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와 나란히 하교하는 미즈키를 향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해한다. 하나에 선배는 미인이니까. 공주님과 선머슴의 조합은 아무래도 눈에 띈다.
소곤거리며 귓속말을 나누는 이들 중에는 반장 하시모토와 그녀의 단짝 이시즈미도 있었다.
막상 미즈키와 시선이 마주쳤을 적엔 고개를 홱 소리가 나도록 돌려버렸지만...
어쩐지 반장은 속이 불편한 표정이었다. 찡그린 모습이 콜라와 된장 콩볶음 반찬을 같이 먹었을 적과 비슷했다. 아마도 변비로 인한 배변감이 남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미즈키는 짐작했다. 성장의 후폭풍을 맞은 다수의 여중생들이 여드름 이전에 변비라는 복병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있다.
모쪼록 내일 아침 화장실에서 좋은 소식과 마주치기를.
상대방이 호응을 해주든 말든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선배와 발맞추어 교문을 나섰다.
너무 기뻐 전봇대를 껴안고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술 취한 주정뱅이 회사원 흉내는 내고 싶지 않았기에 전봇대를 상대로 추태를 부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햄버거 가게 마스코트 인형을 껴안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음 진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울렁증까지 왔다. 젊었던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을 적에 멀미를 일으키고 토를 했다더니, 그 피는 어디로 가지 않았다.
『괜찮니? 스가와라. 안색이 창백한데.』
『스가와라라고 부르지 말고 미즈키라고 이름 불러주세요. 저도 하나에 선배라고 부를게요.』
그 와중에도 챙길 건 챙기고 보는 미즈키였다.
『무리를 시킨 건가 싶어 미안하네. 잡초 뽑는 거, 많이 힘들었어?』
『괜찮아요. 이래 뵈도 근육 많아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청소는 1시간 정도 걸렸다. 담배꽁초나 포장종이 이런 걸 줍지는 않았는데 잡초 파워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귀찮다고 내버려두면 쑥쑥 자라 나중에는 원예용 가위나 낫 같은 도구를 동원해 베어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단다. 날씨가 더워지고 비가 오기 시작하면 누가 일부러 배속시키기라도 한 양 잡초의 성장속도가 눈부시게 빨라져 여름에는 청소부가 아니라 원예부로 업태 변경되는 일도 있다고 했다.
휘발유를 뿌리고 불이라도 지르고 싶다는 유혹도 그래서 생긴다나.
『위험하잖아요.』
『당연히 위험하지. 산불로 번지면 학교 체육관까지 순식간이야.』
그나마 산이 그늘지고 서늘한 편이라 부원 숫자가 없어도 일이 돌아가는 거라고 하나에가 설명했다.
『그렇군요. 청소부에 부원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역시 영화 감상부나 추리소설 클럽처럼 인기가 있을 수는 없겠죠.』
반장 하시모토 리코가 가입한 해리 포터 원서 독해부는 2003년에 출간된 불사조의 기사단을 읽기 시작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부원이 증가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제일 커다란 부실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음악실을 개조한 장소에 모두 모이면 무려 마흔 명까지 의자에 앉는다.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영어 원서를 소리 내어 읽으면 꼭 불경을 개굴개굴 외우는 모양새가 되었다.
개의치 않고 부원들은 팔까지 휘두르며 마법 스펠링을 합창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으... 제발 학교에서 그런 짓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법 주문을 소리 내어 읽다니.』
이이지마 하나에가 50대의 아저씨처럼 허리를 구부리며 진절머리를 냈다.
『선배는 해리 포터 안 좋아하세요?』
눈치껏 짐작하자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즈키의 생각에 이이지마의 취향은 해리 포터가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의「인간 실격」쪽이다. 책장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장편소설「설국」도 꽂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쓸어 넘기며 히라가나 별도 표기 없이 세로방향으로 한문이 잔뜩 적힌 낡은 책을 집중해서 읽어 내려가지 않을까.
『...... 영화 정도는 봤어.』
『그럼 다음 시리즈가 나오면 같이 보러 가요. 올해 여름방학 시즌에 아즈카반의 죄수가 개봉될 거래요.』
어린애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면서 미즈키가 약속을 졸라댔다.
이상하게 그러자, 말자,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미즈키는 겨울날 눈 맞은 강아지처럼 한 바퀴 더 빙글 돌았다.
『하나에 선배?』
『젠장. 있잖아, 후배님. 여기까지 와서 도중에 바꾸자고 말하는 건 좀 미안한데, 오늘의 메뉴를 꿀빵에서 카레라이스로 변경하면 안 될까? 갑자기 미친 듯이 카레가 먹고 싶어졌어. 응. 그래. 오늘은 카레다.』
무엇을 봤기에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뜬금없이 하나에가 카레 타령을 했다.
목적지인 오로보로당 가게 앞으로 가쿠란을 입은 남학생 두 명이 서있었다.
두 사람 다 운동하는 사람처럼 키가 굉장히 컸다. 몰라도 180cm는 넘을 터였다.
하지만 배구나 농구선수는 분명 아니다. 왜냐하면 한 명은 머리를 하얗게 탈색한데다 색이 짙은 선글라스를 썼고, 다른 한 명은 어깨에 닿는 길이로 머리카락을 길렀기 때문이다. 교복도 개인취향을 반영해 수선을 한 눈치다. 그러니까 학교 교칙과는 담 쌓고 사는, 질 나쁜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탈색남이 징징거렸다.
『나는 딸기크림 꿀빵이 먹고 싶다고오. 왜 팔지를 않겠다는 거야.』
『손님, 그게... 품절이라서. 팔지 않겠다는 게 아니고.』
진열대 앞에 서있던 아르바이트 점원이 애원하듯 목소리를 떨었다. 두 남학생의 덩치에 완전히 압도당했는지 평소 유창하던 접대멘트는 전부 까먹고 버벅이느라 바빴다. 대학교 3학년이 고등학생에게 쫄았다.
『저쪽 포장박스에 남아 있잖아. 하나, 둘, 셋, 넷, 여섯 개나 남았네.』
『그것은 비매품으로. 죄송하오나. 네. 여섯 개군요.』
오로보로당 주인은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젊어서 고생을 잔뜩 했던 기억 때문인지 부족한 학비를 벌기 위해 가게에 취업한 아르바이트 점원에게 가욋돈을 더 붙여준다는 식의 친절을 자주 베풀곤 했다.
상자에 담아 미리 빼둔 꿀빵 또한 오로보로당 사장이 주는 일종의 선물이다. 집에 돌아가 동생들과 같이 먹으라며 인기가 많아 금방 품절이 되는 종류로 골라 때때로 챙겨주곤 했다.
그러한 속사정을 미즈키가 상세히 꿰고 있는 까닭은 그녀 또한 비매품으로 빼둔 꿀빵에 눈독을 들이고 하나만 달라 졸라댄 적이 있어서다.
『고죠. 너는 비매품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거냐. 상품으로 팔지 않겠다는 뜻이잖아.』
장발남 쪽이 적당히 하라며 한 소리 했다.
『그럼 더 잘됐네. 돈 내고 사지 말고 서비스로 받아가면 되겠다. 그지?』
멋대로였다. 탈색남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우기고 보았다.
『에, 그러니까 저쪽 비매품 딸기크림은 서비스로 전부 주시고. 설탕조림 사과 맛이랑 바나나 화이트치즈 포장해주세요. 열두 개 세트요.』
미즈키가 하나에의 귀에 대고 살짝 귓속말했다.
「못 보던 교복인데 아마 양아치인가 봐요.」
귀가 밝았다. 탈색남이 아앙? 날티 가득한 소리를 내고 이쪽을 쳐다봤다.
『방금 뭐라고.』
『뭐긴요. 꿀빵이 참 맛있다고요.』
『양아치라고 하지 않았어?』
『양갱이라고 했는데요.』
목숨은 하나다. 미즈키는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거짓말했다.
『그쪽이 귀가 안 좋은 거예요. 비매품이라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잖아요.』
『지금 싸우자는 거냐.』
『아뇨. 훈수 두는 건데요. 설탕조림 사과보다 허니 시나몬을 사가요. 그게 더 맛있어요.』
언짢았던 모양이다. 상대방의 기운이 매서워졌다.
『기분 더러워. 도쿄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짜증나는데 양갱이니 양아치니...』
『그만해, 고죠! 여기서 주력 꺼내지 마. 비술사... 아니, 일반인이잖아. 게다가 중학생이고.』
『저게 어딜 봐서 중학생이야. 똑바로 보라고, 스구루. 초등학생이잖아!』
『교복 입었어.』
『땅에 코가 닿고 있잖아! 불쾌한 초등학생이야!』
미즈키는 참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이라고요! 제 키는 평균이고요. 한여름도 아닌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까 보이는 게 없지!』
『너무 잘 보여서 쓰고 있는 거야, 이 어리석은 중생아.』
『중생의 뜻은 알아? 비매품의 뜻도 몰랐으면서.』
『중간에 생기다 말았다는 거잖아, 꼬마야. 아무렴 이 위대하신 고죠 사토루님이 그것도 모를까보냐.』
허리에 손을 댄 사내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 가뜩이나 커다란 자신의 신장을 더욱 크게 보이게 만들었다.
미즈키도 이에 질세라 뒤꿈치를 들어 올렸는데 슬프게도 그래봤자 남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