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샘 윈체스터는 필사적으로 궁리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공들여 면도를 하고, 양치질을 한 뒤에 얼굴에 로션을 발랐다. 머리를 단정히 빗은 뒤에는 새신랑처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망할. 손톱을 물어뜯는 것 이외엔 할 일이 전혀 없었다.
신문을 사러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탓에 샘은 TV 뉴스에 몰입했다.
20인치 이상의 LCD 모니터의 판매량이 10인치 대 판매량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다. 미국인들은 자가용만 큰 걸 선호하는게 아니다. 여자들 젖통이 크면 클수록 좋은 것처럼 모니터도 큰게 좋다고 난리다. 남들과 차별되는 결혼식 장소를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파라다이스 여행 천국에서 추천하는 이곳은 어떠한지? 필란드의 카슬라우타넨에선 신혼부부는 에스키모인이 끄는 썰매를 타고 예식장으로 향한다. 추워서 코가 새빨개지는 부작용만 빼면 누가 뭐래도 특별한 걸 원하는 당신을 위한 준비된 패키지다. 오늘의 토막 뉴스. 변호사 필립 셰이퍼는 델타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비행기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2시간 내내 뚱뚱한 남자 옆에서 통째로 짓이겨져「당혹감과 심한 불편, 심리적 고통 및 심한 정서장애」를 겪었다는 것이 셰이퍼의 주장이었다. 자! 그래서 어쨌다고?
샘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 것 이상으로 소파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방화로 보이는 불이 나 한 교회가 전소되고, 이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 송곳니가 이상 발달한 시체들, 다수의 절단된 목과 몸통들, 악마교도들이 한바탕 날뛰기라도 한 것처럼 피범벅이 된 천장 어쩌고 대서특필까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샘의 판단으론 교회에 불이 났다는 소식은 방송을 탔어야 옳았다.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며 뉴스 채널을 바꿨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아나운서가 이쪽을 응시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싱으로 인한 신용카드 및 은행계좌 정보유출 피해가 확산되고 있어 금융 서비스 이용자들의 주의가 요망됩니다 - 그는 절망했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불운한 소식들이 넘쳐 신에게 바쳐진 건물 한 채가 지구상에서 송두리째 사라진 것 정도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가 보다. 목을 길게 빼고 아무리 기다려봐도 불에 탄 교회 소식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이틀 전에 그들을 찾아왔던 짤막한 키의 로마 카톨릭 사제들과 연관이 있는 걸까? 알게 뭐람. 리는 잔뜩 흥분해서 얼굴이 벌갰고, 사제들은 장례식을 집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우 어두웠다. 그녀는 궁금해하는 샘을 보고도 그들이 누구이며, 무슨 일로 왔는지 일절 설명하지 않았다. 두 명의 사제들 역시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셋은 복도로 나가 은밀히 눈짓하며 독일어로 추측되는 외국어로 약 15분간 대화를 나눴는데 샘의 짧은 지식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디아데케 (죽음을 담보로 한 유언. 아무도 취소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의미), 그리고 블라스페메오 (신을 모독하는 행위), 프로스코마 (사람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을 의미) 라는 단어 세 가지가 전부였다.
아, 한 가지 더 있었다. 이런 좇 같은 것들. 사제들을 향해 버럭 화내며 영어로 쏘아붙인 말이 바로 그거였다.
텔레비전 하단부로 오늘의 날씨와 세계의 기상 정보가 유유히 흘러갔다. 싱가포르에선 부슬비가 온댄다. 멕시코는 가뭄이다. 독일에선 마당에 널은 빨래가 잘 마르겠다. 치명적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일가족 네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간은 잘만 흘러간다. 변한 것은 없다. 어제와 마찬가지인 오늘이다.
손바닥으로 턱을 문지르던 샘은 텔레비전을 그대로 켜놓은 채 옷가지 정리에 들어갔다.
벗어던진 빨랫감은 비닐 백에 넣어 따로 챙겼다. 그 입구를 단단히 봉했음에도 홀애비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이 끔찍했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차근차근 헤아리며 그들이 바지와 셔츠를 세탁한게 언제인지를 대략 가늠해봤다. 아이고, 하느님. 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독성 버섯이 안 자라난게 천만다행이다. 샘은 얼굴을 붉히며 빨랫감을 비닐로 꼼꼼하게 한 번 더 쌌다.
「아유~!! 진짜지 계집애처럼 굴고 있네.」
야유하는 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진흙탕을 뒹굴고 난 뒤에도 깨끗한 옷을 입고 있길 원하는 샘과는 달리 딘은「단벌 신사면 어떠랴」주의였다. 샘이 다섯 장의 셔츠를 벗어던질 적에 딘은 눈만 멀뚱멀뚱 뜨곤 했다.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곁에서 타박을 하면「어디서 뭐가 이렇게 시끄럽게 짖지?」라는 표정으로 신문을 읽었다. 싱크대 위로는 양말이, 침대 밑으론 축축해진 수건이 굴러다녀도 느긋하기 짝이 없던 형이다. 섬유 유연제가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고 색 빨래와 흰 빨래를 구분하는 법도 없다. 땀에 절은 내의는 아무렇게나 돌돌 말아 가방에 넣으면 그걸로 끝, 가끔은 처치곤란한 그것들을 어디다 팽개쳤는지 기억해내질 못해 자동차 트렁크를 발칵 뒤집기도 했다. 그런 남자에게서 세탁물을 비닐로 싸는 섬세함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샘은 넋이 나간 멍한 표정으로 벽을 쳐다봤다.
『빨래... 맙소사. 해야 하는데.』
흐느낌인지 웃음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가 벌려진 이 틈새로 새어나왔다.
웃기지 않은가. 딘은 지금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는 밀린 빨래 걱정이나 하고 있다. 손으로 녹색 T셔츠를 쥐었다 폈다 하며 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래봤자 그의 눈물샘은 둑의 일부분이 무너진 저수지 같아 다량의 물을 계속해서 낮은 지대로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덕분에 뉴올리언즈가 침수되는 건 시간 문제일 듯했다.
볼륨을 낮춘 채 계속 켜놓은 텔레비전 화면에선 관절통과 경직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콘드로이틴 제품에 대한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뼈들이 웃는 낯으로 춤을 추는 이상한 그림과 함께.
『샘.』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자 어느새 리가 물컵을 들고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당황한 샘은 얼른 손으로 코와 눈가를 닦았다.
『나, 나는... 그러니까 이건 알레르기로...』
운게 아니라고 막 변명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리는 사내 자식이 흘리는 맑은 콧물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네가 지금 곤죽으로 만들고 있는 셔츠는 네 것이 아니라고 딘이 근심하며 말하더구나.』
『예?』
『형을 존중한다면 그의 옷도 같이 존중해 주어라 - 딘 윈체스터가 꼭 전해달라고 했다.』
자기 할 말을 끝마친 리는 이것만이 구원이라는 투로 쥐고 있던 물컵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부탁인데... 샘.』
『알아요! 안다고요! 빌어먹을. 딘은 지금 극도로 예민한 상태니까 그를 자극할만한 소리나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던 거, 안 잊어먹었어요. 난 바보가 아니라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심지어 화장실에 가면서도 방구가 나오는 걸 억지로 참고 있단 말예요!』
애 같기도 한 그 신경질적인 반응에 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살짝 누그러뜨렸다.
『이 천축 멍청아. 그걸 말하려던게 아니야. 나는 네가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넌 스스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꼬박 하루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고.』
그녀의 지적에 샘은 입을 떠억 벌렸다.
몰랐다.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그런데 만 하룻동안 아무 것도 먹질 않았단 말인가.
샘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꼽을 쳐다봤다. 위장에게 그게 진짜냐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네가 쓰러지면 누가 곤란해지는 건지를 기억해둬.』
리는 냉장고가 있는 방향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입 모양만으로「food」라고 말했다.
그게 샘의 머릿속에선「fool」로 해석되었다.
『알았지? 억지로라도 뭘 먹어둬.』
샘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딘의 옷으로 코를 박고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싸구려 세제 냄새가 희미했다.
그것은 딘의 냄새가 아니었다.
샘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이제 TV는 광고를 끝내고 한참 유행인「다빈치 코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방영을 예고했다. 영화에서도 나왔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투명 피라미드가 화면에 떠올랐다. 소문과는 달리 이오밍 페이가 설계한 저 유명 건축물의 유리 개수는 666개가 아니고 999개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상 말고 그 지하로 333개의 유리가 더 있어서... 피곤에 지쳐 텔레비전 전원을 꺼버렸다.
냉장실엔 꽁꽁 얼어버린 빵과 인스턴트 스파게티, 약간의 통조림과 맥주가 들어가 있었다.
신음을 토해내며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스파게티를 좋아하지 않았다. 벌건 국물 속의 면발은 언제 봐도 기분이 언짢았다. 톡 쏘는 마늘의 자극적인 냄새 또한 취향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품의 가격이 싸면 쌀수록 냄새는 더욱 역했다. 그게 너무도 끔찍스러워 샘은 딘이 전자렌지로 조리해 내놓은 걸 입술을 삐죽거리며 밖으로 밀어내곤 했다.
「나는 햄버거가 먹고 싶어, 딘! 스파게티는 싫어!」
「참아줘, 동생. 음식 투정은 고추 없는 계집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그릇을 도로 동생 앞으로 진열하면서 딘은 도전적으로 씨익 웃었다.
「흐응~ 내 동생 거기엔 고추 없~다. 정말일까? 그러고보니 앉아서 오줌을 누는 걸 본 것도 같고. 어떠냐, 새미. 이 형이 지금 착각한 거냐, 아님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는 거니.」
계집애, 계집애 놀려대는게 싫어서 샘은 터진 뱃가죽 밖으로 튀어나온 내장처럼 구불거리는 면발을 억지로 집어 올렸다.
「실례야! 나도 딘처럼 서서 오줌을 눠!」
「오~! 그거 대단한 진실이군.」
「눈 굴리지 마!」
「알았어. 눈 안 굴릴게. 그러니까 빨리 밥이나 먹어, 리틀 보이. 그래야 네 키가 빨리 자랄 거 아니냐. 이 형이랑 같이 레슬링을 하려면 그놈의 땅콩 사이즈에서 바이바이 해야 한다고.」
「레슬링~!」
「그래, 꼬맹아. 나랑 레슬링 하고 싶지?」
「응!」
「나도 너랑 같이 레슬링 하고 싶어.」
사실 대단히 어려웠던 가정 형편을 생각한다면 배를 곪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 기도를 올려야 할 판국이었다. 겉으로 내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딘은 한정된 식비로 생계를 꾸리는 일로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 존은 일정한 직업이 없었고, 어렵게 친 신용카드 사기는 그들에게 많은 돈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다니려면 공책도 사야 했고, 연필도 필요했다. 운동화는 금방 닳았고, 몇몇의 교제들은 비쌌다. 영리한 샘은 책에 욕심이 많았고, 딘은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이라도 줍고 싶은 심정이었다.
「딘은 동전이 갖고 싶어?」
만약 딘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샘은 하수구에라도 내려가 한바탕 뒤질 작정이었다.
「형이 그걸 갖고 싶다면 내가 동전을 찾아줄게.」
「아니.」
동생이 그러고도 남을 거라 생각한 딘은 기겁했다. 샘이 진짜로 하수구를 뒤진다면 존은 아마 펄펄 뛸 것이다. 그리고 딘은 이성을 잃은 아버지 옆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게거품을 물 것이다.
손가락 하나를 세운 딘은 샘에게 그걸 똑바로 쳐다보라고 명령했다.
「오해야, 새미! 잘 들어. 내가 원하는 건 동전이 아니야.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네가 내 옆에 있어주는 거야. 그러니까 샘? 내 궁둥이 뒤로 찰싹 붙어 있으라고.
끔찍한 비명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것들이 안 보이게 해줘! 제발! 멈추게 해!》
《딘! 조금만 참아. 내가 금방 진정제를 놓아줄테니까... 조금만 참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그것들은 진짜가 아니야, 딘! 휩쓸려가지 마. 딘? 내가 하는 말 들려?》
《들려. 너무 잘 들려 탈이야. 내장에서 구륵거리는 소리까지 죄다 들린다고! 제기랄. 금붕어 심장 뛰는 소리까지 죄다 들려! 우웩.》
《여기다 토해. 숨 쉴 수 있겠어? 딘! 정신 놓으면 안돼. 나가서 동생 불러올까? 응?》
《안돼. 웩... 새미는 안돼. 우...》
《딘!》
《아직 안돼. 새미... 못 오게 해. 우우... 우우... 아파. 우우...!!》
샘은 식욕을 완전히 잃고 음식을 씹는 동작을 멈췄다.
저 아래로부터 구역질이 치밀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