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까 질문을 받으면 네, 라고 대답할 거다.
그리고 한 5초 정도 뜸을 들인 뒤 조심스럽게 아닐지도, 라고 말을 바꿀 거다.

무릇 일본에서 학교에 다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따돌림이 뭐라는 걸 잘 안다.
의자에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걸레를 올려놓거나, 안 보이는 구석에 압정을 숨겨 놓는다던가, 교과서에 잉크를 부어버린다거나, 교복에 껌을 붙이거나, 양말만 신고 집에 가라며 신발을 쓰레기장에 던져버리거나 하는 식이다. 심각할 경우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일도 허다하다. 예를 들면 담배빵 같은 거.

스가와라 미즈키가 기억하기에 2주 동안 반 아이들로부터 험한 짓을 당한 적은 결코 없다.
그저 무리에 끼워주지 않을 뿐으로 폭력이 동반된 배척행위는 하지 않았다. 좋은 아침, 기합을 넣고 인사하면 고개를 끄덕여줬다. 최소한 반장 하시모토 리코는 그렇게 해줬다. 실망스럽게도 단지 그뿐이었지만.
뭔가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운을 떼면 반장은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자리를 피했다.
하시모토는 마치 고급 회피기능이 달린 고가의 외제 승용차 같았다. 삐삐삐 경고등이 들어오면 장애물을 피해 핸들을 돌려버리는 거다.

노력했음에도 클럽 입부서는 세 번 거절당했다.
라노벨 소설 창작부, 실내 캠핑 클럽, 십자 낱말풀이 동호회에서 연속으로 딱지를 맞았다.
거절의 이유는 인원이 꽉 차서.
실내 캠핑 클럽은 회원만이 4명밖에 되지 않아 정원초과는 순전히 핑계일 거라 짐작되었다. 하지만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부장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텐트가 4인용이야」 라고 설명해줘서 꿀멍하고 말았다.
텐트 속에 4명이 들어가 신나게 과자를 까먹고, 미즈키는 혼자 베개를 끌어안고 텐트 밖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거다. 상상해보고 작성했던 입부 신청서를 세로로 길게 찢었다.

『오늘도 견학이니? 어느 정형외과인지 몰라도 의사가 실력이 형편없구먼.』
체육과목 히무라 선생님이 발목에 감은 붕대를 한 번 쳐다보곤 쯧, 하고 혀를 찼다.
동감입니다, 스가와라 미즈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일까. 뼈가 동강 나도 사흘이면 부활한다는 기적의 연령대임에도 다친 부위의 통증이 영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금이 갔던 건 다 붙었을 거라며 장담하던 의사가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보자 권유하고 얼굴을 굳힌 건 깁스를 푼 자리에 마치 굵은 밧줄로 묶은 것 같은 묘한 자국이 생겨서다.
아무래도 상처가 덧나 염증이 생긴 모양이라며 병원에서 약을 잔뜩 지어주고 주사도 놓았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엉덩이에 맞는 주사와는 종류가 달라 바늘 굵기가 어마어마했다.
고릴라는 고릴 고릴! 바늘이 피부를 꿰뚫었을 적에 미즈키는 끔찍한 격통에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불운의 별이 머리 꼭대기에서 반짝인다.
구석진 잔디밭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미즈키는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둘씩 짝을 지어 스트레칭을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건 괴로웠다. 까르륵 웃으면서 서로 등으로 어부바를 하고 누구의 몸무게가 더 나가는 것 같으냐며 야단이었다. 미즈키에게는 계속 쌀쌀맞게 굴던 하시모토 반장은 방금 전 코끼리에게 짓눌려 죽을 뻔했다며 애교 섞인 농담을 하고 있었다. 반장의 친한 친구,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라던 짝은 살짝 통통한 체형이었다.

어, 부러워 죽갔네. 질투나.

『팔을 수평으로 쭉 뻗고 이렇게! 배구공을 위로 쳐올리는 연습을 한다. 열 번 이상 쳐올리도록.』
『팔 아파요, 선생님.』
『가스나야. 누가 한 손으로 하래?』

우두커니 앉아 구경만 하고 있던 미즈키는 과감히 수업을 째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관심을 안 주는데 뭐.
그렇다고 혼자 교실로 돌아가는 건 좀 그렇고.
기분이 안 좋을 적엔 달콤한 걸 먹어주면 풀린다. 먼지를 털고 일어난 미즈키는 자판기가 있는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마침 주머니에는 100엔 동전이 세 개 있었고 메론 맛 소다를 마실 생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설탕을 증오하는 어린이 건강증진 위원회라는 곳에서 교내 자판기 설치를 전면 금지시켰다.
카제야마 중학교에는 아직 그들의 사악한 마수가 닿지 않아 좋았다.
「겨우 자판기 존재에 위로를 받는 상황이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버튼을 눌렀다. 조금 걸었다고 붕대를 감은 발목이 욱신거렸다.

『부게에억! 어째서 여기서 우롱차가 나오는 건데?!』
초록은 초록인데 그 초록이 아니다. 자판기에서 빠져나온 우롱차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것도 불운의 별 효과냐! 스가와라 미즈키는 절규했다. 전생의 나는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던 거지?! 메이레키 대화재 주범이 혹시 나였던 거야? 상사병에 빠져 죽어버린 열일곱 살 후리소데 소녀가 전생의 나?! 에도를 잿더미로 만든 저주의 원흉이 전생의 나였느냐고!
홧김에 우롱차를 집어던지려고 높게 들었다.
『크읏.』
그럴 리가. 단숨에 끓어올랐던 머리가 도로 식었다.
상사병으로 숨이 끊긴 예쁜 소녀라기보다는 절에 공양된 후리소데를 빼돌려 헐값에 팔아치우려 한 땡중이었겠지. 내 주제에 무슨 사연 깊은 미소녀 타령이람. 자고로 미소녀라 칭하려면 적어도 내 앞에 서있는 저 사람처럼... 그래, 저 사람처럼. 그쯤에서 망상의 실타래가 뚝 하고 끊어졌다.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머리카락은 칠흑처럼 검고, 피부는 투명하다. 뺨 가운데 박힌, 동서남북 방향 네 곳을 찍은 점이 독특하게 시선을 끌었다.
맹세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태어나 처음 보았다.
같은 교복을 입었음에도 이쪽은 선머슴이고 저쪽은 아가씨다. 사극에 등장하는 공주님이다.
공주님이 입술을 끌어당겨 미소를 짓자 눈이 부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심장이 엇박자로 뛰었다.
아, 이게 엄마가 늘 말씀하시던 그 순간이구나.
반한다는 게 이거였어.

미즈키의 심장으로 불벼락이 내리꽂혔다. 영혼을 담고 있던 그릇이 쩍 소리를 냈다.

공주님이 옥구슬 굴러가는 고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나봐. 그 버튼을 누르면 항상 우롱차가 나오거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매번 우롱차가 나왔어. 우리 학년에선 그래서 저칼로리 함정 버튼이라고 불러.』
블라우스 리본의 색이 파랑이었다. 고로 저 사람은 2학년이다.
『후후후. 비명까지 지른 걸 보면 우롱차를 안 좋아하나봐. 나는 좋아하거든. 오렌지 주스를 뽑을 테니 내 거랑 바꿔먹지 않을래?』
『고맙 좋습 바꿉.』
『응?』
고맙습니다, 오렌지 주스 좋아해요. 바꿔 마셔요, 이렇게 말한다는 걸 실수했다.
첫인상을 망친 건 아닐까 고민하는 건 둘째고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다행히 상대방은 개의치 않아하는 눈치였지만.
그녀의 미소가 요요해졌다.
『안녕? 내 이름은 이이지마 하나에야. 2학년의 콧쿠리님이지. 잘 부탁해.』

체육수업을 모두 마치고 배구공 자재를 정리하던 반장 하시모토 리코는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다.
1학년의 콧쿠리님이 견학 도중 탈주했다.
신입생 콧쿠리님은 은근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가끔씩 보이는 행동이 영 예사롭지가 않았다.
언제 사라졌는지도 몰랐는데 친구인 이시즈미 루미의 말에 의하면 제법 일찍이 도주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히무라 선생님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로 끝난 것도 아니어서 1학년 2반 전원이 속칭 기합 넣기 체조라는 걸 1세트 했다.
팔 벌려 뛰기를 하다가 3의 배수가 되는 횟수에 귀 잡고 개구리 뛰기를 하는 걸 기합 넣기 체조라고 부른다. 단순한 것 같아도 근육통을 격발시켜 학생들은 히무라표 징벌 체조라고 바꿔 불렀다.

『히무라 선생님은 인정하지 않는 쪽이잖아. 눈치를 채고 떠본 것일 수도 있어. 1학년 2반에 콧쿠리님이 계신 거냐. 너희들 또 왕따 놀이 하냐. 입학식에 나오지 않은 애가 표적이냐...』
배구공 정리를 돕던 친구가 손바닥을 탁탁 털며 말했다.
『우리 언니 말로는 히무라 선생님, 몇년 전 졸업생 콧쿠리님 때 굉장했다던데. 전교생이 정학당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콧쿠리님 모시는 걸 없애버리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쳤대.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시대에 시치후쿠진에게 복을 빌 거냐면서 3학년들을 강당에 모아 넣고 기합 넣기 체조를 반나절 내내 시켰다는 거야. 밖의 온도가 37도 폭염이었는데. 덕분에 구급차가 몇 대씩이나 오고... 학생회장까지 가세해서 드잡이를 하고... 교사끼리 주먹질을 하고. 뉴스에도 나왔다나 봐.』
루미가 리코의 표정을 곁눈질로 흘깃 살폈다.
반장은 중립이다.
겉으로는 콧쿠리님을 모셔야 한다는 아이들을 적절히 편들어주고 있지만, 속내는 다소 복잡했다.
기본적으로 하시모토 리코는 사람이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걸 끔찍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다만 내재된 정의감 이전에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다수결 결정을 존중해주고 있을 뿐으로, 다시 말하자면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루미는 그런 거 너무 싫어.』
『그러게. 미쳤다. 폭염의 날씨에 기합 넣기 체조라니.』
배구공으로 가득 찬 커다란 도구상자를 질질 밀고 가던 반장은 루미가 말한 「너무 싫어」의 대상을 착각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Posted by 미야

2021/03/04 12:50 2021/03/0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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