔두고 있는 상태라서 현재 샘의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건 민트향 껌 한통과 볼펜 한 자루가 전부다. 『어떨 것 같아, 딘.』 『제기랄,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거야?』 눈으로 봐선 상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 조금은 왜소한 체격이고, 짧게 자른 갈색 머리는 관리 미숙으로 일부가 완전히 드러누웠다. 1시간 전에 잠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양치질만 해치우고 휴일 날 출근한 영업사원 분위기다. 실수로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다고 해도 그런가보다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내가 입은 작업복 분위기의 녹색 점퍼에는「오래된 친구들」이라는 로고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그게 이름도 생소한 중소 가전제품 업체 이름인지, 아니면 댈튼 고등학교 졸업생 모임을 의미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사비로 제작한 앨범을 겨우 500장 정도만 팔고 쫄딱 망해버린 록 밴드 이름일 수도 있다. 어쨌든 딘은 그의 옷 입는 취향이 샘보다 곱절로 나쁘다고 결론지었다. 『내 옷이 뭐가 어때서!』 『네놈이 여차하면 꺼내 입는 분홍색 왕대박 프린트 셔츠는 걸레짝 같아 구역질난다고.』 『하아?! 걸레짝~?! 언제는 귀엽다고 했으면서!』 『넌 농담과 진담도 구분 못 하냐. 그건 반어법이었어, 이 원숭이야.』
그것의 눈동자가 목소리를 쫓아 딘으로부터 샘에게로 이동했다. 침착하고도 조용한 눈빛이었다. 딘은 흠칫해서 얼른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에서 음산한 섬광이 번쩍였다. 조심해야 한다. 외견만으로는 악마에 씌인건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친절한 소방관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쇼핑센터에서 에나멜 구두를 고르는 아가씨의 모습을 취할 수도 있다. 잘 구워진 베이컨 소시지를 써빙하던 웨이츄리스가 갑자기 돌변하여 그를 공격한 일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씨발! 내 엉덩이에서 눈 떼지 못해?!」라고 외쳤다. 『으이그, 형... 말은 똑바로 하고 살자. 그건 악마가 아니잖아.』 『왜 실눈을 뜨고 날 쳐다보는 건데? 난 그 여자 D컵 가슴만 훑어봤지 맹세코 엉덩이는 감상 안 했다고. 그런데 그 암탉은 플라스틱 쟁반으로 내 머리를 후려갈기려 했어.』 『나라도 후려쳤다. 성추행으로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 『예쁘니까 쳐다봤다. 그런데도 내가 죄인이냐?!』 각설하고, 딘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며 동생에게 눈짓했다. 봉마의 힘이 깃든 라틴어 주문은 그보다 동생이 능숙하게 잘 읊는다. 딘은 수첩을 보면서 더듬더듬 읽는 수준이고, 그나마 간혹 틀렸다.
『헤이!』 바짝 긴장한 상태 그대로에서 유리창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런 자세가 위협적으로 보여지길 희망하며 - 그런다고 쫄아붙을 악마도 없지만 - 목소리를 밑바닥까지 내리깔았다. 『당신, 뭐야.』
영원처럼 지루한 3, 4초가 흘렀다. 형제는 그 남자의 눈동자 안으로 짙은 암흑이 번져나가는 걸 상상했다. 땅은 요동치고, 별은 추락하리라. 무저갱의 큰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와 낮의 해는 어두워지고 공기는 전갈의 독으로 더러워질 것이다. 청동의 말이 달린다. 그 위로 올라탄 해골은 커다란 낫을 쥐고 있다. 그리하여 선포되는 것은 죽음의 저주이자 종말의 임박이다. 『뭐냐니까!』 하지만 돌풍과 함께 벼락이 수직으로 내리꽂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징조는 그들을 비껴갔다. 사내의 눈꺼풀이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깜빡깜빡 움직였다. 무어라 운을 떼면 좋을지 속으로 열심히 궁리하는 눈치다. 너무 뜨거운 나머지 삼키지 못하게 된 국물인양 에, 또, 그러니까 식의 모호한 표현을 오물거리며 인상을 썼다. 돼지 꼬리 모양으로 손가락도 꼬았다. 그 모습은 1959년 12월 1일에 맺어진 남극조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이건 형의 숙제지 내 숙제가 아니야!」불만스럽게 따지던 샘과 비슷했다. 그래서 딘은 달각 소리가 나게끔 문의 손잡이를 단숨에 잡아올렸다. 『내 차에서 당장 내려.』 사람에게 빈대붙은 악마 좋아하시네. 딘은 그가 지능이 약간 모자른 사람이라고 추정했다.
『잠깐! 이러고 끝이야? 정말 끝이냐고.』 『웃기는 해프닝이었어. 잊어버려, 샘.』 『아무래도 악령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 『이 멍청아. 그러니 더더욱 잊으라는 거다.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라고.』 『저렇게 길가에 아무렇게나 세워두고「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렵니다」이래도 되는 거야? 저 남자는 심지어 가방도 갖고 있지 않아! 내버려두면 조난당해 죽을지도 몰라!』 『맘대로 하셔, 샘. 경찰서에 얼른 전화해서「132번 국도에 방황하는 포레스트 검프가 나타났소이다. 부탁이니 붕대로 꽁꽁 감싸서 정신병원으로 얼랑 데려가쇼」신고하라고.』 『형!』 『알게 뭐야! 저런 정신 나간 히치하이커에게까지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곤란에 처한 사람알 수도 있어. 강도에게 소지품을 몽땅 빼앗긴 건지도 몰라.』 『흥! 네 말대로라면 말이다, 샘. 자길 도와달라고 소리소리 질렀을 걸.』
듣고보니 그 말이 맞다. 샘은 혀를 깨물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람이 차렷 자세로 앉아「위험하니 계속 갓길에 정차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설교조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발 도와줘요, 살려줘요, 911을 불러줘요, 임신한 내 아내에게 진통이 왔어요. - 만삭의 여성이 근방으로 안 보였으니 이건 취소 -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가 방금 풀려났어요, 기타등등. 결국 강도 어쩌고 가설은 폐기해야 마땅하다. 남자는 학교 선생님처럼 침착했으며, 어디가 아픈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뒤돌아볼 것 없다니까, 샘.』 모르겠다. 속도를 내는 운전 탓에 솟아오른 먼지 너머로 언뜻 비치는 사람 그림자는 이미 무척 작아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래되어 망가진 교통 표지판처럼 느껴졌을 뿐, 그것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샘은 괜히 불안해졌다.
『도대체 정체가 뭐였을까.』 『미친 놈이지 뭐겠냐.』 『그치만 형? 이거 하나는 확실해. 난 그 남자가 임팔라에 올라타는 걸 보지 못 봤어.』 『그래. 나도 알아. 그 자식이 빛의 속도로 움직였거나, 아님 네가 눈 뜬 장님이라는 거지.』 『농담이 아니야. 난 심각해, 딘.』 『나도 심각하다, 아가. 내가 지금 웃고 있는 걸로 보이니?』 『제기랄! 내가 보지 못했으면 보지 못한 거야! 꼭 그렇게 미심쩍다는 식으로 말해서 사람 기분을 언짢게 만들어야 만족스러워?』 『과민반응하는 넌 어떻고! 사람 눈이 만능은 아니야. 네가 한 눈을 팔았을 수도 있잖니. 너야말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아니다, 새미.』 『새미가 아니라 샘!』 『으이그, 또 시작이군.』 『형이야말로 그만둘 수 없어? 난 열 두 살 꼬맹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새로 시작한 형제들의 말다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서 그럽니다만, 반대편 차선으로 대형 트럭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야?!』 「그리고 제한속도를 준수합시다.」 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작업복처럼 생긴 점퍼를 입은 남자가 언제부터인가 비굴한 표정으로 이쪽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베시시 웃는 건 어딘지 모르게 배우 칼 펜* 을 닮았다. 제 발로 차에서 내린게 언제라고? 끼익 소리를 내고 임팔라가 정지했다.
Posted by 미야
2008/10/15 14:38
2008/10/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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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처음부터 순탄치 않은 여행이었다. 여전히 딘의 시선은 도로 정 중앙을 향한 채였다. 하지만 그가 설치한 고성능 접시 안테나는 옆으로 드러누워 불온한 공기를 열심히 탐색하느라 바빴다. 마침내 달각 소리를 내며 불이 켜진 최신형 컴퓨터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나사의 과학자를 위해 간략한 보고서를 인쇄했다.「메탄과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인 대기, 인간의 허파로는 호흡이 불가능, 고약스런, 숨 쉴 수 없는...」 말을 하기 위해 아, 하고 입을 벌렸다가 잠시 숨을 골랐다. 『뭐가 문제지? 새미.』 『새미가 아니라 샘이야.』 엉덩이에 종기가 났다는 식으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샘은「형의 실수」를 깍듯이 정정해준 다음,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글자로 옮겨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한 샘의 행동은 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도 남았다. 왜냐하면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샘은 무려 열 일곱 번씩이나 따끔거리는 가시가 허벅지를 찌르고 있다는 식으로 움찔거렸고, 그때마다「주의, 좌측으로 스테고사우루스 출현. 피해갈 것」이라는 잘못된 메시지가 스팸 메일처럼 접수되었던 것이다.
완벽하게 구워진 웨딩 케이크 위로 파리가 앉았다. 이걸 파리채로 철썩 후려갈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살충제를 뿌릴 수도 없고. 하얀 크림 위에서 징그러운 왕파리가 다리를 싹싹 비비고 있다. 살기가 치솟는다. 『형이 묻잖아. 뭐가 문제냐고, 새미!』 이 얼마나 탁월한가. 좌우 엉덩이에 번갈아 체중을 싣는 것 정도로 남을 열 받게 만들다니. 『젠장! 똑바로 앉지 못해?!』 이쯤해서 동생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 화장실 가야 해.』 입이 떡 벌어지는 발언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딘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허깨비를 본 것도 아닌데 왜 눈을 비벼.』 머리가 좋은 샘이 재빨리 틀린 부분을 지적했지만 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장거리 여행에 익숙해진 몸은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습관처럼 어떤 의식을 치렀다. 그게 뭐냐고? 화장실에 가서 방광을 비우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미키마우스 인형에 열광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거였다. 딱히 신호가 오지 않았음에도 딘은 심지어 두 번, 세 번 다녀오기도 했다.
『출발한지 이제 겨우 40분이다, 인석아. 모텔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오줌을 누지 않은 거니?』 『틀려.』 『젠장. 깜빡 잊고 양치질을 빼먹었다고 하면 귀엽기라도 하지!』 『그게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속도 좀 줄여. 아랫배가 살살 아프단 말이야.』 『뭐어?! 지금 큰게 마렵다고 했어~?!』 이거야말로 기자들이 연필에 침을 바르고 좋아라 난리를 치며 대서특필할 사건 - 공주처럼 우아한 샘 윈체스터가 궁댕이를 옴죽거리며 똥이 마렵다고 했다. 하얀색 변기가 광채를 띄며 초음속 비행기처럼 날아다녔다. 남성용 소변기가 하나, 그리고 위풍당당한 좌변기가 두 개였다. 아니다. 딘은 여우에게 홀린 상태에서 깨어나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어떤 누구도, 대통령이든 교황이든, 인간이라면 감히 피해갈 수 없는 생리현상을 비웃어선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배꼽이 빠져라 (비)웃는 대신 심각해졌다. 소프트볼 경기장 근처의 벤치에 앉아「왜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지」를 곱씹으며 눈물을 참던 시절로 되돌아가 이마에 깊은 고랑을 만들었다. 이 마당에 흥분하면 망하는 거다. 침착해지자.
『설사냐.』 『몰라.』 『그러니까... 그게... 크음! 제법 심각하냐?』 『주유소가 보이면 얼른 세워.』 방구 뀐 놈이 당당하다고 샘은 대놓고 명령했다. 『그리고 속도를 줄여. 지금 괄약근에 힘주며 긴장하고 있는데 좌우로 차체가 흔들리면 실수로 폭탄이 터지게 될 거야. 짐작하건데 그건 딘도 원하지 않을 걸.』 이쯤해서 딘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당신은 누구세요?」를 외쳤다. 『크리스토!』 『그래, 맘대로 지껄여.』 『내가 지금 의심 안 하게 생겼니?! 샘! 이건 말이 되질 않아! 말이 되지 않는다고!』 『형과 마찬가지로 나도 음식을 먹고, 소화를 시켜선, 배설을 해. 뭐가 의심스럽다는 거야.』 『식은땀 하나 안 흘리면서 맨질맨질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까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 거다! 스펀지밥이 사는 바다속 동네 이름이 비키니 시티가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의심을 안 하냐! 너라면 그딴 개소리를 믿겠니?!』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나서 쏘아붙였다. 『솔직히 바비 아저씨에게 가기 싫다고 털어놔. 네놈이 거짓말을 지어내면 개그가 되어버려.』
입술을 안으로 오무린 샘이 눈을 흘겨떴다. 이에 질세라 딘은 단상에 올라 상습 지각생들을 나무라는 교장 선생님의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싸늘한 눈빛만으로 충분히 각자의 의견을 전했다. 『얼간이.』 『멍청이.』 쓰잘데기 없는 부연 설명을 뒤로한 채 임팔라는 끽 소리를 내며 갓길에 정차했다. 그와 동시에 샘은 날렵한 동작으로 - 그게 과연 괄약근에 힘주고 있다는 사람의 자세인가 - 튕겨나가듯 땅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문짝이 부스러져라 차문을 닫는 것으로 딘의 마음 씀씀이에 대한 작은 고마움을 표현했다. 밍크 고래가 수족관에서 헤엄을 쳐도 이보다 더 웅변적이진 않으리라. 딘은 눈을 질끈 감고 하나, 둘 숫자를 헤아렸다. 이 정도로 동생을 때려선 안 된다, 이 정도로 동생을 때려선 안 된다. 동생을 때려선... 하느님, 왜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십니까!
붕붕 소리가 나도록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며 목이 터져라 고함질렀다. 『이 새끼가 지금 죽을라꼬! 당장 돌아와!』대답 대신 샘은 고개를 빳빳이 세웠을 뿐이다. 『우린 지금 네 녀석 고추 깔대기를 손보러 비뇨기과를 방문하는게 아니야. 왜 뒤로 빼고 지랄이야! 아무렴 바비 아저씨가 야메로 고래를 잡겠냐! 야! 새미!』 집요하고도 꿰뚫는 것 같은 시선만 돌아왔다. 유독한 물질에 중독되기라도 한 것처럼 동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순전히 재미로 편의점에서 초콜렛이나 건전지, 성인용 잡지책 같은 잡동사니를 훔쳤을 적에 짓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원망, 그리고 비난... 그리고 천사와 유니콘의 존재를 믿는 소년의 애원이었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 입안에 고인 쓴 맛의 침을 뱉었다. 그리고 악을 썼다. 『그래!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은데 이 형이 거기로 데려가주지 않아 정말 미안허다! 기린이 보고 싶은데 동물원에 못 가서 어떻게 하냐. 게이들의 기독교회에서 찬송가를 불렀어야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뜯어말린 이 못난 형의 양심이 마구 가책을 받는다!』 감정적 소모전은 그가 다룰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딘은 말싸움으로는 동생을 못 이겼다. 침묵이 안개처럼 깔리는 전장에선 더더욱 기를 못 폈다. 담벼락 위에 일렬로 세워놓은 빈 맥주 깡통을 모조리 명중시킬 줄 알아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어린 동생 앞에선 그딴 건 별 소용없었다. 샘을 다루려면 존이 가르쳐준 것 말고 전혀 다른 기술과, 전혀 다른 전술이 필요했다. 『잘 들어, 이 못난 자식아! 다섯까지 세는 동안 안 돌아오면 길바닥에 내버려두고 나 혼자 갈 테다! 하나, 둘, 셋~!!』 윽박지르는 것 말고는 설득의 수단이 없다는 건 서글프다. 『망할 놈의 똥강아지.』 그리하여 마지막 말은 푸념 섞인 혼잣말에 가까웠다.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긴 샘은 시선을 길바닥 쪽으로 떨어뜨렸다. 검정색 잉크로 찍혀진 작은 발자국들의 흔적을 따라가듯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땅위로 올라온 개미가 줄을 지어 기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낭패다. 비가 올 거라는 신호니까. 『옛날에도 그랬어.』 『뭐?』 『옛날에도 그랬다고! 형이 지독한 독감에 걸렸을 적에 아빠는 나를 데리고 짐 신부님에게로 갔어! 가는 도중에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먹게 해주고, 평소에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하던 그림책도 잔뜩 사줬어!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신부님께 인사시키고는 그대로 내뺐어! 형이랑 둘이서만 집으로 돌아갔다고!』 『에?』 『그때도 아빠는 정면만 응시하며 운전을 했어! 콜록거리며 힘들어하는 형에게 콜라를 건네준다고 했다가 실수로 뒷자석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었을 때도 수건만 던져주고 내 눈은 안 쳐다봤어!』 그런 일이 있었던가. 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억에 없다. 『있었어!』 『그런데 왜 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 거지?』 샘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건... 내가 너무 울어대서 30분 뒤에 짐 신부님이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거든.』 『오우!』 애가 울어봤자 얼마나 울겠느냐 우습게보면 안 된다. 진짜지 샘은 질리게 울어댈 줄 아는 신통한 녀석이었고, 일단 악을 쓰기기 시작하면 몹쓸 망령도 귀를 막고 십 리 밖으로 달아나고도 남았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건 애교에 가깝다. 그리고 경보기는 총으로 쏘아 망가뜨려도 된다. 「어쩔 수 없겠소, 존. 독감에 걸린 두 명의 윈체스터에게 죽도록 시달릴 각오를 하고 이리 돌아오시오.」 마귀와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신부도 서럽게 울부짓는 어린애 앞에선 일찌감치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싱크대에 세제를 풀어넣는 요령으로 손가락을 둥굴게 휘저었다. 『그게 언젯적 일이냐. 세 살? 아님 다섯 살?』 『잘 모르겠어. 으음... 형이 노먼 영감님네 고양이 매카티를 납치했던 때가 언제지?』 『맙소사! 그럼 넌 네 살이었어, 샘!』 『그래서?』 『나는 여덟 살! 하지만 독감에 걸렸던 건 기억이 나지 않아. 너, 제대로 알고 떠드는 거냐? 아무래도 전혀 다른 내용을 엉뚱하게 각색해서 기억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 형은 첫 번째 키스 상대의 이름조차 틀리게 기억하는 돌머리지만 (* A signal for Help : 샘은 딘에게 그의 첫 번째 여자친구의 이름이 에밀리가 아니라 엘리슨이라고 지적했지요. 팬픽 설정입니다.) 난 안 그렇거든.』 『흥이닷! 그 가엾은 여자애한테 유통기한 지난 썩은 우유를 끼얹는 심술을 부린 건 새카맣게 잊어먹고 있었으면서 어디다 대고 자기 머리 좋다고 자랑질이냐, 이 왕대갈박 악당아!』 『형이야말로 멋진 창작의 세계에서 살고 있네요. 이야기를 멋대로 지어내지 마시지!』 『너야말로 마크 트웨인 뺨친다, 야!』 『켁! 마크 트웨인을 알기는 알아?「톰 소여의 모험」도 안 읽은 주제에!』 『읽었어! 그러니까 독후감도 써서 제출했지!』 『거짓말이라는 거 다 알아, 딘. 미시시피 강에서 톰은 헤엄을 쳤습니다, 풍당풍당. 이렇게 딱 한 줄만 적어서 냈잖아!』
이쯤해서 제2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실례합니다, 두 분.」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소곳이 충고했다. 「위험하니까 계속 갓길에 정차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젊은 두 청년이 목이 터져라 언성을 높이고 있으니 누군가 관심을 갖고 접근할 수 있다. 상대가 교통 경찰관이라고 생각한 딘은 재빨리 가식된 미소로 표정을 바꾸고 이쯤이겠거니 싶은 곳을 응시했다. 『아이고~ 수고 많으십니다!』 어랍쇼, 그런데 열심히 기웃거렸어도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딘! 뒤쪽이야!』
그럴 수밖에. 상대는 꼭 붙인 무릎 위로 양손을 올려놓은 채 임팔라 뒷자석에 이미 얌전히 앉아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08/10/08 14:05
2008/10/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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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게 흘러가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그녀는 내 꺼야!』 『기세 좋게 올라탔다가 토한게 언제라고 그래. 그러지 말고 내게 넘겨.』 『젠장, 사람이 어쩌다 실수한 거 갖고 너무 그러지 말자!』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다 말고 목소리를 억지로 낮췄다. 아침 댓바람부터 주차장에서 옥신각신 다투면 아무래도 사람들 주의를 끌기 마련이다. 아닌게 아니라 피곤에 지친 몸으로 렌터카에 열쇠를 끼어넣던 세일즈맨이 고개를 번쩍 들고 이쪽을 쳐다봤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인가. 그 표정에는 놀란 부분도 있고, 흥미진진한 것도 있다. 비유하자면 여행객들의 텐트를 후리고 통조림을 훔쳐내는 반달곰을 우연히 목격했다는 식이다. 겁은 나지만 동영상으로 찍어「아메리카 홈 비디오」프로그램에 내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눈치다.
으이그, 내가 못 살아. 딘은 다치기 싫으면 저리 꺼지라는 식으로 몸짓했고, 말귀를 얌전히 알아들은 사내는 얼른 운전석 쪽으로 몸을 감췄다. 부르릉 시동을 거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래봤자 한 여자를 두고 삼각관계에 빠진 (절대로 오해!) 두 변태를 훔쳐보는 눈길은 그대로여서 딘은 등껍질이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어깻죽지를 긁적거리며 다시 시작했다. 『어디까지 했더라... 도중에 방해를 받았더니 헷갈리네. 그래! 운전은 내가 할 거야. 그러니까 임팔라 열쇠 내놔.』 『좀 현명해질 수는 없어? 형이 구토를 하기 위해 등을 구부리면 전봇대는「안녕하쇼~ 형씨들」 이러고 우리에게 다가올 거야. 난 그런 끔찍한 일은 겪고 싶지 않아.』 『누가 할 소리! 넌 차렷 자세로 핸들을 꼭 잡고도「전봇대 형씨들, 안녕하쇼~ 이 몸은 샘 윈체스터라고 하오. 이제부터 잘 부탁하오」이러잖아. 나도 그건 사절하고 싶다.』 『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맨날 담벼락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카미카제인 줄 알겠다. 억울해!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운전하는데!』
샘은 화가 나면 입을 앙 다물고 턱을 뾰족하게 만드는 버릇이 있다. 그때마다 온화하고 상냥한 성품의 청년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대신 등장하는 건 발톱을 세운 사나운 야생 고양이다. 온몸의 신경줄이 24시간 세탁소 간판처럼 불을 밝혔다. 발끈해서 덤비는 동생이 썩 달갑지 않은 딘은 일단 신중해지기로 했다. 『이거 왜 이러시나. 넌 신호위반 딱지도 끊었잖아.』 『그거야 형이 옆에서「밟아, 아~씨, 밟아」난리치며 정신을 사납게 만들었으니까 그랬지!』 『굼벵이 마실 나가는 3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내가 참견을 안 하게 생겼냐. 생긴 건 멀쩡한데 왜 그리 둔해 터졌는지.』 『누가 둔하다는 거야! 그게 동생에게 운전을 가르쳐준다고 해놓고 귓청 떠나가라 메탈리카 테이프를 틀어놓은 사람이 할 말이야?!』 『어허라, 경고하는데 감히 메탈리카를 욕하지 마, 샘.』 『누가 메탈리카를 욕했다는 거야! 내가 욕한 건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은 형이야!』 『그럼 할머니 자장가나 졸리는 찬송가라도 틀었어야 했다는 거니? 이거 왜 이러셔!』 『할머니 찬송가도 필요 없어! 내 말은 익숙하지 않은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형이 날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야 했다는 거야! 그런데 형은 킬킬 웃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방해만 했잖아!』 『이게 어디서 기억을 각색하나. 난 안 웃었어. 대신 비명만 질렀지. 왜냐하면 그 망할 놈의 전봇대가「안녕하쇼~ 형씨들」이러고 반갑게 인사했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딘은 동생의 잘난 머리를 찰싹 후려갈겼다. 『그만 투덜거리고 열쇠나 내놔.』
자동차에 올라타는 것에만 반나절을 소비하고 앉았으니 갈 길이 멀다. 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샘은 노란 빛깔의 거미를 잘못 삼켰다는 식으로 굴었다. 그래봤자 네 살의 차이는 뛰어넘기가 불가능한 저승과 이승의 간격과 비슷해서 샘은 형님의 말씀에 깍듯이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형이 운전할거야?』 깃대가 꺾어진 흉물스런 전장의 깃발을 신경질적으로 뭉개며 샘이 물었다. 『그게 지금 내가 원하는 거야.』 『알았어. 하지만 몸 상태가 나빠진다 싶으면 곧바로 나에게 말하고 차를 세워야 해.』 『오냐.』 『약속하는 거다?』 『지긋지긋한 녀석! 그렇게 할게. 약속하마!』 딘은 길게 뻗어나간 도로를 주시했다. 오전의 햇살에 벌써부터 달아오른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햇빛을 즐기기엔 다소 더운 날이 될 듯 싶다. 전선주에 연결된 고압선들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늘어졌다. 찌는 듯한 여름도 머지 않았다.
『평소보다 속도를 낼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목요일까지는 어떻게든 도착해야 해. 우린 너무 많은 시간을 길바닥에서 허비하고 있다고. 금요일부턴 바비 아저씬 댁에 안 계셔.』 『어... 무슨 일 있어?』 팔짱을 끼다 말고 샘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표면적으로 폐차장을 운영하고 있는 바비네 집은「사업을 접은지 한 3년은 되었거든요」싸늘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전표를 끊는 직원은 당연히 없고, 거래하고자 나타나는 손님들도 없다. 고철을 취급하는 앤서니라는 이름의 사내가 어쩌다 두툼한 현찰을 들고 찾아오지만 그나마 1년에 한 두 번 정도다. 윈체스터 형제들도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 딘은 LA 다저스의 야구 모자를 쓴 앤서니가 대머리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한다. 『유나바머*(문명혐오주의자 테러리스트로 20년간 숲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우편물로 폭탄을 발송했다)를 흉내내는 아저씨가 무슨 일로 집을 비우신다는 거야?』 샘은 바비가 새장가라도 드는 건 아니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쁜 아줌마랑 데이트라도 있대?』
소년이여, 핑크빛 꿈은 그만 꾸어라. 차이라면 조금 늦게 시작했다는 것 정도다. 샘 역시 딘과 마찬가지로 10대가 되자마자 총을 잡았고, 암연탄을 빵빵 갈겼고, 썩은 시신을 불살랐다. 궂은 일은 형이 앞장서서 해치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생은 덜했지만 기본적으로 샘이 해야 하는 일은 모두와 비슷했다. 그러니까 클립으로 수갑 풀기와 같은 낭만과 담 쌓은 모든 행동들 말이다. 『아저씨가 오랜만에 외출한다고 하면 넌 제일 먼저 데이트가 떠오르니?』 당혹감에 휩싸인 채 동생을 쳐다봤다. 동화적인 (계집애처럼) 사고방식이 가능한 그는 누구인가. 샘이 낯설다. 『바비 아저씨게 그 말씀을 드리면 어떤 얼굴을 하실지 엄청 궁금하다.』 동생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청바지의 보풀을 뜯어내는 척했다. 『아니, 말하자면 그냥 그렇다는 거고...』 자기 딴에도 부끄러운 줄 아는 모양이다. 그 모습에 딘은 조금은 안도했다.
『데이트는 아니야. 그렇다고 사건인 것도 아니고.』 『그럼 무슨...』 『친분이 있는 사람과 만날 약속이 있다고 하셨어. 구체적으로는「책」때문이라고 하셨고. 구하기 힘든「그쪽」으로의 책을 팔겠다는 사람이 나왔나봐. 원본이라면 박물관으로 가야 하는 귀한 물건인데 짝퉁이라고 최종적으로 판명이 나서 업자들 손으로 넘어간 것 같아. 하지만 우리들 입장에선 거기에 적힌 내용만 중요하지 양피지나 제본의 상태, 역사적 가치는 언급할 까닭이 없는 거잖아?』 『그건 그래.』 동의의 뜻을 담아 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샘 윈체스터다. 책 이야기에 수긍하기가 무섭게 새로운 의문이 솟구쳤다. 『잠깐만. 그럼 우리가 이렇게 서두를 까닭이 없잖아.』 『에?』 『바비 아저씨가 외출했다 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느긋하게 가면 된다고. 우리야말로 급한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꽁지로 불이 붙은 것도 아니잖아?』 그들은 바비네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가도 야단을 맞지 않는 유일한 존재다. 잠겨져 있는 현관은 알아서 따고 들어가면 된다. 단, 주방에 있는 냉장고는 건드리지 말고 - 식탐이 강한 딘이 그의 일주일치 식량을 단박에 거덜내는게 영 탐탁치 않았던지 바비는 단서조항 하나만큼은 확고히 달아놓았다. 그거 빼놓고는 대체적으로 환영받는 입장이다. 『난 형이 이렇게 옴죽거리며 안달하는게 이해가 안 가.』 스탠포드 전액 장학생 씨는 손가락까지 동원하며 헤아렸다. 『아저씨가 안 계시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만이고, 그딴 짓은 예의가 아니다 판단이 들면 돌아오실 때까지 관광이나 하면서 얌전히 기다리면 돼. 내 말이 틀려?』 샘은 딘을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문제라도 있어?』
뱃속이 간질거렸다. 기분 좋은 쪽은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위장이 있는 부위를 지긋이 눌렀다. 이래서 공붓벌레는 문제다. 접근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남의 속사정도 모르고 구멍을 깊게 판다. 그리고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 기어코 머리를 숙이고 흙더미 안에 뭐가 숨었는지를 캐내고야 만다. 몹쓸 벌레에 물린다고 엄포를 놓아도 소용이 없다. 『문제? 글쎄다... 그런 거 없어.』 『내 눈을 보고 다시 한 번 더 말해주겠어?』 『미안한데 지금 운전 중이야. 전방 주시의 의무가 있어.』 『형!』 『그거 아니? 샘. 난 아까 네가 불평했던 내용을 그대로 곱씹고 있어. 부탁이니 이 형이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렴. 같지도 않은 불평을 퍼부으며 방해만 하지 말고. 전봇대가「안녕하쇼~ 형씨들」이러고 인사하는 건 너도 싫지?』
콜트는 사라졌다. 악마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현재 행방불명이다. 존의 갑작스런 죽음과 딘이 혼수상태에서 기이하게 깨어난 걸로 봐선 그것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대략 짐작은 가고 있다. 굳이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원인과 결과가 너무나도 훌륭하게 맞아 떨어져 구태여 다른 가능성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배후에는 노란 눈의 악마가 있다. (* 본문의 배경은 2시즌 중반입니다.)
운전하던 자세를 바로 잡았다. 노란 눈의 악마. 그들의 원수. 엄마가 죽었고, 제시카가 죽었고,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샘은... 그의 하나뿐인 동생은...
먼지라도 들어간 모양이다. 눈이 쏘는 듯 아파왔다. 운명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공책에 씌여진 대본처럼 미리 정해진 그 무언가가 있다면? 피해갈 수 있는가. 과연 무사히 거기로부터 도망칠 수 있겠는가.
어둠속에 괴물이 있다. 사악한 악마가 있다. 그리고 그 악마는 말했었다. 「계획이 있단다. 샘과 다른 아이들을 위한 나의 계획이...」
가슴속에서 심장이 돌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악마를 무찌를 수 있을 만큼 딘 윈체스터는 충분히 강하던가? 작은 아이로 되돌아간 것 같다. 길게 잡아당겨진 뼈가 엿가락처럼 가늘어지는 기분이다. 순간 신경통을 닮은 불쾌한 통증이 발 아래까지 빠르게 흘러내렸다.
Posted by 미야
2008/09/28 20:45
2008/09/2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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