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는 상관없이 순서 엉켰음... 분량 적음.
『핀치? 지금 우리 말고도 버터워스 뒤를 미행하는 사람이 더 붙었...』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알리려고 했는데 도중에 말문이 막혔다.
씨근덕거리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미스터 리스?」라는 문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리스는 기겁을 했고, 덕분에 튀어나온 상가 모퉁이 간판에 박치기라는 걸 할 뻔했다. 하마터면 보행자 부주의 사고로 발전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귓속에 넣어둔 초소형 통신기를 통해 여전히 하악, 하악 이러고 낯간지러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핀치?! 맙소사. 당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고? 다 알고 있으면서 지금 그 따위의 질문을 해? 그것도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핀치는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시끄러워욧.》
만성적 운동 부족으로 인한 체력 저하는 팔굽혀펴기 20회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핀치는 바들바들 떨면서 구호를 외쳤다. 스물 하... 하, 하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거기다 허리 근육이 아팠다. 더 이상은 무리다.
『운동 중인 겁니까.』
《아뇨. 바닥에 코를 박고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리스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꼼짝 못하고 널부러진 상황에서 항복의 의미를 담아 손바닥으로 바닥을 두 번 쳤다. 다이어트는 개뿔. 체중을 줄이려다 사람이 먼저 죽겠다.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수영을 해보는 건 어때요.』
《원래 헤엄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쪽의 취향이 뭔지 훤히 꿰고 있으면서 일부러 설탕을 뺀 녹차를 가져다 주었던 존을 향하여 시퍼렇게 갈린 얼음 알갱이를 날린 후, 깨끗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이쯤해서 슬슬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위치를 옮겨 컴퓨터 앞에 앉은 핀치는 아까와는 달리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목소리로 대화를 시도했다.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미스터 리스.》
리스 또한 빠른 속도로 평정심을 되찾고 사진이 첨부된 메일을 전송했다.
『느낌이 좋지 않군요. 생김새나 분위기가 러시아 마피아 쪽으로 보이네요.』
《흐음, 시간제 학교 선생을 미행하는 러시아 마피아라... 학부모 입장에서 자식놈 교육에 대해 따지러 온 건 아니라고 생각해도 되겠군요. 일단 뉴욕시 라이센스 운전 면허 사진과 비교해서 미행 중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도록 하죠.》
『그럴 경황이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핀치. 그가 총을 가졌어요.』
즉석 냉동식품 약간과 통조림, 그리고 청량음료 캔이 든 비닐 봉투를 들고 가던 남자 뒤로 커다란 덩치가 바짝 붙기 시작했다. 박박 밀어버린 뒷통수로 날개를 펼친 독수리 문신을 한 덩치는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리스의 판단으로는 감춘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남자는 능숙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기회를 노렸다. 뛰는 건 아니었으나 발걸음이 매우 빨랐다.
조나단 버터워스가 인기척에 반응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리스의 눈으로 그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버터워스는 뒤따라 온 남자의 험상궂은 외모에 놀랐고, 자신의 미간을 노리는 총구에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비닐봉투가 땅에 떨어졌다. 쏘지 말라는 의미로 두 팔을 들었으나 대머리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
『엎드려요!』
리스는 빠르게 접근하여 대머리 사내의 오른팔을 위쪽으로 힘껏 잡아올렸다. 동시에 체중을 한껏 실어 겨드랑이를 가격했다. 상대는 충격으로 총을 떨어뜨렸고,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 혼란스러워 하는 시선이 리스에게로 향하던 찰나, 이번에는 다리를 걸어 앞쪽으로 고꾸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게 문제였다. 상대 역시 싸움꾼이었던지 커다란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튼실한 허벅지 근육을 활용해 재빨리 몸의 자세를 바로잡았다. 반격도 남달라서 커다란 주먹이 리스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배를 맞는 건 차라리 낫다. 그런데 옆구리를 맞으면 숨이 막히게 된다. 리스는 상체를 최대한으로 비틀며 구둣발로 남자의 무릎을 찼다. 덕분에 갈비뼈가 받아낸 충격이 원래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강도야~!! 강도! 사람 살려요!』
버터워스는 달아나지 않았다. 무모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남자는 달아나기는커녕 바닥에 떨어진 통조림을 주워 콘크리트 바닥을 치며 시끄러운 캉캉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강도가 사람 때린다아아~!! 사람 때린다아아~!!』
때 아닌 소란에 근처 건물로 전등이 켜지기 시작하자 대머리 사내가 치잇 혀를 차며 뛸 준비를 했다.
『강도가 달아난다, 강도가 달아나... 앗, 차거!』
타악기처럼 이용된 통조림이 충격에 못 이겨 터지면서 속에 든 내용물이 바닥으로 왈칵 쏟아져 내렸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