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연휴가 코앞인데 심란하네요. 이모가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검사 결과 폐암 말기라서 아무래도 퇴원이 어려우실 듯하다고... 원래 몸이 안 좋으셨는데 위암이나 유방암도 아니고 폐암이라 해서 다들 놀랐어요. ※


이후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몫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가게에 앉아 과일이 들어간 음료수를 주문했다.
비탈진 언덕 중간에 위치한데다 테이블에 앉아서 밖을 보면 높게 쌓은 축대밖에 보이지 않는 갑갑한 전경 탓인지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다른 가게와 달리 앉을 자리가 넉넉했다.
다만 메뉴판에 적혀져 있는 가격은 예상보다 비쌌다. 짐작한 거에 두 배 가격이라 이 또한 바가지 상술이구나 의심을 품었는데 의외로 입안에 든 음료수 맛이 제법 괜찮았기에 태영은 불평하던 걸 금방 관뒀다.
사과 맛이 진하게 나면서도 달지 않았다. 감미료를 넣지 않은 100% 진짜다. 한 입 두 입 마시다보니 어느새 금방 절반 이상을 다 먹어버렸다.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는 건 그다지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에티켓을 가르치던 선생이 지금의 그를 보았다면 철부지 어린애처럼 그게 뭐냐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영은 애초부터 형식에 그다지 구애를 받지 않는 타입이었고, 지금처럼 마음에 드는 맛있는 걸 손에 쥐었을 적엔 심리적으로 조급해져서 그런지 손으로 음식을 직접 잡아 뜯거나 밖으로 흐른 내용물을 스스럼없이 핥기도 했다.
지금도 물방울을 혀로 핥았다.

『맜있어?』
『끝내줘.』
『그거 다행이군.』
그 반대편에 의자 등받이 깊숙이 몸을 파묻은 오남은 다리를 꼰 채 유료 판매되는 6장짜리 인쇄물을 펼쳤다.
이것은 파보(波報)라고 하는 것이다. 태영은 그걸 신문이라고 부른다. 허나 일간지라고 하기엔 그 성격이나 인쇄 상태가 매우 조잡하다. 화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두 번 발행되고 있고 유익한 정보를 얻기엔 기대치가 낮은 편이다. 차라리 술집에 가서 마을 주민들의 술주정을 귀담아 듣는 편이 낫다 - 말버릇처럼 그리 말했지만 그래도 오남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파보를 구입해서 읽곤 했다. 불쏘시개로밖에는 쓸모가 없다 치를 떨며 욕하는 주제에 실제로는 열렬한 구독자다.

눈을 가늘게 뜨고 태영이 질문했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15년 전통의 르랑르 양품점이 내부 공사를 마치고 다시 개업했다는 군. 열 다섯 명 한정으로 기념품을 제공, 최신 유행의 드레스를 입고 당신의 우아함을 뽐내세요... 라고.』
『경쟁자의 등장인가. 큰일 났네.』
호들갑스런 말투에 오남은 읽던 종이에서 흘끔 눈을 들었다. 그래봤자 태영은 음료수를 홀짝홀짝 맛보는 일에 여전히 열중해 있다. 단순히 기분 탓인가 헷갈려하며 다음 장을 넘겼다.

이래서 파보라는 거다. 공왕의 치세를 찬양하는 요란하고 지루한 글이 지면의 절반을 뒤덮었고 그 덕에 비타아른 공왕국은 하품이 나오도록 평화로웠다. 이곳의 왕은 똥도 안 싸고 방귀도 안 뀌나 보다. 자세히 읽지도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특별한 소식은 없고 밀의 수확량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일 거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래도 8년만의 축제 탓에 물가가 크게 올랐다. 특히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다며 시장에서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도 아직 위험한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는지 여기 재정부는 물가 통제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좋은 태도는 아니다. 공급과 수요가 틀어지면 고통 받는 건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다.
이후의 지면에선 성공적인 축제를 기원하며 여러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실었다. 신관부터 소젖 짜는 아낙네까지 한 목소리로 설레는 감정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 목소리들에 개성이 없다. 실제로 발품을 팔아 사람의 의견을 하나하나 귀로 듣고 지면으로 옮겼다는 느낌이 아니다. 목장의 여주인 안나의 정체는 실제로는 인쇄소 활자공이다?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다. 파보에 글을 적는 자들은 반드시 참 말만 하진 않았다.
그런데 특이하게 딱딱해진 빵을 스프로 만들어 먹는 요리법도 하나 실렸다. 뜬금없는 주제라 오남의 눈썹이 비틀렸다.
『웬 요리법?』
그래도 끝 무렵에 이르러 편집자가 정신을 차렸는지 굳어버린 빵을 활용하는 요리법은 황급히 마무리가 되고 근처 바린 가에서 도로 일부가 함몰되어 주저앉았다는 소식이 뒤를 이었다. 덕분에 지나가는 마차가 옆으로 굴러 사상 사고로 이어졌다. 변을 당한 마부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세 명이 크게 다쳤다. 다친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으나 규모가 큰 잡화점 가게의 주인과 상속자인 아들, 그리고 동행한 하인이라 했다. 도로에 구덩이가 파였을 뿐인데 가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혹시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손님.』
다 읽은 파보를 접으려는데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곱슬머리 종업원이 다가와 오남과 가만히 눈을 맞춰왔다.
계산을 마치고 그만 자리를 비켜달라는 뜻인가 싶어 나름 긴장했다.
허나 꼭 그런 의미는 아닌가 보다. 눈치를 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말을 걸고 싶었던 모양이다.
『스콘을 새로 구웠는데요... 저어. 따뜻할 적에 드시면 맛있어요.』
귀여움을 강조하는 분홍색 앞치마를 걸친 종업원은 검은색 머리카락과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태영이 마냥 신기했던지 조심스럽게 곁눈질을 했다. 그 모습이 과자를 굽고 있는 엄마를 훔쳐보는 어린애처럼 보여 오남은 자신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그거 맛있나요?』
『당연하죠. 제가 직접 반죽해서 오븐에 구웠답니다. 맛있어요. 저어... 그런데.』
새로 구웠다는 따끈따끈한 스콘은 확실히 핑계였다.
곱슬머리 여자는 자신의 귀밑머리를 손가락에 감고 빙빙 돌렸다.
한참을 그러더니 결심했다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곳에선 후보자들의 행렬이 보이지 않거든요. 앞의 건물이 시야를 가로막아서.』
여행자들에게 나름 친절을 베풀고 싶었던지 그녀는 뺨을 붉히며 사정을 설명했다.
『멀리서 축제를 보러 오신 거 맞죠?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우리 가게는 축제 행렬을 구경을 하기엔 자리가 나빠요. 목을 길게 내밀어봤자 올려 쌓은 축대밖에 안 보이니까요. 제대로 구경을 하려면 역시 광장으로 나가야할텐데 인파가 많은 까닭에 미리 자리를 잡지 않으면 힘들 거예요. 모르고 계신 것 같아 알려드리는 거에요. 구경을 놓치면 속상하실테니까요.』
『그렇군요.』
오남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여자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다시 말해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손등에 당장에라도 입맞춤을 하려는 것처럼 부드럽게 손을 감싸쥐었다는 얘기다.
그 즉시 태영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여자를 대하는 오남의 목소리는 꿀이 잔뜩 발린 것처럼 미끄덩거렸다.
『친절하시기도 하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엽고 상냥하신 분.』
『어머나, 뭘 이 정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여자를 대신하여 태영이 테이블 아래서 얼른 발길질을 했다.
「짜증나, 이 성추행범.」
아무튼 걷어차인 정강이가 아파 붙잡은 여자의 손을 놓아준 건 결코 아니라는 말씀.

『그런데 꼭 광장으로 나갈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제 눈앞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분이 계신데.』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테이블 아래서 태영은 다시 목표물을 노리고 발길질했다. 그만하라는 의미로 노려보기도 했다.
그래도 아저씨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살기를 내뿜는 황제폐하와 독대하면서 태연하게 과자를 주워먹던 사내다. 이 남자를 굴복시키려면 보다 강하고 다른게 필요하다. 이를테면 항아리에 든 독충 100만 마리 같은 거.
오남이 살살 눈웃음을 쳤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당장 모시고 광장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어때요. 저와 같이 축제에 참가해 보는 건?』
『아유, 빈 말이라도 참 잘 하시네. 아이 넷을 낳은 나 같은 아줌마보고 예쁘다고 말해줘서 참 고마워요.』
『그런 말씀 마세요. 진심이니까.』
입에 발린 말이라도 좋았다. 포동포동한 살집의 여자는 기뻐하며 몸을 꼬았다.

Posted by 미야

2015/09/23 21:50 2015/09/2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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