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4시즌도 시작했겠다, 게으름은 그만 피워야겠죠. ※
일반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약장을 열고 아스피린부터 찾는다. 그러나 딘 윈체스터는 무기부터 챙긴다. 속이 텅 빈 커다란 스포츠 백을 동생의 발치로 던지면서 그는 명령했다. 『거기다 그득 챙겨서 돌아와.』 그것은 존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만사에 조심해라. 징검다리는 건너기 전에 반드시 두드려라. 그러고도 미심쩍다 생각되면 지렛대를 써서라도 돌을 뒤집어라. 싸구려 여인숙에서 하룻밤 머물지언정 밤마다 유령이 목격되는 폐옥에 떨어진 것처럼 긴장을 늦추지 말아라. 그 말을 어찌나 자주 들었던지 귀에 딱지가 앉았을 정도다. 그래서 딘은 아파 죽을 것 같은 몸뚱이를 끌고 방의 이곳저곳을 확인하며 최첨단 도청 장치를 찾는 CIA 요원처럼 굴었다. 가구의 문짝을 모조리 열어봤고, 서랍을 끝까지 잡아당긴 뒤에 밑바닥을 손으로 휘저었고, 밝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전기 스위치를 죄다 눌러 깜빡깜빡 흔들리는 전등이 없는지를 점검했다.
그들의 직업은 헌터다. 뭐, 조심해서 나쁠 건 하나 없지만... 샘은 산소 호흡기를 통해 최후의 숨을 들이마시는 중환자처럼 쿠룩 소리를 냈다. 『형. 이러다 연방 정부 은행을 털려는 나쁜 놈으로 신고 당할 거야.』 베개 밑으로 바짝 날이 선 칼을 감춰두는 건 순전히 버릇이라고 치고. 침대 아래로 장전된 산탄총을 두 자루나 꾸겨 넣는 모습엔 할 말을 잃었다. 다음으로는 옷장에 한 자루 추가.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았는지 재떨이를 치우고 협탁으로 38구경을 올려뒀다. 뿐만 아니다. 딘의 손에는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총이 두 자루 더 남아 있었다.
『여기다 항공기 정비교본에다 경비행기 비행요강만 있음 완벽하겠군. 그럼 우린 무역센터를 공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될 수 있어. 이름도 압둘라니 알 쉐리로 고쳐 불리우고 말이야.』 『뭐? 경비행기 교본? 그게 무슨 헛소리냐. 이 형이 비행기를 끔찍이 싫어한다는 거 몰라?』 잠시 걸터앉았던 침대 모서리에서 몸을 일으키던 딘은 동생의 불평에 손사래부터 치고 보았다. 두 개의 싱글 베드 중에서 입구에서 떨어진 쪽은 샘의 몫이다. 딘은 거기서 팔을 아래로 뻗어 준비해둔 총이 손에 잡히는지를 점검했다. 이만하면 되겠나 - 너무 깊숙이 숨겨두면 정작 필요할 적에 써먹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발에 차이게 가까이 두면 오발 사고의 우려가 높다. 딘은 잠시 턱을 어루만진 뒤에 동생의 팔이 자신보다 훨씬 길다는 걸 염두에 두고 위치를 다시 고쳤다.
『끙차! 그런데 소금은?』 『응?』 『동생아. 지금 오페라 하우스로 닭이 등장했냐. 왜 그런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먹으려는데 정작 필요한 조미료가 없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딘은 입 모양만으로「소금」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반복했다. 『뭐야, 새미. 소금 어딨어. 트렁크에서 안 꺼내온 거야?』 『어, 그게... 저기, 음...』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인석아! 까먹을 걸 까먹어야지!』
두 손을 청바지 뒷주머니로 찔러박은 채 주차장까지 달음박질한 샘은 오리 주둥이가 되었다. 언젠가 딘도 결혼하여 그만의 가정을 꾸리겠지만 결코 좋은 남편은 되지 못할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는 그의 특기는 100년 사랑도 잿더미로 만들기에 충분했다.「여보, 사랑해. 그런데 당신 요즘 무지 살졌어」면박을 주는 식이랄까. 한 핏줄인 그조차 악 소리를 낼 때가 한 두 번이 아닌데 어느 여자가 과연 참아줄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고랑내 나는 양말만 쳐도 충분히 이혼감 - 씩씩거리며 임팔라의 뒷 트렁크를 열어젖힌 샘은「빌어먹을!」고함을 질러댔다.
『딘! 지금 뭐하는 거야!』 신성한 왕소금 두 포대를 끌어안고 방으로 돌아온 샘은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고 있다. 누구와? 무슨 까닭으로? 샘은 당황했다. 여기에「도대체 나 없는 사이에 어느 년이랑 붙으려고!」비명까지 덧붙이면 그야말로 완벽한 아침 불륜 드라마 그 자체 - 머리가 살짝 돌은게 아닌 이상에야 딘을 추궁할 수 없는 그는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응? 뭘 하고 있냐니. 네 눈은 해태냐. 이 형님은 전화하고 있으시다. 점심 먹은 걸 죄다 게워냈더니 뱃속이 헛헛해서 말이야. 뭐라도 주문해서 먹으려고.』 동생이 뿜어내는 불온한 공기를 눈치채지 못한 딘은 그대로 등을 돌리며 핸드폰에 대고 외쳤다. 『내 말 들었어요? 영어 몰라요? 배달 되냐고요!』
리는 그들 형제에게 간단히 악수를 나눈 뒤 다른 뱀퍼들과 마찬가지로 캐나다로 향했다. 단, 남미에서 날아온 사냥꾼들과는 달리 표정이 푸르죽죽했는데 미국의 국경을 넘는 까닭이「즐겁고 기쁜 사냥」이 아니고「지루하고 골치 아픈 조율」에 더 가까운 탓이었다. 『그만 싸우라며 뜨거운 물을 끼얹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젠장.』 뱀퍼들의 목적이「남의 피를 빠는 개새끼들의 완벽한 멸종」이라 의심치 않았던 샘은 솔직히 리가 불평하는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하~ 주님의 은총이어라.」 「무슨...?」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야. 큰 전쟁으로 인구가 급감하면 평화 조약이 체결되자마자 베이비붐이 일어나지. 집집마다 아기가 앵앵대고 기저귀 찬미가가 울려퍼지면 즐거울 것 같지?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인플레이션, 실업자 증가, 가치관 혼란, 사회보장 제도의 붕괴... 좀 이해가 가니, 스탠포드 전액 장학생 씨?」 가방 속으로 속옷 꾸러미를 억지로 쑤셔 넣다말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짙은 커피 빛깔의 스타킹 한 짝이 무슨 족쇄처첨 발목에 걸려 데롱거렸다. 그래서 샘의 시선은 리의 얼굴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다리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사냥이 끝난 뒤엔 뱀파이어의 숫자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건가요?」 「실제로 늘어나. 두뇌가 피로해지는 일이지. 당연하지 않겠어? 그 자식들도 번식을 한 줄 안다고. 거기다 인간의 여자들처럼 임신에서부터 출산까지 10개월이나 잡아먹지도 않아요. 그냥 아무나 붙잡아 피를 빨고, 다시 피를 주입하면 끝. 그렇게 하기까지 1분도 채 안 걸려.」 리는 제대로 짜증을 부리면서 스타킹을 잡아챘다. 「그래서 일부는 적당히 살려둬야만 하는 거야.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인다고 능사가 아니거든. 자칫하면 그 반동으로 뜨내기 뱀파이어 숫자만 늘어나게 돼.」 웃음기라곤 요만큼도 없는 얼굴로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화장품 파우더 통을 걷어찼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뭔지 알아?《어쩌다보니 뱀파이어가 되었거든요》족속이야. 흡혈 충동을 제어할 줄도 모르는 주제에 힘은 바보처럼 세지. 머리도 나쁘고 지혜도 없어. 목마름에 헐떡이다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날아다니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숨을 고른 리는 화장실 안쪽에서 양치질 중인 딘을 향해 버럭 외쳤다. 「어이, 형씨! 캐나다 관광에 관심 없어? 내가 공짜로 시켜줄게!」
샘은 감았던 눈을 도로 떴다. 딘은 그때까지도 광고지에 실린 음식 사진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또띠아 속에 토마토와 쇠고기를 가득 넣고 표면에 치즈를 입힌 멕시코 음식이었다. 『예! 치즈를 입힌 비프 타코 세트요! 네? 뭐라고요? 잘 안 들린다니까요!』 『이 바보 식충아. 그거 먹음 위장이 다시 뒤틀릴 거라고.』 『어... 지금 네가 말한 거냐.』 『그래. 내가 말했다. 전화기 내려놔, 딘. 눈물 콧물 펑펑 흘리면서 게워냈던게 언제라고 벌써 밥 타령이야. 미쳤어?』 『이거 은근히 기분 더럽네. 말투가 불손하구나, 새미.』 『내 탓은 아니야. 바보에겐 친절하게 굴 맘이 안 드는데 어쩌라고.』 『인석아! 형에게 자꾸 바보, 바보 하지 마!』 『정 듣기 싫음 똑똑하게 굴던가.』 『이건 말도 안돼! 소금처럼 기초적인 것도 빼먹고 안 챙기는 동생에게 내가 왜 바보라고 욕을 먹어야 해?!』 두 팔을 벌리며 분통을 터뜨리는 형을 짐짓 모르는 척하며 손바닥으로 자기 입술을 문질렀다.
작별 인사를 나눈 이후 리는 샘에게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럴 까닭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샘은 캐나다로 같이 가자 그녀로부터 어떠한 권유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딘은?
긴박한 거래 날짜가 코앞으로 닥쳤는데 직원들이 죄다 찜질방으로 도망쳤다고 아우성을 치는 사장님처럼 딘은 주먹을 들었다 놓았다 야단이었다. 『배고파~!』 『침대에 눕기나 해. 한숨 푹 자고난 뒤에 느긋하게 저녁을 먹자.』 『무리야!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와.』 음식에 대한 욕구는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지 딘은 계속해서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샘은 그게 신경에 거슬려 미칠 지경이었다.
- 나 몰래 리와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건 아닐까.
소금을 가지러 주차장으로 내려간 사이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수도 있다. 나름 서두른다 했어도 3분은 족히 걸렸고, 그 정도 시간이면 상대로부터의 답장이 도착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어? 새미 너, 표정이 왜 그래.』 『피곤해졌어.』 『어쭈?! 바보 형을 상대하느라 아주 녹초가 되었다 이거냣!』 형의 핸드폰을 들여다봐야 한다. 샘은 엄지손가락을 지긋이 깨물었다. 물론 만사 용의주도한 그의 형은 통화내역을 따로 저장해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딘의 핸드폰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게라도 확인을 하지 않음 편안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샘은 방구쟁이!』 『유치해.』 『샘은 여자 속옷 입는다!』 『유치하다고.』 『샘은 똥구멍에 털이 났어요! 잔뜩 났어요!』 『딘!』
쫓아가서 목을 졸라버리겠다는 식으로 팔을 크게 휘저었다. 그런다고 해봤자 허풍에 가까운 동작이어서 딘은 낄낄대며 쉽게 피해버렸다. 『알았다고, 동생아. 네 말대로 밥은 좀 있다가 먹도록 하자.』 그리고는 핸드폰을 다시 귀에 대고 신경을 집중시켰다.
『여보세요... 바비? 저예요, 딘! 목요일까지 도착할 거라고 연락드렸었잖아요. 예! 우린 다 무사해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물론이죠!』 그런 딘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샘의 얼굴에는 근심과 불안이 가득했다.
Posted by 미야
2008/09/21 20:52
2008/09/2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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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는 좌변기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심하게 구토하고 있다. 다른 한 남자는 만사 포기한 표정으로 세면대에서 참방거리며 체크무늬 손수건을 빨고 있고.
오줌을 누러 화장실을 찾은 트럭 운전수는 두말할 것 없다며 뒤돌아 나가버렸다. 최근에는 CCTV 설치가 늘어 자칫하면 전국적으로 개망신 당할 걸 각오해야 하지만... 에잇, 무릇 남자라면 으슥한 도로변 아무데서나 바지 지퍼를 내리는 것으로 요의를 처리해도 그만이다. 7년 가까이 화물 트럭을 운전하면서 나무에 공짜 비료를 갈긴게 어디 한 두 번이냐. 『왜애엑-』 지금으로서는 오장육부를 죄다 뒤집고 있는 저 불길한 사내가 그와 같은 식당에서, 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케에엑-』 상한 굴 요리를 잘못 먹으면 죽기도 한다. 운전수는 근심에 젖어 자신이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를 차근차근 점검했다. 어디 보자. 소고기 케밥에 삶은 달걀 둘. 버섯 오물렛에 베이컨 추가... 아! 그리고 냉동 참치 샐러드. 가만 있자. 거기에 들어간 마요네즈는 과연 신선했던가.
『뒈질 소시지!』 더러운 타일 벽으로 체중을 기대다 말고 서너 마디 욕설을 덧붙였다. 『이러다 식도에 염증 나겠네. 썩을 주방장! 유통기한이 넘었던 거야. 분명해.』 물방울이 튄 화장실 거울을 통해 딘의 안색을 살피던 샘이 그 말을 듣고 즉각 코웃음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딘이 고른 소시지는 그도 같이 주문해서 점심으로 먹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먹었는데 한 사람은 건강하고 다른 한 사람만 배탈이 났다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닥쳐. 넌 핫 소스 안 발라 먹었잖아.』 『흐응, 그래서 이젠 말을 바꿔 소시지가 아니라 소스가 이상했다?』 『평소 때와는 달랐어. 보다 맵고 시큼했달까, 아님 찝질했달까. 그런 걸 듬뿍 발라 먹었으니 속이 뒤집힐 수밖에.』
한숨만 나온다. 샘은「넌 바보냐」표정을 감출 필요성도 못 느꼈다. 딘은 애써 음식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구토의 원인은 정작 단순하다. 그게 뭐냐고? 멀미다. 샘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정비된 스위스 기계처럼 냉정했다. 『덧붙이자면 멀미라는 건 배나 자동차, 비행기를 탔을 적에 속이 메슥거리면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걸 말해. 혹시 형이 모를까봐 알려주는 거야. 고맙게 여겨.』
짐작했던바 그대로 딘은 발끈하여 샘의 주장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이게 누굴 바보 취급하고... 하! 웃겨. 이 딘 윈체스터가 자동차 멀미라니. 차라리 내 정체가 화성으로 간 목성인이라고 하지 그러냐.』 바퀴 달린 탈 것에 대한 그의 유별난 애정은 멀미에 대해 이해하려는 생각 자체를 방해했다. 비록 면허증은 없었지만 열 네 살적부터 잠정적 묵인 하에 - 윈체스터가 남자들이 목을 길게 빼고 애지중지한 임팔라는 빼고 - 운전대를 잡았던 몸이다. 그것은 날아오는 공을 피해 몸을 굽히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어린애의 신체 사이즈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가속기 페달을 밟으려면 가라데 발차기 비슷한 동작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런 건 근성으로 아멘하고, 비디오 반납일에 맞춰 능숙하게 2차선 포장도로를 누볐다. 혹시 모를 단속에 대비하여 코 밑으로 가짜 티가 팍팍 나는 검정색 수염까지 붙이고서 말이다. 『알간? 넌 지금 이 위대하신 형님을 모욕한 거야. 간혹 방향 깜빡이를 켜는 걸 잊고 왼쪽으로 차를 튼 적은 있어도 태어나 지금껏 멀미를 일으킨 적은 없다.』 『틀려. 모욕을 주려는 의도는 없어. 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지적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는 거다, 새미. 세계 선수권 모터사이클 대회 우승자가 두 발 자전거를 타다 균형을 잃고 도랑을 굴렀다는 소리나 마찬가진데 그게 있을 수 있는 얘기니?』 『그 위대하신 모터사이클 대회 우승자의 나이가 올해 일흔 아홉이라면 가능하지. 농구의 황제라는 마이클 조던도 할아버지가 되면 3점 슛은 불가능해져.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아.』
칵. 하여간 이놈의 자식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해요.
잡아먹을 기세로 세면대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몸과는 반대 방향으로 뇌가 빙글 돌면서 다리가 풀려버렸다. 눈꺼풀 안쪽에선 하얀 반점이 너울거렸다. 이건 흡사「카드 빚 대신 내 한쪽 콩팥을 떼어가도 어떠한 군소리도 하지 않겠소이다」계약서에 서명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빨래를 금방 널었는데 하늘에서 굵은 소나기가 쏟아질 참이다. 변기로 다이빙하지 않고 뱃속에 머물던 약간의 소시지가 재차 부글부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코로 내뿜은 숨에서 시궁창 비슷한 냄새가 났다. 입안으로 떫은 맛의 침이 고였다. 한계다. 딘은 잔뜩 굶주린 사자가 피가 흥건한 신선한 고깃덩이에 달겨드는 것처럼 해서 샘을 밀쳤다. 이제 세면대는 그만의 독차지다.
제법 거친 취급을 당했음에도 샘은 그다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폭력을 다 이해한다는 투여서 딘은 속으로 열불이 났다. 『짜증은 나겠지만 어쩔 수 없어. 멀미가 나면 찬바람을 쐬면서 느긋하게 쉬는 수밖에.』 『멀미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 우게엑~!!』 『한 발 양보해서 그게 식중독이라고 해도 말이지. 지금의 형에게 더 이상의 이동은 무리야. 오늘은 그만 쉬어야 해.』 『뭐?! 벌써?! 아직 오후 2시밖에 되질 않았...』 『정확히 2시 3분이야. 그래도 형은 침대에 누워야 해.』 초침이 착착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샘이 단정지었다.
존의 큰 아들은 대놓고 신음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보편적으로 인간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약 열 여섯 시간 활동한다. 그중에서 제일 활발하게 움직일 때가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사이. 그런데 뭐? 하늘이 멀겋게 하얀 대낮인데 침대로 가서 누워? 베짱이가 동료하자며 좋아라 할 소리다. 손이 떨리는 걸 애써 감추며 수도꼭지를 틀었다. 시설은 척 보기에도 낡았으나 손수건을 빨겠다며 동생이 미리 선수를 친 탓에 쏟아지는 물은 녹물 하나 없이 맑았다. 『눕긴 어딜 눕냐. 계획대로라면 우린 오늘까지 위스콘신 주를 넘어야 해.』 『알게 뭐야. 못 넘는다고 어디서 누가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뻐드렁니의 못생긴 여자가「임신했어요. 그러니까 책임져」구호를 외치며 형의 뒤를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비, 비유를 해도 어쩜 그 따위로...』 『쉽게 말해 무리할 까닭이 없다는 거지. 느긋하게 임팔라의 타이어를 바꿔 끼고, 바꿔 끼고, 또 바꿔 끼면서 달리면 돼.』
얼마 전에 딘은 뱀파이어에게 당했다. 다행이라면 딘이 뱀파이어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불행이라면 그가 병들었다는 것이다. 『샘? 난 안 아파.』 높은 선반에서 조미료를 꺼내야 하는 호비트 족의 비참한 심정을 모방하며 딘이 코를 찡그렸다. 화덕에선 야채를 익힌 국물이 끓고 있는데 팔을 꺼떡꺼떡 흔들어도 조미료 통까지 손가락이 닿지 않는다. 짜증이 치솟는다. 『이젠 환상을 보거나 하지 않아.』 오리진. 모든 뱀파이어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 그들의 힘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진 사슴으로 하여금 아무렇지도 않게 도로변을 기어가게 만든다. 감각이니 사고능력이니 하는 것들이 엉망으로 휘저어지기 때문이다.「바닥을 기어라」라는 오리진의 명령은「움직일 다리가 없습니다」라는 현실을 가볍게 상회한다. 심지어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다 나았어. 말짱하다고.』 그렇다. 지구상의 어떠한 약물로도 흉내가 불가능한 강력한 최면이다. 영혼마저 굴복시키는 올가미다. 실로 묶어 잡아당기면 그대로 지옥까지 끌려가버린다. 어쩌다 운 좋게 풀려나 지상까지 도망친다 해도 뼛속까지 침투한 독기는 계속해서 그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리하여 일부는 발광, 더러는 자살. 『운이 좋았지.』 실제로 딘도 자살하겠다며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겨누었다고 한다. 여기서「그렇다고 한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건 당사자가 그 사실을 정확히 기억 못하기 때문이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을 적에 느꼈던 격렬한 감정은 고스란히 남았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의 머리통은 털 빠진 곳 없이 여전히 둥글다. 그래서 때때로 딘은 겉으로 표현은 안 했어도 모든게 질 나쁜 꿈이 아니었을까 의심을 품는 눈치다. 현실처럼 느껴진 생생한 악몽 말이다. 내용들은 하나같이 뒤엉켰고, 순서도 없었고, 뒤죽박죽이었다. 그리고 지독히 슬펐다. 『그러니 대낮부터 침대에 안 누워도 돼.』
샘은 눈에 띄게 여위어 뺨이 움푹 파인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음영이 도드라진 딘의 얼굴은 환자처럼 해쓱했다. 후 하고 불면 촛불처럼 꺼질까봐 무서웠다. 생각 같아선 부드러운 담요로 싸서 아기 어르듯 흔들어주고 싶다. 단, 정말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나중에 구둣발로 불알을 차이게 된다. 『길게 따질 것 없이 간단하게 테스트를 해보자. 자, 그럼 심호흡을 한 뒤에 나에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철자를 말해봐.』 『엥?』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지금 네 머리에 꽃 폈냐?』 『하나도 틀리지 않게 말할 수 있으면 플러스 30점. 두 개 정도 철자가 틀리면 5점. 난 학교를 못 다녔거든요 수준이면 마이너스 10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못하면 마이너스 50점.』 『여보세요?』 『오케이. 바나나 케이크는 언제 먹나요 식으로 날 쳐다봤음. 그렇다는 건 마이너스 50점.』 『잠깐!』 『인정해. 형은 아직 정상이 아니야.』 『비열한 자식! 문제를 냈으면 최소한 10초의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하잖아!』
약이 바짝 올랐던 것 같다. 딘은 동생이 몸을 목까지 해변가 모래밭에 파묻어 버리겠다며 으르렁댔다. 그리고 러시아 불곰처럼 아랫배를 볼록 내밀며 대가리를 후려치려는 동작을... 『형! 위험해!』 그가 빈혈을 일으킨 만삭의 임산부처럼 비틀거린 것과 동시에 샘은 두 팔을 벌리며 똑바로 섰다. 딘은 2층에서 화분이 추락하는 것과 비슷하게 해서 안겨왔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단히 걱정스럽게도 그건 연극적인 몸짓이 아니었다. 때리겠다고 쥐었던 주먹은 맥없이 풀어졌다. 『맙소사! 똑바로 설 수 있겠어?』 『내 몸에 손대지 말아. 네 손을 내 어깨에 얹을 생각도 말아... 꿈도 꾸지마. 아유, 속이 울렁거려 미치겠군.』 『딘?』 『새미... 나 죽어.』 샘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의미를 담아 딘의 어깨를 한층 더 세게 끌어안았다.
찰칵 소리를 내고 누군가 문을 열었다. 『헛! 실례했수다.』 놀란 외침과 같이해서 쾅 하고 화장실 문이 도로 닫겼다.
Posted by 미야
2008/09/03 20:44
2008/09/0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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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각각의 내용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됩니다. 배경이 2시즌 중반으로 고정되어 있으니 주의하기 바람. 따라서 아자젤은 눈 부릅뜨고 잘 살고 있고, 콜트는 행방불명된 상태입니다. ※
사랑하던 아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난 이후로부터 존은 인간성 붕괴에 직면했다. 메리와 존이 서로 팔을 끼고 사이좋게 언덕을 나란히 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할 적마다 부러움으로 가득찬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은 이내 까다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존은 목욕도 하지 않았다. 면도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잠도 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늘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형용하기 힘든 분노에 몸을 태우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체중이 눈에 띄게 줄었고, 눈빛이 변했다. 그는 술병을 입에 달고 있었다.
자네에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네. 딘은 기억한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지 아마 넉 달이 지난 시점이었을게다. 양복을 그럭저럭 차려입은 사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인사했다. 딘은 겁에 질려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그는 무뚝뚝한 어조로 자신이 존의 직장 상사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썩기 시작한 토마토 스프 깡통과 구석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더러운 아기 기저귀를 보고 경악했다. 남자는 너무 오래 입어 세탁이 절실해 보이는 딘의 옷과 새카만 때가 낀 손톱을 눈여겨 보았다. 그의 눈이 커졌다. 최악의 무언가를 상상했던지 존을 향해 홱 돌아서는 그 모습은 타이어가 펑크난 자동차를 향해 들입다 발길질하는 성난 젊은이를 많이 닮아 있었다.
「맙소사, 존!」 「시끄럽소. 사직서는 우편으로 제출했으니 다 끝난 거 아니오? 저리 꺼지쇼!」 「이보게! 자네가 지금 어떤 심정일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닐세.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야지! 애에게 밥은 먹이고 있는 거 맞나?! 게다가 둘째는 아직 젖먹이잖나!」 「제기랄! 나도 노력하고 있소. 노력하고 있단 말이오.」 「하아... 이게 그 노력이라는 건가? 그 망할 보드카는 그만 마셔, 이 한심한 작자야. 멍청하게 굴지 말아. 자네가 그렇게 주장해봤자 남의 눈엔 그렇게 안 보인단 말일세.」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잠에서 깬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제기랄, 존!」 「뭐요!」 「아기가 울고 있잖는가!」 「누가 어쨌다고.」 「자네 아들이 울고 있다고!」
무겁게 침체되어 있던 주변 공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남자는 그가 버럭 화를 내며 아기를 다치게 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존은 예상과는 달리 샘을 부드럽게 안아 싱크대 쪽으로 데리고 갔다. 딘은 그 시선을 아기에게 고정시킨 채 그 뒤를 뒤뚱뒤뚱 따라갔다. 「똥을 쌌소.」 「뭐?! 지금 내가 똥 같다고?!」 「욕을 한게 아니오, 아서. 있는 그대로일 뿐이오. 새뮤얼이 똥을 쌌소.」 존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첨벙첨벙 물 튀기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샘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엄지손가락을 빨았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화재 이전으로 - 마음이 초토화되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랬다. 벼랑 끝에 선 위태위태한 남자를 현실로 붙들어 매어놓은 존재는 바로 샘이었다. 그 작은 아기가 아니었다면 존은 사람이 건너선 안 되는 울타리를 훨씬 오래 전에 넘어갔을지 모른다. 뭐, 일반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쌍방 간의 영역 침범은 진작에 이루어진지 오래지만... 그건 그렇다치고. 요점은 이렇다. 딘이 코를 훌쩍였을 적엔 전혀 인식을 못 하던 남자가 샘이 울자 반응을 보였다는 거다.
노력하고 있다는 존의 말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었다. 그는 젖병을 데우기 위해 짜증나는 전자렌지의 작동 설명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그러고도 실패하자 - 모르긴 몰라도 해병으로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다 - A/S 센터로 전화를 걸어「설명서대로 전자렌지에 물을 담은 알루미늄 냄비를 넣고 빨간 단추를 눌렀소. 그런데 시퍼런 불꽃이 팟 하고 튀었소. 뭐가 문제요?」라고 질문했다. 샘이 우유를 토하자 팔꿈치를 책상 위에 걸친 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의 턱 바로 아래로는 글자가 빽빽이 적힌 두툼한 책이 펼쳐져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이「정글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법」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명확해서 딘은 아버지를 향해 어린 동생이 아무래도 아픈 것 같다는 말을 구태여 두 번씩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샘을 진심으로 사랑하셔. 그 점에 대해 불만은 딱히 없다. 나는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눈치지만. 새미만 건강하면 되었다. 억울하다 항의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너 자신을 돌보기 전에 동생을 먼저 살펴라. 그것이 네 의무다」라는 존의 명령엔 반박이 불가능했다. 오히려 존의 그 요구는「하느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옳은 것처럼 여겨졌다. 딘은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였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잠자리에서 깨어나자마자 샘을 살폈고,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동생의 안색을 확인했다. 정작 샘은 그 일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다는 다소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형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 말고 따로 하고 싶은 건 없어? 아이들은 잡초처럼 빨리 자란다. 나에게 신경쓰지마. 난 괜찮으니까. 간섭받는다고 여기기 시작하면 반항하기 시작한다. 형은 형의 인생을 살 권리가 있어.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인생을 살 권리가 있지. 그 다음부터는 양손에 권투 글러브 끼고 격하게 펀치 팡팡이다.
그것은 그의 의무이다. 동생을 돌보는 것. 그치만 샘은 아빠 말에 무조선 순종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느님이 진짜로 천지를 창조하신 건지, 다윈의 말대로 아메바가 분열한 건지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했다. 아빠가 하신 말씀 전부가 옳지는 않아. 형은 내가 아니라 형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해. 웃기게도 그 대사는「당신과는 결혼하지 않겠어요」처럼 들려서 딘을 아프게 만들었다. 정성을 다해 청혼했는데 여자는 싫댄다.
나는 대학에 갈 거야. 부정당한 그의 의무. 나중에 변호사가 되고 싶어. 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샘. 헌터는 되지 않아. 이런 삶은 이제 지긋지긋해. 난 독립할 거야. 상실감이 굶주린 짐승처럼 그의 등을 짓밟았다. 송두리째 모든게 뒤집힌다. 유리컵이 식탁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아아, 기분이 안 좋다.
『그래서? 자칭 예술적인 공예품 찬장을 만드는 목수 나으리.』 딘은 자신이 한참동안 딴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응?』 『그럼 앞으로는 조수따윈 필요 없는 거야?』 어느새 다가온 예의 여자는 영화배우의 엉덩이 속살 따위에 열광하는 천박한 시선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껌 대신 육포를 질겅 씹어대면서 말이다. 딘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여자를 경계했다. 입술에 붉게 립스틱 바르고 치마만 둘렀다 싶으면 물불 안 가리는 주의라지만 색깔이 지나치게 짙은 이 여자는 어딘지 모르게 아마존의 위험한 독 개구리를 연상시켰다. 노랗고, 빨갛고, 알록달록한... 『뭐야, 언니. 아직도 안 가고 이곳에 있었어? 훠이~』 『미안허다. 갈 곳이 없어 아직도 있으시다.』 불퉁하게 대꾸하며 여자는 딘에게 표면에 이슬이 맺힌 캔맥주를 집어던졌다. 단, 아까처럼 물이 아닌, 진짜 술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엄지손가락으로 요령껏 뚜껑을 땄다. 여자는 싫어도 맥주는 싫지 않다. 『글쎄. 아직 배워야할 것도 많으니까... 독립하기엔 이르고... 당분간은 아버지 조수 노릇을 해야겠지. 아버지 친구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그쪽으로도 가보고... 그러다 익숙해지면...』 『옳커니. 그럼 동생은 별도로 하고, 거 뭐시냐. 영업이라고 해야 하나, 장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당분간은 혼자인 거야?』 『글세.』 『헤에~♡ 그럼 나랑 같이 하는 건 어때?』 『뭐?』 『나도 톱질하는 거 꽤 잘 하거든. 이래 뵈도 팔뚝 굵다.』
그때까지 얌전히 숨죽이고 있던 샘은 목구멍 너머로 삼켰던 물을 도로 토했다. 그리고는 정말로「톱으로 써는」시늉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리를 쳐다봤다. 여기서 툭툭 잘려져 나가는 건 나무가 아니다. 한때는 사람이었고, 현재는 사람이 아닌 것들이다. 그런 것들의 목을 날카로운 무기로 베는 것이다. 톱밥을 날리며 단단한 목재를 가공하는 종류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리의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피냄새 진동하는 살육이었다. 그래서 소름끼쳤다. 『아하하, 대패질을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샘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목공 일을 연상한 딘은 말꼬리를 흐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안돼, 안돼. 여자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망치로 못 박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그쪽 언니에겐 절대로 무리. 단순해 보인다고 아무나 덥썩 덤벼들 그런 분야가 아니거든?』 『어머나~ 섭섭한 말씀. 나는 그 아무나가 아니예요. 어쩌면 내가 너보단 훨~씬 잘 할 걸?』 그러면서 리는 벽에서 튀어나온 압정을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두, 두 사람 다 자, 잠깐 기다려...』 『같이 캐나다로 가자.』 샘이 만류하려는 걸 가뿐하게 무시하며 리가 밝게 말했다. 『그곳엔 잘라내야 할 나무가 아주 많다고.』 남미에서「얼씨구나 풍년일세」입국한 뱀퍼들을 피해 미국내 뱀파이어들이 죄다 캐나다로 도주한 모양이다. 그걸 리는「나무」라고 돌려 표현했고, 아무래도 사냥은 북쪽으로 계속 번지는 듯하다. 단, 더운 기후에 익숙한 뱀퍼들이 도망치는 뱀파이어를 추적하며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추측이 곤란하다. 앞으로 6개월 뒤면 계절은 이가 시린 겨울이 되어버린다. 지독한 독감에 걸려 콧물을 훌쩍거릴 뱀퍼들은 그때쯤이면 슬슬 선인장 가득한 고향의 냄새가 그리워질 것이다.
『뭐? 캐나다? 나랑 같이?』 깊숙한 내막은 전혀 모른 채 딘은 어쩐지 재밌어 하는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양팔로 아랫배를 감싼 채 눈물을 찔찔 짰다. 『이거, 이거. 서방님 정력이 영 시원찮은 모양이군. 와하하! 뭐야, 톱질은 핑계고 결국은 사랑의 도피라는 거냐. 뭐, 나쁘진 않군.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도 아니겠다, 정말로 가 버릴까, 나무 자르러. 그리고 국경을 넘자마자 눈에 띄는 가장 가까운 모텔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하던 말을 다 끝마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순식간에 새하얀 광선이 번쩍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귀로 들은 것이다. 샘이 주먹으로 쾅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후려갈겼다. 온 힘을 다해. 말 그대로 죽을 힘으로.
덕분에 캐나다로 떠나겠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샘이 두 눈을 부릅뜨자 딘은 호되게 야단맞은 어린애처럼 몸을 움추렸다. 『씨잉.』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불평의 말들을 주워삼켰다.
※ 다음 이야기 광고 ※ 그럭저럭 몸을 회복한 딘은 샘을 바비에게 데려다 주기로 결심한다. 신경질적으로 변한 샘은 완전히 손톱 세운 호랑이가 되었고,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는 그야말로 매운 고춧가루다. 이 와중에 간댕이가 부운 자칭 천사라는 수상쩍인 남자 - 유령까지 임팔라 뒷좌석에 무단 승차하면서 형제들의 싸움박질은 화산폭발 직전의 난리통으로 발전한다. - 천사 조나단이라는 드라마도 못 보셨습니까. 저도 천사입니다. 그런데 딘? 달리는 차속에서 산탄총을 꺼내봤자지.
Posted by 미야
2008/08/27 10:47
2008/08/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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