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라는 단어는 어쩐지 혀에 올리기가 껄끄럽다.
원수를 갚는다고 하면 뭔가 힘들고 불편한 일을 억지로 해치운다는 기분이 든다. 잘 흐르던 물을 막아뒀다가 기계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윗동네로 어렵게 퍼 올리는 거와 흡사한 느낌이랄까, 하여 나는 복수라는 단어 대신「대가」라는 표현을 애용하는 편이다.
모든 행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니는 법이다. 벌레가 많다고 나무를 베어내면 시원하던 그늘이 사라지고, 쥐가 많다 독약을 풀면 배를 굶주린 올빼미가 쥐 대신 닭을 채어간다. 그런데 이 올빼미가 뒷마당 닭장을 공격하는 건 쥐약을 놓은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연속 현상에 불과할 뿐으로 이것에는 기분 나쁜 인위적인 힘의 개입이라 여길만한게 없어 전반적인 줄거리와 그 그림이 매우 자연스럽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낫을 빌리러 온 이웃 농부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면 그 다음 날 밭을 가로지르는 길에 장대가 걸려 사람의 통행을 막게 되는데 나는 이것을 일컬어 이웃 농부의 졸렬한 복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낫을 빌려주지 않은 대가이고 그것에 대한 인과관계다.

자손은 이거나 그거나, 엎치거나 뒤치거나 서로 똑같지 않느냐며 어리둥절해 했다.
『도대체 그 둘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지?』
나는 쭈그려 앉은 자세로 양손으로 냄새나는 말똥을 땀이 나도록 주물럭거리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낫을 구하지 못한 농부가 복수를 한 거라고 결론을 내리면 길을 막는 장대를 내건 행위는 명백히 증오라는 감정에 의한 것이 되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낫을 빌려주지 않은 내 행동에 대한 대가라고 설명하면 동전 세 닢을 주고 마치 시장에서 떡을 사는 것과 같아서 미움이나 증오라는 감정의 개입을 가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호라, 그런 얘긴가. 자손이 무릎을 때렸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다.』
하지만 곧바로 반박했다.
『허나 지금의 네 얼굴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그렇게 말한 자손은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싫은 냄새를 멀리 날리거나, 더위를 식히기 위함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스러운 걸 보다 멀직히 떼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외발수레 도구따윈 진작에 내던진 채 맨손으로 똥을 만지면서 악귀처럼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으니 복수가 아닙네, 증오가 어쨌네 하는 얘기 전부가 공염불과 마찬가지, 그것도 아니라면 한낱 말장난에 불과했다. 나는 입으로 흐흐 소리를 내며 모래밭에서 장난을 치는 어린애처럼 말똥으로 성을 쌓으면서 그것을 툭툭 두드려 표면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끔씩 배설물이 두껍게 발려진 손바닥을 옷자락에 문질러 닦았다. 그러면서 어딘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흐흐, 웃음을 흘렸다.

『그것으로 어쩌려고?』
『대가로 가져갈 겁니다.』
『어.., 그래. 너도 화초를 키우느냐?』
이 인간도 마분이 매우 훌륭한 거름이 된다는 걸 알고 있나 보다. 그런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똥을 적절히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화분 안에 묻으면 그 독성으로 인하여 식물이 죽는다.
달걀을 한 번에 여러 개를 줍듯 말똥을 품안에 그러모으며 나는 이마를 찡그렸다.
『어차피 그럴 용도로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제가 화초를 키울 것처럼 보입니까?』
『전혀.』
넌 꽃을 키우는 쪽이 결코 아니야 - 그는 확신하여 그리 말했다. 네가 화분에 무언가를 심었다면 그 정체는 미친광대버섯이거나 아님 흰독말풀일 거야 - 그렇게도 말했다.
농담조로 장난삼아 말한 것도 아니다.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어가며 만성 적자 경영 중인 가게를 이제 그만 매물로 처분하자는 식으로 그리 말했다.
그런 심한 말을 듣고도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화분에 심어진 흰독말풀에 정성껏 물조리개로 물을 주는 내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되어 어깨를 으쓱거렸다. 확실히 내 성격엔 나팔꽃이나 봉숭아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 꼬맹아. 그 지저분한 걸 푸짐히 안고 어디를 가누?』
『왜 저를 따라오십니까. 달리 할 일은 없으십니까?』
『이곳은 나의 집이고 여기는 나의 안마당이다. 내가 내 집에서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이야.』
곁눈질로 흘끔 쳐다보니 이 인간, 뱀 나오게 휘파람까지 불고 있다.
『그러시면 거북합니다만.』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을 하거라. 널 따라가는 나는 그냥 투명인간이라 생각하고.』
투명인간으로 생각하라며 일부러 발자국 소리도 크게 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유령처럼 기척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 모르지도 않는데 갑자기 왜 신발을 질질 끌고 다니며 일부러 나 여기에 있소 광고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거기 너! 이봐! 그런 더러운 꼬라지로 어디를 감히... 어엇!』
충격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한 하수 두 명과 경비병이 맨발로 달려왔다.
그러다「나란 인간 여기에 있소~」를 온몸으로 표시하고 있는 자손을 한 눈에 알아차리곤 그 즉시 달려오던 걸 멈췄다. 더하여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안색에서 핏기도 지워졌다.
『처, 천세. 천천...! 세!』
말까지 더듬는 경비원이 서둘러 예를 올리려 하자 그걸 단칼에 제지했다.
『꺼져.』
짧았으나 압도적인 중량감을 가진 어조였다.
자손이 눈을 한 번 흘기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꽁지에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허겁지겁 달아났다. 뿐만 아니라 주변 공기 자체도 보이지 않는 구멍을 통과해 송두리째 빠져나간 것 같았다. 완벽한 정적, 그리고 완벽한 공백. 거짓말처럼 벌레의 기척마저 사라지자 그야말로 텅 빈 마을에 나와 자손 두 사람만 남겨진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양손에 말똥을 가득 쥔 채로 - 진짜로 이상한 공간으로 뚝 떨어진 건가 싶어 순간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꺼지라는 저 남자의 말 한 마디에 일상마저 지워지다니.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러다 그림자마저 지워지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해졌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내 그림자가 저 혼자 살겠다며 제멋대로 멀리 달아나는 걸 상상했다. 그러다 공기가 빠져나간 구멍으로 휩쓸려 사라져버리는 거다. 우와, 생각해보니 두렵다.

자손은 술명하게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그림자가 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어, 그런데...』
『아, 이건 담배라고 하는 거란다. 꼬맹아.』
쳐다보는 내 시선을 자기 멋대로 해석한 자손은 나른한 표정으로 한가롭게 흰 연기를 내뿜었다.
『이걸 보니 너도 피우고 싶어졌누? 하지만 참아다오. 스물 셋인 나는 얼마든지 피워도 괜찮겠지만 너는 아직 어려서 무리다. 아랫도리에 털이 나면 그때 가서 피우렴.』
『아뇨. 지금보다 나이가 스물 세 살 더 많아져도 그런 거 안 피울 겁니다. 담배는 몸에 나빠요.』
『좋으실 대로.』
자손이 무심하게 다시 흰 연기를 내뿜었다.

글쎄다. 이 남자가 누구를 닮았는지 짐작이 안 갔다. 내 친구의 젊은 시절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비슷한 구석이 아주 없지는 않으나 그거야 혈통이 같으니 당연한 거라 할 수 있고...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쌍꺼풀이 없는 눈은 청결감과 기품이 있고 콧망울에 약간 살집이 있다. 턱 선이 보다 뾰족하고 눈썹이 흐렸으면 내 친구의 여동생이었던 기후화려 황녀와도 상당히 닮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고 그 분위기다. 이 남자는 묘하게 살벌하면서도 변덕스러운 기운이 있다. 옆에 있으면 이유 없이 불안이 솟구친다... 누구의 아들일까.
『이번엔 또 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말똥을 꼬옥 품에 안고 목적지인 교당을 향해 부지런히 걸을 뿐.

Posted by 미야

2015/06/07 14:34 2015/06/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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