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괴담 중「블러드 메리」라는 것이 있다.
자정 12시에 촛불을 하나 켜고 거울처럼 비치는 물건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블러드 메리 이름을 열세 번을 읊조리면 피투성이의 메리가 나타나 목숨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유령을 불러내는 조건이나 세부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가지각색이지만 큰 줄거리는 대략 비슷하다.
자칫하다가 목숨을 빼앗길 걸 알면서 왜 블러드 메리를 불러내려 하는가 - 운이 좋으면 블러드 메리가 커다란 비밀 한 가지를 알려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미래의 남편 이름... 혹은 시험 점수, 혹은 애인이 바람을 피운 상대의 이름 같은 거 말이다.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같잖은 비밀을 알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냐 -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다. 10대들, 특히 10대 소녀들은 솔직히 이런 도시괴담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그저 장난이었고, 치기에서 비롯된 담력 테스트였다. 학부모들이 블러드 메리 소환 의식을 금지시킨 까닭도 지극히 현실적이었는데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 거울을 깨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맥주에 잔뜩 취한 상태인데다 촛불 하나만 켜진 화장실에선 세수수건도 으스스해 보이는 법, 흔들리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고 거울을 향해 물건을 던져 나중에까지 창피스러워 할 흑역사 하나가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블러드 메리의 아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캔디맨이다.
메리의 정체가 여성이라 그런지 이쪽은 남성 버전이다. 머리가 단순한 남자애들은 열세 번 이름 세는 것도 어려워하기 때문에 불러내는 법도 보다 간단해졌다. 블러드 메리는 열세 번 불러야 하지만 여기선 다섯 번으로 봐준다.
그리고 꽤 터프하다. 캔디맨은 소원이니 비밀이니 이런 거 절대 안 들어준다. 첫 번째 섹스 상대 알려주기 이런 거 없다. 캔디맨은 그저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려 든다. 소환자가 공격을 피하려면 캔디맨의 본명을 알아야 한다.
- 당장 지옥으로 돌아가, ○○○○○!
그러면 캔디맨은 흐릿한 안개가 되어 흩어진다.

「이름... 제기랄, 알고 있는데!」
루모는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휘저어 미스터 츄파춥스의 본명을 생각해내려 애를 썼다.
제법 흔한 이름이었고 그다지 특색도 없었다. 분명... 음, 그러니까. 모자를 쓰고 흰색 장갑을 낀 팝의 황제가 문워크를 선보였다.
「생각났다. 마이클! 그래, 마이클이었어.」
그런데 크레이지 덤프가 영양가 없이 흘렸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놈 이름은 가짜야.》
핏기가 가신 손가락이 점차 하얗게 변해갔다. 더하여 마그네슘 부족이라며 바들바들 떨렸다.
이름을 모르니 거울 밖으로 튀어나온 악령을 돌려보낼 방법이 없었다!

『씨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일단 무고를 주장해보자.
『당신이 뭔데!』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고 본다.
뉴스 채널을 통해 내셔널 밴코프 은행에 무장 강도가 들었다는 속보를 듣자마자 자신의 알리바이부터 점검해봤던 그다. 추적이 어려운 선불 폰은 망치로 때려 부수고 유심 칩은 화장실 변기로 흘려보냈다. 흘려보내는 김에 피우다 남은 마리화나도 정리했다. 지난 밤, 심야 극장에 갔다는 영수증을 지갑에 잘 모셔뒀고, 그간의 행적을 손가락을 꼽아가며 정리했다. 경찰이 심문하러 와도 답변이 완벽할 수 있도록 연습도 했다.

- 최근 크레이지 덤프와 연락을 한 적이 있습니까?
- 전혀요.
- 집안을 잠시 살펴봐도 괜찮겠습니까.
- 얼마든지요.
- 어제나 오늘, 집으로 찾아온 손님은 없었습니까?
- 청소가 귀찮아 손님은 초대하지 않아요.

완벽, 완벽.
그는 무고했다.
목젖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게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루모는 오래된 격언 하나를 곱씹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

『괜히 엄한 곳에 아무렇게나 찔러대고 그러지 마쇼. 가석방 중이라 얌전히 있었던 말이오.』
그런다고 해봤자 상대는 미스터 츄파춥스였다.
뭔가를 쪽쪽 빨면서 - 보나마나 사탕일 게다 - 상대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새끼가 뭘 억울하다고 지랄이야. 크레이지 덤프에게「당신이 감옥에서 썩는 동안 마누라가 바람났어요.」일러바친 게 바로 너잖아.》
『흐억.』
《열 받아 탈옥하게 만들어놓고, 한 술 더 떠서 크레이지 덤프가 은행 강도까지 저질렀는데「난 몰라요~ 아무 죄 없어요~ 난 선량한 시민이에요~」우기면 쓰나.》
『우, 우, 우기는 게 아니라 사실이잖아요. 크레이지 덤프가 탈옥한 게 왜 내 탓이에요?! 게다가 그가 은행을 털었다는 건 나도 뉴스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고요. 나와 상관없다고요.』
《뭐가 상관이 없니. 자기 마누라와 오입질한 놈 이름을 대라며 잔뜩 화를 내고 있는 크레이지 덤프에게 선심 쓰듯 일련번호가 지워진 자동소총 두 자루를 헐값으로 팔았잖아!》
『팔긴 누가 팔아욧! 얼떨결에 빼앗긴 거지! 돈 한 푼 못 받았는데!』
《어쭈? 너 방금 시인했어. 새끼야... 그럴 적엔 증거 있느냐고 오리발을 내밀어야지.》
『헙.』
아무래도 망한 거다. 분명히 망했다.

《아무튼 너, 유죄.》
미스터 츄파춥스의 말투는 여전히 마트에 가서 직원에게 우유의 유통기한 얼마 남았냐 묻는 식이었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선 피가 말랐다.
『그런게 어딨어요?!!!』
《어딨긴, 요깄지. 오늘부터 너, 고담으로 이사 가라. 앞으로 딱 24시간 줄게. 기왕이면 크레이지 덤프에게 연락해서 둘이서 손 붙잡고 같이 가. 그 인간이 긴급 수배 중이라는 건 난 모르는 얘기고... 아. 잠깐만? 최근 들어 고담으로 너무 많이 보낸 것 같아. 아무리 범죄의 도시라지만 나도 양심이 있지. 이번엔 고담 말고 메트로폴리스가 좋겠어.》

아니 될 소리다. 루모는 필사적으로 도리질했다. 메트로폴리스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슈퍼맨이 있다.
슈퍼맨이 누구던가.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 침략자와 혼자서 맞장을 뜨고, 추락하는 보잉747 비행기를 한손으로 번쩍 들고, 마그마를 내뿜는 화산의 분화를 눈빛만으로 멈추게 만들고, 땅속 맨틀의 뒤틀림을 발 구름으로 바로잡아 지진을 멈추게 하는 이다. 그런 존재 앞에서 일개 장물아비는 너무나 그 존재가 미약해서 피크닉 테이블 위를 기어가는 개미보다 더 형편없었다. 슈퍼맨이 마음만 먹는다면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버리리라.
『너무해요!』
거기다 그는 보호관찰 대상이라서 마음대로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미스터 츄파춥스의 요구에 따라 메트로폴리스행 시외버스 티켓을 끊었다간 도주를 의심받아 가석방이 취소되어 버린다. 끔찍한 감옥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양반이. 나더러 지금 죽으라는 거에욧?! 게다가 크레이지 덤프랑 날 묶어?! 안 돼. 싫어. 못 떠나!』
《못 떠나?》
『못 떠나!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데? 당신이 내 두목이야? 아니잖아.』

혈압이 떨어지는지 속이 울렁거렸다.
불편함으로 가득한 무언의 시간이 잠시나마 이어졌다.
이윽고 츄파춥스가 숨죽여 웃기 시작했다. 어쩐지 정신을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비웃음을 바탕에다 광기를 양념으로 버무려 대단히 듣기 기분 나쁜 웃음 소리였다.

《하긴, 자네가 내 말을 들을 이유는 없지.》
『그, 그렇고 말고..(요)』
자신감이 통째로 사라져 느낌표 대신 슬그머니「요」자를 작게 덧붙였다.

《좋아. 마음대로 해.》
상대방은 오히려 싱글벙글이다.
《대신 나도 마음대로 할 거야. 이의 없지?》
클클, 소리가 희미하게 이어지다 매끄러운 칼날에 잘리기라도 한 것처럼 별안간 뚝 끊어졌다.

Posted by 미야

2016/06/20 16:13 2016/06/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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