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기와 소형 카메라와 같은 첨단장비를 동원해 몇 주에 걸쳐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온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마이클 윈저를 평가하자면 단 한 마디,「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족했다.
올해 나이 서른 둘. 브루스 웨인보다 한 살 어렸다.
결혼을 한 기록은 없고, 가족도 없다. 늦둥이로 태어났기에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부모님들 연세가 제법 되었다. 나름 열심히 운동하고, 담배를 끊고, 채소를 많이 먹었지만 윈저 부부는 각각 심장마비와 급성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 여든 둘, 그리고 일흔 아홉이었다.
그렇게 되리라 짐작했기에 아들의 미래를 염려한 부모는 신탁을 예치하여 대학을 졸업할 학비 정도는 마련해줬던 것 같다. 현명했던 부모님 덕분에 마이클은 친척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타 시립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가 그다지 적성이 맞지 않아 1년 만에 중퇴했다. 그리고 빈둥거렸다. 남자는 세계 일주, 봉사활동, 개인사업, 이런 거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예금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아르바이트로는 벌이가 영 신통치 않아 결국 생활비가 바닥났다.
신용 대출을 알아보던 중 덜컥 경찰시험을 봤다.
시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흉악한 범죄로부터 지켜내고 싶다는 사명감 따윈 아마 없었을 것이다.
채용이 쉽게 되니까 무작정 지원했다고 본인 스스로가 자백했다.
빌런들의 위협 탓에 법 집행 종사직에 대한 선호도는 오래전부터 바닥이었고, 여차하면 목숨을 잃거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며 기피 대상으로 꼽혔다. 그런 만큼 경찰조직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호소하고 있었고, 경찰관을 뽑는 시험은 대놓고 형식적이었다. 오죽하면 시험지에 자필로 이름만 쓰게 하고 체력 테스트 딱 하나만 본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돌기도 했을 정도다. 일반 회사에 지원했다가 연거푸 쓴 잔만 맛봤던 마이클에겐 아마도 마지막 선택지였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경찰관으로서 근무 실적은 형편없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승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사자가 승진에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만사 의욕이 없었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봤자 몸만 피곤하잖아요? - 평소 입버릇이 관 뚜껑 열고 그 속에 들어가 30년간 죽어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참 한심한 인간이었다. 여자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핸드폰 단축메뉴로 저장된 절친도 없었다.
유일한 취미는 텔레비전 시청, 그리고 잠자기. 극장이나 경기장에 가지도 않는다. 휴일이면 집에 틀어박힌다.
틈만 나면 졸고 있고, 근무태도는 불량하다. 노골적으로 뇌물을 받는 타입은 아닌데 통행 제한 구역에서 차렷 자세를 취하는 대신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식이다. 언젠가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에 제보 전화를 받기 싫어 수화기를 몰래 바닥에 내려놓은 적도 있단다. 수사과의 데이비슨은 대놓고 마이클을 경멸했다.
「그런 남자가 미스터 츄파춥스라는 건가. 고담시에서 범죄가 흑사병처럼 창궐하도록 만들려던 자라고?」
순찰차 조수석에 앉은 딕 그레이슨은 양팔을 가슴에 두른 자세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게으른 악당.
어쩐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며 눈을 비비는 허수아비나, 졸음을 호소하듯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는 펭귄, 잠에 찌든 표정으로 턱받침을 하고 있는 아이비, 이불을 뒤집어쓰고 깨우지 말라고 투정하는 조커... 가능해? 그게 가능하냐고.
「배트맨은 분명 전부가 연극이라고 할 걸.」
그렇다면 마이클 윈저는 대단한 배우다. 경찰시험을 치루는 대신 포트폴리오를 들고 극장으로 갔다면 그는 아마 매년 금가루가 뿌려진 레드카펫 위를 걸어 다녔을 것이다. 신문은 대서특필 했겠지. 올해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라고.
저 평범한 얼굴로.
여자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는 얼굴로.
옆에서부터 지긋이 내리 꽂히는 시선에 마이클은 백미러를 움직여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코털이 삐져나온 것도 없고, 체크.
아랫니에 음식물 찌꺼기가 끼지도 않았고, 체크.
겨드랑이도 이상 무. 바지 지퍼 이상 무.
그런데 어째서 나는 냄새 지독한 똥 방구를 뀐 사람 취급을 받고 있는 거지.
『저어... 무슨 문제라도?』
『글쎄요.』
『없으면 없는 거고, 있으면 있는 거지. 무슨 대답이 그따구야.』
『......』
딕은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손을 뻗어 제 위치를 벗어난 백미러를 적당히 조정했다.
『쳇, 알았어. 있다가 약국 들려서 생리대 사자.』
『저 지금 생리 안 하거든요?! 선배님.』
두 사람은 동시에 인상을 구기며 서로를 흘겨봤다.
빈정상하게도 먼저 눈을 내리깔은 건 마이클 쪽이었다.
쓴물처럼 올라오는 패배감을 애써 무시하며 업무 방향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어제에 이어 쓰리스톤 12번가 * 코드 425야. 같은 장소로 신고가 또 들어왔대.』
『425(수상한 상황)? 너무 추상적인데요.』
『추상적인 게 아니라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는 거지. 거긴 오래된 공장 지역인데 의류 산업이 몰락하면서 껍데기만 남은 곳이야.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지만 시 예산 부족 탓에 사업 진척은 여전히 지지부진이고 듣자하니 렉스코프에 대규모 토지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하더군. 그 와중에 정치적인 것도 살짝 얽혀서... 그렇게 폐건물을 방치하다보니 한 달에 두세 번씩 신고가 들어와. 흘러나오는 불빛을 봤다던가, 철망이 뜯겨져 나갔다던가, 망치로 뭔가를 때려 부수는 쾅쾅 소리가 들린다거나... 뭐, 대충 그런 거지.』
마이클은 스타 시티 10대 철부지들이 자물쇠 뜯고 들어가 흥청망청 술파티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딕 그레이슨은 마약 거래 현장을 상상했다.
『아냐, 아냐. 심각한 거 아니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었다.
유수 대기업을 개발 사업에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당국에서는 당연히 추문이 나는 걸 꺼려했다. 살인사건 현장으로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다들 죽었다고 복창 - 시청 고위 공무원이 으름장을 놓자 불똥은 경무관이 입고 있는 제복 바지 위까지 튀었다. 경무관은 다시 새해 첫날 조무식에서 부하들을 갈궜고, 불똥은 이제 경위들에게까지 튀었다. 하여 까라면 까는 경장과 순경들은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에워싼 철조망 위로 큼직하게 협박 문구를 써서 달았다.
무단으로 침입할 시 좇 되는 거임. 왜냐면 하루도 안 빼먹고 이곳을 확인함.
푯말 바탕에 칠해진 흰색 페인트는 얼룩 하나 없이 깔끔했다.
다만 거리가 있어서 정확한 문구는 읽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마 이와 비슷한 내용을 것이다.
『아직 크레이지 덤프가 잡히질 않았잖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일선 경찰들이 제일 먼저 뒤져보는 곳이 바로 저기야. 그걸 우리도 알고 걔네들도 알고 있지. 바보가 아닌 이상 숨어들지 않아. 모르고 기웃거리는 건 수배중인 범죄자가 아니고 여드름투성이의 10대 철부지들이라고.』
마이클은 안전벨트를 푸르기도 전에 경광등의 작동 버튼을 눌러 귀에 거슬리는 삐익 소리가 크게 울리도록 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딕 그레이슨은 완전히 질겁했다.
『소리를 꺼요!』
은밀하게, 신속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 이 세 가지는 행동 요령은 싸그리 무시되었다.
뿐만 아니다. 마이클은 3분은 족히 자동차 운전석에 엉덩이를 붙인 채 가만히 버텼다.
설령 수상한 자가 폐건물 속에 숨어있었다고 해도 이러면 걸음아 나 살려라 이러고 전부 도망치고도 남는다.
『맞아. 전부 도망가라고 그래.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음... 글쎄. 전혀 아닌 것 같은데.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