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부터는 한동안 쉬었다 시간이 허락되면 다시 재개하겠습니다. ※
맥스는 지금 이 순간이 지은 죄를 자복하고 손바닥을 싹싹 빌어야 할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총독 빌라도의 권한을 대행받은 로마병정은 맨날 고기만 먹고 살았는지 키도 크고, 덩치도 엄청났다. 차렷 자세로 그냥 서있는 것만으로도 박력 만땅이라 턱이 빠지게 올려다보는 사람 입장에선 그냥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다 얇은 입술을 신경질적으로 꽉 깨물고 있으니 이건 뭐 십자가에 못박힐 때가 곧 임박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로마의 이름은 지금으로부터 나중까지 영원할지어다. 맥스는 히피족들이나 선호할법한 초라한 자신의 셔츠를 잡아뜯으며 무척이나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저어... 대단히 안타깝지만 그것은 이미 나에겐 없다고요... 파달렉키씨?』
로마병정은 화가 잔뜩 치밀어 읍, 하고 배를 내밀었다.
『꺅!』
맥스는 튕겨나갔다.
으슥한 소도구함 창고 안에선 때아닌 인구폭발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서너평 남짓의 방은 처음부터 잡동사니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고장난 텔레비전과 각종 크기의 사다리, 행거,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트렁크와 줄이 끊어진 클래식 기타까지 있었다. 그중엔 박스로 포장해서 시장에 되팔아도 될 것 같은 전자렌지도 하나 보였는데 그것은 진작부터 소품 담당 마이클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었다. 임자가 없다고 판명이 나는대로 마이클은 신형인게 확실한 - 다기능인데다 어딘지 모르게 럭셔리 해보이는 - 전자렌지를 자신의 차량 트렁크로 밀어넣을 작정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마이클의 시선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엉뚱한 전자렌지 쪽으로 자꾸만 쳐졌다. 캐시는 바로 그 점이 불만이었다. 가난하다고 맨날 티내고 사냐. 진짜지 물건 줍는 것도 정도껏 해라.
『집중~!!』
애나가 숟가락으로 철제 캐비넷을 탕탕 때렸다. 그 소리에 전자렌지에서 시선을 떼어낸 마이클은 자신의 낡아빠진 주방에서 팝콘을 조리해먹는 행복한 망상에서 가까스로 깨어났다.
『제군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모여준 것에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몇 명의 익명이 그 말에 반사적으로 박수를 쳤다.
오오, 그러면 곤란하지. 애나는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쥐고「조용!」이라 소리쳤다.
『침착하라.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은 어디까지나 극비 사실이다. 우리의 은밀한 모임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사방에 적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그러니 이성을 잃고 날뛴다 싶으면 진행자의 권한으로 강제 퇴장을 명령하겠다.』
강제 퇴장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즉각 항의의 투덜거림이 쏟아졌다.
『우우우~!! 독재 타도~!』
『시끄럿. 1빠로 쫓겨남을 당하고 싶음 계속 나불거려 보시지.』
애나는 예쁘장한 외모와는 비교되게 의외로 그 혀가 포악스러웠다.
『제군! 우리에겐 그리 많은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주변의 감시하는 눈을 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음이다. 본인이 직접 침투시킨 요원의 보고에 의하자면 모종의 협박에 굴한 나머지 이탈자가 한 명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맥스... 그 어리버리한 자식.』
『이탈자가 누구인지 실명을 거론하며 확인해줘서 고맙군, 쿠퍼.』
『앗,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요? 회장.』
애나는 근엄하게 모두를 둘러보았다.
『안 될 건 없지. 그러나 제군들, 맥스는 희생자다. 사악하고 악질적인 파워에 굴한 것은 그의 의지가 나약해서만은 아니다. 우리의 적은 무시무시하다. 악마다! 괴수이다! 사스콰치다! 그러니 도중에 회원 탈퇴를 감행한 맥스를 맹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맥스의 E메일 계정으로 무시무시한 바이러스 폭탄을 던진 주제에 그렇게 주장했다.
좌중으로 근엄한 침묵이 휩쓸었다. 애나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애클스파 만세.』
『만세.』
『오~케이! 기분을 바꿔라.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은밀히 한 자리에 모인 까닭은...』
『오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애나는 모두의 눈에 잘 보이게끔 헐렁한 노란색 원피스를 집어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창고의 온도가 불쑥 올라갔다. 겨울이 아닌, 한 여름날 같았다.
『모두 준비는 되었는가?』
『오예!』
『좋다! 그럼 모두가 돌아가며 한 번씩 만져보는 영광된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그럼 제비를 뽑은 순서대로 나와서...』
바로 그때, 창고문이 벌컥 열리면서 흥분한 괴수가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나도!』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느라 바쁜 이들 앞에서 파달렉키는 열심히 손을 흔들어댔다.
『내가 첫 번째야! 내가 첫 번째!』
그날 이후 파달렉키파는 사실상 붕괴하여 애클스파로 통폐합되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