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12분.
마이클은 이번에도 손톱을 세워 손목시계의 유리판을 톡톡 건드렸다. 자질구레한 흠집이 지나치게 많이 생긴 까닭이 아무래도 이 독특한 손버릇 때문일 듯하다. 그래봤자 본인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니 상관없다. 어차피 시계는 상표도 없는 싸구려였고, 애초부터 그는 남들과 달리 정밀한 고가 시계나 신형 자동차 같은 물건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건전지가 닳아 초침의 움직임이 둔해지면 휴지통에 버릴 것이고, 대형마트에 들려 이를 대신할 적당한 가격대의 물건을 하나 고르면 되었다.

『졸려 미치겠네...』
산책 나온 기분으로 천천히 걷다 머리가 띵한 느낌에 잠시 자리에 멈추어 서서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대다수의 평범한 이들이 변함없이 찾아올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 어디서 길고양이가 먹이를 구하는 중인지 쓰레기통 쇠붙이가 텅 소리를 내며 울려 짙게 가라앉은 공기를 흔들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다한들 밤눈이 어두운 마이클의 시야엔 고양이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양철 뚜껑을 밟았다가 지레 놀라 멀리 도망간 건지도 모르겠다.

『으아함~』
허리를 구부정하게 한 채 호주머니로 두 손을 끼워 넣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의 살고 있는 아파트와는 정 반대방향이었지만 순찰을 하느라 여러 번 돌아다녔기에 부근의 지리에 대해선 대략적으로 꿰고 있는 상태다. 조금만 더 걸으면 이 앞으로 문을 닫은 슈퍼마켓이 있다. 굳게 내려져 다시는 움직이지 않는 녹슨 셔터 위에는 스프레이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하트와 번개무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림이다. 낙서가 뜻하는 바는 분명하지 않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심장을 100만 볼트로 튀겨버린다? 그보다 랭.KK 라는 이니셜이 눈에 익다. 도시 곳곳에 불법 페인팅을 남기는 자다. 최근에 작품 활동을 한답시고 고가 전철 위에 기어 올라갔다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그 얘기가 사실이라면 저 슈퍼마켓 셔터 위의 흔적은 그의 유작이다.

곁눈질도 하지 않고 지나쳐 약 빨은 보안등이 레이저 포인트처럼 점멸하는 작은 2층 건물로 향했다.
몇 년간 도색 공사를 하지 않아 헐벗은 콘크리트 표면을 드러낸 건물에는 골동품 가게가 하나 세 들어 있다.
옛날에는 전당포라고 했었지, 아마.
노트북이나 금목걸이, 반지, 명품가방 등을 헐값에 사들이고 인터넷을 통해 중고물품으로 팔아치우는 가게다.
당장 돈이 궁한 사람들이 주요 고객들인데 문제는 뒷손님이었다.
이 가게에서 판매되는 물건의 10~12%는 비정상적으로 거래된 장물이었다.

『이봐, 트랭키. 문 열어. 지금 가게 영업 아직 안 끝났다는 거 다 알거든?!』
「닫혔음」이라고 적힌 안내 표지판을 무시하고 입구를 두드렸다.
『트랭키이이~ 안 나오면 쳐들어 간다아~!』
입구를 감시하는 보안 카메라가 원격 조정으로 움직이자 렌즈를 향해 뭔가를 쓱 내밀었다.
만능 출입증인 경찰 배지는 아니고 - 엉뚱하게도 포장을 뜯지 않은 츄파춥스 캔디였다.
『나도 온 동네 시끄럽게 만들기 싫거든? 좋게 얘기할 적에 빨리 문 여시지?』
안에서 CCTV로 전부 보고 있었는지 삑, 소리가 나면서 출입구의 잠금 장치가 해제되었다.
『착하구먼.』
츄파춥스를 다시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뒤, 마이클은 손이 아닌 발을 사용해 출입문을 밀었다.

『제기랄, 무슨 일이쇼.』
카메라와 핸드폰, 노트북 같은 전자제품이 빼곡히 들어찬 유리 진열장 앞에서 털 복숭이 사내가 인상을 썼다.
우호의 의미로 그의 두꺼운 손바닥이 테이블 위에 얌전히 올라가 있었지만 그거야 눈속임이고 - 여차하면 진열장 안쪽에서 장전된 산탄총을 꺼내 단 0.3초만에 방아쇠를 당길 거라는 걸 마이클은 잘 알고 있었다.
트랭키는 숙련된 사격수였다.
여기서 숙련되었다는 의미는 사물을 잘 맞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에게 총알을 날림에 있어 전혀 망설임이 없음을 가리킨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은 적이 있는 방향이 아닌 엉뚱한 방향을 향해 상당수의 총알을 낭비하게 되는데 전체에서 70%가 그렇고 나머지 30%는 참호를 노리고 똑바로 사격한다. 그리고 이들 30%에 속하는 사람 가운데 단 0.2%만이 적의 머리를 정 조준하는데 트랭키는 이 0.2%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남성 호르몬 분비의 과다로 머리 정수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금발의 사내가 불만에 가득 차 마이클을 쏘아보았다.
『물건을 팔러 왔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일단 장사꾼 멘트를 날리고 보았다.
어랍쇼, 그런데 의외로 마이클은 거기에 호응했다.
『이거, 손목시계 팔면 얼마 줄 수 있어?』
트랭키는 코웃음 쳤다. 걸레를 가져와 뭘 어쩌겠다고. 솔직히 공짜로 준다고 해도 받기 싫었다.
『40센트?』
『오케이... 그럼 전화 통화 정도는 가능하겠네?』
망설임 없이 시곗줄을 푸른 마이클은 낡고 흠집 난 싸구려를 유리 진열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위협하듯 체중을 앞으로 기울였다.

『시계를 내놓겠어. 그러니 40센트의 값을 하라고, 트랭키. 장물아비인 루카스 모드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줬음 좋겠어. 설마,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루모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그래도 명색이 자네 동업자인데.』
같지도 않은 요구에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이보쇼. 공중전화가 필요한 거라면 가게 밖에서...』
『STOP, 트랭키.』

마이클 윈저의 키는 174cm다. 체격은 보통. 셔츠를 가슴꼭지 부근까지 걷어 올리면 단단한 근육 대신 물렁거리는 뱃살이 드러난다. 게으른 성격의 그는 땀 흘리는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체력단련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남들 허리 굵기의 팔뚝을 가진 트랭키에겐 말 그대로 한 방 꺼리였고, 주먹 대신 손바닥으로 후려쳐도 골로 가고도 남았다. 그런 주제에 남이 하는 말을 싹둑 자른다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는 행위다.
「걍 쏴버릴까.」
트랭키의 눈썹이 실룩 움직였다.
손을 진열장 아래로 내려 산탄총을 움켜쥐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1초.
하지만 의외다 싶게도 트랭키는 마이클의 머리를 쪼개버리는 대신 모토로라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이거로는 내가 손해를 보는 기분인데.』
입으로는 불평하면서도 두꺼운 엄지손가락으로 열 개의 숫자를 눌렀다.
예의 익숙한 뚜루르 신호음이 뒤를 따랐고 마이클과 트랭키 두 사람은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루모에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거 같으니 내가 먼저 얘기를 해보겠소.』
『이미 관 뚜껑 열고 다리 하나 집어넣었는데 마음의 준비랄 게 왜 필요하나.』
『남은 다리까지 관속으로 집어넣을지, 아니면 다리를 뺄지, 녀석이 아직 결정 못 했을 수도 있잖소.』
『됐어. 결정 장애가 핑계가 되어주지는 않는 법이지.』
핸드폰을 낚아챈 마이클은 악마처럼 미소 지었다. 그리고 외쳤다.
『헤이, 루모! 지금 거울을 보고「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다섯 번만 말해볼래?』
상대방이 헉 소리를 내고는 바로 통화를 종료했다.
아니, 들리는 잡음으로 보자면 정상적으로 종료 버튼을 누른게 아니고 깜짝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 같았다.
『그것 봐요. 녀석에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거라고 했잖소.』
트랭키의 핀잔에도 아랑곳없이 마이클은 리듬에 맞춰 발을 까딱거렸다.

사탕을 입에 문 채로 거울을 보고.
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 다섯 번 말해요.
그럼 죽었던 망령이 되살아나 당신 뒤에 까꿍 인사하며 서 있을 거에요.
붉게 흐르는 건 크랜베리.
찐득거리는 건 허니 라즈베리.
안녕, 안녕, 미스터 츕스.

Posted by 미야

2016/06/17 11:13 2016/06/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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