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급자족용 오리지날 습작입니다.


가지라고 내민 몇 가닥의 솔잎을 쳐다보는 소년의 눈빛은 들개처럼 사나웠다.

가족과 헤어지고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강제로 뜯겨져 나온 아이들은 대다수 겁에 질린다.
겁에 질린 인간이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숨는 것이고 하나는 공격하는 것이다.
어른과 달리 신체가 덜 발달한 아이들인 만큼 아무래도 공격을 시도하기 보다는 몸을 작게 움츠릴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기 일쑤다. 판단력이 미숙한 탓도 있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흥분하기에 그러하다.
더 가까이 가면 물어뜯길 것 같아 이대로 관둘까 싶었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한 걸음 앞으로 더 다가갔다. 실제로는 나보다 키가 한 뼘은 족히 컸지만 겉모양만 어린애인 나와는 달리 상대는 진짜 어린애다.
쳐다보는 눈빛이 몹시 광망하다 여기는 대신 시범을 보이고자 녹색의 잎을 앞니로 깨물었다.

『무슨 짓이냐.』
그래봤자 미친놈 쳐다보듯 하는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만.
『멀미가 심하다고 들었어. 이러고 있으면 조금 진정되거든. 자, 이거.』
아이 눈치를 보던 나는 약간 비굴한 자세로 실실 웃었다.
『속는 셈치고 입에 물고 있어봐.』
가만히 손안에 잎사귀를 쥐어주자 소년의 표정이 바람 빠진 가죽공처럼 팍 찌푸려졌다.
글쎄다... 이딴 쓰레기는 필요 없다며 팽개치려나.
하지만 소년은 그럭저럭 예의발랐다. 뭐 씹은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배운 구석은 있어서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썩 내키지 않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떡거렸다. 요컨대 최소한 고개는 끄떡거렸다.
『나는 멀미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속이 좋지 않았을 뿐이야.』
『그려, 속이 안 좋다 치고 입에 물고 있어봐.』
『괜찮다니까.』
『괜찮지 않다는 걸 아니까 이러지. 자, 멀미는 결코 부끄러운게 아니야. 그러니 입에 넣어봐.』
나의 지적질에 옆으로 치우쳐져 있던 눈동자가 다시 불꽃을 뿜으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면 천성이 사나운 건지도 모르겠다. 쏘아보는 기세가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를 바라보는 듯하다. 그 기세가 내가 아는 누구를 꼭 닮아서 나도 모르게 반가움 마음이 들었다.

멀미 탓에 식사도 제대로 못 했으면서 빈정 상해 화가 치솟았던지 소년은 배에 잔뜩 힘을 주어 버럭 외쳤다. 덕분에 발음이 귀에 쏙 잘 들어왔다. 대륙어 표준말이었다.
『너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준 걸 아무렇지도 않게 넙죽 입에 넣고 그러나 보지?』
『그러는 넌 이런 잎사귀에까지 독이 발렸다 생각하는 거냐?』
『뭐?!』
비아냥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맞받아치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하다. 입이 살짝 벌어진 채 이쪽을 쳐다보는데 그 상대방이 말대답은 따박따박 잘하는 주제에 싱글벙글 웃기까지 하고 있어서 더 기가 막히는 눈치다.
자자, 그러니 그만 눈에 힘 풀고 이거 받으셔.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요.
『여기 이상한 거 안 묻었어. 진짜야.』
『그런 생각은 안 했어. 다만 네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을 뿐이야. 약초도 아닌데 그런게 효과가 있을 것처럼 보이진 않... 그리고 너.』
소년이 넌더리를 내며 쓴웃음을 삼켰다.
『그만 해. 이런 식으로 나와 말을 섞고 친해지려고 해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코웃음을 칠 차례였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어. 아무렴 어느 바보가 풀쪼가리 하나로 선심을 사려고 하겠냐.』
손에 쥐어줬던 솔잎을 도로 뺏어다가 입안에 넣고 질겅 씹었다.
『강요하지 않을테니 탐탁치 않음 관둬. 보기와는 달리 가리는게 심하군. 음... 잎사귀 씹는게 싫은 눈치니 생강 말린 걸 추천하지. 효과는 이것과 아마 비슷할텐데... 시종들 중 누군가 양념으로 쓸 종류로 말린 생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 가서 물어봐줄까?』
괜한 오지랖이었을까. 소년이 이 앓는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아랫배를 진동시켜「생강따위 알게 뭐야~!!」소리를 버럭 지른 것과 동시였다.

『어머나~ 왜들 난리람. 어느 쪽이 먼저 싸움을 걸었을지 궁금하네.』
모란꽃이 그려진 부채를 오른손에 쥔 소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색동소매 상의에 비단주름 꽃치마로 화려하게 꾸민 아이였다. 심지어 몇 주간의 마차 여행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복잡하게 땋아 진주장식의 값비싼 머리꽂이로 고정을 시켰는데 몇몇 아이들이 피로에 지쳐 세수조차 귀찮아한 걸 떠올리자면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이질감이 엄청났다.
『보나마나 린청 오라버니겠지. 호호.』
맑게 웃자 공기마저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뽀얀 목덜미에 작고 붉은 입술, 상당히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어 인형 같다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듣고 자랐을 것 같다. 또한 스스로가 예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타인의 시선과 칭송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눈을 동그랗게 해서 쳐다보는 나를 두고도 뺨을 붉히는 법 없이 당당했다. 
『시끄럽다, 추녀.』
물론 눈이 삔 종족도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가만 보니 생김새도 비슷했다. 한 집에서 오빠 동생 두 아이를 사친으로 보냈을 리 없으니 두 사람의 관계는 아마도 사촌일 거라 추측했다. 
『너는 왜 항상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을 거라 단정하지? 휘사.』
『그거야 린청 오라버니가 산적 놈처럼 지랄맞... 크음! 성격이 나빠서 그렇지요. 이렇게 예쁜 아이를 상대로 언성을 높이고... 쯧쯧, 얼마나 놀랐을꼬. 보세요, 아이가 꿀단지를 먹었네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비유가 약간 엇나갔으나 린청이라고 불린 소년은 별 무리 없이 잘 알아들었다.
『걱정 마.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방언 터졌었다. 지금은 널 보고 혀가 굳은 거야.』
『어머나~ 그거 정말?』
소녀는 손뼉을 치며 눈에 띄게 좋아했다.
『나의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잊은 거야? 나이는 어려도 보는 눈이 있구나. 무리도 아니야. 내 자태가 선녀처럼 곱기는 하지. 허락할테니 마음껏 찬양하렴.』

듣다 못해 린청이 꽥 하고 고함을 질러댔다.
『돌았냐?! 이런 산길에서 그런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있음 신기해서라도 누구나 쳐다보게 된다! 도대체 네 녀석 머리속엔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거냐?!』
그 말을 듣고서야 시선을 내려 그녀의 발을 쳐다봤다.
용신님이여 굽어 살피소서. 치마 아래로 드러난 건 진짜로 금락 구두였다. 고가 높고 뾰족하여 실내에서 신어도 발이 끔찍하게 아픈 종류다. 굽의 높이가 한 뼘 이상이기에 몸 균형 잡기는 당연 어렵고 그런 걸 신고 자갈밭을 걸어야 한다면 발톱에서 피가 날 거다. 오죽하면 우아한 고문 도구라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사는 치맛단을 좌우로 펄럭이며「내 신발이 어때서」라고 했다.

『때와 장소를 가려.』
『날 빛나게 하는 일에 때와 장소를 왜 가려. 남자들은 생각하는게 진짜 이상하다니까.』
『네가 비정상이얏!』
『오라버니가 여자 마음을 몰라서 그래. 모래폭풍 지옥에서조차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는게 바로 여자라고.』
그렇게 대꾸하며 한껏 멋을 부려 올린 머리를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Posted by 미야

2015/04/27 14:29 2015/04/27 14:29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903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349 : 350 : 351 : 352 : 353 : 354 : 355 : 356 : 357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1395
Today:
73
Yesterday:
215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