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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형 없이 혼자 남으면「나」는 일단 숨어야 한다.
바깥에는 무서운 곰이 돌아다니고 있다. 어흥거리는 사자가 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늑대가 있다.


애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곰, 새뮤얼 윈체스터를 잡아먹는 무서운 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내 맛있는 저녁이 어디에 있지 찾아다녀요.
새미는 꼭꼭 숨어요.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요.
덩치 큰 곰이 그 옆에서 입맛을 다셔요. 어흥, 무섭다 곰. 아흥, 배고프다 곰.

모텔 침대를 냅두고 - 그래봤자 스프링이 삐꺽거리는 싸구려 침대지만 - 맨바닥에 등을 대고 납작하게 누운 채 우리 형이 직접 작사 작곡한 것이 분명한 이상한 가락을 떠올렸다. 단순한 리듬은 과자 선전에 나오는 노래와 흡사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음울한 것이 애들 먹거리 간식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았다. 아흥, 배고프다 곰. 나는 여자애들이 환호하는 빨간색 리본을 목에 맨 테디베어-살인곰을 상상했다.

배꼽 부근으로 손가락을 까딱이며 반복되는 가락을 곱씹었다.
새미는 꼭꼭 숨어요.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요.
누군가 방문 손잡이를 돌려도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기척을 죽이고 이곳에 없는 척한다.
밖에는 무서운 곰이 있다. 새미를 한 입에 잡아먹으려 하는 곰이다.
그러니 숨도 쉬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어흥, 무섭다 곰. 아흥, 배고프다 곰.

『쨔슥아~!!』
형은 내가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 흉내를 냈다며 맹렬하게 화를 냈다. 그러면서 정작 독사과를 먹은 건 본인이라는 투로 숨을 심하게 헐떡였다. 후룩후룩 울며불며 있지도 않은 뜨거운 국물을 들이키는데 삼키는게 반이고, 도로 뱉어내는게 반이다. 입천장 몽창 데었겠다.
『수, 수, 수, 숨을 안 쉬는 줄 알았잖여!』
『그거야 관찰력이 부족해서지. 척 보면 몰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여전히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채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나는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약봉지를 떨어뜨린 딘이 놀라서 악 소리를 질렀음에도 일부러 가만히 있었으니까.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목덜미의 맥을 짚었음에도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단순히 졸렸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울부짖는 테디베어를 닫긴 눈꺼풀 너머로 보고 있었다. 약이 올라 그랬는지 곰은 두툼한 발을 쿵쿵 굴렀다. 내 저녁 밥이 보이질 않아. 화장실을 열심히 기웃거리던 곰이 이번에는 찬장을 열고 거미 시체밖에 없을 선반을 더듬거렸다. 그렇구나, 이건 꿈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키가 190cm가 넘는 나를 찾는다며 좁은 서랍 속을 뒤지는 살인곰의 행동이 묘하게 납득이 갔다.

『샘. 여기 이렇게 있으면 안돼. 카펫에 진드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지? 일어나서 약 먹자.』
쉿. 조용히 하세요. 형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거야? 이곳에 살인곰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뭐?』
커다란 곰이야. 아주 무서운 곰. 목에 빨간 리본을 묶고 있어.
『빨간 리본! 와우. 정말 무섭군!』
이제 이해가 가? 그러니까 이곳에 계속 숨어 있어야 하는 거야. 없는 척하고, 눈을 꼭 감고.
『그래, 이해가 간다. 애가 완전히 맛 갔군. 약은 둘째고 아무래도 얼음부터 찾아야겠다.』
얼음? 왜 얼음이 필요해? 곰은 얼음을 먹지 않아, 딘.
『쉬바! 곰 타령은 제발 그만해! 몇 도야! 몇 도냐고!』
미네소타주 기준으로 4시 20분.
『이 형은 지금이 몇 시냐고 시간을 묻지 않았어. 체온이 얼마냐 물었지. 야! 새미! 정신차려!』

아프지 않을 정도로 해서 뺨을 톡톡 쳤다. 하지만 난 기절한 것도 아니고, 열이 펄펄 끓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른하고 무거울 뿐이다. 모든게 귀찮아졌다. 움직이는 것도 싫고, 생각하는 것도 싫고, 정해진 궤적을 따라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고 있는 것조차 싫어졌다.

조용히. 정지. 모두 제자리에서 꼼짝 마.
새는 날개짓하지 않아도 된다. 구름에서 비가 내리지 않아도 된다. 산등성이로 보름달이 떠오르지 않아도 된다. 모두 파업하라고. 내일, 모레, 글피가 다 무슨 소용이야? 물이 흐르지 않아도, 계절이 바뀌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거기, 너. 가만히 못박혀 있으라고. 지금 이 순간부터 하나, 둘, 셋, 샘 윈체스터가 가라사대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이면 콜트로 쏴버릴테다.

『있잖아. 혹시... 술 마셨니?』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형이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심지어 딘은 킁킁거리며 코와 입의 냄새도 맡았다.
『이렇다할 알콜 냄새는 안 나는데... 아니면 뭐 히로시마(*환각을 일으키는 종류의 버섯.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빗댄 표현)라도 날름 집어먹은 건 아니겠지.』
셔츠 위로 손이 가만히 올라와 심장 부근을 덮었다.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이 심장 뛰는 박자를 하나하나 세었다. 갈비뼈 안쪽 깊숙이 감추어져 있을 주먹 크기의 핏덩이가 그것에 반응하여 세차게 움직였다. 딘이 내 심장을 쥐었다. 딘이 내 심장을 놓았다.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피부와 근육, 그리고 단단한 뼈라는 존재는 희미해졌다. 기이하면서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한 번 멈추었던 심장을 악마와 계약하여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나는 그 댓가를 떠올렸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하려면 그만한 희생이 따르는 법, 반사적으로 딘의 손을 잡아챘다.
 
더 이상 거짓된 농담을 하지 말아줘.
형의 목숨으로 움직이는 심장따윈 난 원하지 않아.
멋대로 죽어버리지 마. 나 혼자 살아가라고 그러지 마.
이것으로 다 괜찮아질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거지?

부스스 눈을 떴다.
잠에 취했는지, 목이 부었는지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잠깐만.... 백...설..........공주 흉내? 내가 공주란 말이야?』
형이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얌마! 그럼 네가 언제는 왕자였냐?』

Posted by 미야

2009/09/08 10:00 2009/09/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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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J 2009/09/08 11:11 # M/D Reply Permalink

    글자 하나하나 사이의 의미를 생각해요, 문장과 문장사이, 문단과 문단사이-그 사이에 담겨진 의미를 떠올리다 호흡곤란....컥-윈체스터들이 삽질을 하니 저도 그 박자에 맞춰서 삽질을 하게 됩니다. ....크흠.....전 돌아가며 삽질하는 미야님의 윈체스터들이 참 좋습니다요. 미야님의 문체도요.

  2. 아이렌드 2009/09/08 14:38 # M/D Reply Permalink

    .......백설공주를 깨우려면 키쑤를.... (탕!!)

    1. 미야 2009/09/08 16:56 # M/D Permalink

      입에다 혀 집어넣고 막 굴리면 벌떡 일어나기는커녕 바닥에 더 철썩 붙을텐데요...

  3. 2009/10/07 13:33 # M/D Reply Permalink

    헝...

    딘샘을 찾아 구글을 헤메다 성지를 발견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미야님의 딘샘 팬픽란에 있는 글 180개를 하루만에 정ㅋ독ㅋ했습니다
    딘샘이 고팠어요! 넼! ...샘딘도 나쁘지 않고, 여러모로 이 둘은 누가 위던 아래던 어울린다고 생각... ...하는 주의기 때문에 (그래도 딘샘이 좀더 좋습니다) 샘딘 보면서 살아오고 있었지만 딘샘...

    책임져 주시네요 (학학하ㅏ핰)

    개인적으로 저도 글 쓰는 일을 취미 또는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저 미야님의 글쓰기 실력에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보면서 눈물 흘리고 감정이입되어 분노하고 웃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어요.. 글보면서 그렇게 감정이입되어 본 적이 없어서 놀랐달까, 그렇습니다. 정말 미야님은 천재신 것 같아요orz 찬양하겠습니다... 즐겨찾기 맨 위에 콕 박아뒀어요 y///y

    고럼 다른 소설이 올라오는 날을 기다리며, 언제까지나 목 빼고 있겠습니다!
    찬양하라 딘샘 ㅜ.ㅜ

질리지도 않나

비쩍 마른 나뭇가지 형상의 여인이 반으로 꺾어졌다.
나는 훅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셨다.

「나를 위해 기도했나요?」
허깨비가 온전한 사람의 목소리를 내었을 리 없다. 눈을 부릅뜨고 유리창 너머를 노려봤다.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원망하는 투는 아니다. 질책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뭐랄까... 자신을 위해 기도했느냐 묻는 그녀의 목소리엔「오늘 날씨는 제법 쌀쌀하네요」식의 일상생활의 식상함이 담겨 있었다.


레일라.
카운터에서 약값을 계산하는 것도 잊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호오, 그렇군요. 당신은 나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기도하지 않았어요.」
목소리가 가냘프게 잦아들었다.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군요. 당신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도 신에게 기도하지 않죠.」

모르겠다.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기도를 해도 그만. 기도를 하지 않아도 그만.
어차피 사람은 죽게 되어 있다.


「맞아요. 사람은 모두 죽어요. 그래서 나도 죽었죠.」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6개월의 시간이 남았음을 알려주었다. 수술은 불가능했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부지런히 움직여 정해진 바퀴를 전부 돌고 나면 지상에서의 하루는 온전히 막을 내릴 것이다.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정해진 결말이다. 핏기를 잃은 얼굴 위로 차가운 흙이 뿌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일라는 그 믿음을 시험하며 기적을 소원했다. 살고 싶어했다. 병을 고치고 싶어했다. 치유의 은사를 가졌다는 목사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에 응답했던 건 하느님이 아니라 부정한 마법의 힘, 죽음은 그저 농락당했을 뿐으로 나와 내 동생에 의해 마법이 깨어지자 기적이라 포장된 가식적인 구원 또한 송두리채 말살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났을 적에 그녀는 다시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처럼 눈물을 쏟아가며 울지는 않았다.
다만 체념의 빛이라는 것이 커다란 모자처럼 레일라의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 몸이 아프다는 걸 느끼는 것조차 포기한 듯했다. 레일라는 희한하게도 이젠 안 아프다고 말했다.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병이 호전되는 증상이 아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런 말을 한다. 더 이상 고통은 없다 - 레일라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싸구려 여관방에 걸린 벽시계가 착착 소리를 내며「종료. 끝. 결말」이란 단어를 완성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도 그럭저럭 6개월인가.』
달력을 쳐다보며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은 없다. 지옥으로 떨어지기까지 정확히 몇 달 몇 일이 남았는지 헤아리는 건 내 성격엔 안 맞는다. 오히려 그런 건 동생에게 어울린다. 그러니 샘에게 가서 손바닥을 마주비비며 물어보자. 앞으로 형이 살 날이 얼마 남았니? 그러면 동생은 씩씩거리며 대답할 거다.「문딩이 자식!」그래, 그래. 욕하면서 느낌표 붙이는 걸 보니 반 년 정도 남았구나. 그제야 나는 멀지 않게 들려오는 시계 초침 소리를 깨닫는다. 정해진 바퀴를 부지런히 돌고 있다. 한 바퀴를 도는게 60초, 한 바퀴를 도는게 1분, 한 바퀴를 도는게 1시간...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그렇게 지옥을 향해 착실히 걸음을 내딛고 있다.

후회 없는 한 걸음.
후회 있는 한 걸음.
아아, 샘.
동생의 눈이 증오로 빛난다.

『나더러 그냥 살아가라고?! 나 때문에 형이 지옥에 가게 됐는데?!』
『살아.』
『딘!』
『넌 그렇게 할 수 있어.』
샘이 이를 간다. 증오다. 뿜어져 나오는 건 순결한 증오의 감정이다.
『나는 기억해. 아빠가... 형을 위해... 형을 살리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걸 깨닫고나자 형은 무너졌었어. 그런데 이젠 나더러 그렇게 하라고?』
『안 무너져.』
별 거 아니라는 투로 쉽게 대꾸한다.
그리고 나서 깨닫는다.
그렇다.
나는 이 동생을 사랑하는게 아니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큰 상처를 주지 않았을 터.
내 목숨을 줬고, 내 살을 먹였고, 내 피를 마시게 했어도 사랑하진 않는다.
그러니 너도 날 사랑하지 마.

그 호박색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널 사랑하지 않으니 너도 나를 사랑하지 말아.
그러면 넌 무너지지도 않을 거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어.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더 이상 슬픔은 없다 -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참았던 숨을 들이마시며「이 해열제는 얼마죠」약국 직원을 향해 무뚝뚝하게 질문했다.

Posted by 미야

2009/09/04 12:20 2009/09/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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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라미에 2009/09/04 22:07 # M/D Reply Permalink

    ㅠ.ㅠ 레일라.... 흑.
    문딩이 자식! 성내는 샘. ㅠ.ㅠ

※ 왜 제목도 없는 글을 이렇게 연달아 쓰고 있는 건지... ※


어지럽다 생각했는데 거울을 보니 뺨이 빨갛다. 이마를 만지니까 뜨겁다.
『딘. 나, 아파.』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지면 범인은「까마귀」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딘은 어찌할 바 모르겠다며 양말을 신지 않은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 옴죽거렸다.

『젠장! 해열제가 떨어졌잖아!』
부시럭거리며 가방을 한참 뒤지던 형이 듣기 민망한 욕설을 퍼부어댔다.
버스를 기다리면 버스가 오지 않는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날엔 비가 온다, 중요한 데이트 약속이 있는 날엔 꼭 구멍이 난 양말을 신게 된다 -『부탁할게. 이렇게 눈물로 호소할테니 그놈의 빌어먹을 양말 이야긴 제발 그만해~!!』형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다. 하여간 정작 필요해서 찾으면 꼭 제자리에 없다. 그러니까 몸이 아프면 먹어야 할 약은 수중에 없기 마련. 난 그럴 거라 이미 예상했고, 그렇기에 차가운 물수건을 찾아 엉금엉금 기었다.

『귀족 탐정 다아시 경이 고개를 숙일만큼 정말 논리적인 추론이구나, 동생아.』
내 증상이 꽤 심각하다는 걸 한 바퀴 돌려 말한 딘은 이번에는 지갑과 자동차 열쇠를 찾기 위해 테이블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르르 와르르 각이 진 쇠구슬이 철판 위를 왔다갔다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피자 포장지와 맥주캔이 잡지 무더기와 서로 뒤엉켜 있다. 이중에서 필요한 것만 딱 집어 골라내는 일은 쉽지가 않을 터, 성격이 급한 딘은 한꺼번에 잡지를 쓸어내렸고 그 거친 손동작에 라이터니 모텔 요금표니 하는 것들이 쓰나미에 휩쓸렸다.
『에잇. 이놈의 열쇠가, 열쇠가...』
마음이 급하니 되는 일이 없다. 땅 파는 너구리처럼 더미를 헤쳤음에도 열쇠가 쨘 하고 등장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눈을 뒤집었다. 아까도 말했잖아. 필요해서 찾으면 안 나온다고 했지? 버스를 기다리면 버스가 오지 않고, 우산을 준비하지 않으면 비가 내리고, 맨날 싱크대 위를 굴러다니던 더러운 양말도 찾으면 없...
우뚝 멈추고 선 형이 위협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놈의 양말 타령은 그만하라고 그랬지. 주먹으로 맞고 싶어 환장한 거냐, 새미?』
『아니. 깔리고 싶어 환장했어.』
만사 체념한 투로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구부정한 노인네 걸음걸이로 침대로 돌아갔다.

『까... 깔려?』
고추 껍질 벗겨진 날부터 되바라지게 놀아댄 주제에 흠칫 놀라 되묻긴.
대꾸할 기운도 없어 열에 들뜬 눈으로 묵묵히 형을 쳐다보았다.
『그래. 깔리고 싶어 환장했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닳고 닳은 인간이 겁에 질린 순진한 촌색시처럼 목을 움추렸다.

『아, 아, 아무튼 야, 약을 사러 갔다 올테니 이불, 이불 뒤집어 쓰고 야, 얌전히 있어!』
『예이, 예이.』
『야, 얌전히 있을 거지?!』
『접시 깨고, 도끼로 TV 부수고, 옆방으로 총알 갈기고, 이불에다 오줌 쌀게. 됐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그제야 단단하게 굳은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려. 지붕만 무너뜨리지 마.』
이어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Posted by 미야

2009/08/27 13:47 2009/08/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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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J 2009/08/27 14:24 # M/D Reply Permalink

    억억억-무려 연달아 올려주셨다+ㅁ+
    점심 먹고 잠오던 차에 한 번 더-읽을 양으로 왔는데 이 무슨 횡잽니까!
    억, 너무 좋아요........
    까, 깔리고 싶다니, 새미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딘은 왜 이 기회를 뻥 차고 달아나는 건가요? 촌색시 마냥 얼굴 붉어진 딘이라니....전, 이런 횽아가 느무 좋아요....어허허허허-
    미야님, 애,,,,애정합니다!
    억, 너무 좋아...ㅠㅡㅠ

  2. 나마리에 2009/08/28 17:44 # M/D Reply Permalink

    우앙. 맨날 굴러다니던 양말도 찾으면 없고.. ㅋㅋㅋㅋ
    샘 귀여워요. 그 놈의 양말. ㅠㅠ
    딘 형님.... 동생한테 일단 약은 먹이시고 그리고 다음 스텝 가는 거지요? 그렇지요? 넵?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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