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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바꾸던가 해야지

이용하던 주얼리 공방이 무진장 속을 긁어서 작년에 제작 의뢰한 스피넬 반지는 여전히 A/S 중이다.

의뢰한 모양과는 거리가 멀었고 -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다.
18K로 만들어달라는 걸 14K로 만들었고 - 화났다.
장식이자 금을 덜 쓰게 만들기 위한 장치인 펀칭 구멍을 절반만 뚫어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 용서가 안 된다.

급기야 97만원 현금영수증 발행을 누락시켰다.

못 믿겠다 싶어 다른 공방으로 갈아타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제법 괜찮은 가게를 알기는 알았는데.
으하하하... 장난이 아니다. 부르는 가격이 쎄다. 생각한 비용 더하기 40만원!!!! (털푸덕-)
정신이 절반은 나간 상황에서 콜! 을 불렀다가 태세 급 전환,
더 생각을 해보겠다며 굽신거리는 사죄의 메일을 보냈다.
거래하기도 전에 블랙리스트로 떨어지겠구먼.

공임비는 인건비다. 당연히 여기도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다. 고급 인력이라도 암튼 매년 오른다.
금값은 내렸지만 따라서 가공된 귀금속 제품의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는 중.
여기에 맞춤 디자인은 공방에서 부르는 게 값이라서 뭐, 에누리가 읎다.

그래도 메인 나석 없이 금 2.5돈에 115만원은 너무했어~!!! 나석만 얼마가 들었는데~!!! (빼액)

암튼 취소다.

우울하다. 왜 나는 돈이 읎지. <- 쓰니까 읎지.

Posted by 미야

2019/01/31 17:28 2019/01/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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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Happy Birthday 07

똑바로 누워 배꼽 위를 손바닥으로 덮은 채 넓은 들판을 상상했다.
들이마시고, 내뱉고. 긴장을 풀고 호흡의 간격을 길게 만든다.

들판에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분다. 주위로는 이름 모를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공기의 냄새를 상상하고, 눈에 보이는 꽃의 모양을 상상하고, 발바닥에 닿는 풀의 부드러운 감촉을 상상한다.
나는 맨발로 들판을 걷고 있고, 이곳은 갈증도 배고픔도 없는 세계이다.
이 평온함은 마치 저승을 연상시킨다. 호흡에 맞춰 다시 한 걸음 천천히 내딛는다.

「그거 전생요법 아니냐? 최면에 빠져들어 전생을 자각하게 만든다는.」
「아니오. 마철 선생님. 이것은 잠이 잘 오는 비법입니다.」

나는 전생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만약 전생이 실제하고, 전생의 업보가 현생에 닿아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먼 과거의 내가 아닌 나는 착한 일과는 거리가 먼, 임금님의 수랏상에 몰래 독을 올린 대역죄인 정도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죄 없는 기미상궁이 임금님 대신 덜컥 죽어버린 거지.」
「정말로 전생을 보고 온 것처럼 얘기하네.」
「응. 들판의 끝까지 걷다 보니 마침내 내 전생이 나오더라. 나는 궁궐에서 일하는 소주방 나인이었고 주상전하가 잡수실 쌀을 고무장갑도 없이 씻었지.」
「뭐야, 나기. 아까는 잠이 잘 오는 비법이라며.」

물론 대충 꾸며낸 얘기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전생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전생이 있었다고 믿는 순간 비참해지니까.
따라서 아무도 없는 들판을 나 홀로 헤맨다. 내가 꾸는 꿈속의 그곳에는 곤충도 없고, 새도 없으며, 날짐승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이며, 그리하기에 그곳은 낙원이다.
심호흡을 반복하며 두 팔을 벌린 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어쩐 일인지 코를 간질이는 꽃향기가 인공적인 그것으로 더욱 강해졌다.
이럴 리가 없다. 잠결에 코가 실룩실룩 움직였다. 금방이라도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졌다.
누가 내 낙원에 페브리즈 뿌렸어. 그것도 한통 다 뿌렸어.

얕게 잠들었다가 덕분에 도로 깨어났다.
『어...』
잠들기 전까지는 나 혼자였는데 잠에서 깨고 보니 혼자가 아니다.
뇌 속의 전기배선이 아직 혼선을 일으키고 있는 와중에 내가 자취방 문을 잠그는 걸 잊어버렸나 잠시 생각해본다.
잘 모르겠다.

『이 슬비?』
목이 잠겨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래서 나이 먹은 노인네들이 자리끼를 끼고 잠자리에 드는 건가 보다. 물 한 모금이 간절했다.
『슬비야. 너 여기서 뭐 해.』

나에게서는 옅게 땀 냄새가 나고 있는데 녀석에게서는 진한 바디워시 냄새가 났다.
속으로 아이고 맙소사 신음했다.
남자친구와 격렬하게 살을 섞고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샤워를 한 뒤에, 한밤중에 옷을 다시 입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소꿉친구 자취방으로 이동하여 그 옆으로 슬그머니 몸을 누인다... 정상 아니라고!!

『마철은 어쩌고.』
『몰라.』
이 지지배가! 보통 남녀가 거사를 치루면 아침까지 같이 있어주는 게 상대방에 대한 의리 아니야?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섹스 했으니 바이바이, 이러는 게 세상 천지에 어딨노.
센터에서야 남녀가 유별하니 한 방에 있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지만 우린 이제 다 컸잖아.
애기 만들기 했음 그냥 그 자리에서 자라고! 좀 자라고! 그런다고 아무도 안 혼내.
『아님 혹시 너희 둘 싸웠어?』
『안 싸웠는데.』
잔뜩 갈라져 졸음이 묻어나오는 내 목소리와는 달리 슬비의 목소리는 쌩쌩했다.

팔을 위로 뻗어 1.5V 건전지로 작동하는 중국산 자명종 시계를 붙잡았다. 초록색 형광물질이 칠해진 시계의 바늘은 새벽 4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못해도 4시 전후는 되었다는 뜻, 메이드 인 차이나라서 칼처럼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진 않는다. 아무튼 밖은 아직 컴컴하다.
나는 배게 위로 도로 머리를 파묻었다.
다시 푸르른 들판으로 날 보내주오.

『출근은 어쩌려고.』
『시간 되면 갈 게.』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이야... 다음에는 여기로 오지 말고 집으로 바로 가.』

대학교에 진학한 마철과 달리 슬비는 일찌감치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작은 디자인 계열 회사에서 근무 중이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빈둥거리는 나야 방바닥 장판인양 들러붙어도 크게 상관없지만 그녀는 정해진 시간이면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고 반드시 지하철에 올라야 한다.

「힘들 텐데.」
이런 식의 자기학대는 미래를 망칠 뿐이다.
그렇다. 자기학대다.
멀쩡한 집 놔두고 방황이라니.
뿐만 아니라 꼬박 밤을 새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슬비가 슬며시 몸을 붙여왔다.
『나기... 괜찮으면 주말에 같이 가구를 사러 가지 않을래?』
『가구? 뜬금없게... 화장대라도 사려고?』
『화장대라니. 나기는 립스틱도 안 바르면서 화장대가 필요해?』
뭔가 서로 말하는 게 어긋나는 느낌이다.
『당연히 필요 없지. 지금도 좁아 죽겠는데 어딜. 밥상을 놓을 공간도 없구먼.』
『그럼 냉장고를 치우면 되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화장대를 놓기 위해 냉장고를 버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기가 막혀서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새카만 어둠 속에 눈코입도 알아볼 수 없는 인영이 내 옆에 바짝 붙어있다.
그 모습이 꼭 괴담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 약간은 무서워졌다.

혹시 꿈인가?

불안해져서 검게 보이는 살덩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봤다.
말캉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것이 허깨비라는 의심은 채 가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슬비?』
강요하듯 잡아당겨져 어느새 내 손바닥은 여인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자 느리게 뛰는 심장의 고동이 늦가을 한기처럼 서늘한 체온과 더불어 나에게로 흘러 들어왔고, 나는 두려움에 참지 못하고 밭은 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Posted by 미야

2019/01/29 15:37 2019/01/2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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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Happy Birthday 06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혀 짧은 천진난만한 아이의 목소리로 동요가 울려 퍼졌다.
들려온 노랫가락은 순전히 환청이겠지만 – 다 큰 성인 남자의 생일잔치 자리에서 곰 세 마리 동요를 부르면 정신 나간 사람이다 – 두 발로 우뚝 일어선 곰이 팔을 뻗어 한손으로 농구공을 움켜쥔 모습만큼은 분명 환각이 아니었다.
여기서 잠깐. 민의 머리통을 농구공에 비유하는 건 사이즈 면에서 실례다. 배구공으로 고치겠다.

아빠 곰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 슬비가 뭐.』
그리고 손등 위로 푸른 혈관이 다 튀어나오도록 꾹 힘을 주었다.

수박 통이 작살나면서 붉은 속살이 사방으로 퍼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다만 여기서 박살나는 쪽은 어디까지나 민이 아니다. 영화를 봐도 이런 경우 토벌을 당하는 편은 인간이 아닌 괴수다. 킹콩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추락한다고 대본에 적혀져 있다.
그러니 녀석도 아는 거다. 실제로 곰에게 머리를 통째로 잡힌 민은 불쾌한 감정에 눈썹을 꿈틀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위협은 못 느껴도 조여진 머리는 꽤 아플 텐데, 순간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이야, 마철이 형. 정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합격했다고 들었어. 입학 축하해.』
『나 지금 2학년인데.』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시간 참 빠르네. 미안.』
『괜찮아. 그런 것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암튼 축해줘서 고맙다. 그러고 보니 너도 헐리웃에 진출해서 메이저급 영화 찍게 됐다며. 잘 됐다, 인마. 무릇 사나이라면 좁은 땅덩어리에서 성공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세계로 나가야지.』
『형은 연예계 뉴스는 전혀 안 보는구나. 배역이 FBI에게 총 맞아 죽는 조연급 악당이라고 해서 두고 볼 것도 없이 취소시켰는데. 그것도 6개월 전에. 진짜지 미국 놈들 이중성은 쩔어. 인종차별은 안 된다면서 동양인 취급은 거지야.』
『영화 디렉터를 욕할 일이 아닌 것 같구나, 민아. 네 이미지로는 수사관 역이 안 어울려요.』
『이미지를 따지면 형도 유도나 레슬링 계열이지 정치외교학과는 아니야. 고릴라가 정치라니. 학점 따는데 안 어려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덕담 비슷한 걸 나눈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좀 해보라는 뜻이다.

어쩌라고.
나는 배가 고팠다. 아침부터 먹은 음식이라고는 설탕이 들어간 커피와 유통기한을 하루 넘긴 편의점 에그 샌드위치가 전부다. 그러니 일단 밥부터.
『마철아. 쟤 머리에 힘 줘서 헤어 스타일링 했는데 그럼 왁스 묻어. 손 떼라고.』
『윽!』
『민아. 널 따라온 극성팬들이 아까부터 와이파이 찾고 있더라. SNS에 사진 올릴 것 같은데 내버려둘 거니?』
『젠장.』
뜨거운 주전자를 만졌다며 마철이 손을 떼어냈고, 동시에 눌린 머리가 된 민이 겁대가리 상실한 무수리를 잡고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어, 이것으로 게임 끝. 도망치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그럭저럭 뷔페식으로 차려진 테이블 위의 음식은 한눈에 봐도 죄다 인스턴트였다. 튀김만두, 냉동잡채, 스낵과자, 도넛, 콜라, 뼈 없는 팝콘치킨... 애들 입맛이었다. 쌀밥과 잘 끓인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며 전자렌지로 해동시킨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 이쑤시개처럼 입에 물었다.
김밥도 있기는 했다. 맛이 없어 보여서 문제지.
극혐으로 김밥 안에 길게 썬 오이가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아우성을 치던 위장이 도로 얌전해지려 했다. 나는 식빵 속의 건포도만큼이나 오이가 싫다.
『죽어라, 오이.』
그렇게 욕을 하며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써서 김밥 안의 오이라는 녀석을 푹푹 찔러 테러하고 있는데 누군가 조곤조곤한 어조로 뜯어 말렸다.
『먹을 거에 화풀이 하면 못 써.』

나는 여전히 그날 아침 내리던 비의 냄새를 기억한다.
작은 체구, 하얀 원피스.
붉게 손자국이 남은 마른 허벅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무언가를 간절하게 호소하던 소녀.

『아우러우음.』
『입에 음식 넣고 말하는 거 아냐.』
『아움.』
『어휴, 진짜. 못 말린다니까.』

슬비는 나와 달리 입과 눈이 항상 같이 웃는다. 그래서 가짜라는 느낌이 없다.
슬비가 웃으면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행복해서 웃은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 미소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초록 가득한 정원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한 송이 작은 국화와도 같아서 모르는 새 손에 쥐어 문질러 짓이기는 일 없도록 나는 늘 신경을 쓴다.

『화풀이 같은 게 아냐. 이건 편식이라고.』
『오이 비누는 곧잘 썼잖아. 나기는 오이가 싫어?』
슬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욕실에서 맡던 비누 냄새가 떠오른 모양이다.
『이 경우 냄새가 아니라 맛이 문제지, 슬비. 오이는 쓰잖아. 그리고 비누도 굳이 좋아서 골랐던 건 아니야. 오이 비누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고. 장미향이나 라벤더향보다 30% 더 싸.』
돈이 웬수다 – 라고 후렴구를 외치려는데 손목이 잡아당겨졌다.

민은 여전히 가게 안을 방황 중이었다. 시중들던 무수리들을 일종의 창병처럼 세우고 – 여자니까 물리적으로 밀쳐지는 일은 없을 거라 판단한 듯하다 -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다가오려 했다.
그런데 의외로 디펜스가 만만치 않았다.
마철은 여자애들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대신 꾀를 냈다.
『유명배우 싸인 받아가세요. 이런 기회는 두 번 없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제 생일이에요.』
카페의 문을 활짝 열고 이렇게 말했다.

덕분에 소란이 일었다.
민을 알아본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가게 바깥으로부터 꾸역꾸역 달려들었다.
생고기를 발견한 좀비 떼의 움직임이다. 몽둥이로 격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길 지경이다.

『일단은 피하자.』
슬비가 속삭였다.
작고, 연약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여자의 입술이 귀에 닿았다.
귀 안이 따뜻하게 데워진 습기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민이 시비를 거는 것 같더라.』
『쟤가 나에게 시비 거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신경 꺼, 신경 꺼.』

기둥 뒤편에 숨은 채 좀비 떼에게 휩쓸려가는 인기배우의 최후를 지켜봤다.
내 시선을 느낀 민이 표정으로 욕하며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려보였다.
손가락에는 손가락이다.
나는 엿 드시라며 가운데손가락을 들어보였다.

Posted by 미야

2019/01/21 11:20 2019/01/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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