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29)

그리고 며칠간 핀치의 일진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실수로 발목을 접질렀고, 원인 불명의 갑작스런 배앓이를 했고, 처방전에 씌여진 약을 복용하자 이번엔 두통이 생겼다.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계신가요.』
『스트레스야 늘 받고 있지요.』
성 마리웨자 병원의 야간 당직의는 그 외에도 판에 박힌 질문들을 더 던졌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가, 알레르기가 있는가, 복용하는 다른 약이 있는가, 식욕의 변화는 없는가,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가...
핀치는 기진맥진해서 예, 아니오 말도 못하고 도리질만 했다.

『두통이 생겼다고 진통제에 의지해선 안 된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가끔씩 의지하곤 하는 의사 아그네스는 겉으로 봐선 매우 깐깐한 성격이다.
『환자분께선 절 버튼만 누르면 진통제가 나오는 자판기로 여기고 계시는 듯하지만요.』
그리고 남들 앞에서 기분 좋게 웃는 법도 없다.
『하지만 꾀병이 아니라 정말로 힘들어 한다는 걸 잘 아니까 이틀치 약을 처방해 드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진통제는 제꺽 처방해준다.
사실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진통제가 나오는 자판기가 맞았다.
아그네스는 처방전을 남발하고 벤조디아제판, 코데인, 옥시코돈, 바이코틴 등등의 약품을 뒤로 빼돌리는 사람이다. 핀치가 불법행위를 자행한 그녀를 의사협회에 고발하지 않은 까닭은 빼돌린 약품을 의료보험이 없는 길거리 노숙자나 불법 이민자들에게 비교적 싼 가격으로 나눠준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그네스 또한 핀치에게 모든 사실이 들통났음을 알고 있다.
그녀가 핀치의 병원 방문을 전산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까닭은 그런 이유에서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그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쌀쌀맞았고, 핀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뒤돌아 사라질 적엔 발걸음이 매우 빨랐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무척이나 냉랭했다.

겉으로 표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서글프다.
푸른 형광등 조명 아래서 핀치의 안색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흠칫흠칫 놀라 깨어났고, 그때마다 침대에서 일어나 편집증 환자처럼 방문 손잡이와 창문 걸쇠를 확인했다. 모든 출입구에 장치한 센서는 계속해서 초록색 불빛이었기에 손으로 만져 자물쇠를 확인하는 건 무의미했다. 하지만 핀치는 땀을 흘렸고, 머리는 계속 쑤셨다.
마지막으로 베개에 머리를 눕혔을 적에 시계는 정확히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서 핀치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곰곰이 생각해야만 했다.

림보로는 나가지 않았다.
그의 위장용 직업군에서 - 정확하게는 손해보험 사업 쪽에서 정기 결재를 요구해왔기 때문에 오늘은 그쪽에서 업무를 봐야만 했다.
보험 업무는 늘 지루하다. 핀치는 벌써부터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옷차림은「제법 성공은 했으나 꽉 막힌 성격의 보수적인 사장님」으로. 구닥다리와 사촌 관계인 보라색의 넥타이를 매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었다. 구두는 이태리제 모레스티 수제 신사화를 골랐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싱글벙글 미소 짓는 법을 연습했다.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다는게 문제긴 해도 경력 짧은 비서 모레간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렌 사장님. 업무에 방해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손님이 오셨습니다.』
『제 일정에 미팅 약속이 있었던가요, 미스 모레간?』
『아닙니다. 스케쥴이 누락된 건 아니고요... 그건 아닌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자산관리인 존 루니 씨라고 하던데요.』
명함까지 받았으니 잡상인은 분명 아니라고요, 사장님 - 리스의 매력에 넘어간 모레간은 분명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사전에 약속을 잡지 않았음에도 사무실 문밖에 일찌감치 리스를 세워두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손짓만 하시라고요 - 모레간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상의 옷자락을 아래로 반복하여 잡아당겼다. 마음에 든 이성 앞에서 긴장한 탓일게다. 핀치의 두통은 더욱 깊어졌다.

『저어, 혹시 사장님은 자리에 안 계시다고 해야 하는 거였나요.』
경험이 적어 실수가 잦은 그의 어린 비서는 비로소 쩔쩔매기 시작했다.
사장의 표정이 아주 좋지 않았음이다.
『사장님?』
모레간의 불안해하는 목소리에 핀치는 재빨리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아... 괜찮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입니다. 루니 씨를 안으로 안내해주세요.』
핀치는 손톱 찌꺼기만큼 남은 힘을 모조리 쥐어짜서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리 연락하지 못하고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해롤드.』
말로는 그렇게 사과했으나,「나는 어느 때고 약속 없이 당신을 만날 권리가 있지요」라는 얼굴을 한 리스가 당당히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아프다.
통증.
격하게 잡아당기는.
어쩌면 지금 핀치가 느끼는 이 감각은 두통이 아닌 건지도 모른다.
단순히 두통이라고 정의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고통이다.

『해롤드?』
『신경 쓰지 마세요. 별 것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입니까.』
『배가 아직도 아파요?』
『병원에는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하는 얼굴이잖아요. 당신의 여비서는 무어라 말 안합디까?』
서류에 서명하던 걸 멈추고 사용하던 펜을 책상 위에 바르게 올려놓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용건은요? 미스터 리스.』

그렇다고 인정할 리는 결코 없으나 리스는 그 순간만큼은 무척 서글퍼하는 표정을 지었다.

Posted by 미야

2012/06/27 17:00 2012/06/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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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드라마 본즈에서 부스가 야구 경기장 좌석 뜯어다가 집으로 가져간다고 생난리치던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 있지, 만약 내가 뉴욕에 가면 핀치랑 리스가 앉았던 벤치 찾아서 뜯어가지고 올 것 같어. 비행기에 그게 들어갈 것 같으냐고는 묻지 말고...
파이널에서 리스가 기계와 통화했던 전화부스는 뉴욕시 공공재산이 아니라 소품일 것 같아요.
- 있으면 그것도 뜯어오고 싶고...

주말부터 장마라는데 바다 건너 핀사장님, 밥은 잘 드시고 계시려나. (현실과 망상 경계선 붕괴)
루트야, 사장님에게 고기 팍팍 먹여라~ 더위 잡숫게 하면 큰일난데이.

월말과 주말이 겹치면 멘탈이 붕괴되기 때문에 미리 일감을 줄여놓아야 하는데 꼼짝도 하기 싫어요.

이번에 주문해서 읽고 있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은 재미가 없으요. 무지 재미 없으요. 취향이 아닌 건가, 술술 읽히기는 해도 재미가 무지 없으요. 도중에 때려치우면 나중에도 잘 읽지 않게 되는 징크스가 있는데 정말 읽기 싫어져버림. 까닭은 모르겠으요.
E북으로 구매해둔 "화형법정" 이나 다시 읽어야지.

핀사장님 보고 싶긔, 무지 보고 싶긔. 리스에 빙의해서 막 방황하고 있긔.
의자에 앉은 핀치 뒤에 선 리스가 사장님 정수리 위에 턱 올려놓고 2층 석탑 쌓으면서 안도의 미소 짓는 거 꼭 보고 싶긔. 9월은 넘 멀어, 앞으로 몇일 남은겨?

Posted by 미야

2012/06/27 10:18 2012/06/2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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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마이너라고?!

저야 특정 커플링을 지지하는 건 딱히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하더군요.
코미케에 가서 리버스를 구입하고 전철에서 목놓아 울었다던가, 새로운 대지를 밟고 감동의 쓰나미에 휩쓸려 갔다던가 식의 감상을 접한 적도 있고... 서로 머리끄댕이 잡고 싸웠다는 무용담에...
어쨌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실수로 리버스 구입하고 울었다던 분입니다. ^^ 전철에서 잘못 샀엉 이러고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엉엉 울었다고. ^^ 아, 그리고 이분은 일본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솔직히 누가 바텀이고 누가 탑이냐 이런 건 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에 위 아래가 어딨누. 뒹굴다보면 헷갈릴텐데. 게다가 제 성격상 끝까지 잘 안 가요. 손 붙잡고 삼만년, 키스하는데 오만년, 이부자리 까는데 오십육억칠천만년, 그리고 결정적으로... 악귀 같은 이 부녀자는 커플을 강제로 깹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는 결론은 말 그대로 행복하게 살았다는게 아니고 마음이 이어졌다는 결론이지요.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에 시공간마저도 초월해버립니다. 제가 인지하는 사랑은 그런 종류랍니다. 겉으로 봐선 상당히 불행해 보일 수도 있고... 아니, 아니, 아니.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더운 여름날 아침부터 떠들어대고 있는 거지. 여하간에 리스나 핀치나 서로 떡을 주무르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이런 결론은 불가능. 누가 바텀이고 탑이냐, 전혀 안 중요하긔. 솔직히 이 두 사람은 동반자살할 것 같아요.

믿거나 말거나, 처음 수퍼내츄럴 팬픽을 쓰기 시작했을 적에 원칙을 하나 정해놓은게 있었어요.
샘이나 딘이나 "사랑하고 있다" 대사는 절대로 상대에게 하지 않는다 - 라는 거였죠.
그런데 썼던 것도 같고... 썼나?
믿거나 말거나, 퍼오인 팬픽 쓰기 시작하면서 원칙을 하나 정해놓은게 있어요.
핀치나 리스나 상대에게 키스하지 않는다 - 라는 거죠.
그런데 쓰게 될 것도 같고.

결론은 이런게 아닐까 싶어요.
영어를 못하는 잉여는 자급자족밖엔 할 수 없다. 지랄도 풍년이다.
외극 팬덤 돌아다니면서 숟가락으로 차려진 밥상 마구 먹어버리고 싶긔. T^T

으앙, 더워요. 아침부터 더위 먹었쪄. 게다가 마법에 걸렸쪄~!!

Posted by 미야

2012/06/27 09:19 2012/06/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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