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야간 근로를 하기 위해 경찰서로 돌아왔을 적에 그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광경은 접수계의 클라라 래이번과 수작질 중인 딕 그레이슨의 뒷태였다.

두 명의 미취학 자녀를 두고 있는 래이번은 아이돌 가수를 영접한 19세 소녀처럼 뺨을 붉힌 채 미소를 짓고 있었고, 가끔씩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녀가 탄산이 들어간 음료수를 마신 뒤 만장하신 가운데 꺼억 소리 내어 트림을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 리처드 D 앤더슨은 영문도 모른 채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래이번의 립스틱 색이 붉어졌다. 곱게 눈썹도 정리했다. 깨닫고 나자 다시 빡치는 기분이 들었다.
「배반자!」
「체리섬」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신입 여경 앞에서 하루 두 번만 하던 양치질을 다섯 번씩 했다는 과거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래이번을 노려봤다.

그 앞에서 딕 그레이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는데 들려오는 단어들로 유추해보자면 화젯거리는 그다지 영양가 없었다. 어느 가게에서 파는 컵케이크가 맛있다느니, 어느 가판대에서 파는 핫도그가 최고라느니, 소스는 케첩보다는 마스타드가 최고라느니, 순찰 돌 적에 지나치면 큰일이 나는 테이크아웃 커피 점포 이름 같은 게 튀어나왔다.

잘 들 논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깽판치고 싶다는 욕구와, 모르는 척하고 싶다는 욕구가 충돌하는 가운데 앤더슨은 어중간하게 손을 흔들었다.
『여어~ 좋은 저녁.』
래이번은 동료가 보낸 인사에 대한 답례로 보일락 말락 턱짓을 했고, 그레이슨은 손에 쥐고 있던 뭔가를 샴페인 잔처럼 들어보였다. 처음에는 볼펜인가 싶었는데 실눈을 가늘게 뜬 채로 보니 포장을 뜯지 않은 츄파춥스 캔디였다.
『오셨어요? 좋은 저녁이에요, 선배님들.』

트로피처럼 들어 보인 캔디를 본 두 사람은 미묘하게 뒤틀렸다.
마이클은 신 포도를 껍질 째 씹은 얼굴이었고, 앤더슨은 콧잔등에 주름을 잔뜩 만들어내며 대놓고 짜증을 냈다.
저녁에 그런 사탕을 먹으면 이가 썩어요 - 물론 자녀를 야단치는 엄마의 마음으로 눈총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허나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엔 묘한 껄끄러움이 덧발라져 있었다. 딕 그레이슨의 눈은 매의 그것처럼 두 사람이 흘려보내는 복잡한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송두리째 핥았다.

「이거, 예상했던 것과는 살짝 다른데.」
특이하다면 마이클보다 그다지 상관없을 것처럼 여겼던 앤더슨 쪽의 반응이 한층 더 격렬했다는 거다.
마이클이 시큰둥하게 감정 반응 스위치를 OFF로 내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앤더슨은 보다 더 불편해했고, 보다 더 발끈한 상태였다. 누이동생에 대한 몹쓸 험담을 듣고 화가 난 나머지 당장에라도 주먹으로 칠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불법 텐트를 철거당한 노숙자들로부터 돼지, 대머리, 토끼 조루, 불능 등등으로 비난을 당할 적의 반응과도 흡사했다.
「앤더슨 쪽도 제대로 엮여있었던 모양이군.」
어쩌면 처음부터 둘이 한패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딕은 두 사람을 향해 넉살 좋은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이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오신 건가요? 질투나네요. 듣자하니 글리블링 다이너 단골이라면서요. 그 가게 음식은 맛이 어떻던가요. 괜찮다면 다음에 저도 끼워주세요.』
마이클 윈저가 퉁명스럽게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맛없어. 그리고 인테리어도 구려. 절대로 단골 아니야.』
접시 바닥까지 싹싹 핥아먹은 주제에 할 말이 아닌 듯하다만, 마이클은 3주 전 자신의 파트너가 된 이 신입 경관과 친목을 다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궁금한 걸 물어보면 적당히 대답해준다, 필요하다 싶으면 업무 요령을 가르쳐 준다, 딱 거기까지였다.
게다가.
어쩐지 웃는 낯에 속내가 따로 있는 듯한 놈이라.
마이클은 독 발린 화살처럼 겨누어진 츄파춥스 캔디를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별로에요? 그럼 다른 가게로 가죠. 래이번이 방금 전에 꽤 괜찮은 가게를 소개시켜줬는데...』
『잘 됐군. 그럼 래이번과 같이 가면 되겠네.』
『와아. 단칼에 거절은 너무하다고요, 사람 민망하게. 제가 데이트를 신청한 건 선배님이라고요.』
『뭐?! 데이트?! 돌았냐. 너랑 내가~아?!』
『엇흠!』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든 딕 앤더슨이 옆에서 헛기침을 했다.
그걸 신호라고 여겼던지 마이클이 잰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앤더슨 또한 뒷목을 벅벅 긁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반대방향으로 헤어져 각자의 용무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던 딕 그레이슨은 흠, 하고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만 결정했다며 앤더슨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뭐야. 왜 따라와.』
사탄아 물럿거라, 십자가 목걸이가 여기 있다. 용변을 보려던 리처드 D 앤더슨은 대놓고 질색했다.
『여쭤볼 게 좀 있어서요. 그러니까... 마이클 선배랑은 친한 사이죠?』
『인석아. 그런 걸 화장실에까지 따라와서 물어야겠냐?!』
결국 소변을 보는 건 미뤄야했다.
바지 지퍼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비록 순서가 거꾸로였지만 소변기에 가 서는 대신 손부터 씻기 시작했다.

수도꼭지를 오른쪽 방향으로 돌리면서 앤더슨이 툴툴거렸다.
『절친은 아니야. 그냥 어쩌다보니... 내가 꼬맹이였던 시절에 잠깐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 단지 그뿐이고, 마이클과 다시 만난 것도 이곳 경찰서에서 근무하고부터야. 겨우 그 정도 관계라고.』

오, 별 거 아니야. 종업원을 부르는 단추인 줄 알고 눌렀는데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발사되더군. 아무 일 아냐. 그러니 안심하고 자리로 돌아가서 하던 일이나 계속 하자고.

이 사람들은 반어법을 너무 자주 사용해서 진짜를 가짜처럼 말하는 경향이 컸다.
『어린 시절에 같은 학교 다녔어요? 진짜 친했나 봐요. 혹시 같은 반이었어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비누 없이 흐르는 물에 손을 문질러 씻으면서 앤더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도 반어법인지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라면, 단순히 이력 내용만 보았을 때 두 사람의 접점이 전혀 없었다는 거였다.
리처드 D 앤더슨은 어렸을 적에 중서부 지역인 홈필드에서 살았다. 마이클은 남부에 가까운 클로버랜드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매넘이나 오르피나처럼 주로 동부와 남부지역이었다. 홈필드에서 살았다는 기록은 없었다. 물론 사정에 의해 몇 개월만 머물렀기 때문에 기록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배트 케이브의 슈퍼 컴퓨터가 이런 정보를 체크하지 못 했다는 걸 인정하기도 어려웠다.
『몇 살 때였는데요?』
『여덟 살... 아니, 아홉 살.』
거울을 통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대답은 꼬박꼬박 하긴 했으나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눈빛이었다.
『한창 장난이 심할 나이네요. 혹시 두 사람이 이웃집 현관에 개똥 놓고 도망가고 그랬어요?』
『나는 그런 유치한 장난은 하지 않았다.』
그는「우리」라는 단어가 아닌「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짝뚱 씨는 그랬나보지? 남의 집에 개똥 투척하고?』
『저는 소문난 장난꾸러기였죠. 마당에 널어놓은 남의 세탁물을 훔쳐서 달아나곤 했어요.』
그런 일은 없었지만 즉석에서 이야기 하나를 지어냈다. 다행히 먹혀 들어가는 눈치다. 경계심이 약간 풀렸다.

『있잖아요... 딕이 보기에 마이클은 어떤 사람 같나요?』
『게으른 사람.』
손수건 없이 물기를 툭툭 털면서 앤더슨이 꿍얼거렸다.
『되먹지 못한 사람이거나 심성이 나쁜 건 아니야. 그냥 천성이 게을러.』
『게을러요?』
『무지 게을러. 오죽하면 귀찮다는 이유로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지... 그러니까 신참?』
이 정도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한 답이 되었느냐며 화장실 출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형님, 오줌 좀 싸자.』
앤더슨이 쓴 웃음을 지으며 그레이슨을 화장실 밖으로 내쫓았다.

Posted by 미야

2016/06/27 15:03 2016/06/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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