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2학년에 엄청 멋진 연예인 선배가 있어~!!』
견학 도중 땡땡이를 치고 달아나 반 아이들 전부를 기합 넣기 체조로 몰아넣은 주제에 목소리가 엄청 컸다.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대놓고 일그러졌다.
하지만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들만의 비밀스런 사정 탓에 스가와라 미즈키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눈에 힘을 주는 학생은 없었다.
대신 그들은 다음 수업 준비를 하거나 까먹고 있던 과제를 벼락치기 하며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1학년의 콧쿠리님, 그러니까 일종의 카페인 과다섭취 비슷한 상태가 되어 남의 얼굴에 뜨거운 콧김을 뿌리고 있는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콧쿠리님을 응대하는 건 온전히 반장 하시모토 리코의 몫으로 떨어졌다.

「원래 대화 금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몇 번이고 말상대를 해줘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피곤에 찌든 콜 상담센터 근로자의 표정을 지으며 반장은 미즈키를 향해 빙글 돌아섰다.
『누구 얘기? 우리 학교는 외부활동 전면 금지야. 심지어 아르바이트도 금지거든. 연예인 지망생이면 우리 학교가 아니라 세-메이 학원으로 갈테지.』
『그렇지만 분위기가 딱 연예인이던데? 이름이 이이지마 하나에라고 했어. 2학년!』

순간 퍼렇게 날인 선 정적이 몰아쳤다.
이번에는 모두의 시선이 미즈키에게로 향했다. 하던 동작을 모두 멈추고, 심지어 책상에 엎드려 토막잠을 취하던 남학생조차 졸음이 싹 달아난 표정이 되어 스가와라 미즈키를 쳐다봤다.
모두가 일제히 숨을 죽였다는 것도 모른 채 미즈키는 두 팔을 붕붕 흔들어댔다.
『2학년의 콧쿠리님이라고 했어! 꺄아~ 혹시 그 선배 2학년 몇 반인지 반장은 알아?』

인위적으로 꾸며낸 접대용 표정이 삽시간에 무너질 뻔했다.
하시모토 리코는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고 교복의 깃을 잡아당겨 정리했다.
은행원인 어머니가 진상고객을 응대할 적의 몸가짐을 고스란히 따라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자세가 똑바르면 졸음도 달아나고, 허리통증도 완화되며, 마음의 동요도 곧 멈추는 법이다.

『미안. 아무래도 한 학년 위의 선배는 잘 몰라.』
잘 모르긴. 이 동네에서 이이지마 하나에를 모르면 외계인인데. 속으로 중얼거렸다.
칼빵 자국 선명한 야쿠자들도 슬슬 피하고, 심지어 정신 나간 개도 이이지마 하나에 앞에선 꼬리를 감춘다. 아무나 찔러 죽이겠다며 공원에서 칼을 소지한 채 난동을 부리던 괴한이 우연히 편의점에 가던 중이던 이이지마와 정면으로 마주치고는 곧바로 전의를 상실하여 무릎을 꿇었다, 카더라 소문이 돈 적도 있다.
단순 헛소문으로 치부할 얘기가 아니다. 이이지마 하나에라면 일개 여중생이 온전히 기백 하나만으로 예비 살인마를 찍어 누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2학년의 콧쿠리님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뿐인데도 팔뚝의 털이 곤두서려 했다.
그 선배는 멋진 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다.
새 지저귀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으슥한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는데 갑자기 큰곰과 맞닥뜨렸다. 그것도 방금 동면에서 깨어나 심한 허기 상태인 곰이다. 대략 그런 느낌이다.

이쯤해서 하시모토 리코는 의아해졌다.
연예인 같은 멋진 선배? 그거 도대체 누구?

『근데 콧쿠리님이 뭐야? 반장.』
워, 잠시만. 깜빡이는 켜고 들어와라.
『우리 중학교에선 인기투표 1위를 콧쿠리님이라고 불러?』

때마침 예비종이 쳐서 정말 기뻤다.
영혼 없이 빙긋 웃던 반장은 간절하게 대답을 기다리던 미즈키를 나 몰라라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곤란하게 그런 거 묻지 마. 차라리 완전제곱식을 물어보라고.

이어지는 수업시간 내내 미즈키는 샤프를 윗입술에 올려놓고 딴생각에 빠졌다.
「2학년의 콧쿠리님이라. 흐응~ 분명 2학년 넘버원이라는 거겠지?」
초등학교 시절엔 인기투표 1위의 슈퍼스타들을 가리켜 멧챠라고 했다. (※한국식으로는 짱)
남자는 멧챠맨, 여자는 멧챠걸.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울트라 빔을 발사하는 흉내를 내던 동급생이 멧챠맨이었고, 분홍색 스커트를 나폴거리며 애니메이션 프롱프리걸즈 주인공의 동작을 따라하던 아이가 멧챠걸이었다.
멧챠맨은 축구를 정말 잘했기에 운동신경이 뛰어난 소년을 마음속으로 크게 동경했던 미즈키는 쉬는 시간에 멧챠맨과 같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일기장에 기원하는 심정으로 적었을 적에 선생님은 여자애가 남자화장실에 멋대로 들어가려 하면 안 된다며 야단을 쳤다.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은, 미즈키의 흑역사 중 하나다.

『어흠!』
수업에 영 집중하지 못하는 미즈키가 거슬렸던지 2차방정식을 칠판에 풀어나가던 선생님이 헛기침을 했다.
『거기 너! 나와서 문제 풀어! 아까부터 계속 딴 짓이나 하고!』
『제가 풀어보겠습니다.』
교사의 말을 끊은 하시모토 리코가 냉정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방금 지목한 건 네 녀석이 아니다. 하시모토!』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쪽의 고충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미즈키는 입술에 올려놓았던 샤프를 이번에는 손가락에 끼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시선은 여전히 수업진도가 아닌 엉뚱한 페이지에 고정된 채였다.
「헤에. 그런데 좀 의외네. 중학생씩이나 돼서 멧챠코챠 부르는 거, 무지 촌스럽다는 건 알겠는데 말이지... 그렇다고 카제야마 중학교 넘버원을 콧쿠리님이라 부르는 것도 좀 아니지 않아? 콧쿠리님은 그거잖아. 여기로 와주세요 하는 그거. 미래의 애인 이름을 알려주는 엔젤님.」

세 명의 사람이 연필을 같이 쥐고 종이에 가져간다. 여기로 와주세요, 여기로 와주세요, 여기로 와주세요 세 번을 말하고 숨을 계속해서 참고 있으면 콧쿠리님이 현신하여 미래의 애인 이름을 적어주기 시작한다.
주의사항, 숨을 참지 못하고 뱉으면 콧쿠리님이 곧바로 자리를 떠나니 최대한 참는다.
「숨 막혀서 뒤지는 줄 알았지.」
콧쿠리님을 불러내는 건 매우 간단했다. 숨을 참고 있으면 어느새 쥐고 있던 연필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으니까. 다만 그 애인들 이름이 하나같이 찌그러진 동그라미에 갈지자인 건 심히 유감이었다.
노골적으로 실망을 드러낸 아이들을 향해 콧쿠리님을 부르는 방법을 알려줬던 멧챠걸이 변명조로 말했다.
엔젤님은 원래 서양인이야. 그래서 히라가나를 잘 몰라.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콧쿠리님은 영 인기가 없었고, 오래지 않아 장난도 하지 않게 되었다.

「뭐,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수업이 다 끝난 것도 아닌데 교과서를 탁 소리 나게 덮어버렸다.
『야! 인석아! 거기 너! 아직 종 안 쳤다! 왜 교과서를 덮는 거야!』
「2학년의 콧쿠리님이 몇 반인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거지!」
선생님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히든 말든 결심부터 하고 보는 미즈키였다.

2학년의 콧쿠리님은 우롱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니 우롱차가 나오는 자판기 앞에서 무작정 잠복하고 기다리는 거다. 그러다 선배가 나타나는 순간,「어머, 이런 우연이!」공갈치고 덮치는 거다.
「그런데 우리 학교 자판기가 모두 몇 대지. 매점을 제외하고도 여섯 군데가 넘잖아.」
틀렸다! 이 방법은 닌자 분신술을 먼저 익히지 않는 이상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게다가 발목이 다 낫지 않아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얼굴에 철판을 깔고 2학년 교실을 돌아다녀볼까. 덕질은 원래 뻔뻔하게 하는 거다.

뺨에 열이 오르면서 확 붉어졌다.
날 좋은 때 옥상에 올라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하나에 선배와 같이 먹고 싶다.
참고서 골라달라고 부탁도 해보는 거다. 주말에 약속을 잡아 같이 서점을 방문하고, 시간을 내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린 후에 케이크 가게로 가서 끝내주는 디저트를 대접해야지.
캬아~!! 좋구나. 미인이 케이크를 먹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아랫배가 욱씬거려!
그대로 전화번호 교환도 하고 - 방과 후 클럽활동도 같이 하자고 졸라야지.

『같이 부 활동? 오히려 내가 영광이지만... 괜찮겠어? 후배님. 나, 청소부야. 이름하야 클린업 클럽. 빗자루와 걸레, 양동이를 들고 고쿠로쿠치나와님 사당을 청소해야 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가와라 미즈키가 2학년 교실을 순례하기 전, 머리카락에 잎사귀 하나를 머리핀처럼 달고 나타난 이이지마 하나에가 1학년 2반 교실에 먼저 난입했다.

Posted by 미야

2021/03/07 00:17 2021/03/0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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