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들이 어디서 개수작질이야.」
혈압이 치솟아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일일이 맞대응하기도 피곤한 노릇이라 나는 잠시 생각한 끝에 귀가 먹어 아무 말도 못 들었다 거짓 행세를 하며 그들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땅을 보고 걷는 나를 가로막았다. 손을 봐주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내 의도 따윈 가볍게 묵살될 수밖에 없었다. 무리 중 이른 여드름이 난 소년이 우악스럽게 내 팔뚝을 잡더니 송주 앞으로 데려가 다시 세웠다. 좌우로 흔들어 뿌리치려 했지만 손아귀 힘이 제법 셌다. 버둥거리자 이번엔 아예 양팔을 잡혔다.
이런 자세일 때 배를 맞으면 내장이 끊어지는 것처럼 상당히 아픈 법이다.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지만 나는 아랫배를 잔뜩 집어넣고 힘을 주었다.
『네가 지금 이일 저일 가리게 생겼어? 마굿간 청소라도 감지덕지 생각해야지. 게다가 넌 지금 이사실에서 공짜 밥을 먹고 있잖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뭐라도 일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이 거렁뱅이야.』
그런데 이 인간은 미리 짐작했던 것과 달리 배를 때리지 않고 내 뺨을 후려쳤다.
맞을 거라 각오했던 부위가 아닌데다 아무래도 얻어맞은 곳이 얼굴이다 보니 충격이 훨씬 컸다. 순식간에 입안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는데 통증은 둘째고 머리를 맞았다는 치욕감이 대단했다.
노리고 일부러 그런 거라면 칭찬할 만하다. 도발이 뭔지 잘 안다는 의미니까.
『어쭈? 이 녀석 표정이 달라졌다.』
『노려보면 어쩔 거냐.』
『어이, 송주. 한 대 더 갈겨.』
성미 고약한 녀석은 친구의 부추김에 내 왼쪽 뺨마저 갈겼다.
고개가 획 돌아가면서 눈앞으로 별똥별이 반짝였다. 이번엔 입술이 찢어졌는지 피 맛이 느껴졌다.
『알겠어? 마굿간을 청소하는 거다.』
송주는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날 다그쳤다. 청소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더 심한 폭행을 가할 기세다.
그래봤자 나는 눈앞에 들이밀어진 손가락을 씹어 먹겠다며 노려봤다. 목구멍 안쪽에서 폭우로 불어난 개천이 바위를 굴리는 으릉 소리도 났다.
『내가 왜 마굿간을 청소해야 하는데?』
『이 녀석은 기억력도 형편없군. 말했잖아. 이사실에서 공짜 밥을 먹여주면 일을 해야지.』
『이사실에서 공짜 밥을 먹여주는 댓가로 마굿간 청소라... 그렇다면 나더러 황제 폐하의 군마장에서 말을 돌보라는 얘기냐?』
송주는 그 무슨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법도 했다. 말은 상당히 비싼 동물이다. 그리고 황제의 군마는 으뜸 중의 으뜸이라 때로는 사람보다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나 같은 계집은 당연히 근처에도 갈 수 없고 군마장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육사가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말을 돌보는 자의 계급은 쌀 창고지기보다 두 계단 더 위다. 당연히 녹봉도 많다.
『주제를 알아야지. 네가 돌볼 말은 군마장의 말이 아니고 우리 집에서 가져온 세 필마다.』
『어째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따져 묻는 내 목소리는 앙칼졌다. 바다에서 큰물이 육지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들판을 덮고, 야산을 덮는, 무겁고 어두운 물. 그것은 잠시 왔다 사라지는 종류가 아니었다.
『말이 되지 않잖아. 공짜로 먹이고 재워주시는 황제 폐하의 은덕을 입은 내가 그 감사의 마음으로 너희 집 말을 돌봐야 한다는 거냐? 그래선 아귀가 안 맞아.』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하다. 송주가 어, 하고 콧잔등을 찌푸렸다.
『하, 하지만 넓게 보면 우리 집 말들도 결국은 황제 폐하의 소유물이니까... 이사실의 주인은 폐하이시다.』
『그럼 따져 묻자. 네 말들을 가져다 팔면 그 돈은 온전히 황제 폐하의 것이냐, 아님 네 것이냐.』
『어... 그건.』
이윽고 내 목소리는 아쟁이 내는 가장 높은 음역까지 올라갔다.
『이 고등어 회충 같은 놈! 왜 말을 더듬어. 결국 아니라는 거잖아. 잘 들어라, 그렇다면 네놈은 황제 폐하가 내려주신 은혜를 적손이 아닌 네놈과 네 집안에 갚으라고 감히 요구한 거잖아. 그것이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모리배의 행위! 창피한 줄 알아야지!』
송주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당연히 부끄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이유로 혈색이 바뀐 것이다.
『이, 이놈이!』
말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다음으로 등장할 건 폭력이다.
뺨을 치는 것만으로는 분을 삭힐 수 없었던 그는 주먹을 쥐고 나의 가슴 부위를 쳤다. 뼈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 몸을 웅크리자 이번엔 무릎이 같은 부위를 치고 올라왔다.
비명도 못 지르는 상황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아마 나는 꼴사납게 벌린 입으로 침도 뚝뚝 흘렸을 것이다. 진짜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려 했다. 흉부를 정통으로 맞으면 멎었던 심장도 도로 뛴다고 하니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찌르르 울리던 울림은 그 즉시 수천 배로 확산되어 내부 장기를 위아래로 뒤흔들었다. 덕분에 의식이 흐려져 사람 얼굴이 으깬 감자처럼 보였다.
『잡아 올려!』
명령이 떨어지자 양팔을 붙잡고 있던 소년이 발뒤축을 높게 세웠다. 덩달아 내 몸도 둥실 떠올랐다.
그야말로 표적으로 삼기에 안성맞춤, 잡아당겨져 상의가 말려 올라가 배꼽이 드러나려 했다.
『이게 입은 살아가지고!』
어렵사리 실눈을 뜨고 보니 녀석이 오른손을 말아 쥐고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기로 하고 그나마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다리를 뻗어 송주의 거시기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크어억!』
나도 남자였던 적이 있어 그 고통에 대해 잘 안다. 보나마나 시커먼 나비가 공중을 어른대었을 거다. 국부를 움켜쥔 소년은 솥단지를 철쑤세미로 긁어대는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좋다 이거야. 나는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걷어찼다. 이번엔 거리가 다소 짧았다. 제기랄, 기함하며 또 한 번 발길질했다.
아쉽게도 세 번째 공격은 완전히 헛발질로 끝났다. 내 양팔을 붙잡고 있던 소년이 황급히 내 몸뚱이를 끌고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야말로 아랫배에 힘을 줄 때라고 직감했다. 각오하는 것과 동시에 구경하고 섰던 이들이 저마다 욕을 퍼붓고 주먹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곧 힘으로 밀쳐서 구르면서 넘어졌고, 코가 뜨뜻해졌다. 아무래도 코피가 터진 것 같았다.
『변방인 주제에 어디서 감히!』
그들은 나를 벌레를 잡듯 계속해서 밟아댔다.
『당장 오늘부터 마굿간 청소를 하도록 해! 아니면 죽을 줄 알아!』
흘러나온 피가 숨구멍을 막아 나는 어쩔 수 없이 헐떡거릴 수밖에 없었다.
『알앙어. 그망 때려. 마궁간 청소 항게. 하지망 옹짜로는 앙야!』
『지금 뭐라고?』
내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던 소년들은 저마다 손바닥을 귓가로 가져갔다.
『다시 말해봐.』
『청소는 항 거야. 다망 댕가 없잉 안 해.』
『청소는 하겠지만 대가 없이는 안 하겠다고? 지금 네가 말한 내용이 그거야?』
맞다는 의미로 나는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타구니가 아픈 탓에 여전히 등을 구부정히 한 송주가 이를 갈아댔다.
『웃기고 있네. 돈은 못 줘. 이 빌어먹을 놈아!』
빌어먹을 년이라고 정정해줘라, 이 회충 같은 놈.
『동은 필요 없어. 너한테 돈 안 받아.』
입안에 고인 피를 퉷, 하고 뱉으면서 말했다.
『돈은 필요 없다고?』
『그래. 내가 웡하는 댕가는 돈이 아니야. 다른 거야.』
나는 핏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을 들어 녀석들을 하나하나 쏘아보며 머리속에 각인해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