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런 몰골로! 당장 꺼지지 못하겠... 허억!』
거짓말 같은 아까의 재탕이었다.
미친놈이 난입한다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다가 주룩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손을 짚었다.
더러운 걸 들고 있는 나 보다는 곰방대를 입에 문 남자가 훨씬 충격적이었던지 자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곧장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처, 천세. 천처... 천천, 세!』
『꺼져.』
까무라칠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끝까지 예를 올리려는 걸 무 자르듯 하는 것도 똑같았다.
공포에 질려 휘둥글 벌어진 그들의 눈을 보고 있자니 이 남자를 여기까지 끌고 온 내가 죄인이었다. 알이 들어있는 제비 둥지에 살모사를 집어넣었다는 그런 죄책감이 든다. 제비들은 어찌할 바 몰라 큰 소리로 울며 둥지 주변을 빙빙 돌았다. 하지만 둘로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을 멀리 내쫓기엔 역부족이다. 부리로 쪼아보겠다며 가까이 접근했다가도 의기양양한 포식자의 냄새를 맡자마자 그대로 몸이 굳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억지로 날개를 움직여 보지만 깃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교당의 문을 슬그머니 열자 낭랑한 목소리로 교과서를 낭독하던 교수사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웬 놈이냐.』
『무례인줄 알지만 실례합니다. 사람을 찾고 있어서...』
『물러가라. 수업 중이니 지금은 안 된. 허억!』
교수사 또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동시에 두꺼운 책이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내 머리 위로 한 자 이상 올라간 부분으로 못이 박힌 상태였는데 맞은편 유리창에 비친 사람 그림자를 보니 내 뒤에 선 자가 손칼로 신나게 목을 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누가 가서 숙희 숙사감대부를 불러... 아니다. 먼저 예를 올려야. 아니다, 숙희를 서둘러 부르는게...』
공황에 빠진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가운데 공부 중이던 아이들 중 맨 뒤편에 앉아있던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의 내 관심은 어디까지나 그가 아니다.
급히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린청을 지나쳐 창가 쪽에 앉은 내 먹잇감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송주는 날 알아보고는 뒤로 몸을 젖혔다. 얼굴색도 새파랬다. 그리고 내 손 가득히 든 오물에서 감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거짓말이지? 소년이 눈으로 그리 물었다.
『여어~ 송주.』
『너. 여, 여기가 어, 어디라고!』
『네가 시킨 마굿간 청소가 방금 끝나서 말이지... 그 대가를 청구하러 왔엉.』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한 무더기의 말똥을 송주의 머리 위로 털썩 올려놓았다.

불붙은 뜨거운 화로를 머리에 올려놨어도 반응이 이렇게 화끈하진 않았을 것이다.
『믿허ㅐㄹ;미ㅓㄴㅀ고[ㄹ;효흐ㅏ~!!!』
인간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털어냈는데 덕분에 좌우로 앉은 아이들이 죄도 없이 배설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이제 인간 아닌 것의 소리를 내며 오물 묻은 머리와 어깨를 터는 자는 다섯으로 늘어났다. 그제야 잔뜩 올랐던 머리의 열이 식는 느낌이었다. 비명이 터졌고, 누군가 의자를 박차고 달아났다. 동시에 송주는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잡았다.
『얼쑤, 잘한다.』
응원하는 이 목소리는 아마도 환청일 것이다. 이사실의 황족이라는 자가 어린애들 드잡이에 끼어들어「힘내라, 거기에 주먹을 날려~」훈수하고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훈수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이미 나는 송주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고 내가 묻힌 말똥 탓에 손가락이 자꾸만 미끌어져 곤란을 겪는 중이었다. 몇 가닥은 생으로 뽑았으나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나는 머리가죽을 통째로 벗겨버리겠다는 투로 손톱을 세웠고 덕분에 멱살을 잡은 팔이 느슨해졌다.
『누가 빨리 가서 숙사감대부를 데려오너라, 빨리~!! 으아아아, 숙희를 데려와~!!』
이제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으려 하면서 사이좋게 바닥을 뒹굴었다. 똥이 묻은 손바닥이 내 코와 입주변을 마구 밀어댔고 덕분에 찝찔짭쪼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 번졌다. 뱉어낼 짬이 없는지라 일단 삼켰다. 까짓 것, 말똥이잖아?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아니, 어느새 손이 미끄러져 잡은 건 소년의 귀였다. 그려? 그러면 귀라도 잡아 뜯자. 이리 오너라, 귀야.
귀를 잡힌 송주는 비명을 지르다 말고 팔을 크게 휘둘러 반격했는데 그것이 나에겐 악운이었다. 팔꿈치로 턱을 얻어맞자 눈앞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숙희는 아직이더냐!!』
바닥에 두 팔을 벌리고 벌렁 드러눕자 송주가 재빠르게 내 몸통을 올라탔다. 그리고 체중을 실어 목을 힘껏 조르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나를 죽이기 위함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막히는 건 물론이거니와 혀와 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손톱을 세워 그의 팔뚝을 피가 나도록 긁었지만 이미 보이는게 없어진 상황이라서 송주는 오로지 내 목을 조르는 일에만 집중하였다.

『사람을 죽일 작정이냐! 이봐.』
린청이 달려와 송주의 몸을 세게 밀쳤다. 하지만 흥분한 송주는 괴력으로 버티며 여전히 내 목을 움켜쥔 채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나는 이미 정신이 아득해진 상태였다. 어디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죽으면 건넌다던 저승천의 물소리인가 보다.
『이러다 진짜 죽어!』
이렇게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송주의 손가락뼈를 부러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린청은 내 목 한가운데 박혀 있는 소년의 엄지손가락을 잡더니 자비심이라고는 요만큼도 보이지 않은 단호한 태도로 바깥 방향으로 꺾어버렸다. 손가락이 손등까지 완전히 뒤로 젖혀지자 송주는 고통에 못 이겨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댔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는 사람이 지르는 비명보다 뼈가 망가지는 우둑 소리가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다시 열린 숨구멍으로 공기가 들어오는 걸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다.
『저놈이 내 손가락을 부러뜨렸어! 저 빌어먹을 변방인이 내 손가락을 부러뜨렸다고!』
우리들 중 누가 악인이고 누가 귀신인지를 구분하는 건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나라는 인간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한참을 콜록대었고, 송주는 두 눈이 심하게 충혈 되었다. 그리고 린청은 송주에게 머리카락이라도 잡혔던지 어느새 풀어헤친 머리가 되어 봉두난발 상태였다.

잔뜩 찡그린 린청이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자 손을 위로 올리자 그게 신호가 되었다.
『용서못해!』
이성을 잃은 송주가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린청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건 결코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무가의 사람은 훈련으로 살기에 반응하는 방식을 몸에 익히게 되는데 나중에는 수저로 국을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동작이 자연스럽게 몸에 붙게 된다. 죽이겠다고 상대방이 덤벼들면 방어를 결심하기도 전에 찌르기가 나가버리는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 머리를 묶던 손이 앞으로 뻗어나갔고, 내가 보기엔 주먹에 별도의 뇌가 하나 더 달려서 자기 멋대로 꿈틀대는 것처럼 보였다.
『아.』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날린 린청이 한심한 소리를 냈다.
『......』
그러나 코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벌렁 나가떨어진 송주는 잠잠했다.
무릎으로 기어가 가만 들여다보니 눈에 검은자위도 안 보인다. 시험 삼아 손을 흔들었지만 반응 무.
나는 다소곳이 앉아 신실한 마음으로 합장을 했다.
『안 죽었어!』
평정심을 잃은 린청이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기에. 나는 눈치껏 쪼그라들었다.

Posted by 미야

2015/06/08 16:44 2015/06/08 16:44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934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비밀방문자 2015/06/08 19:35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미야 2015/06/09 11:25 # M/D Permalink

      감상 늘 감사드립니다. *^^*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319 : 320 : 321 : 322 : 323 : 324 : 325 : 326 : 327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20705
Today:
550
Yesterday:
1861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