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 모두 제국인이 아니라는 탓도 있었지만, 우리들이 자리를 함께 하자 여러모로 안 좋은 방향으로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무릎을 다친 탓에 절룩거리는 나야 말똥 투척 사건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떠도는 소문이 극히 좋지 않았고.
린청은 고집을 부려가며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녀 사내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참이다. 짧게 자른 머리를 선호하는 이사실에서는 아무래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데 제국의 풍습에 따르기를 강요하며 가위를 들고 따라다니는 이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주먹질로 하나하나 제압하고「날 내버려둬!」주장하고 있으니 관계자 입장에선 아무래도 눈이 시릴 터, 최근에는 상급생들까지 끼어들어 모종의 압력을 계속하여 가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해 몸싸움을 하는 빈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길게 늘어진 뒷머리를 슬그머니 쳐다보는 내 시선을 의식한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자를 거야.』
그런 까닭으로 이 무가 출신 소년에 대한 평판은 매우 나쁘다.
『죽을 때까지 길러봐. 저 황소고집을 누가 말려.』
그리고 여기, 소년의 동갑내기 사촌누이 휘사가 있다.

『바느질이 어렵진 않아? 도와줄까?』
『괜찮습니다. 할 만 합니다.』
내 요청을 듣고 흔쾌히 반짓고리를 빌려준 그녀는 찢어진 소매를 직접 수선하는 나를 조바심을 내며 지켜보았다. 자신과 달리 정식으로 수예를 배운 적이 없을 터이니 바늘에 찔릴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선을 곤란하다 생각하며 느릿느릿 八자 형태로 실을 꿰었다. 내 비록 수예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어도 전생의 부서고서리 시오재는 궁진한 살림살이에 헤어진 의복을 손수 고쳐서 입던 사내였다. 덕분에 생전 처음 해보는 바느질이었음에도 실의 매듭짓는 방식 같은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은 갖고 있다.
『윽!』
그렇다고 해도 손가락에 구멍을 내는 걸 피해갈 수는 없어 휘사는 어쩔 수 없군, 이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역시 안 되겠어, 내가 꿰매줄게.』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사양할 것 없어. 너는 그냥 영광으로 알아. 지아비가 아닌 자의 옷을 꿰매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테니.』
눈을 감고도 손수건 위로 한 떨기 모란꽃을 피우는 재주를 가진 사람에겐 이 정도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내 손아귀에서 수선 중인 겉옷을 빼앗아갔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
『그러니까 너는 그냥 감사합니다. 태양을 가릴 지경으로 아름다운 분이여, 이러고 인사만 하면 돼.』
성격이 이렇다보니 그녀도 적이 제법 많은 편이다.

『듣는 내가 다 오그라든다! 그 말투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냐.』
『내 말투가 어때서, 린청 오라버니.』
『낯간지럽잖아. 세상에 어느 여자가 태양을 가릴 지경으로 아름답다고 자화자찬하는 법이 어디에 있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요.』
『육지전서 87장에 장군은 스스로 자만하여 눈이 흐려지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병법 이야기가 왜 나와!』
옥신각신하는 이 두 사람은 이종사촌지간으로 어머니끼리 자매다. 태어난 달이 다른 열 한 살 동년배이고, 휘사의 어머니가 예당국 왕의 다섯 번째 빈이라고 하니 신분으로 보자면 옹주인 휘사가 훨씬 높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가깝게 자란 탓인지 서로 간에 허물이 없고 반말도 예사롭지 않게 툭툭 던지곤 했다. 본인들 주장으로는 기저귀를 차고 있던 핏덩이 시절부터 앙숙 관계라는데 내가 볼 적엔 앙숙까지는 아니고 투닥거림이 좀 있는 남매처럼 보였다.

『아무튼 스스로 예쁘다, 예쁘다, 이러는 건 적을 만드는 행위라고.』
『하지만 난 어디를 봐도 미인인데 어쩌라고. 입에 침 바르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 이 미모에 시기, 질투가 따라붙는 건 내 탓이 아닌 걸.』
『네 탓 맞거든? 이 추녀야!』
쏘아붙이자 소녀는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은 채 툴툴거렸다.
그런데 찐빵이 되었음에도 못 생겼다는 느낌은 없고 같은 여자인 내 눈에도 정말 예뻤다.
『휘사 님은 미인이에요.』
『그거 봐, 오라버니. 안즈도 인정하잖아.』
『그거야 저 녀석 눈이 삐어서 그렇고.』
턱을 괸 삐딱한 자세로 삐딱한 발언을 개의치 않게 내뱉은 소년은 둘이서 편먹었다며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저게 미인이면 세상의 모든 미인의 씨가 마른 거야.』
린청의 기준에 따르려면 그 눈을 살짝 찌푸리기만 해도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
『성벽을 무너뜨려? 그건 미인이 아니라 괴력의 소유자잖아.』
고사를 잘 모르는 소년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아무튼 린청의 말에 일리는 있어요. 자고로 여인들의 시기 질투는 칼보다 무섭다고 하니까.』
바느질을 하다 말고 휘사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안즈. 내가 질투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아닌데. 피이~ 게다가 치사하잖아. 그깟 가락지, 아무리 비싼 보석을 박았다고 해도 길게 가냘픈 내 손가락을 우아하게 만들지도 못할텐데 내가 왜 그런 걸 훔쳐서까지 가지려 들겠어. 그걸 설명을 하는데도 귀가 막혔는지 못 알아듣는 거야. 하도 기가 막혀서 내 손을 보여줬지. 그딴 가락지가 없어도 내 손은 너무나 고와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답니다, 이러고.』
저런 반응이니까 상대방도 감정이 상해 머리채를 잡으려 한 거다.
『평범하게 그냥「내가 안 가져갔습니다. 난 모르는 일이에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냐, 누이야.』
『말했어요. 평범하게 말했다고요, 오라버니.』
『세상의 모든 평범이 목을 매달고 죽었다든?!』
『알게 뭐야. 어차피 내가 하는 말은 아무도 안 믿어주던데. 어떻게 생긴 가락지인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발끈해서는 내 방을 뒤지겠다고 윽박지르더라. 그래서 거절하겠습니다, 숙녀라면 방문 전에 약속을 잡아주세요, 그게 예의잖아요? 라고 말해줬지. 그랬더니 찌그러진 양동이처럼 생긴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날 뒤로 확 밀쳤다니까.』
『듣자하니 밀쳐지기 전에 네가 먼저 뺨을 때렸다던데.』
『아닐 걸? 모르긴 몰라도 내가 먼저 때리진 않았을 거야.』
『거기서 왜 추측형이야.』
『내 기억으로는 거의 동시였거든ㅇ... 핫!』
거기까지 말한 휘사가 돌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왜! 무슨 일인데.』
『아, 아무 것도. 진짜 별 거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갑자기 얼굴색이 변했는데 별 거 아니라는 말을 우리가 믿겠니? 뭔데 그래.』
『음... 그러니까 그게.』
소녀는 부끄러워하며 꿰매던 내 옷을 짐짓 뒤로 감추려 했다.
아무래도 속으로 짐작했던게 맞았나 보다.
신분 높은 소녀가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을 제대로 해낼 리 없었다. 방틀 위로 팽팽하게 잡아당긴 명주 천에 나비와 꽃을 수놓을 줄은 알겠지만 상한 옷을 수선하는 건 어디까지나 딴 세상 일이다. 정확하게는 아래 것들의 일이다. 하여 그녀는 소매를 한 장으로 이루어진 천으로 생각하고 위아래를 촘촘한 박음질로 꿰매버리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그 결과 가운데로 팔을 꿸 공간을 없애버린 거였다.
『크크크푸훕!』
참지 못하고 웃었더니 휘사의 뺨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기괴한 소리로 웃을 건 없잖아, 안즈.』
『푸, 푸흡! 크핫핫핫~!』
『어쩜. 시원하게 웃어버리니 더 얄밉네.』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는 나를 향해 색동의 실패가 날아들었다.

Posted by 미야

2015/09/08 13:58 2015/09/0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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