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급자족용 오리지널 습작입니다. 큰 카테고리로 "오남 이야기" 라 했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남이 아니라는게 함정...


『죄송합니다, 바퀴살을 연결하는 부품이 손상을 입고 부러졌습니다. 험한 산길을 계속 다니다보니 아무래도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요. 사전에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게 불찰입니다.』
『어쩌죠, 다시 고쳐서 움직이게 하려면 시간이 좀 들겠는데요.』

본가에서 여행길에 붙여준 하인은 푼돈으로 계약한 뜨내기가 아니라 반대로 그 신분이 명확해서 그중 머리가 희끗희끗한 쪽은 모르는 얼굴도 아니었다. 본당과 내당을 오가며 잔일을 하던 자로 아마 이름이... 티아평, 아니면 타평이다. 배다른 동생 리세리의 어머니가 시집을 올 때 친가에서 데려온 자로 묵직한 느낌의 사내다. 리세리와 같이 놀다 동생이 넘어져 무릎을 다쳤을 적에 호통을 치며 내 뺨을 호되게 친 적이 있다.
나는 눈을 가늘게 하고 서른 중반에 접어든 사내와 쉰이 넘은 사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젊은 쪽 이름은 미리노이고, 농짓거리를 하며 관자놀이에 대고 손가락을 빙빙 돌리는 것으로 나를 천치바보로 묘사한 사람이 바로 그다. 술을 매우 좋아하고 말투와 행동이 다소 천박한 편인데... 뭐, 지금은 그런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마차에서 내려「그만 똑 부러지고 말았습니다요」라고 지적당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어쩌다보니 부러진 거라고?
「젠장맞을, 날붙이로 찍은 흔적이잖아, 이건.」
코를 대고 가까이 보면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얕은 깊이로 가늘게 흠집을 내었으니 눈으로도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당장은 마차를 운행하기에 큰 무리가 없다. 잘 포장된 도로를 얌전하게 달렸으면 한 달은 족히 무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 뿌리에 걸려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식으로 충격이 반복되면 상처가 곪아 벌어지듯 서서히 뒤틀리다가 결국 한계점에 이르러선 반으로 쩍 쪼개진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미리노가 바퀴를 툭툭 걷어차던 걸 떠올렸다.
그건 단순한 버릇도, 바퀴에 달라붙은 진흙을 털어내기 위한 동작도 아니었던 거다.

작은 상자 속의 구슬이 핑핑 소리를 내며 튕겼다. 오만가지 생각 또한 핑핑 부딪치기 시작했다.
「황제에게 바칠 공물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아. 그건 이미 두 달 전에 따로 출발했지. 횡재를 했다 싶을 정도의 큰돈은 여기엔 없다.」
그리고 나는 누구처럼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로 치장하지도 않았다. 출발하기 전 머리를 짧게 깎였고, 입은 옷은 평상복이나 마찬가지인 수준으로 조각이 된 옥 단추가 달려있는게 전부다. 반지나 팔찌, 귀걸이는 안 차고 있다.
「이런 단추를 강제로 빼앗아 팔아치우기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을까 싶은데.」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은 마차가 망가졌다는데도 태평스런 표정이다. 타평은 그렇다치고 미리노는 능글능글 웃고 있기까지 하다. 원래 저런 인상이었던가, 소름이 끼쳐 두 팔의 털이 곤두섰다.
「이 앞은 단가고한이다.」
예전부터 요마에 대한 소문과 전설이 무성하게 전해지는 곳이다.
「피투성이 옷을 가져다가 리리마쿠나 로쿠리의 짓이었다고 둘러대면 제법 그럴 듯하게 들리겠지.」
물건을 노리기 위한 행동이라기 보다는 나를 노린다고 봐야 한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계획이었을지도.」
사고로 위장하여 사친으로 가는 딸 아이를 시체로 만들고 그 몸에 값을 붙인다. 모르긴 해도 제국에서는 기꺼이 위로의 의미로 장례비를 지급할 것이다.

순간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들었다.
모르겠다. 이렇게 되리라고 짐작했기에 할멈은 나에게 치마를 벗겨내고 강제로 바지를 입혔던 걸까.
혼란스러웠다. 그 집에서 내 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항상 무뚝뚝했고 때로는 잔인했다. 멍이 들도록 내 팔을 잡아당긴 적도 많고 머리를 빗겨준다며 엉킨 걸 강제로 뜯어버리기도 했다. 손녀딸 대하듯 상냥하게 날 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안즈 님. 당신은 어머니로부터 천한 핏줄을 이었습니다.

주입하듯 내 귓가에서 읊조렸던 건 멸시의 말들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지려 했다.
그런 말을 지겹지도 않게 매일 매일 지껄였음에도... 그래도 동정했던 걸까. 속으로 가엾다 여겼던 걸까.
「운이 좋으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여겼는가!」
그래서 이런 굽 낮은 신발을 신켜 먼 길을 떠나라 등을 떠밀었던 건가.

미리노가 납작하게 생긴 콧잔등을 손등으로 북북 문질렀다.
『안즈 님, 그럼 저는 다른 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습니다요. 저희 탓에 일정을 지체할 수는 없으니 그냥 먼저 앞장서시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뭐, 걱정하지 마세요. 나흘 거리에 서남문이 있고 마차를 고쳐 부지런히 따라가면 저희도 그렇게 많이 늦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 가능성은 적었지만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
『혹시 도와줄 사람을 구할 수는 없겠는가.』
사내는 썩어가는 생선냄새를 풍기며 비릿하게 웃기만 했다.
『글쎄요.』
이로서 누군가 동정심에 손을 빌려주겠다 나서도 손사레를 치며 극구 사양할 거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들이 고장난 마차를 길 가장자리로 옮기며 다른 이들에게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나는 옷 보따리를 풀러 쓰지 않는 허리끈을 두 개 꺼내 재빨리 발목을 둘러 감았다.
「늙어서 죽을 거다. 절대로 늙어서 죽고 말테다.」
병으로 죽는 것도 싫지만 살해당하는 건 더더욱 싫다. 이런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하늘이 주신 수명이 다하여 가족들이 슬픔으로 지켜보는 가운데「후회는 없구나」읊조리고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지금 이 몸은 열 살도 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안즈의 인생이 가엾다.
『후우... 숲속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크게 낮지만.』
저체온증에 걸려 죽을 수도 있고, 산짐승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으며, 실족하여 절벽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수중에는 물도 없으며 몸을 보호할 도구도 없다.
『그래도 발버둥은 한 번 쳐봐야 하지 않겠어?』

가만히 귀를 세운 뒤 눈치를 보며 마차에서 다섯 걸음 멀어졌다. 소피라도 보려는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려 노력하며 다시 열 걸음 뒤로 걸었다. 타평은 여전히 하급 관리로 보이는 자와 대화 중이라 이런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일정을 책임지던 관리가 뭐라고 야단치자 허리를 굽신거리느라 바빴다. 그래도 작은 주머니가 등장하자「도대체 무슨 일을 그따위로!」등등의 소리가 잦아들고 조용해졌다.
미리노는? 좌우를 살피며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세워둔 마차가 시야를 가려 아직까지는 들키지 않은 듯했다.
『용신님, 굽어 살피소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15/05/03 20:20 2015/05/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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