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다.
그걸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할 거라 여긴 내가 바보다. 머리를 흔드는 단순한 몸짓을 취하는 대신 자세한 설명을 해줬어야 했다. 최소한 머리 위를 조심하라고 경고를 해주던가, 주위를 둘러보라고 권하던가.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건 맹해빠진 나와는 달리 기척에 예민했고, 거기에 반응하는 몸동작 또한 기민했다는 거다.
갑자기 몸을 빙글 돌리더니 들고 있던 우장을 반쯤 접었다가 우리가 대체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로 인식하는 속도의 대략 다섯 배 빠르기로 접었던 우장을 도로 펼쳤다.
그냥 펼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우매한 내 눈에도 기라는 걸 흘려보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장 표면에 소복이 내려앉았던 빗물이 삽시간에 작은 폭탄이 되어 빠르게 튕겨나갔는데 그걸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입장에선 빠르게 날아오는 무수히 많은 돌조각에 두들겨 맞는 기분이 들었을 거다.
나무 표면에 생채기가 생겼을 정도다.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었을 그.것.이 끼에엑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저건 뭐지. 털 빠진... 원숭이?』
어두워 형태가 잘 보이지 않는 관계로 린청은 처음엔 그것을 원숭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곧 의문이 생겼던 것 같다. 흔히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라고 하기엔 그 기척이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이었던 까닭이다. 이마를 찌푸린 소년은 접은 우장을 흡사 검처럼 겨누며 어둠을 응시했다. 그것의 정체가 요괴일지 모른다는 가정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산에서 내려온 들개보다 훨씬 더 위험한 종류라는 건 제대로 인식했다.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놈이 있는 방향으로부터 서서히 뒷걸음질 했다.
『이거 영 살벌하군. 저런 거에 쫓기고 있었던 거야?』
『후반엔.』
『그랬구... 응? 지금 뭐라고. 후반?』
그럼 전반엔 네가 저것을 쫓고 있었다는 거냐 - 힐끔 돌아보는 소년의 눈초리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럴 때가 아니라고 해도 확실히 하자. 어느 쪽이야, 네가 저걸 노리는 거냐. 아님 저것이 너를 노리는 거냐.』
답변이 곤란했다.
『그게... 음. 그러니까. 처음엔 내가 먼저 쫓고 있었던 건 맞는데... 암튼 복잡해.』
『이 녀석 봐라. 여기서 어떻게 복잡해질 수가 있어!』
어쨌든 멀리 물러나는 것이 우선이다. 버럭 대마왕이 고함을 질러대든 말든 계속해서 머리 위를 조심하며 길을 따라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빠르게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을 뿐이고 실제로는 절룩거리며 정신 사납게 각기춤이나 추었다.
『틀려. 그쪽은 여학생부로 가는 길이야. 여인네들 숙소로 가서 어쩌려고. 이쪽이다.』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우장을 완전히 접은 그는 턱짓으로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부축의 의미로 내 팔을 안으로부터 감싸 쥐었다.
이제 린청은 저것의 종류가 과연 야생동물이 맞는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는 않았으나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멀리서 이쪽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보통은 사람을 피해 도망쳐야 옳다. 거기다 이쪽은 혼자가 아니고 일행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노리는 기세다.
그렇다면 ① 녀석의 배가 어지간히 고팠거나, ② 품고 있던 새끼를 사람이 건드려 화가 단단히 났거나, ③ 그것도 아니면 동물로서의 본능이 망가진 경우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굶주렸다고 가정하긴 좀 그렇다. 사람을 먹거리로 삼아야 할 정도로 천재지변이 있었던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린청은 나에게 다짜고짜「원숭이 새끼를 건드렸느냐」따져 물었다.
『나를 뭐로 보고!』
『귀엽다고 생각해서 함부로 막 쓰다듬고 그랬던 거 아니야?』
『이 몸에게도 상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에게 멋대로 접근하거나 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선 얘기가 틀려지잖아. 네가 먼저 저 동물을 쫓고 있었다며.』
분명 그랬긴 하다.
『그래. 처음엔 내가 저것을 쫓았지.』
『어째서? 저것 옆에 붙어 있는 새끼 원숭이가 귀여워서는 아닐테고.』
『새끼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어.』
『나도 알아.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야.』
그러면서 린청은「새끼는 둘째고 저게 암컷이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했다.
『그게... 확인을 해야 했어.』
『무엇을?』
『복잡하다고 했잖아. 설명하자면 길어.』
맙소사. 자초지종을 전부 털어놓기엔 장소가 너무 부적절했다.
그러니 이를 어쩐다, 신음하며 허리를 구부정히 했다.
잠시 제자리에 멈추어 선 린청은 무릎을 심하게 아파하는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려 어둠을 확인했다.
느껴지는 기척이 있는지 소년의 표정이 심각했다. 무의식중에 허리춤에 달렸을 검을 더듬어 찾았지만 이사실로 와서 검이라는 걸 소지한 적이 없으니 불필요한 동작이었다.
『쳇.』
비를 피하는 용도로 제작된 우장은 겁을 줘서 야생동물을 쫓기에 쓸모가 있긴 하다. 돌진해 오던 멧돼지도 활짝 펼쳐진 우장 앞에선 덩치가 큰 상대를 보았다고 착각하고 멈칫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덤벼드는 것이 야생동물이 아니라면 이런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본능이 아닌 것을 따르고 있다면 얘기가 한참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청화국 같은 나라에서 특수한 목적을 갖고 개를 훈련시킨다고 하더군. 그와 비슷한 걸까?』
나는 차마 저것의 정체가 동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고 가르쳐줄 수가 없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제국에서 저런 걸 키우다니... 다들 정신이 어떻게 되었군 그래.』
계속 들고 있어봤자 거추장스러울 뿐이라고 판단한 소년은 우장을 땅바닥에 버렸다.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저걸 멀리 떼어 버리는게 우선이니까.』
주먹을 쥐고 공격 자세를 취한 린청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 번의 날숨, 후읍. 두 번째 들숨, 후읍,
그리고는 들입다 나무기둥 한 가운데로 주먹을 찔러 넣었다.
기세가 제법 흉악했기에 녀석의 손이 망가지거나, 아니면 나무줄기에 주먹 모양으로 구멍이 뚫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 못했던 큰 북의 가죽을 때리는 팡, 소리가 들렸다. 단단한 나무를 어떻게 다뤘기에 북처럼 울렸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속하여 가냘프게 울리는 진동이 이어졌고, 그 떨림은 가지 윗부분까지 곧장 뻗어나갔다. 위로 뻗어갈수록 진동의 폭이 커졌는데 제법 높은 부위까지 이르자 잔가지들이 미친 돌바람을 맞은 양 마구 요동을 쳤다. 그리고 줄기는 마침내 휘어짐을 견디다 못해 반으로 짝 갈라져 -
《케엑!》
그 위에서 맨발로 앉아있던 것이 기겁을 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마침 비가 내렸기에 망정이지.』
『방금 뭘 어떻게 한 거야, 린청?』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지? 그것과 비슷한 거야. 나무가 젖어 있어서 다행이었어.』
내가 봤을 적엔 그것과 이것은 전혀 비슷하지 않았지만 본인 입으로 비슷하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릴 뿐이다.
『저러고도 끝까지 안 달아나면 어째야 하나 걱정했는데.』
집어 던졌던 우장을 도로 주우면서 이 정도로 끝나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보아하니 놀라서 멀리 튄 것 같군.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지. 다시 돌아온다는 가능성이 아주 없지 않으니까. 이대로 얌전히 떨어져 나가면 좋으련만...』
그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 안즈. 우장을 쓰면 시야가 가려지니 주변을 경계하려면 이걸 쓸 수 없겠다. 미안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비를 맞아야 할 것 같아.』
『난 상관없는데.』
『네 안색이 영 괜찮지가 않아 보이니까 하는 말이야.』
이 마당에 내 얼굴색 따위가 뭐가 문제람.
그보다 그것으로부터 이세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는 점이 뭇내 아쉬울 뿐이었다.
이세(理勢).
젖은 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있는 가운데 문득 깨달았다.
그것이 녀석의 이름이었다.
나를 하나뿐인 친구라고 치켜세웠으면서 동시에 불살라 죽이고 싶으리만치 증오했다.
이사실 제국의 272대 황제. 신룡의 적손이라고 불리는 지고의 존재.
나는 그런 존재로부터 맹목적인 증오를 닮은 사랑을 받았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