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은 내버려두면 저절로 빠질 거라 했다.
어린애처럼 별똥별에 대고 소원을 빌기를 원래대로 감쪽같이 붙기를 희망했지만 아무래도 새 손톱이 자랄 때까지 아픔을 참는 수밖에 없나 보다.
『소문의 도련님이시죠?』
그게 어떤 소문이냐 묻고 싶었다. 어쨌거나 좋은 쪽은 아니어서 의원은 치료에 그다지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무릎의 상처는 물로 깨끗이 씻은 뒤 별다른 소독도 없이 통증을 완화시켜 준다는 약초즙만 슥슥 발랐다. 내가 봐도 꽤나 엉성한 치료였다. 공인된 자격이 없는 동네 돌팔이 의원도 이보다 더 정성스럽게 치료해준다.
「아무래도 저 남자가 들은 소문이라는 것이 돈 한 푼 없는 거지라는 내용이었나 보군.」
상처가 덧나도 결코 내 책임은 아닙니다 - 수중의 약병을 주섬주섬 챙기던 사내는 이것으로 자신의 의무는 끝났다며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끝났습니다.』
『저어, 의원님. 붕대라도 감아주셔야...』
『싫은데요. 달리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정식으로 다른 의원에게 제대로 보이십시오.』
차갑다. 냉정하다. 귀신 같으니라고.
하지만 나는 저 남자를 이해해줘야만 했다. 의술 행위는 어디까지나 공짜가 아니다. 좋은 효과를 보이는 약초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그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의원의 옷자락을 붙잡고 저 남자가 그렇게나 듣고 싶어 하던 말을 해줘야 했다.
『치료비 때문이라면 내일 숙희 숙사감대부에게 청구하시면 되요.』
『호오~ 그분이 학부생의 치료비를 대신 내주실 거다?』
안 믿는 눈치다. 뿐만 아니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며 야단을 치는 시선이 되어버렸다.
『저런! 비용을 그분에게 돌리다니. 도련님은 숙희 님이 어떤 분인지 아직 잘 모르시나 보네요.』
『그게 아니라...』
숙희가 보관하고 있는 내 몫의 금전을 설명하려던 찰나, 의원이 의자에 다시 앉았다.
『나도 모르겠다... 좋아요. 어지간히 쓰리고 아픈 모양이니 일단은 속아드리죠. 이번 딱 한 번 만입니다. 그럼 바지를 다시 걷어보세요. 무릎의 상처를 보도록 할까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지 한숨과 함께 다시 내 상처를 봐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중에 미끄러져 넘어진 겁니까?』
방금 전까지 쌩 소리 나게끔 매몰차게 굴던 인간이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느냐며 관심을 보여 왔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냥 넘어져서 이렇게 되긴 힘들텐데.』
멍들고 찢어진 부위를 차분하게 만져보고, 눌러보고, 가만히 주물러도 보았다. 피부가 찢어져 껍질이 들고 일어난 부분엔 불투명한 회색의 고약도 발랐다. 싸한 느낌의 독특한 냄새가 나는 약이었는데 언젠가 맡아본 적이 있는 향이었다. 계속 코를 대고 있으면 기침이 나는 종류다.
『꿰매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나쁜 피가 고인 곳으로 침을 몇 대 놓죠.』
침을 다 놓자 이번엔 약을 조제해줬다. 별 건 아니고 진통제 종류라고 했다.
『오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절반을 드시고, 남은 건 내일 오후에 드십시오. 다소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고 식사는 평소처럼 하시면 됩니다. 약이 더 필요하면... 아시죠?』
『정식으로 다른 의원에게 제대로 보여라?』
『정답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약포를 받는데 삼킨 것도 없이 입안이 매우 썼다.

하염없이 발가락을 꼬물거리고 있자니 길게 늘어진 휘장을 걷으며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린청이었고, 다른 한 명은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젊은 숙사감이었다.
학부생이 다쳤다는 말에 확인 차 보러 온 모양이다. 그런 주제에 그는 당사자인 나를 쏙 빼놓고 처치를 끝마친 의원과 말을 나눴다.
『누구에게 맞기라도 한 겁니까?』
『본인 입으로는 넘어졌다고 하더군요.』
『상처는?』
『보기와는 달리 그렇게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위에 보고는 해야 하겠죠.』
그리고 의원과 숙사감 두 명은 무슨 골동품 도자기 감정하듯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안 되겠다 싶어 끼어든 건 린청이었다.
『원숭이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네? 원숭이요? 말도 안 돼. 그런 것이 어디에 있다고.』
의원이 거짓말을 그렇게 지어내면 곤란하다며 코웃음을 쳤다.
『사실인데요.』
『이래서 변방인들은... 쯧. 이 부근엔 원숭이 같은 건 살고 있지 않아요.』
졸지에 이야기를 꾸며낸 것으로 몰린 린청은 주먹을 쥐고 분노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분명 원숭이로 보이는 뭔가가 안즈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만하세요. 그런게 존재할 리가 없잖습니까. 아니면 올빼미를 잘못 보았겠지요.』
『올빼미가 살기를 드러내고 일부러 사람 가까이 접근하는 법도 있답니까?』

따지듯 고집스럽게 주장하자 듣고 있던 숙사감의 한쪽 눈썹이 좋지 않은 의미로 활처럼 구부러졌다. 허리에 손도 얹었다. 경험으로 보자면 저건 사람을 윽박지를 적에 보이는 태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근깨 숙사감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안경 없인 사물의 모습이 흐리게 보인다며 때 아닌 근시 타령을 했다.
『그러니까, 어디보자. 제가 시력이 안 좋아서. 예당국에서 오신 도련님이죠? 분명 련 가의...』
그리고 묘한 어조로 비웃었다.
『오늘 저녁 여학생부에서 가락지가 없어졌다고  한바탕 소동이 났을 적에도 예당국에서 온 분이 그 가운데 있으셨는데. 그거 참.』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말을 들은 녀석이 어금니를 으득 씹었다.
『휘사 님이셨죠? 그렇게 기억하는데. 두 분이서 같은 나라에서 오셨으니 사촌이신가요?』
『시끄러워! 녀석은 결백하다.』
혈연관계냐고 물어봤는데 듣는 사람이 대답하길, 죄가 없단다. 뭔가 안 맞는 것 같다.
『오, 저도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엉뚱한 걸 잘못 보시고 오해를 하는 버릇이 있는 듯하여.』
린청이 분노하자 주근깨 숙사감이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듣는 입장에서 조롱을 당했다 격분하면 말단 관리 입장에서 맞닥뜨리기가 곤란할 것이다. 너무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의원 또한 숙사감의 옆구리를 조용히 찔러댔다. 그리고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입술만 움직여 그만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 참, 다들 왜 그러시나. 별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니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보는 눈이 있는 관계로 주근깨 숙사감이 건성으로 사과했다.
『그래도 말씀드리는데 원숭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주십쇼.』
하여 공식적으로 오늘 밤 일지에는 미끄러져 넘어져 부상당한 학부생 한 명이 치료를 받았다고 기록되었다.
말단 관료인 두 사람은 그렇게 입을 맞추고 어려움 없이 평상시처럼 상황을 정리했다.

『단호하게 그런 건 없었다고 부정을 해버리는 군.』
꼬물거리고 있는 내 발가락 위로 예고도 없이 수건을 휙 집어 던지면서 소년은 넌더리를 냈다.
맨발이 문제였던 걸까, 수건으로 발을 가리고 난 뒤에야 린청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저들은 말단 관료들이야, 린청. 일이 복잡해지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하지.』
『하지만 나는 내가 보고 겪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어.』
『알아.』
다친 건 나인데 왜 린청을 달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가 변방인 출신이라서 그런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예를 들자면 내가 아니라 송주가 원숭이를 보았다고 말했다면 저들의 반응이 아까와는 달랐겠지?』
한 3초 정도 생각하고 대답했다.
『음... 그렇지 않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
『하!』
『관료라는 건 그런 법이니까... 그보다 휘사 님께 무슨 일이 있었어?』
『녀석이 가락지를 훔쳤다고 누명을 뒤집어썼어. 그래서 여학생부에 가봤던 거야.』
『허어.』
그러고 보니 비싼 가락지가 없어졌다며 여자들끼리 머리채를 잡고 있다고 했다.
숙희 숙사감대부는 콩가루 비지떡에 망할 계집애들이라고 욕을 했고. 그게 휘사 님이었던가. 아이고.

Posted by 미야

2015/09/06 20:53 2015/09/0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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