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언제오나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평생 못 고칠 거라 생각하고 단념했던 형의 버릇 - 싱크대 위로 굴러다니는 더러운 양말 - 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얘들아, 문가에 소금 뿌렸냐 잔소리를 했어도 아빠는 평생 구역질나는 양말에 대해선 이렇다 꾸지람을 하지 않았다. 문제의 장남은 누렇게 찌든 자기 팬티를 어디다 벗어 던졌는지 기억을 못해도 총기구 청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했다. 결국 이것저것 저울질을 하던 아빠는 딘에게 훈계를 하지 않았고, 대신 인상을 엄청나게 써가며 더러운 양말을 집게손가락으로 집어올려 쓰레기통으로 골인시켰다. 그리고 폭탄 맞은 꼬락서니의 침대에 앉아「사내 자식들이 다 그렇지, 뭐」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사내 자식들이 협탁 아래로 햄버거 포장지를 굴리지 않는다.
난 그런 적 없다.
『그려요. 누구 동생인지 정말 잘 났어요.』
구린내 나는 자기 침대에서 도망쳐 깨끗한 동생의 침대로 피난가지도 않는다.
『쓸쓸하니까 같이 자자 징징거린 건 어디에 사는 누구냐! 부활한 엘비스냐?!』
진흙물이 든 셔츠를 흰색 빨래와 섞어 세탁기에 돌리는 무신경함.
『바빠 죽겠는데 그걸 분리하고 앉았냐. 한 번에 돌리고 말지.』
내 양말은 내 양말이오, 네 양말도 내 양말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논리.
『마트에서 왕창 세일하는 똑같은 색깔에 똑같은 크기, 똑같은 디자인인데 어떻게 구분이 가니.』

말대답을 꼬박꼬박 잊지 않는 형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소파에 널부러진 채 스무 번 더하기 일곱 번째로 맨인블랙 2탄을 감상하던 딘은 지지 않고「덤벼, 판초!」이러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악당으로 나오는 여자 외계인의 결코 지구인 답지 않은 커다란 젖통을 곁눈질하는 바람에 위풍당당한 기세가 한 풀 꺾였다는 문제가 좀 있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반항하는 동생은 형님에게 맞는다」를 의미하는 주먹은 허공에서 보란 듯이 흔들렸다.

『셀리나 나왔다.』
『앗흥.』
딘은 반사적으로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고, 기회는 이때다 형의 몸을 뒤로 훌쩍 떠밀었다.
벌렁 쓰러진 병사가 악에 받쳐 외치는 소리.
반칙이다, 반칙이다. 불시 습격은 반칙이다.
『그럼 형은 바야바랑 붙을 적에도「앞으로 1분 30초 뒤에 산탄총을 발사할테니 각오하여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이러고 미리 예고하고 방아쇠를 당기우?』
『미친나. 물론 그러지 않지. 하지만 나는 바야바가 아니거든.』
『아, 그러셨나요. 미처 몰랐습니다요. 그러고보니 바야바가 감자튀김을 입에 달고 소파에 늘어져 있을 것 같진 않군.』
덧붙여 형의 배를 장난스럽게 조물거렸다.
『그리고 바야바는 이렇게 뱃살이 나오지도 않았을 거야.』

딘은 펄펄 뛰었다.
『근육이다 근육!』
『군살이다, 군살.』
『근육근육근육!』
『군살군살군살!』
『아, 씨이! 정 못 믿겠음 눌러보란 말이야! 이렇게 단단한 군살 봤어?!』

눌러보라고?
사악하게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젖꼭지를 꾸욱 눌러봤다. 그리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오~ 진짜다. 정말 단단하네.』
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Posted by 미야

2009/08/24 12:59 2009/08/2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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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비 2009/08/24 21:26 # M/D Reply Permalink

    앗흥. ㅋㅋㅋ 그 몇년 떨어져 어찌 살았누- 싶네요.
    다 큰 사내 둘이서 이러고 노는건 반칙! 반칙! >_<//

  2. T&J 2009/08/25 10:23 # M/D Reply Permalink

    억, 기다리던 포스팅이군요...
    미야님 소설에서 대화를 보면 말입니다, 딱 윈체스터들 같아서 더 좋은 것 같아요...ㅡㅠㅡ...깔끔한 지문도 좋고.........한마디로 전 미야님 덕후.....;;;깔끔한 문체 부럽습니다요, ..컥컥
    암튼.........미야님의 윈체스터들은.....억, 귀여운 자식들....둥기둥기 막 해주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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