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급자족용 글입니다. DC 입문은 약간의 애니 감상이 전부라서 설정이 엉망입니다. 믿거나말거나 배트맨 나옵니다, 슈퍼맨 나옵니다. 그런데 언제 나오지?
무리가 알아차렸을 적엔 이미 늦어 피투성이 자루를 뒤집어쓴 마이클은 성난 황소처럼 무작정 달려 나가는 중이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벽에 부딪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절벽과도 같은 계단 아래로 고꾸라질 수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일직선으로 뛰었다.
『어휴. 방심했다고 그새 튀냐... 야, 잡아!』
루모는 한심해 죽겠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무작정 도망치려던 게 아니었나 보다. 잠시 멈칫거린 마이클은 들려오는 목소리로 방향을 가늠하더니, 이쪽이다 판단을 내리자마자 몸을 휙 돌려 머리를 앞으로 내민 모습으로 빠르게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미친!』
뿔로 콱 받아버리겠다며 황소가 돌진해오는데 멍청하게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서성거리고 섰던 구경꾼들은 혼비백산하여 좌우방향으로 흩어졌다. 노린 것도 아닌데 운 나뿐 사람은 한 명 정도 나오는 법인지라 루모가 배를 정통으로 들이받혔다.
『욱!』
장비를 착용한 쿼터백이 탱크처럼 돌진해와 태클을 걸어왔다 - 그런 생각밖엔 안 들었다.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한 바퀴씩 굴렀고, 마침내 눈앞에서 형광 빛을 내뿜던 색색의 별들이 진정세로 돌아섰을 적엔 루모의 몸 위로 마이클이 올라탄 형세가 되어 있었다.
씨발, 좇 됐다.
루모는 있는 힘을 다해 양팔을 선풍기 날개처럼 휘둘렀다.
그리고 마이클 윈저 또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루모를 공격했다. 즉, 묶인 탓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깔고 앉은 루모를 향해 박치기를 시도했다. 그것도 뒤로 힘껏 머리를 젖혔다가 가속도를 덧붙여 쾅쾅 박아댔다.
『꺄아아아악~!!』
루모는 자신이 끙끙 신음하고 있다 여겼지만 사실은 속옷이 강제로 벗겨진 여자처럼 앙칼지게 비명을 질러대는 중이었다. 핏방울이 떨어져 눈 속에 들어갔기라도 했는지 시야는 온통 붉었다. 문제는 그 피는 자신이 흘린 것이 아니었다. 돌덩이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이마가 아팠다. 하지만 정작 머리가 깨진 건 각목으로 맞은 마이클이다.
왜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피를 흘리고 머리가 터진 사람은 따로 있건만, 고통과 공포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완전히 미친 게 분명한 마이클 윈저가 맞지 않는 가락을 콧소리로 노래했다.
『흘흘흐. 붉게 흐르는 건 크랜베리. 찐득거리는 건 허니 라즈베리...♪』
골동품 레코드가 잡음을 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쉬어빠진데다, 음의 고저가 완전히 엇나가 원래는 밝은 동요와도 같았을 노래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내 이름을 불렀지? 안녕, 안녕. 나야, 미스터 츄파춥스. 똑똑히 들었어. 네가 나를 불렀어. 안녕, 안녕.』
『히익!』
온몸의 털이 거꾸로 솟았다. 이 남자는 저승의 망령이다. 공포에 휩싸인 루모는 이성을 잃고 두 팔을 뻗어 마이클의 목을 강하게 졸랐다. 이 자를 죽여야만 한다. 하지만 뒤집어씌운 자루가 벗겨지지 않도록 옭매듭으로 목에 감은 줄이 문제였다. 힘을 주어 목덜미를 누르던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손톱이 매듭 틈새에 끼어 뒤틀렸다.
망했다. 루모는 이것으로 목을 졸라 상대를 끝장낸다는 상상 속의 결말이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딘가에서 오래된 가죽이 당겨져 가닥으로 끊어지는 역겨운 소리가 들렸고 - 루모는 그게 자신의 손가락에서 난 소리가 아니길 빌었다 - 재차 박치기가 이어졌다. 순간 시야가 말갛게 점철되었다.
안주머니에서 접이식 나이프를 꺼낸 사내가 욕설을 퍼부으며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온전히 폈을 적의 날의 길이가 8cm에 이르는,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하는 주머니칼이었다. 원래의 용도는 맥주 병뚜껑을 따거나 강탈한 슈퍼마켓 금고를 부술 적에나 써먹는 하찮은 거였다. 그걸 쥐고 속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세었다. 허나 지금까지 사람을 찌른 경험이 없다보니 정작 셋! 하고 숫자를 세었을 적에는 머뭇거렸고, 다섯! 하고 세고 나서야 마이클의 등 한가운데로 칼날을 찔러 넣 -
타앙.
뭔가가 빠르게 스치면서 등이 따끔했다. 동시에 화약이 터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손이 통째로 날아갔다고 누군가 울부짖었고, 우왕좌왕하는 기척이 커졌다.
「뭐지. 방금 무슨 일이지. 누가 총을 쐈지? 혹시 신참인가...」
마이클 윈저는 총성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자신의 파트너인 리처드 2호를 떠올리고 반색했다.
하지만 기뻐한 것도 잠시, 이상했다. 신참이 총을 쐈다고 하기엔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잘못되었어.」
그 정신없는 와중에 한참 생각한 그는「모두 꼼짝 마, 경찰이다, 손들어,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어쩌고저쩌고.」의 사전 경고가 빠졌다는 걸 가까스로 알아차렸다.
무경고 발포는 심각한 규정 위반이다. 때로는 피의자가 되어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간지에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올라가 공공의 적으로 비난을 받는 건 덤이다.
일반적으로 경고는 3회에 걸쳐 행해진다. 경찰관들은 용의자 체포 후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것만큼이나 경고 후 사격을 습관화한다. 물론 현장 경험이 적은 얼뜨기 신참들은 잔뜩 긴장하여 얼어붙은 나머지 방아쇠를 당긴 다음에야 혀를 깨물고「경찰이다!」외치기도 한다.
어쨌든 발포는 이루어졌고, 마이클은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지금쯤 리처드 2호는 외쳐야 했다. 모두 제자리에서 꼼짝 마.
「......」
기다리던 목소리는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얘기는 리처드 그레이슨이 폐건물 주변을 탐색하는 도중 사라진 자신을 구하러 여기까지 왔다고 여겨선 안 된다는 거였다.
깨닫고 나자 길거리에 버려진 콜라캔처럼 바닥을 굴렀다. 그 모양새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심히 보기 괴로을 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나중 문제다.
길다고 하면 길다고 할 수 있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간격을 두고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상대는 상당한 명사수인가 보다. 탕 탕, 두 번을 연거푸 쏘는 2점 사격도 아니고 딱 한 발만 1점 사격을 했는데 이번에도 사람 죽는다 비명이 들렸다. 비릿한 피 냄새도 확 풍겼다. 악을 쓰고 욕을 퍼붓는 걸 봐선 치명상은 아닌 듯하고 다리나 팔을 맞춘 듯했다.
『아이고, 내 다리잇!』
음, 맞힌 곳은 다리였다.
『누구야! 웬 놈이냐!』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궁금해?』
훼방꾼의 목소리는 이제 막 소년기를 지나기라도 한 것처럼 무척 젊었다. 짐작하자면 20대에서 30대 초반.
『나라면 그걸 궁금해 하는 대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튈 텐데.』
그것도 이런 폭력적인 상황을 별 일 아니라며 당연시 여기는 젊은이였다.
이번에는 위협사격이었나 보다. 연거푸 네 번의 총성이 들렸는데 콘크리트 바닥에 구멍만 뚫렸을 뿐, 몸 어딘가에 바람구멍이 나서 털썩 주저앉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젠장! 알았어! 알았다고! 얌전히 사라질 테니 쏘지 마! 제길, 재수 옴 붙었네.』
훼방꾼을 노려보며 대적해보려 했으나 상대방이 풍기는 기운이 워낙에 살벌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버텨봤자 손해다. 상황 판단이 빨랐다. 다들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처럼 후다닥 움직였고, 이미 다리를 맞은 놈은 겅중겅중 외다리로 뛰어서 자리를 벗어났다.
『쳇! 미스터 츄파춥스에게 친구가 있었을 줄이야.』
「친구」라는 표현에 새빨간 헬멧을 쓴 훼방꾼이 대놓고 짜증을 냈다.
『어디서 개소리야.』
『친구... 아니야?』
『전혀. 쓰레기와 같이 놀면 썩는 냄새가 옮겨 붙는 법이라서.』
불타는 빛깔이었음에도 헬멧의 빨간색이 얼음처럼 시리게 느껴졌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