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걸음을 재촉하면 할수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예상했던 건물의 자태가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제자리에서 멈추어 서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녹아내릴 것 같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것은 빈사의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오래되어 낡은 건물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상태여서 단청의 고왔던 칠은 비바람에 지워져 맨 바탕이 겉으로 드러났다. 나무결이 상해 그 표면은 매우 거칠었고, 회벽의 일부는 탈락되었다. 길에 자라난 잡초만 겨우 뽑았을 뿐으로 전반적인 인상이 밑둥부터 병들어 썩어가는 고목과 흡사했다.
글쎄다. 사정이 생겨 건물만 내버려두고 중부고를 다른 장소로 옮긴 걸까? 의심의 눈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시설은 제법 낡은 편이긴 했다. 하지만 건물이라는 건 50년만 딱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서 사람이 손으로 지속적으로 가꾸고 수리하면 천 년도 간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오른쪽 방향으로 건물 외관을 따라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인기척은 전혀 없었으나 희미한 온기는 남아 있었다. 힐끔거리며 위를 쳐다보자 단단히 닫긴 창문으로 어른 손모양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걸레로 창틀 먼지를 닦는 일은 없었으나 환기를 위하여 열고 닫는 행위는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잡초의 일종인 개불알풀이 파란 꽃을 점점이 피우고 있었다. 제멋대로 군생을 이룬 잡초는 원래부터 이 자리는 내 영역이라는 당당함을 앞세우고 돌이 깔린 통로까지 넘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예전엔 화단이었을 곳으로 접근하여 손바닥으로 망원경 모양을 만들어 1층 창문 안쪽을 염탐했다. 내부는 어두워 그 안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안에 방문객이 없는 건 확실했다. 의자와 책상은 가지런했고, 각이 잘 맞은 탁자 위에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놀라운 건 쌓여만 있는게 아니고 아래로 넘쳐흘러 책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엎어져있었다는 거였다. 마치 도둑이 들어 온 집안을 뒤지고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인상이다. 그 참혹한 광경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시험 삼아 창문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러자 덜컥 소리만 났을 뿐으로 아무래도 안으로 걸쇠가 잠겨 있는 듯했다. 답답한 심정에 창틀을 두드렸다.
『안에 혹시 누구 없습니까. 여보세요?』

이상한 녀석을 봤다며 응답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어둠 가운데서 인영이 불쑥 떠올았다.
『아이, 깜짝이야. 이보시오, 오늘은 목요일이 아니잖습니까.』
약간은 부운 눈을 하고 있던 그 자는 아마도 부고의 말단 관리인 듯했다. 숙사감과는 색이 다른 의복을 입고 있었고 그 빛깔은 푸른색이었다. 정리 중이었는지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내가 선 위치에선 그가 들고 있는 책의 제목은 읽을 수 없었다.
『갑자기 창문이 덜컹덜컹 흔들려 놀랐소이다. 유령인줄 알았잖소.』
『목요일이 아니라뇨?』
『이 부근에선 저승대부 유령이 간혹 나온단 말이오. 사람 간 떨어지게 만들 일 있소?!』
동문서답을 한 그는 - 라기 보다는 자기 할 말만 주억거린 말단 관리는 손가락으로 내가 반드시 봐야만 했던 안내판을 가리켰다.

- 목요일에만 개관

아마 나는 매우 놀란 얼굴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입을 일그러뜨렸을 수도 있다.
『저승대부 유령이라뇨? 그게 뭡니까?』
『여기 중부고는 목요일에만 문이 열린다오. 보아하니 잘 몰랐던 모양이군.』
서로의 대화가 계속에서 어긋났다. 나는 급히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잘 몰라서 다시 여쭙습니다. 오로지 목요일만 문을 연다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이곳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중부고가 아니옵니까. 도서관을 일주일에 단 하루만 문을 여는 법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답니까. 혹시 착오 아닌가요?』
혹시나 싶어 숙희가 만들어준 나무패를 꺼내어 그가 볼 수 있도록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내 이름이 적힌 나무패의 효력은 그야말로 형편없어서 사내는 그걸 본체만체 하였다.
『어린 자가 이상한 소리를 쌈 싸먹네. 옛날부터 그리하였는데 거 무슨 소리요. 어쨌든 오늘은 화요일이니 이틀 뒤에 다시 오시오.』
『예전부터 그랬다고요? 진짜 그렇다는 말입니까.』
『최소한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소.』
『말도 안 돼!』
날카롭게 외치자 사내는 다소 불쾌한 얼굴을 했다.
『이보시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한 다는 거요?』
『그런 의미는 아니고...』
『이래서 변방인들은 안 된다니까... 쯧.』
기가 막혀하는 날 내버려두고 사내는 부운 눈을 비비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 움직임이 기괴할 정도로 느려 나는 그가 이곳에 가끔 나온다는「저승대부 유령」본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쨌든 헛걸음을 한 탓에 나는 화가 좀 난 상태였다. 애기동백을 따라 걸으며 애꿎은 숙희를 욕했다.
『진작에 가르쳐줬으면 좋았잖아!』
하지만 아까 봤던 말단관리 남자는 이렇게 말을 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래왔다고.
남자의 나이는 못해도 서른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다면 일주일에 딱 하루만 문을 여는 일이 당연하다 여겼을 터, 일부러 설명을 하고 자시고의 까닭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정상이냐고.』
것도 그렇고 저승대부는 또 뭐란 말인가. 이름부터 촌스럽다.
『공부에 진력난 자가 밤늦게 높은 장소에서 투신이라도 했나... 뭐, 쓸모없는 상상이겠지만.』
터벅터벅 걸어 이번에는 지름길이 아닌 도보를 따라 올라갔다.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명각루 주위를 지루하게 돌아 예의 샛길이 있는 현선당 부근으로 이르렀을 적엔 나는 비참하다 못해 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아이고, 저놈들은 일부러 수업에도 안 들어갔나.」
연회당에서 가래를 뱉은 건정과를 나에게 먹이려 들었던 소년이었다. 그 건정과를 입에다 넣었다 도로 뿜었으니 뒤집어쓴 입장에선 원한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댓가를 치루게 해주겠다 소리를 질러댔던게 으름장은 아니어서 오늘은 자기 친구들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내 행방을 찾아 주변을 계속 수소문하며 돌아다닌 눈치였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그야 이런 좋은 날씨에 겨드랑이가 땀에 젖어 있었으니까.

『여어, 가난뱅이!』
언제부터 내 이름이 가난뱅이가 되었단 말인가.
『오전 무렵부터 어디를 그렇게 부지런히 다녀오는가. 구걸이라도 하러 갔다 왔는가.』
창의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재미도 없는 농담이었다.
나는 대꾸할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걸 무리들은 자기들 좋게 해석을 내려 내가 지레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라고 착각했다.

『어때. 소득은 좀 있었어? 꽤나 멀리 다녀 온 모양인데.』
『그러지 말고 한 푼만 줍쇼, 우리에게도 빌어보지 그래.』
『잠깐 기다려봐. 그건 아니지! 송주 너는 저 녀석이 진짜로 한 푼 달라고 하면 기꺼이 돈을 줄 거야? 그건 곤란하다고?』
『하긴, 대놓고 거지 취급이었나.』
『그래. 그건 네가 잘못한 거야.』
이놈들은 서로 사이좋게 북도 치고 장구도 쳤다.
『자고로 공짜로 구걸하여 빌어먹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개나 돼지도 아닌데.』
『과연... 네 말이 맞다.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으려나?』
『마굿간을 청소시켜.』
『오오, 그거 괜찮은 생각이다, 송주. 그거야말로 적격이지.』
송주를 비롯해 소년들은 저마다 흐믓한 표정을 지으며 옳소, 옳소 소리했다.

Posted by 미야

2015/05/31 22:40 2015/05/3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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