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늙은 암말은 줄을 걸어 잡아끌자 시키는 대로 얌전히 끌려나왔다.
행동이 워낙 느려 꾸벅꾸벅 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둥에 매듭을 묶는 동안 코를 벌름거려 내 냄새를 맡더니 그 즉시 흥미를 잃은 눈치다. 마차를 끌기 위해 당장 밖으로 나가야 하는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다. 심지어 녀석들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 파리를 쫓는 일조차 귀찮아했는데 어쩌면 이른 더위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녀석들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것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반대로 거세한 숫말은 아까부터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소금에 절인 육회, 소금에 절인 말고기 육회 - 부릅뜬 눈이 긴장감을 드러내며 나의 접근 자체를 기피했다. 청소 솔을 들어 보이며 줄을 잡으려 하자 뻣뻣하게 굳어 가뜩이나 긴 주둥이를 더욱 길게 내밀었다. 가만 보니 땀도 흘리는 눈치다.
『그러니까 얌전히 굴란 말이야, 인석아.』
숫말은 소심하게 푸르르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젖혔다.
덕분에 얼굴에 침이 튀었지만, 뭐 괜찮다. 나는 그걸「보복행위」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마사 청소는 그야말로 두뇌가 쓸모없는 단순 노동이다.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데리고 나가 운동을 시키라고 주문을 받았더라면 많이 곤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라는 건 말 그대로 배설물이 엉겨 붙은 지저분한 곳을 깨끗이 치우고, 물을 뿌려 바닥 솔질을 한 뒤에, 새 짚을 가져와 깔면 끝나는 일이다.
마분 - 그러니까 말의 똥은 버리지 않고 한 곳에 모아두는데 예로부터 화초를 키우는데 이만한 비료가 없다 하였다. 정원을 가꾸는 이들이 앞을 다퉈 가져가겠다 난리를 피우기에 똥도 그만큼 대접을 받았다. 다만 모아두는 장소가 마사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 외발수레에 퍼 담아 그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애로점이 있다.
무거운 쇠스랑을 이리저리 굴려 똥을 한 곳으로 모으고 난 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외발수레는 이름 그대로 바퀴가 하나라서 조금만 실수하면 균형을 잃고 옆으로 자빠진다. 초보자가 다룰 도구가 결코 아니라는 말씀. 힘이 장사여도 요령이 없으면 온몸에 똥 폭탄을 뒤집어쓰게 된다.

『여어, 도토리. 말이 재채기 한다~』
똥 폭탄은 이 경우에도 뒤집어 쓸 수 있는데 사람이 기침을 하면서 불가항력적으로 방귀를 뀌는 걸 상상하면 된다. 유감스럽게도 말은 달리면서도 배변을 하는 동물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초식동물의 항문이라는 건 참으로 절조가 없다.
귀로는 알아들었음에도 반 박자 느리게 반응한 탓에 허리 아래로 오물이 튀었다.
『에잇, 젠장. 야! 너 진짜로 이럴 거야?!』
무어라 야단하자 거세한 숫말이 푸르르 주둥이를 떨며 불만을 표현했다. 하긴, 이 모든 건 생리현상일 뿐으로 녀석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엉덩이를 이쪽으로 쭈욱 내밀고 있는 모습이「고의」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들긴 했어도...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자 말의 귀가 위아래 방향으로 팔랑팔랑 흔들렸다. 내가 보기엔 완전 딴청이다.

등 뒤에서 자손이 큭큭 숨 죽여 웃기 시작했다.
『말이 무슨 죄가 있냐. 경고까지 해줬는데 피하지 못한 쪽이 잘못이지. 안 그렇누?』
사람 아닌 짐승을 편들어준 자손은 한가로운 태도로 휴대용 곰방대를 품속에서 꺼내들었다.
설마, 여기서 담배를 피우려고? 허겁지겁 쇠스랑을 구석에 세워두고 - 그걸 들고 나섰다간 흉기를 들고 황족을 위협한 죄로 태장이 100대다 - 서둘러 만류했다.
『사방에 마른 짚더미가 있습니다. 여기선 화재 위험이 높으니 삼가주세요.』
『허어, 다른 인간도 아닌 이 내가 부주의하게 불을 낼까 싶으냐?』
자손의 한쪽 눈썹이 말도 안 되는 높이까지 올라갔다.
『설령 불이 나도 밉상인 네 녀석과 쓸데없는 말 몇 마리가 타죽기밖에 더 하겠어?』
참 징그럽게도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고집을 피워가며 곰방대에 불을 붙이는 대신 슬그머니 옆구리에 끼어 넣는 걸 보니 안심이다.
나는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말똥을 치우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외발수레를 쓰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있잖아, 도토리야. 진짜로 말고기가 그렇게 맛이 괜찮아?』
『저도 얘기만 들어봤습니다.』
『노루 고기와 비슷하려나?』
『모르죠. 직접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런 주제에 소금에 절인 육회가 최고 어쩌고 떠들어댄 거냐? 쳇, 창리궁 마마에게 한 접시 보내볼까 했는데 관둬야겠군.』
창리궁?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럼 이름의 장소가 없었다. 창리궁 마마라는 건 또 누구일까. 황제의 여러 비빈들 중 한 명일까? 슬그머니 발등으로 시선을 내리고 나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관두고말고 처음부터 무리에요. 애초에 어느 말을 잡으려고요.』
『뭐가 걱정이야. 아무 말이나 내키는 대로 한 마리 골라서 목을 베면 되는데.』
『그럼 안 되죠. 엄연히 말 주인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내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이것들 전부가 결국 이사실의 소유물이다.』
『아니오, 이건 송주라는 자의 사유 재산입니다.』
순간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게 뭐였더라,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곰방대가 불쑥 나타나 내 머리를 때렸다.

『아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인석아, 너는 네 애비에게 뭘 배웠느냐. 이럴 적엔 손바닥을 비비며 당신 말씀이 진실로 맞사옵니다, 이러고 아부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이곳에 있는 말 전부가 이사실의 재산입니다. 황제 폐하의 소유물이고, 황실의 물건입니다. 자손께서 원하시면 아무 말이나 그 목을 베셔도 좋습니다. 육회 만들어 잡수셔도 괜찮으니 대신 저에게 한 점 맛을 보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게 정답이지. 너처럼 그딴 식으로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놈이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곰방대 공격이 재차 이루어졌다.
『아얏!』
『발랑 까진 것 같으면서도 의외의 면에서 순진한 녀석이군. 저 숫말을 죽여 그 엉덩이 살로 맛있게 요리를 해먹읍시다, 이렇게 날 설득해야지. 저 말은 널 때리고 마굿간 청소를 시긴 자의 소유물이잖아. 애기 도토리 너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거냐?』
그런 사적인 걸 어떻게 꿰고 있느냐 따져 묻는 것도 잠시 잊었다.
나는 따끔거리는 정수리를 문지르며 그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세요, 이러고 소리를 질러댔다.
『당사자에게 복수를 하면 하는 거지, 말 엉덩이를 육회로 만드는게 무슨 복수가 됩니까!』
그렇게 외치자 속이 텅 빈 곰방대가 눈앞을 왔다갔다 움직이며 위협 아닌 위협을 가했다.
『아버지가 미우면 그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미우면 그 집의 개를 죽이는 거야. 그걸 모르느냐.』
『압니다! 모르긴 뭘 몰라요!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그걸 실제로 행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요.』
『호오?』

나는 조금 화가 났던 것 같다. 어쩌면 흥분한 건지도 모른다.
똥을 외발수레에 하나 가득 퍽퍽 퍼 담고는 손잡이를 불끈 잡았다.
그리고 다섯 걸음도 채 떼지 않고 수레를 옆으로 멋지게 뒤집었다. 사방이 똥이었다.
『그럼 당사자에게 직접 복수할 거야?』
넘어져서 어떻하냐, 진작에 조심하지, 이런 얘기는 죄다 잘라먹고 자손이라는 자가 하는 말은 이거였다.
맵고 쓴 맛을 풍기면서 동시에 조청처럼 달콤하게.
덕분에 이가 썩으려 했다.
상체를 기울이더니 수레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나와 가만히 눈높이를 맞췄다.
『복수할 거지?』
그러고 미소를 짓는데 세상에, 도원에 산다는 날개옷 선녀가 강림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Posted by 미야

2015/06/05 10:27 2015/06/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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