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키가 컸던 고죠 사토루는 어렵지 않게 다나베 고우지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물론 시선 높이의 차이일 뿐, 그게 힘겨루기 우위를 가름하는 척도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약간의 만족감은 있었다.
이름 없는 가게의 생크림 케이크를 막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었을 때의 흡족함이었다. 맛이 훌륭하진 않아도 어쨌든 케이크였다.

그 비뚤어진 미소를 본 게토 스구루가 눈치껏 팔을 엑스 자로 교차해 보였다.
주술고전 1학년 담임인 야가 마사미치는 고죠 사토루가 특정 표정을 짓는다 싶으면 일단 안 돼, 라고 말하라고 부탁을 해온 적이 있다. 주인이 한눈을 판다 싶으면 쓰레기통부터 뒤엎고 보는 말썽꾸러기 강아지 취급이었지만,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전원 아득히 먼 하늘까지 날려버린 뒤에 비술사만 딱딱 골라 얌전히 바닥에 착지시키고 나머진 피떡으로 만들어선 곤란했다.
예전에도 저주사를 대상으로 콩주머니 던지기 놀이를 한 전적이 있었기에 게토 스구루의 염려는 기우 같은 게 아니었다.

『그럼 네 생각은 뭔데, 스구루.』
『음... 애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먼저 협상 비슷한 걸 해보는 건 어때.』
『진심이냐?』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시도한 게 지금이 처음인 건 아니잖아.』

잠시 생각해보고 고죠 사토루가 사람인 척하는 그것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애들은 풀어줘, 썩은 귤. 아니면 콱 모가지를 따서 죽여 버린...』
형편없는 말본새에 게토 스구루가 고죠 대신 바통을 이어나갔다.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밖으로 나가면 사람이 더 많다. 일부러 붙잡지 않을 테니 건물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먹던지 말던지 맘대로 해보는 건 어때.』

그것은 눈을 가늘게 뜨고 꼭 낯선 일본어를 처음 듣는 외국인의 낯을 했다.
학교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 거슬린 걸까, 아니면 나가서 사람을 먹으라는 말에 반응한 걸까.
진짜로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닐 테니 변화구를 던져 계속해서 떠보는 게 좋을 것이다.
『싫어? 별로야?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 아니면 여기서 떠날 수가 없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원하는 것이 있어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지?』

옛날, 신이 타락하여 특급 주령이 되었다.

주술적인 이유로 땅에 종속되었다면 떠나고 싶어도 발이 묶여있을 수 있다. 지박령 같은 것들은 사실상 초강력 접착제로 땅에 붙들려 있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이동이 자유로운데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거라면 골치가 아파질 수 있다.
고죠 사토루는 과거, 이 장소에서 특급 조복을 위해 특급 주물이 사용되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게토 스구루의 생각으로도 충분히 그럴싸한 줄거리였다.
그럴 듯해서 그 특급 주물이라는 게 어디로 가지 않고 여전히 이곳에 잠자고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봤다.
몇십 년에 걸쳐 걷어도 걷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무지막지한 양의 부해 – 비정상적인 현상에는 항상 원인이 따로 있는 법이다.

옛날, 주술사들은 조복에 실패했다.

게토 스구루는 희극적으로 팔을 벌려 보였다.
『그게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해보고 싶지 않아? 학생들을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인간의 아이들을 해치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뱀의 눈을 한 남자를 응시하며 살살 구슬렸다.
『애들은 보내줘. 그러는 편이 이득이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생각해봐. 나라면 다 포기하고 홀가분하게 여기서 빠져나갈 거야.』

뚱한 얼굴로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그것이 마침내 말했다.
《그대의 소원은 하찮군.》
『어?』
《짜증날 정도로 하찮아. 제국과 만세일계(※ 萬世一系 천황제 국가 이데올로기.일본 왕실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의 번영을 기원하지는 않더라도 개인의 영화 정도는 빌어봄직 하지 않은가. 다 포기하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소원이라니... 되었다. 가거라. 네 소원은 이루어졌다. 대가는 받았다.》
『어어?』

잠깐만 기다려, 외치는 사이에 시야가 훅 바뀌었다. 어느새 건물 밖이었고, 옆에는 과잉 친절을 베풀어 동료인 고죠 사토루까지 제대로 모셔져 있었다.
욱신거리는 격한 통증을 느껴 아래를 내려다보니 왼손 검지와 중지의 손톱이 빠져있었다.
어이가 없다. 이게 대가? 게다가 그따위 소원을 언제 빌었다고. 제멋대로 착각해놓고 사람을 모지리 취급...
머리카락이 정전기에 올이 일어선 스웨터처럼 변했다.
『크아앗, 새끼. 갈아버린다~!!』
『앗, 우리 스구루 눈 돌아갔다.』
『게다가 왜 손톱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뽑아버린 거야! 어째서 저 녀석과 나를 세트 취급 하느냐고! 세트 취급하려면 마트처럼 원 플러스 원으로 계산하던가! 제기랄, 쓰라려!』
『화를 내는 포인트가 이상해.』
『화가 안 나게 생겼어?! 쓰잘머리 없는 물건을 강매당한 기분이라고!』
하나는 인정해도 두 개는 아니야. 내 손톱 내놔, 외치며 손가락을 움직여 인(印)을 맺었다.
보랏빛의 연무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났고, 이윽고 제각각의 주령들이 떼를 지어 학교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두꺼비의 눈을 하고 유리창에 철썩 들러붙은 주령의 모습에 이이지마 하나에는 몸을 사렸다.
「말세구나. 뱀 다음에는 두꺼비냐.」
개굴개굴 소리를 낼 것처럼 생긴 것이 바깥에서 유리창을 쾅쾅 두드렸다. 예의를 차려 노크를 하는 모양새가 아니고 정말로 부셔버리겠다는 투지를 드러내며 때렸다. 방탄유리도 아닌데 영 깨질 기미가 없자 두꺼비처럼 생긴 그것은 더 약한 부분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두꺼비의 시선을 피해 교무실 바닥을 거의 기다시피 움직여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책상 안쪽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갔다. 누구의 자리인지는 몰라도 체취처럼 남은 발 냄새가 지독했는데 스프레이 파스 냄새까지 뒤섞여 코점막을 고문했다.

억지로 숨을 참고 있는 도중에 쿵, 하고 큰 진동음이 울렸다.
놀랐는지 옆에 있던 스가와라 미즈키가 히익 소리를 냈다. 덧붙여 딸꾹질까지 시작했다.
『조용히!』
『죄송해요.』
스가와라 미즈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터진 딸꾹질은 마음먹은 대로 멈추지 않았고, 그녀가 알고 있는 딸꾹질을 멈추는 방법은 물을 한 컵 마시는 거였다. 당연히 주변에는 마실 물 같은 건 있지 않았기에 불가항력적으로 히끅 히끅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다시 쿵, 하고 건물이 흔들렸다.
기분 탓인지 바닥이 오른쪽으로 기운 것 같았다.
재차 쿵, 쿵, 진동음이 울리자 이번에는 바닥이 아래로 내려앉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던 두꺼비 주령이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서두르자.』
미즈키의 손을 잡은 이이지마 하나에는 유선전화가 있을 행정실 방향으로 낮은 오리걸음으로 걸었다.
『뭘까요. 방금 전 그건 지진이었던 걸까요?』
스가와라 미즈키는 일반인이다. 주령이니 하는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없다. 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감이나 육감 같은 게 완전 퇴화하여 사라진 상태여서 석고상을 들고 사람 아닌 것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을 정도다.
그러니 물결치며 쓸려오는 주령들이 거대 진동음을 내고 있어도 그다지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눈치다.
딸꾹질은 끝났고 지진은 염려스러웠다.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걱정했다.

『또 흔들리면 어쩌죠?』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보호해야겠지.』
『무서워요. 하나에 선배는 안 무서워요?』
『나도 무서워.』
『저, 엄마 보고 싶어요.』

눈물 젖은 목소리를 내는 후배의 어깨를 기운 내라며 툭툭 쳤다.

그리고 속으로 한탄했다.
엄마가 보고 싶니?
부럽네. 난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는데. 엄마도 아빠도,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Posted by 미야

2021/04/06 14:31 2021/04/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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