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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1 노아드롭 1-17 by 미야

노아드롭 1-17

다섯의 움무들이 저마다 싸울 태세를 갖췄다.
스틸스는 신호를 하면 일제히 공격하라는 눈짓을 보내고 인질로 잡은 소년의 목으로 칼날을 가까이 가져갔다. 방금 전까지 숫돌에 날을 갈고 있었던 터라 필요 이상으로 쩍 하고 피부가 베어졌다. 순식간에 목깃이 붉게 물들었다.
따끔거리고 아파서라기보다는 아마 무서워서 그랬을 거다. 후스코가 눈물을 찔끔거렸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마요.』
그래도 눈치는 있어 소리 내어 엉엉 울지는 않았다. 비명을 지르면 움무들이 흥분한다. 흥분하면 난폭해진다. 위험이 닥쳤을 적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 - 사전에 배운 지식은 없었어도 자기보호 본능은 후스코의 행동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통제했다. 소란을 피우며 큰 소리를 내지 말 것. 반항적으로 움직이지 말 것. 계속해서 여리고 약하다는 인상을 줄 것. 그래서 스틸스가 비싼 물건을 구매자 앞에서 전시하듯 그를 한 가운데로 몰아세웠을 적에 소년은 어떠한 반발도 없이,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지며 순순히 끌려갔다.

『잘 보이는 곳으로 나와라. 허튼 짓을 하면 아이의 목을 베겠다.』
『충고하자면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게 좋을 거야.』
『충고를 할 입장이 아닐텐데? 그만 떠들고 나와.』
남자는 스틸스의 요구에 응하며 보다 가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오른손에 개조한 장총을 한 자루 쥐고 있었는데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길 태세는 아니고 말 그대로 들고만 있었다. 마치「난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전혀 모르거든」이러고 주장하는 것 같아 꽤나 기묘한 인상이었다.
『어쩌지. 그냥 쏴 버릴까? 두목.』
당혹스러워하며 몇 명의 움무가 스틸스의 눈치를 살폈다.
스틸스는 아직 그들 무리에게 이렇다 할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마을 놈이 아니군. 분위기가 틀려.』
그게 질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리스는 자신의 할 말을 천연덕스럽게 읊었다.
『너희들은 지금 미성년자 유괴 행위를 저질렀다. 무장을 해제하고 순순히 인질을 석방하기를 권고한다. 그렇게 한다면 제1급 처벌 대상의 범죄 내역을 무시하고 중립지역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눈감아 주겠다. 만약 제안을 거부한다면 안전은 보장할 수 없어.』
하는 짓도 그렇지만 말투도 이상하다. 세익스피어 연극처럼 고색창연하다고나 할까. 무리 중 보다 젊은 측에 속하는 움무가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는 시늉을 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완전히 돌은 놈이잖아.』
『아자렐로, 입 다물어.』
『그치만 스틸스.』
『입 다물어!』
스틸스의 표정은 험악했다. 스프레이로 뿌려진 고춧가루와 겨자 액 탓에 피부로 붉은 발진이 돋아 가뜩이나 야차 같은 인상인데 눈을 크게 부릅뜨고 노려보기까지 하자 감히 대적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자렐로는 입에다 지퍼를 채우는 동작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불만을 표시하며 땅바닥에 침을 뱉는 건 잊지 않았다.

숫자적으로 우세한데 이상하게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다.
『넌 정체가 뭐냐. 혹시 중앙의 개냐.』
『아니.』
남자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다 거슬리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저놈은 이 상황에서도 긴장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눈치잖아.」
그렇게 생각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다. 그것과는 다르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사람은 규칙적으로 호흡을 한다. 심장이 뛴다. 근육은 요동치고, 눈꺼풀을 깜빡인다. 그러니까 자기 딴엔 가만히 있는 거라지만 살상은 쉬지 않고 미세하게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저 햄릿 말투의 남자에겐 그런 인간적이고도 자연스런 부분이 부족했다. 주변이 어둡다는 점은 별개로 치고... 스틸스가 보기에 남자의 모습은 마치 정지된 화면과도 같았던 것이다.
「저놈, 숨은 쉬고 있는 거 맞아?!」
땀구멍이 조여지며 닫기는 감각이다. 동시에 밑바닥으로부터 아우성치며 올라오는 무언가가 등줄기를 성가시게 긁어댔다. 일이 상당히 잘못되고 있다.

땀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칼자루를 고쳐 쥐는 것과 동시였다.
입맛을 다시던 아자렐로가 제멋대로 나서며 남자를 총으로 한 방 갈기려 했다.
『아직 쏘지...』
경고하려던 찰나 귀청이 떠나가는 쾅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쪽이 아니고 저쪽에서 났다. 장총을 쓸모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막대기처럼 취급하던 남자가 제대로 사격 자세를 갖추지도 않은 채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언뜻 보기엔 그냥 아무렇게나 흔들어댄 것처럼 보였다. 어디를 쏘면 좋을지 판단조차 하지 않고 내키는대로 총을 들었다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아자렐로는 무릎을 움켜쥐고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아아악! 내 다리! 내 무릎!! 으아악!』
여기서 더 무서운 건 남자는 다시 예의 긴장감 제로의 차렷 자세로 돌아갔다는 거다.

스틸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너~!!』
『사전에 경고했잖아. 그래도 머리를 겨누진 않았어.』
잘못을 나무라는 말투 또한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머지는 이제 넷.

『인질을 그만 놓아줘. 그럼 여기서 걸어나갈 수 있어.』
『웃기지 마!』
『내 말이 웃겼나? 이상하군. 원래 나는 농담을 잘 못하는 편이야.』
『적당히 으스대는게 좋을 거야, 친구. 내 장담하지. 여기서 널 죽일 거야. 그리고 이 아이도 죽일 거다. 멈추지 않고 마을로 내려가겠다. 집에다 불을 지르고, 여자들을 욕보일 거다. 남자들은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고, 들개에게 먹이로 던져버릴 거다.』
『어떻게?』
리스가 재빠르게 팔을 움직였다. 이번에도 제대로 조준하고 쏘는 동작이 아니었다. 시선은 똑바로 스틸스에게 고정되어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총을 눈높이로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겨선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없다. 게다가 스틸스는 방패처럼 소년을 붙들고 있었다. 목이 졸린 모습으로 방패 역할을 하고 있는 후스코는 또래와 달리 마른 체격도 아니다. 음식에 대한 탐심이 강해 살집이 있는 아이다. 그런 상태에서... 완전히 미쳤다.
『스틸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무 상인의 머리로 커다랗게 구멍이 뚫렸다.
아이는? 후스코는 확 뿜겨져 나온 살점과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비틀거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정신이 나간 눈치다. 그러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 상태로 할 수 있음 어디 해봐.』
리스는 차갑게 내뱉듯이 말하며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장총을 도로 내렸다.

Posted by 미야

2012/09/11 16:53 2012/09/1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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