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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04 노아드롭 1-13 by 미야

노아드롭 1-13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는 속담대로 괜한 사람을 고자로 만든 카터가 야단스럽게 외쳤다.
『맙소사, 핀치! 어디에 처박혔다가 지금에야 꾸물거리고 기어나왔...』
뒷말은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그녀는 해태가 아니었고, 눈으로 본 핀치의 몰골 하나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추측하기는 너무나 쉬었다. 그의 얼굴은 흙과, 땀과, 말라붙은 피로 뒤덮여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의복은 넝마 꼴이다. 구멍이 뚫린 곳으로 무릎이 드러났다. 저 남자는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하여 자신을 붙잡으려는 자들로부터 도망치고, 또 도망친 것이다.
「엄청 노력했어. 그리고 보란 듯이 굴렀구나.」
측은한 마음에 손수건을 내밀어 최소한 눈구멍 주위라도 닦으라고 제안했다.
핀치는 그 와중에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눈치다. 사람 민망하게 엉뚱한 방향으로 손을 내밀어 깨끗한 손수건을 잡으려 했다. 그 산만하고 갈팡질팡하는 동작에 카터는 그가 잃어버렸다던 안경을 기억해냈다.
『당신이 길에다 흘린 안경은 애덤이 찾아내어 보관 중입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 정도로 다행이라고 말하기는 일러요, 핀치. 후스코가 움무들에게 납치되었어요. 그리고 망할 움무들이 인질로 잡은 후스코를 당신과 교환하자고 했고요.』

『우...』
탈진 상태였던 핀치는 똑바로 서있는 것조차 힘들다며 나무기둥에 기대어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시멘스키는 그가 곧 훌쩍거리며 울 거라는 걸 알았다. 웅크리고 앉은 그의 몸은 매우 왜소해 보였고, 장대비에 녹아내린 풀떼기처럼 연약한 느낌이었다. 안쓰럽다. 그로서는 매우 견디기 힘든 험난한 하루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최악의 하루는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핀치가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를 냈다. 눈물이 비후강을 타고 콧구멍 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양이다. 평소 남자가 우는 걸 매우 꼴사납다 여겼던 시멘스키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치기로 했다.

『울지만 말고 얘기를 해봐요.』
『그러니까, 그게... 집으로 돌아가니 거실 한 가운데로 움무 상인이 도깨비처럼 서있더군요. 덕분에 심장 마비에 걸릴 뻔했죠. 그 자의 말로는 우리 집이 어딘지 알아내기 위해 후스코에게 겁을 좀 줬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이 엉덩이를 때려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했는데...』
『움무들은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죠.』
『하아. 이걸 기뻐해야할지, 아님 슬퍼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네요. 솔직히 전 움무들이 후스코를 이미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었거든요. 아이가 무사히 살아있다고 하니 기쁜데, 저 대신 잡혀갔다고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카터와 시멘스키는 여러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카터는 핵심을 꼬집어 질문했다.
『그들이 무엇을 요구합디까, 핀치.』
『가지고 있었다면 주었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하지만 나에겐 없는 물건이었어요.』
『핀치... 그들이 요구한 물건이 무엇이었습니까.』
한 박자 쉬고 카터가 재차 물었다.
핀치는 후후, 이러고 거칠게 숨을 불어대며 힘들게 대답했다.
『컴퓨터 칩이오. 중앙 정부에서 고위 관료에게 제공하는 칩을 원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여성용 손수건에 대고 얼굴을 파묻었다. 산발적으로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카터는 똑바로 서서 어둠을 노려보았다.
시멘스키는 알았다. 그녀는 거의 폭발 일보직전이었고, 부뚜막 아래로 벼락을 내리꽂는 악귀처럼 머리카락을 전부 세웠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외쳐대고 있는 외침이 무슨 내용일지도 짐작이 갔다. 타인에게로 향하는 흉폭한 저주, 그리고 부메랑으로 돌아와 그녀의 몸뚱이를 후려치는 분노의 외마디 외침들이었다. 호랑이를 닮은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났다. 그리고 곧바로 붉어졌다.
『핀치.』
『네, 관리사문관님.』
『미안합니다. 나는 열 다섯 살의 소년이 외지인들의 손에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핀치가 손수건에서 짐짓 얼굴을 들었다. 그 역시 눈가가 붉었다.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요?』
반박하는 카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뇨, 당신은 날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핀치. 나 자신도 이해를 못 하겠는데요. 이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거나, 저 사람의 목숨은 덜 소중하다고 말해서는 안 돼요. 생명의 가치는 수치로 계산되지 않지요. 하지만 지금의 나를 봐요. 난 방금 후스코를 위해 당신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할 거라고 결정까지 했는걸요.』
핀치가 손수건에 대고 리얼하게 코를 풀었다.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처지를 이해합니다, 관리사문관님.』
그리고 콧물로 흥건해진 손수건을 둥글게 말아 손아귀에 쥐었다.
『당신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저라도 그렇게 결정했을 테니까요.』

군인의 얼굴을 한 시멘스키는 내부규정 제5조2항에 의거, 일단 카터의 결정에 반발하고 보았다. 인질극에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최악이다.
『체념하기는 일러요. 더 생각을 해보자고요. 핀치를 넘겨주자고요? 그러면 핀치 씨가 죽을 텐데요.』
『다른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습니까, 시멘스키.』
『어... 그게.』
당황하여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그를 대신하여 핀치가 조용히 말했다.
『실은 있습니다.』

관료의 칩은 오른손에 이식된다.
이쪽에서 그런 건 없다 아무리 주장해도 믿어주지 않을 터이니 차라리 직접 찾아보라며 손을 잘라주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뭐욧?! 손을 잘라서 주자고?!』
카터와 시멘스키가 동시에 펄쩍 뛰며 외쳤다. 핀치는 풀 죽은 표정으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과격하다는 건 압니다. 그래도 처치만 제대로 하면 괜찮을 겁니다. 어차피 인질 교환을 하면 전 죽은 목숨입니다. 그럴 바엔 제 손을 잘라서 그들에게 던져주고 후스코를 데려오는 편이 낫습니다.』
『그건... 음. 하지만...』
『결정했으면 빨리 해치웁시다. 일단 피가 통하지 않도록 팔을 단단히 묶어야겠죠. 날이 잘 드는 칼을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도끼도 괜찮습니다.』
『핀치!』
『그런 얼굴로 절 보지 마세요, 카터 관리사문관님. 살해당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절 움무들에게 넘기겠다 하신 분이 제 손모가지 자르는 결정에 흔들려서야 되겠습니까.』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걸레가 된 외투를 벗어 곱게 개켜놓은 그는 셔츠를 잘게 찢어 그것으로 오른팔을 어깨 부위부터 꼼꼼하게 동여매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힘이 없어 묶는 매듭이 영 신통치 않았다. 핀치는 답답해 미치겠다며 혀를 찼다.
『시멘스키, 가만히 서있지만 말고 묶는 걸 도와주세요. 그리고 카터.』
빨리 칼을 가져오라고 했다.

Posted by 미야

2012/09/04 16:33 2012/09/0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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