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리통이라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몸살도 같이 겹친 거였어요. 상태 메롱이라는 걸 감안하셔야 할 거예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환자 간호하다 멀쩡하던 사람도 골병 든다고 했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체력 하나는 끝내줘요 큰소리 치던 리도 아흐레 째의 아침이 밝아오자 고개를 떨궜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개를 뒤로 젖힌 거였지만, 여하간「햄버거 힐 - 그대들은 반드시 전사할 것이다」로 통칭되는 기말고사를 끝마치고 부어라 마셔라 종강 파티까지 치러낸 2년차 대학생처럼 기괴한 자세로 널부러져선 꼼짝을 안했다. 소파 등받이로 기댄 목은 이상한 각도로 꺾어졌고, 허리는 구부러졌다. 다리 하나는 학처럼 접어 가슴 안쪽으로 수납했는데 샘이 보기에 그런 자세가 가능하려면 요가 내지는 발레를 배웠어야 했다. 웰빙이라는 걸 생소하게 여길 그녀가 과연 요가에 흥미를 가졌을 것인가. 그랬기를 희망할 뿐이다. 만약에「요가? 그게 뭐여.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의 한 종류야?」라고 반문하는 날엔... 쓴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랬다간 리는 우물에서 걸어나온 사다코의 이상한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사방을 휘저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샘은 그녀의 자세를 편안하게 고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할 자신도 없었다. 거죽은 술통에 빠져죽은 대학생이었을지언정 그녀는 누가 뭐래도 뱀퍼였고,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로 On 스위치가 들어가는 건 잠시 잠깐이다. 이를 다시 해석하자면 섣불리「간격」안에 들어갔다간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을 거라는 말씀.
곤드레만드레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던 존도 담요를 덮어주려 한 장남의 머리를 재떨이로 깨부수려 한 적이 있다. 발자국 소리에 반응하여 공격, 그 다음에는「누가 내 귀한 아들 머리에 구멍 냈어~!!」라고 울부짖고... 나중에 존은 무안해진 나머지「다음에는 나에게 담요를 가져다주기 전에 호루라기를 불거라」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것도 그리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왜냐면 호루라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재떨이를 들입다 던지면 사람 머리에서 피 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탁상 위로 놓여진 재떨이를 흘깃 쳐다봤다. 생소한 이름의 맥주 회사 로고가 인쇄되어 있고, 싸구려 유리 재질의 그것은 꽤나 무거워 보였다.
샘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드르륵 코를 골고 있는 그녀로부터 일정 거리를 떨어져 안정권 밖에 계속 머무는 편을 선택했다. 선잠에서 깨어난 다음에 뒷목이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해도 어쩔 수 없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하지 않은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피곤에 지친 그녀가 졸음을 핑계로 눈을 붙인지 정확히 40분이 지났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야! 어느 놈이야!』
샘의 판단은 옳았다. 뼛속까지 헌터인 그녀는 반사적으로 재떨이를 움켜쥐고 그것으로 가상의 적을 응징하려 했다. 차마 던지지 않았던 건 전화벨이 두 번 울렸다 곧 끊겼기 때문이었고, 더하여 뭉친 근육으로는 접었다 펴는 동작이 썩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는 악 소리를 지르며 재떨이를 놓쳤고, 껑충 뛰었고, 그 모습에 겁 먹었다는 투로 전화벨이 뚝 그쳤다.
『쳇... 모처럼 달게 자는 중이었는데.』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잠시 뒤에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슈.』
익숙한 모습이다. 존도 같은 방식으로 그들 형제에게 안부 전화를 걸곤 했다.
전원이 꺼진 시커먼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샘은 홀로 옛 기억을 더듬었다.
때릉때릉 소리가 계속 울리면 전화를 받지 말아라. 아버지는 두 번 신호가 가자마자 전화를 끊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신호가 울리면 그때는 딘이 전화를 받도록 해라.
팩스가 희귀품이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휴대폰 또한 잘 나가는 사장님이나 사용하는 사치품이던 때가 있었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니다. 존이 최초로 핸드폰을 구입한 건 1996년도 4월의 일이었고, 1995년 초반만 해도 그들은 공중 전화와 모텔 전화기에 기름 때와 지문을 마구 묻혀대곤 했다.
명심해라. 전화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네 형이다.
왜 형만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거냐 샘이 바락 대들자 존은 이렇게 대꾸했다.
딘은「네, 아버지!」단 한 마디만 하는데 너는「아빠, 거기가 어디예요? 다치신 곳은 없어요? 언제 오세요. 보고 싶어요. 아, 딘이 또 학교 가는 걸 빼먹었어요! 형에게 야단 좀 쳐주세요. 아, 그런데 아빠? 질문이 있어. 닉슨 독트린이 뭐야?」라고 속사포처럼 퍼부어대잖니. 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하다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지 금방 잊어버려.
막내는 존의 설명에 화가 났다. 그치만 반박은 할 수 없었다. 샘이 누구보다 질문이 많다는 건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존의 지적은 옳았다. 샘이 전화를 받으면 수중의 동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된다.
그래도요, 만약 형이 옆에 없음 어떻게 해요. 나 혼자 있을 적에 아빠 전화가 오면요. 네?
괜한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건조해진 피부가 당겨서 아팠다. 왜냐하면... 샘은 손바닥으로 뺨이 얼얼해질 떼까지 문질렀다.
형은 항상 샘의 옆에 있었다. 있어 주었다. 덩그마니 혼자 남겨진 샘이 때릉거리며 울어대는 전화기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형이 옆에 있었고,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도 형이었다. 딘은 형편 없는 솜씨로 샘에게 옷을 입혔다. 아침 밥을 챙겨주었고, 예쁜 여자 아이에게 윙크하는 법을 설명했다. 머리를 빗겨주고, 손톱이 지나치게 길게 자라지는 않았는지를 검사했다. 그는 샘을 혼자 있게 하지 않았다. 결코 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같이 있었다. 같이 있어 주었다.
그것이 형이 할 일이잖아. 널 돌보는 것, 그게 바로 내 일이라고.
샘은 거칠게 신음했다. 그에게로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이제 그만 손 털고 일어나 형의 할 일을 하란 말이야!」소리를 질러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피자를 사가지고 오마.』
뜬금 없이 피자라.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샘은 눈꺼풀만 깜빡거렸다. 지금까지 그들은 전화로 주문 가능한 음식들만 먹어댔다. 그리고 피자 역시 전화로 배달이 가능한 종류였다. 전국에 있는 모든 피자 배달원들이 동시 파업을 일으킨게 아니라면 일부러 그녀가 가게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피자.......... 요?』
손가락에 침을 발라 급하게 눈곱만 떼어낸 리는 새벽을 맞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거리 매춘부처럼 보였다. 샘은 인상을 찡그리며 카펫트 무늬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특별히 추가하길 원하는 토핑이 있니? 샘.』
『바곳의 열매와 흰독말풀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 소리에 리의 얼굴이 걸작이 되었다.
『우와, 그거 무지 스페셜한 토핑이구나. 알았어. 페퍼로니 피자... 괜찮지?』
뜨끈뜨끈한 그 냄새만 상상해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래도 샘은 예, 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 말을 했던가. 어제 저녁 해리스 에버뉴에서 교회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용의자가 경찰의 체포에 불응하다 사살되었다고 하더구나.』
카펫 무늬에서 얼른 시선을 떼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예?』
『이름은 찰리 프레슬리이고, 평생 술에 쩔어 건달처럼 살다 간 길바닥 인생이야. 가엾은 사람... 그래도 막판에 자기 몸뚱이 하나 기증하고 여러 사람 살렸으니 분명히 천국 갔겠지.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렴.』
『뭐요?!』
『빨리 좀 알아 들어. 머리 회전이 왜 이리 답답해. 한 노숙자의 사망 원인이 평범한 심장마비에서 22구경 권총 구멍 두 개로 살짝 바뀌었다는 거야. 어차피 고통은 못 느끼니까 상관 없잖아.』
그제서야 샘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얘기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뱀파이어에 의한 살인 사건은 없다는 거다. 시체도 없고, 송곳니도 없고, 피 빨린 희생자도 없어. 알겠어? 그냥 반사회적인 술주정뱅이만 있는 거지.』
리는 한참동안 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참. 딘은 안에서 쉬고 있으니까...』
열쇠를 챙기면서 리가 잔소리를 했다.
『얼굴이라도 보겠다며 수선을 피워 그를 힘들게 만들진 마라.』
순간 혈압이 치솟았다. 샘은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싸구려 카펫트의 풀린 올의 모양새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저 안에 진드기 많다. 섬유는 세로와 가로로, 그리고 다시 꽈배기 모양으로 얽혀서 하나의 실을 이룬다. 먼지가 쌓이고, 각질이 떨어지고, 우주에서 날아온 미세한 금속 가루가 내려안고... 그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세계에선 단 1cm의 거리가 지구에서부터 달 나라 만큼이나 멀다. 참고로 달은 지구로부터 약 38만km 밖에 있다.
주먹으로 무릎을 세게 때렸다. 그것만이 샘이 당장 해보일 수 있는 항의의 방법이었다.
『제기랄! 왜요!』
어째서냐. 왜 형을 보면 안 된다고 막는 거냐. 왜 딘은 날 보지 않겠다는 거지. 송곳니가 자라났나. 아님 눈동자가 노랗게 변했나. 사방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헐떡이는 숨을 토해냈다. 그간 힘들게 억눌러왔던 두려움이 갑자기 폭발하듯 용솟음쳤다. 샘은 어깨를 감싸쥐고 우, 우 하고 꼬리가 왕창 떨어져나간 개처럼 소리를 냈다. 이제는 한계다. 그는 낮이고 밤이고 에디 머피나 우피 골드버그, 레슬리 닐슨이 구르고, 눕고, 날아다니는 코미디 영화를 보며 머리를 희게 탈색했다.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치만 샘은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었다.
맙소사. 만약에 그가 뱀파이어로 변했다면... 하느님.
『워워~! 진정하라고, 도련님. 네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내가 저 안쪽 방으로 선짓국을 퍼 나르는 거 봤어? 동물의 피나, 사람의 피... 게중에 아무거나 봤냐고.』
물론 본 기억은 없다.
『정말 아닌 거예요?』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라도 할까. 날 믿어. 그의 눈동자는 노랗지 않아.』
그래도 불안감은 잠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형은...』
리는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감각의 대혼란 때문이야. 음식을 먹으려는데 테이블로 바퀴벌레가 기어간 궤적이 보이고, 커피를 리필해주는 웨이츄리스가 4시간 전에 주방에서 점장이랑 신나게 붙어 먹었다는 것까지 훤히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상상해봐. 기분이 어떨 것 같나. 무지하게 끝내줄 것 같지? 어느날 갑자기 1미터 밖에 서있는 사람의 털구멍이 죄다 보이는 거야. 타란튤러스 거미의 200배 확대판의 이미지가 네 얼굴이라고 하자. 그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 딘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니?』
『디, 딘은... 그럼...』
샘은 크게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
『제 얼굴의 터, 터, 털구멍이 끔찍스러워 절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마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리는 점퍼 속으로 팔을 꿰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