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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2)

일반인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한다. 세탁소 방문이나 마트 방문 또한 비교적 정기적이다. 하루의 일정, 일주일의 일정, 그리고 한 달의 일정은 대동소이하다. 정해진 요일에 쓰레기를 배출하고, 정해진 장소에 차를 주차하고, 정해진 날짜에 신용카드 대금을 지불한다. 어쩌다 달라지는 것은 금요일 밤에 목구멍으로 처넣는 종류가 버본이냐 데킬라냐 하는 정도, 그리고 원 나잇 스탠딩의 상대가 검정색 속옷을 입었느냐 흰색 속옷을 입었느냐 정도의 차이밖엔 없다.

하지만 리스의 삶은 규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게는 정해진 출근 시간이라는 것이 없었고, 퇴근 시간이라는 것 역시 없었다. 심지어 그가「임무」에 임하는 날조차 들쑥날쑥이었다. 핀치가 만들었다는 기계는 하루가 멀다하고 숫자를 뱉어내기도 했고, 지금처럼 일주일 가까이 침묵을 지키고 경우도 허다했다.

『기계의 현 소유자인 미국 정부가 정기 점검이랍시고 파워 버튼을 내렸겠습니까. 염려 마세요. 오히려 세상이 조금이라도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하면 기쁜 일이죠, 미스터 리스. 』
핀치는 집중하고 있던 모니터에서 잠시 얼굴을 들고 아무런 할 일도 없이 방치된 채 빈둥거리고 있는 리스를 흘깃 쳐다보았다.
『리~~스?』
글쎄올시다. 그는 아까부터 책상에 놓여진 낡은 정장본 책을 별 의미 없이 들었다 놓았다 하는 중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분명 그가 좋아할만한 분야가 아니다. 핀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전문 딜러를 통해 15,200 유로화(한화 약 2천2백만원)를 주고 구입한 그 책은 어디까지나 뇌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지 팔 근육을 단련하라고 만들어진게 아니다.

그렇다고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는 건 나쁘다. 통제력은 권력과 마찬가지.
핀치는 말하기에 앞서 가만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만하면 사무적으로 들리겠지. 그럼 시작.
『앞서 언젠가 말씀드렸던 것 같지만, 미스터 리스. 번호가 도착하면 제가 신속히 연락을 드릴 거에요. 일이 없을 적엔 굳이 이곳으로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침내 빅토르 위고로부터 흥미를 잃어버린 리스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제가 여기에 그냥 한가하게 놀러온 거라고 짐작하셨습니까? 이봐요 핀치...』
『네?』
『시간이 날 적에 이곳에 숨겨놓은 무기고를 정리하라고 요구한 건 그쪽입니다. 쓸데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거냐는 식의 책망을 들은 것 같아 슬프군요.』
『오우.』
『물론 제 관심사의 전부가 무기인 건 아니니 그렇게 인상 찌푸릴 건 없습니다. 150시간 가까이 얼굴을 보지 못한 핀치 씨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었고요...』
탁 소리를 내며「노틀담의 꼽추」커버가 덮였다.
『아무튼 그 갈색 곱슬머리 여자의 시건방진 말은 신경 쓰지 말아요, 핀치.』

어째서 이야기의 끝이 그리로 튀는 건데? 핀치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뭐요? 곱슬머리?』
『당신더러 절름발이라고 욕한 그 말라깽이 여자요. 카트를 밀면서 손에는 커다란 기름 걸레를 쥐고...』
『지금 달튼 양을 말하는 거예요?!』
『그 미화원의 이름까지는 모르겠군요, 핀치.』
리스는 능슥하게 시치미를 떼었고, 핀치는 더욱 초조해졌다.
『리스 씨. 진지하게 질문 드리는건데 제가 달튼 양과 싸우는 걸 봤어요?!』
『싸움? 아뇨. 일방적으로 핀치 씨가 야단을 맞고 있는 걸 봤죠. 바닥에 물기가 흐른 건 핀치 씨 잘못이 아닌데도요. 달튼 양은 백합과 난꽃으로 장식한 꽃바구니를 배달하면서 부주의하게 움직이던 남자를 혼내켰어야 해요. 제 말이 틀린가요.』
이제 핀치의 눈은 반대로 가늘어졌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면서 대신 당혹감이 자리를 대신했다.
『뭐예요. 절 쫓아다닌 거예요?! 이봐요, 존!』

핀치는 비밀스러운 남자다. CIA 국장보다 더 비밀스럽다. 그는 사생활이 외부로 공개되는 걸 원치 않는다. 공개된 약간의 사생활이라는 것이 진짜가 아니라 정교하게 꾸며진 위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핀치의 자제심은 살짝 망가졌다. 다시 말해 씩씩거렸다는 얘기다.
『제발... 정중히 부탁드리는데, 제 사생활을 존중해 주셨으면 고맙겠군요. 그리고 리스? 지금 눈웃음 치면서 제가 좋아하는 색이 뭐냐 질문하려는 것도 그만두세요.』
『어... 파랑 아닌가요?』
『아니예욧!』
한 호흡 건너뛰고.
핀치는 작성 중이던 보안 코드 작업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판을 두둘기는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 * * 오랜만의 글쓰기 작업입니다. 즐겁네요.  그치만 퍼오인 팬질은 어려워서 못 하겠습니다. 제 취향은 귀신을 잡는 거지, 강도나 마피아가 아니니까효. ^^

Posted by 미야

2012/04/24 15:20 2012/04/2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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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나마리에 2012/04/25 19:01 # M/D Reply Permalink

    오랜만에 미야님 픽!

    귀신 잡고 늑대인간 잡고 하는 게 글쓰기 진짜 편한 거 같아요. 으흐흐흐
    저는 덱스터 픽을 한번 써보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 마이애미 경찰이 어떻게 범인 잡는지.. 도통 아는게 없어서 시작도 못 해봤던 기억이 나네요. ^^*

    1. 미야 2012/04/26 08:57 # M/D Permalink

      오오오오~ 안녕하세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몇년 만입니다. (뻘쭘-) 건강하셨나요.
      꼭 마이애미가 아니더라도 이게 실제 상황이면 어떻게 돌아가는지 민간인은 잘 모른다는 거죠. ^^ 덱스터... 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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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1)

「핀치가 만들었다는 그 기계엔 확실히 문제가 있어」

거칠어진 호흡을 가파르게 몰아쉬던 리스는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달랑 SSN(사회보장 번호) 하나만 내뱉고 그 다음의 일은 일절 나 몰라라 하는 건 지구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기계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그 번호의 주인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정도는 구분을 해줘야 맡은 바 임무를 잘 처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예금 기록도 인출과 입금으로 나뉘어져 구분되는 법입니다, 핀치. 숫자만 나열된 상태에서 이게 계좌로 돈이 들어온 건지 나간 건지 한 번 알아 맞춰 보라며 고객을 기만하는 은행은 없습니다.」
이쪽에서 나름 불만을 토로하자 핀치는 불편한 기색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들놈의 성적표가 바닥을 기고 있다 지적을 받으면 대다수의 아버지들은 얼굴색이 달라지는 법이다.
「그거야 예금 잔고가 얼마 남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요?」

핀치는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고용인에게서 짐짓 등을 돌렸다. 백 도어로 기계에 몰래 접근해서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걸 에둘러 설명한 그는 사서 전용 등받이 의자에 구부정히 앉은 자세 그대로에서 천천히 손가락을 깍지 꼈다.
자세만 봐선 느긋하게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일단 표정을 봐야 한다. 19세기에 유명 장인이 제작된 가구를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어버렸다는 식인데 스트레칭 어쩌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100만 달러가 입금된 계좌의 잔액이 10 달러로 표기되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죠?」
짐작한 바 그대로다. 리스로부터 억지 동의를 구하는 걸 보아 핀치는 자신이 만든 기계가 살짝 모자른 반푼이라는 걸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핀치...」
「내가 뭐 틀린 소리 했나요?」

리스가 넌더리를 내든 말든, 반푼이 기계는 반복하여 특정 번호를 뽑아내리라.
그 숫자가 말해주는 개인은 지극히 피상적이다. 조만간 위기에 처할 - 혹은 위기를 조장할. 젠장맞을. 미국 전역에서 CC-TV 녹화 확보, 전화 감청, E메일 및 트위터 검열 등등으로 천문학적인 정보를 수집했으면 거기에 걸맞게 최소한「이쪽이 골칫덩이」라고 정확히 찝어주는 수고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처럼 헷갈려선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마누라 죽이러 간다던 사내가 왜 사제 폭탄 옆에 기절한 채 누워있는 거지.』
아파트 현관의 잠금 장치를 두 서너차례의 가격으로 가차없이 뜯어내고 재빠르게 내부로 진입한 리스는 이를 갈았다.

애덤 캔들러. 45세. 백인. 전자 제품 물류 운송업에 종사. 쉽게 말해 트럭 운전사. 미국 전역으로 에어컨이니 냉장고니 하는 것들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부인은 헬렌 캔들러, 38세. 슬하에 6살 아들이 있고 얼마 전까지 마트에서 시간제로 근로. 본인의 주장대로라면 계단에서 넘어지는 나쁜 버릇이 있음. 3개월 전 2층에서 굴러 왼팔 상완부 골절. 전치 6주. 16개월 전에는 안면부 협근 타박상 및 광대뼈 골절. 9개월 전에는 갈비뼈에 금이 갔고 액와에 주먹으로 맞은 것이 뚜렷해 보이는 상처가 남음. 구륜근 손상과 치아 일부 손실... 성 카트리나 병원에서 찾아낸 기록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전형적인 매 맞는 아내였다.

《미스터 리스? 그 부인이 남편에게 습관적으로 폭행당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온라인 상태로 대기하던 핀치가 커다란 의문형 부호를 그려냈다.
리스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랬죠.』
《아들과 같이 짐을 꾸려 달아난 부인을 캔들러 씨가 추적해 곧 살해할 것 같다고 했죠?》
『맞습니다.』
《그 남편이 며칠 전 등록되지 않은 길거리 총기를 구입했고요.》
『그랬죠.』
《그런데 지금 그 남편이란 작자는 부인을 죽이러 외출하기는커녕 폭탄 위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고요?》
리스는 테가 두꺼운 안경을 고쳐 쓰는 간략한 동작만으로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핀치를 떠올렸다.
실제로도 그는 모니터 앞에서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뭐랄까... 음. 틀려요, 핀치. 이 사람은 앉아 있는게 아니라 그 옆에 기절해서 누워 있어요.』

빠르게 대꾸하며 휴대용 알루미늄 캔에 둘둘 걸쳐진 전선을 흝었다. 캔에는 디젤류와 질산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콜라캔처럼 생긴 그것은 모두 세 개였다. 이 정도의 질량이라면 건물을 붕괴시킬 정도의 위력까진 갖추지 못하겠으나 캔들러의 머리를 몸통에서 분리해 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가정용 인터폰 따위의 일반적인 통신장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섯 가닥의 구리선이 덜 다듬어진 새둥지의 조잡한 모양새로 일회용 선불폰과 연결되어 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엉성하다. 그냥 기폭장치에서 잡아뜯어도 될까, 머뭇거리던 리스는 흰색의 선에서 도로 손을 거두어 들였다. 비전문가의 조잡함은「범인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결말로 치달을 때가 많다. 무선 신호를 받고도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때로는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터지기도 한다.
안 되겠다. 리스는 관찰을 위해 굽혔던 무릎을 도로 폈다. 이런 건 군용 C-4보다 더 흉폭하다. 핸드폰의 전원을 차단하는 것조차 모험에 가깝다. 만지지 말자.

『토론은 나중으로 미루고 캔들러를 서둘러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겠어요.』
목덜미 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걸 봐선 아직 죽지는 않았다. 누군가 둔기를 들어 뒷통수를 세게 가격한 모양새로 짧게 다듬은 머리카락에 피가 묻어 있다. 의식이 없어 목덜미를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을 적에도 사내는 앓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댁은 체중을 좀 줄여야겠어, 친구.』
던지다시피 해서 폭력 남편을 밖으로 끌어냈다.
위험, 위험, 위험.
머릿속에서 사나운 말벌떼가 광분하며 날갯짓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폭탄 테러리스트인 부인의 행적을 추적해야 하는 건가요.》
뒤집어 쓴 파편을 툭툭 털어내던 리스는 핀치의 질문에 짧게 코웃음쳤다.
『양복이 불길에 그슬렸으나 저는 무사해요, 핀치. 물어봐줘서 감사해요. 아, 그리고 캔들러 씨도 죽지는 않았어요. 병원에 가서 몇 군데 꿰매긴 해야 하겠지만요.』
물론 이 정도 핀잔을 듣고 귀가 가려울 핀치가 아니다. 직구를 사랑하는 이 남자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어느 부분을 놓쳤던 걸까요, 리스?》
예민한 리스의 귀로 발을 바닥에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핀치는 아마 인상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는 사소한 동작만으로도 그는 못 견디게 허리가 아픈 것이다.
《세상에, 여섯 살 아들이 있는 애 엄마가 폭탄을 쓸 생각을 하다니.》
이어지는 짧은 신음은 남편의 폭력을 더 무서운 폭력으로 갚으려 한 여자에 대한 비난인지, 아님 아픈 허리에 대한 호소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어쨌든 존 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을 죽이려 한 헬렌의 행동도 유감이고, 낫지 않는 핀치의 허리병 역시 유감이었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출동했습니다, 미스터 리스. 서두르는게 좋겠군요.》
『압니다.』
그의 귀로도 앵앵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있었음이다.
리스는 대자로 뻗은 캔들러를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방치한 채 재빨리 골목 어귀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현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 어쩐지 불편한 기분에 흘깃 뒤를 돌아다 보았다.
괜찮을 거다. 불을 끄러 온 소방차가 그를 보지 못하고 실수로 깔아뭉개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캔들러는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흰색 팬티를 입고 있었고,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속옷 한 장만 입고 있었다. 그리고 캔들러는 125kg의 거구였다.

Posted by 미야

2012/04/23 21:01 2012/04/2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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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Summertime 03

※ 글쓰기를 그만 둔 것이 6개월도 더 지난 옛날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도 내용을 몽창 다 까먹었지요. 여전히 인생은 수라장이지만 이불 뒤집어쓰고 고민해봤자 달라지지는 않더군요. 저는 직장에서 쫓겨나 다른 사무실로 옮겨갔고, 오빠의 결혼 일정도 결국 가난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황달이 아저씨나 재커라이어가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사는 일 자체가 무지하게 어렵다는 걸 깨닫는 작금입니다.


임팔라를 처음 소개해줬을 적에 기쁨에 들떠 반짝반짝 빛나던 메리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자기야! 이거 정말 근사하다!」
사실 메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보다 덜 점잖았고, 여자애가 사용하면 안 되는 비속어가 섞여 있었다. 아마「졸라 끝내준다」였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턱시도가 늘 옷장에 걸려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닌 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빌어먹게 좋아 죽겠다는 점에선 존도 마찬가지였다.

땅으로 내려온 아름다운 천사가 두 팔을 벌려 전 인류를 포용하지 않았어도 두 사람이 느낀 흥분감은 운석이 달과 정면 충돌하는 것만큼이나 대단했다. 불꽃이 튀었고, 눈부신 섬광 탓에 사고력이 마비되어 살짝 맛이 갔다. 그래서 청춘남녀는 과속딱지의 존재를 까마득히 망각한 채 도로로 뛰어나갔고, 약물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빛을 번득였다.

존은 한껏 으스대며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때마침 흘러나온 노래는 폴 앙카의「다이아나」.
당신만이 내 마음을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또한 당신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유일한 사람.
메리는 손을 뻗어 존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핸들을 쥐고 있던 팔을 내려 메리와 손깍지를 꼈다.
오, 부디 다이아나. 내 곁을 떠나지 마세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존은 고개를 돌려 메리와 깊게 키스했다.
앞쪽으로부터 달려오는 차량이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은 10분 이상을 중앙선을 침범한 채 곡예운전을 하는 중이었고, 혹자들이「젊은 것들이 죽으려 환장했다」라 표현하는 어리석은 짓들의 본보기나 다름없었다.
밤은 깊어갔다. 자동차의 엔진은 더더욱 뜨거워졌다. 두 사람은 입은 옷을 벗는데 뒷자석 공간이 충분한가를 두고 같잖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 67년도식 시보레 임팔라는 해군에서 금방 제대한 상등병이 타고 다니기엔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일단 너무 무게가 많이 나가 파워 스티어링과 파워 브레이크 없이는 제대로 제동을 걸기 어렵다. 문짝이 너무 커서 옆에 다른 차가 주차해 있을 때는 문을 여는 일이 난감하다. 앞좌석 등받이가 주저앉을 염려가 컸고, 가속기 페달의 결함 유발 가능성이 있었다. 앞 유리창의 와이퍼는 긴 홈 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곳으로 먼지나 낙엽이 쌓여 움직임을 나쁘게 만들었다. 겨울이 되어 눈보라가 치면 사정은 더욱 나빠져 순식간에 물기가 딱딱하게 얼어붙는다. 비가 오면 트렁크로 물이 새는 일도 있다. 이쯤만 해도 충분히 속상한데 오래된 모델이라 - 누가 뭐래도 중고품 - 하자가 있는 곳을 고치는 일도 쉽지 않다.
당해는 봤나. 카센터에서 직원이 묘한 웃음기를 띄운 채 스패너를 빙빙 돌린다.
지금은 생산되지도 않는 부품인데 저더러 어쩌라굽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세심하게 돌보지 않는다면 불원간 주인에게 있어 골칫덩이가 되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시보레 임팔라는 그런 자동차였다.

그리고 다시 오늘.
세월이 지나 이제는 해군에서 금방 제대한 상등병이 아니게 된 윈체스터는 슬그머니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은 자식 놈들을 곁눈질했다.
압박감이 대단한 꾸러미 틈새로 작은 체구의 샘이 짓눌려 있다. 그런 샘을 보다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장남인 딘은 자기 머리 위로 가방도 올려 놓았... 다는 것은 말 그대로 과장이고, 아무튼 소년의 팔뚝으로는 추스르지 못할 커다란 꾸러미를 전력을 다해 끌어안고 있었다. 쥐고 있는 것을 실수로 놓치면 비극적인 눈사태가 발생해 동생이 압사당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다. 덕분에 딘의 안색은 샘보다 곱절로 창백했고 허리는 팔순의 노인네처럼 구부정했다.

이쯤해서 케일럽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박자를 맞춰 존에게 노크했다.
「트럭이 최곱니다. 트럭이 최고. 그거 아세요? 데이비스 말콤 자식은 담요는 물론이고 커다란 난로까지 자동차에 싣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눈보라 치는 알라스카에 가도 얼어 죽을 일은 없을 거라며 자기 하마를 닮은 자기 엉덩이를 막 탁탁 치면서 지랄맞게 으스대고 그럽디다. 뭐, 존의 자동차가 나쁘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말구요... 전 그냥 미니밴으로 갈아탈 생각은 없는지 궁금할 뿐이예요. 그러니까 왜 있잖수, 상등병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자동차 카달로그 한 번 보지 않을라우?」
쉽게 말해 야반도주를 하기엔 임팔라는 썩 좋은 자동차가 아니라는 말씀.
인정하는 바다. 고집을 꺾고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 같은 종류를 골랐다면 장남의 뺨이 가방에 짓눌리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 가슴이 답답해진 존은 손을 목덜미 쪽으로 올려 셔츠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창문을 열까요? 아버지.』
하여간 눈치 하나는 귀신 사촌이다.
존의 사소한 동작을 몸짓을 알아차린 딘이 입을 열었다.
『조금 더운 것도 같네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창문을 연다는 건 무모한 모험에 가깝다. 지붕 위를 뚫고 달아날 것처럼 생긴 짐더미가 열린 창문을 통해 이때다 하고 탈출을 시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그래서 샘은 자신의 형을 구제불능의 멍청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창문을 열겠다고? 차라리 뛰어내려랏.

『똑바로 앉거라, 샘.』
하극상은 용서할 수 없다. 존은 표정을 딱딱하게 만들며 차남이 앉은 방향을 힐끔거렸다.
『한숨 쉬지 말고.』
아버지의 지적에 샘은 흠칫하며 몸을 사렸다. 눈빛은 한층 더 반항적으로 변했다.
엉망으로 찡그린 표정에서 고스란히 읽혀진다.
저는 맘대로 한숨도 쉬지 못 하나요. 이런 것에도 허락을 구해야 하냐고요, 아버지?
동시에 죄책감이라는 것이 샘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네 살 위의 형을 바보 취급했다. 그래선 안 되는 거다. 딘이 그에게 바친 헌신을 생각해서라도 - 똥 싼 기저귀를 찬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친 사람이 누구던가 - 거기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러지 말라 경고했다.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쁜 아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창문을 향해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그런 동생의 반응을 오해한 딘이 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렇게 한숨 쉴 거 없어, 새미. 어디를 가든 우린 분명 재미있을 거야. 앞으로 가게 될 곳이 시퍼런 깡촌이라고 해도 나쁠 거 하나 없다고.』
『...』
『그거 아니? 어쩌면 우린 달걀을 요금 대신 받는 극장을 찾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렇게 뾰로통한 표정따윈 짓지 말아.』
만사가 긍정적인 딘은 즐거운 소리를 냈다. 헤헤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이 형이 농담 따먹기 잡지에서 봤는데 말이지. 시베리아의 한 마을에선 현금이 없는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입장료 15센트 말고 암탉이 금방 낳은 따끈따끈한 계란을 받았다는 거야. 아무렴! 여러 달 전부터 월급을 못 받은 사람들도 샤론 스톤이 나오는「원초적 본능」은 봐야 쓰지 않겄냐?』
여전히 고개를 창문 밖으로 고정시킨 채다. 그래도 딘은 동생이 눈을 아래서 위로 치켜뜨고 있음을 읽어냈다. 분명 입도 튀어나왔겠지. 콧잔등에 주름도 생겼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얽힌 손가락으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봤자 우리에겐 암탉이 없다고, 딘. 그리고 형은 닭을 키울 줄도 모르잖아.』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래서 병아리부터 품겠다고?』
설령 키우겠다고 해도 존이 허락하지 않을 거다. 존은 아이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일에 반대했다. 닭이 과연 애완동물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건 둘째다. 샘은 말도 안 된다며 조소했다.
『형은 기름에 튀긴 닭만 좋아하잖아. 살아있는 닭은 형에겐 무리야.』
딘은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안 된다며 피식거렸다.
『인석아, 정 안 된다면 임기웅변을 써먹어야지. 달걀이 없음 빈병을 대신 들고 가면 되잖니.』
『빈병을 들고 가도 마찬가지야, 딘. 우린 지금 신선한 달걀을 요금으로 받아주는 극장이 있는 시베리아로 가고 있는게 아니니까.』
활짝 미소를 터뜨린 딘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샘! 바로 그거야. 네 말이 맞아. 우린 시베리아로 가는게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발랄한 스머프 노래를 부르자. 딘은 귀로는 들리지 않는 투명한 음악에 맞춰 상체를 흔들었다 - 라기 보단 어깨를 찍어 누르는 폴로백팩에 반기를 들기 위함이었지만, 아무튼 겉으로 보자면 꽤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샌디에이고? 라스베가스? 어디에라도 오케이. 어쩌면 멕시코로 내려갈 수도 있지.』
그렇죠, 아버지 - 하고 딘이 한 박자 골랐다.

동생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남의 필사적인 노력도 모르고 여기에 초 치는 아버지.
『멕시코로는 가지 않을 거다, 딘.』
저 밑바닥으로부터 끌어 모은 안간힘이 삽시간에 와해되는 것도 모르고 존은 뻣뻣하게 대꾸했다.
『준비 없이 아무렇게나 국경을 넘을 수는 없어.』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했을 뿐인데 이건 너무 진지하시다. 딘은 크게 당황했다.
『어, 그러니까... 음.』
『여권 위조는 쉽지 않다. 시간도 많이 들고.』
『무, 물론 그렇죠.』
유통기한이 지나 찐덕해진 쿠키처럼 변한 딘이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아요, 아버지.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가볍게 한 말이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 하고 장남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죄송해요 - 라고도 했다.
이내 딘은 입을 다물었고, 쥐고 있던 동생의 손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렇게 3시간가량을 더 달렸던 것 같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이 필요했다. 화장실도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구석진 곳으로 자동차를 세운 존은 수퍼마켓이 아닌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향해 잰 걸음을 했다. 장거리 전화를 하고도 남을 정도의 넉넉한 동전을 손에 꼭 쥐고 말이다. 전화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수첩을 열 필요는 없었다. 곁눈질로 아이들이 탄 자동차를 예의 주시하던 그는 때묻은 버튼을 힘주어 꾹꾹 눌렀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신호 대기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찰칵 소리와 함께 수화기 저편에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여자가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나타났다. 행색이 꾀죄죄한 여행객에게 립 서비스로 맥주 주문하겠느냐 물어보는 식당 종업원 같은 분위기다.
『트리니티?』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입니다. 이따 다시 걸어주십시...」
존은 짧게 심호흡했다. 헌터이면서도 헌터가 아닌 이 여편네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데 도사였다.
『납니다. 존이오.』
「뭔 존? 리틀 존, 아님 빅 존?」
『존 윈체스터요.』
「쳇... 알어. 그냥 장난친 거야. 그래서?」
『물어볼 것이 있소. 도슨 어빙이란 자에 대해서요.』
그러자 수화기 저편에서 여자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09/11/01 20:21 2009/11/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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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마리에 2009/11/04 21:59 # M/D Reply Permalink

    우앗, 반가운 서머타임이네요!! (그런데 어느새 지금은 초겨울 ^^:)
    미야님이 쓰시는 윈체스터 삼부자는 참 맘에 들어요. ^^*

    * 미야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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